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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섬의 산정에 ‘비밀의 정원’ 있다

‘쑥섬’ 일구며 사는 고채훈·김상현 부부

이돈삼

2019-02-01


“꽃만 이쁜 게 아닙니다. 싹을 틔우고, 새싹이 조금씩 자라는 모습이 얼마나 이쁜데요? 꽃망울을 머금었을 땐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로 앙증맞아요. 꽃을 하나씩 피울 때도 아름답고요. 다 이뻐요.”


‘쑥섬’의 정원에서 만난 고채훈 씨. 고 씨는 ‘쑥섬’ 정원의 안주인이다. 섬 자체가 정원이고, 꽃밭인 쑥섬은 나로우주센터로 널리 알려진 고흥군 봉래면 외나로도에 딸린 ‘섬 속의 섬’이다.


고채훈, 김상현 부부


쑥섬의 전경



섬 밖에서 안 보이는 비밀의 정원


쑥섬은 겉보기에 아주 작고 평범해 보인다. 하지만 섬에 들어가 보면, 금세 그렇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마을의 돌담길은 수십 년에서 100년 세월의 더께가 묻어있다. 암석 정원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마을 뒷산은 귀한 난대수종 수천 그루로 숲을 이루고 있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비밀의 정원이다. 이 섬의 산등성이(해발 83m) 널따란 평지가 천상의 화원이다. 발품을 팔아 산정까지 오르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꽃밭이다. 섬 밖에서는 절대 보이지 않아 비밀의 정원이라 불릴 만하다. 산등성이 꽃밭의 면적이 3300㎡ 남짓. 여기에서 300여 종의 꽃이 철 따라 옷을 바꿔 입는다. 드넓은 바다와 다도해를 배경으로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꽃들이 절로 감탄을 자아낸다.


정원의 이름도 환희의 언덕, 별 정원, 태양 정원, 달 정원으로 귀엽고 예쁘다. 의자와 평상도 있어 꽃을 감상하며 힘든 다리를 잠시 쉬어갈 수도 있다. 군데군데 적어놓은 좋은 글귀를 읽어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를 준다. 섬과 아주 잘 어울리는 소박한 정원이다.


마을의 돌담길, 해발 83m의 산정에서 볼 수 있는 300여 종의 꽃으로 가득한 비밀의 정원



내가 좋아 시작한 정원 가꾸기


비밀의 정원을 가꾸는 고 씨의 고향은 지리산 자락 구례군 토지면이다. 고흥 백양중학교 국어교사인 김상현 씨와 1996년 결혼하면서 외나로도로 들어왔다. 고씨 부부는 전국의 수목원을 돌아다니며 식물에 대해 공부했다. 여유가 생기는 대로 쑥섬의 땅을 조금씩 사들여 꽃과 나무를 심었다. 지난 17년 동안 그랬다.


정성껏 가꾼 꽃이 가뭄에 말라 죽는 일도 다반사였다. 태풍을 만나 하루아침에 사라지기도 했다. 하지만 고씨 부부는 포기하지 않았다. 주말과 휴일, 방학은 물론 평일에도 짬을 내 꽃과 나무를 가꿨다. 섬의 숲길도 정비했다.


“누가 시켜서 했다면 버티지 못했겠죠. 내가 좋아서 하고, 재밌어서 했어요. 꽃과 나무를 가꾸면서 행복했고요. 지금도 같습니다.

내가 좋아서, 우리가 좋아해서 하고 있어요. 남에게 보여주려고 한 게 아니에요.”


섬에서 꽃을 심고 가꾸는 것만 고 씨의 일이 아니다. 씨앗을 직접 키워 모종도 가꾼다. 그는 봉래면사무소 부근에서 약국을 운영하고 있다. 외나로도에 하나뿐인 약국이다. 고 씨는 약국 옆에 33㎡ 남짓의 비닐하우스를 두고 틈틈이 모종을 키운다.


고 씨가 운영하는 건강약국과 모종


“처음엔 모종을 다 사서 심었어요. 지금은 대부분 직접 가꿔요.

90% 정도 그렇게 하고, 새 품종이나 제가 가꿀 수 없는 것만 사서 심어요. 모종을 가꾸는 일도 재밌어요.”


고 씨는 평일에도 약을 팔고 상담을 하는 것보다 모종을 가꾸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쓴다. “시골약국이어서 손님들이 그리 많지 않아 가능하다”고 했다. 지금은 봄에 내다심을 봄꽃 모종을 키우고 있다.



주변 경관과 어우러진 정원


고 씨는 모종을 심을 때 밑그림을 따로 그리지 않는다. 마음 가는 대로, 내키는 자리에다 ‘마구잡이’로 심는다. “자신은 조경업자가 아니”라는 게 그의 말이다.


“어디에다 뭘 심어도 다 이뻐요. 사방팔방으로 내려다보이는 바다와 섬이 기본 배경을 깔아주잖아요.

배경이 워낙 좋아서 별 고민 하지 않고 심어도 다 멋져요. 그렇지 않나요?”


고 씨는 꽃밭을 가꾸는 자신의 정성보다 주변의 섬과 바다에 공을 돌렸다. 쑥섬을 찾은 여행객들이 안구를 정화할 수 있는 것도 그 덕분이라고 했다.

그녀의 노력에 힘입어 쑥섬은 알음알음 다녀간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2015년 6월 전라남도의 제1호 민간정원으로 지정됐다. 다도해의 섬에 만들어진 비밀의 화원이 더 많은 사람에게 공개된 것이다.


김상현, 고채훈 부부


“쑥섬이 우리 국민들의 여행 추세와 맞아떨어진 거죠. 요즘은 수학여행식 관광이 아니고 가족이나 친구끼리 오붓하게 즐기잖아요. 찾아오신 분들이 차분히 구경하고, 쉬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또 다른 보람을 느낍니다.”


그의 말에서 쑥섬이 많은 사람에게 편안하게 쉬는 공간으로 사랑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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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돈삼
이돈삼

일상이 해찰이고, 해찰이 일상인 삶을 살고 있다. 전남도청 대변일실에서 일하며,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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