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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구생활

전국 팔도 시민 기자단이 보고 들은 인문 현장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숨결

경교장

2019.02.19

'대한민국'이 국호로 정해진 1919년 3월 1일.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거점이었던 공간, 경교장은 그 날의 기억을 품은 채 2019년 현재에도 존재한다. 일제의 식민통치를 거부하고, '자주독립국'으로서 임시정부를 수립했던 이들의 품은 아직도 뜨거웠고 드높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환국하다


경교장(서울시 종로구 새문안로 29)

▲경교장(서울시 종로구 새문안로 29) ⓒ 김세희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3•1 운동을 계기로 중국 상해에서 수립됐다. 중국의 낯선 도시를 옮겨 다니면서도 식지 않았던 그들의 열망은, 해방을 맞이하면서 한반도로 향했다. 서울시 종로구에 자리한 경교장은 한민족 역사상 최초로 민주공화제 정부로서 태극기와 애국가를 그대로 이어받으며 국무위원회를 개최한 공간이다. 

이곳은 안타깝게도 환국한 지 만 4년이 지났을 때 김구 선생이 안두희의 총에 서거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2층 김구 선생 집무실 남쪽 창가에서 책을 읽던 중 일어난 사건은, 역사를 되짚어볼 수 있도록 현장이 보존돼 있다.


김구 주석이 돌아가신 2층 집무실

▲ 김구 주석이 돌아가신 2층 집무실 ⓒ 김세희


경교장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흔적으로, 2층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국내외 보도진이 밀려들었던 국무위원회는 물론이고, 유엔 관련 외빈들을 맞이했던 순간들이 1층 응접실에 가득하다. 그 반대편에는 언론 및 홍보를 담당했던 선전부의 활동 공간이 있다. 당시 이곳을 동네 영화관으로도 개방했다고 하니 김구 선생의 푸근함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물론, 이곳에서는 선전부장 엄항섭, 재무부장 조완구, 문화부장 김상덕 등과 같은 자칫 잊힐 뻔했던 소중한 이름들도 마주할 수 있다. 

아무것도 모르고 돌아봤을 땐 번듯한 모습이지만, 경교장 사람들은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아 열악한 환경에 있었다고 한다. 겨울에는 난방조차 못했고, 이에 임시정부 요인들과 수행원들이 떠나기도 했다는 기록이 남겨져 있다. 그럼에도 선전부장 엄항섭은 김구 선생과 함께 마지막까지 경교장에 남아 통일정부 수립에 힘을 썼던 대표적 인물로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회가 열렸던 1층 응접실

▲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회가 열렸던 1층 응접실 ⓒ 김세희


1층 귀빈 식당은 들어서자마자 정담이 스피커를 통해 공간을 울린다. 이 소리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환국의 기쁨을 엿볼 수 있다. 1945년 12월 2일, 꿈에 그리던 고국에서 임시정부 청사를 마련하고, 맞이한 저녁상이 얼마나 달큰하고 든든했을까. 화기애애한 목소리가 방문객들의 입가를 저절로 올라가게 한다. 

그러나 이 공간은 김구 선생의 서거로 빈소가 차려졌던 곳이기에, 잠시 피어난 단꿈과 잠들어버린 슬픔이 교차하는 곳이다. 저격 당했을 때의 혈의와 '신기독(愼其獨 : 홀로 있을 때도 삼가함)'. 그리고 '사무사(思無邪 : 생각함에 그릇됨이 없음, 논어 위정편)'를 적은 김구 선생의 유묵 앞에서 그의 면모를 그려 본다. 나라 잃은 설움 없이 살 수 있던 감사함에 절로 고개를 떨구게 된다.


저격 당했을 당시 김구 선생의 혈의

▲ 저격 당했을 당시 김구 선생의 혈의 ⓒ 김세희



지금의 '경교장'이 될 때까지


경교장 원모형(1/50)

▲ 경교장 원모형(1/50) ⓒ 김세희


<조선과 건축(1938)>을 보면, 경교장은 당시 근대 건축의 아름다움을 담은 상류층 문화주택으로 건축 당시 '죽첨장(竹添町)'으로 불렸다. 광산 경영으로 3대 부자였던 건축주 최창학은 친일 행위를 했던 사람이었는데, 광복을 계기로 잠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게 무상으로 건물을 제공했다. 지금의 '경교장(京橋莊)'은 김구 선생의 뜻으로 지은 이름이다. 하지만 김구 선생이 서거하자 최창학은 경교장 반환을 요구해 유족들은 경교장을 떠나게 된다. 

경교장은 이후 대만 주한 초대 대사의 관저, 월남공사관(대사관)을 거쳐 고려병원(현재 강북삼성병원)에 매각된다. 그리고 병원에 맞게 리모델링된 건물은 더 이상 옛 모습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다행히도 수많은 임시정부 요인들의 정신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김구 암살 진상 규명운동이 펼쳐진다. 또한 1970년대 말부터, 경교장을 역사적 현장으로 보존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그 결과 2001년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29호로 지정되고, 2005년 국가 사적 제465호로 승격되어 복원되면서 차츰 일반에게 개방되었다. 


경교장의 세월이 기록된 안내 책자와 기념 스탬프

▲ 경교장의 세월이 기록된 안내 책자와 기념 스탬프 ⓒ 김세희


"눈 내린 들판을 걸어갈 때는

발걸음을 어지럽게 걷지 마라.

오늘 나의 발자국은

뒤에 올 사람의 길이 된다."

- 독립운동가 김구 -


어지럽고 안타까운 세월이 거듭되었지만,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흔들림 없는 의지는 결국 후손들의 국민적 공감대를 만들어내고 지금의 경교장을 만들어냈다. 이 기적과도 다름없는 과거와 현재가 마주잡은 손. 험난하고 앞을 헤아릴 수 없는 어둠이 우리에게 주어진다 하더라도,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선택하며, 어떻게 걸어가야 하는지 돌이킬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 아닐까. 

부력(富力)과 강력은 풍족함과 동시에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고 하는 김구 선생. 무엇보다 문화의 힘으로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길 원하는 선생의 마음은 <나의 소원>에 담겨 있다. 어쩌면 앞으로 이 나라에서, 이 땅에서 살아갈 우리가 무엇을 남겨야 할지, 마음에 새겨보는 유언이란 생각이 새삼 든다.



* 경교장 복원 범민족추진위원회 *

http://www.kyungkyojang.or.kr/

장소정보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 29 경교장
인문360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화체육관광부 경교장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회 신기독 사무사 죽첨장
김세희
인문쟁이 김세희
2019 [인문쟁이 3기, 4기, 5기]


김세희는 경기도 남양주시에 둥지를 틀고 있으며, 여행 콘텐츠 에디터로서 때로는 느슨하게, 때로는 발빠르게 노마드의 삶을 걷고 있다. 낯선 이가 우리의 인문 기억에 놀러오는 일은 생각만 해도 설레고 두근거린다. 더 많은 것을 꿈꾸고 소망하고 함께 응원하는 온기를 뼈 마디마디에 불어넣고 싶다. 어떤 바람도 어떤 파도도 잔잔해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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