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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구생활

전국 팔도 시민 기자단이 보고 들은 인문 현장

봄을 향해 내딛는 발걸음

4・3 문학현장낭독회

2019.01.17

제주 4.3 사건을 기억하는 또 다른 방법


동백은 제주 어느 곳을 가도 볼 수 있는 친숙한 꽃이다. 제주 안에서도 특히 동백나무가 많은 조천읍 선흘리는 ‘동백동산’이라 불린다. 유난히 크고 붉은 선흘리의 동백을 보면서, 제주 사람들은 4・3 사건의 아픔을 떠올리곤 한다. 4・3 사건 70주년을 맞아 선흘리에서는 제주 남문서점이 주최한 ‘4・3 문학현장낭독회’가 열렸다. 눈발이 흩날리는 날씨에도 강연회를 가득 메운 사람들의 눈빛이 겨울에 피는 동백처럼 선연했다.


 남문서점 앞에 모인 4.3문학현장낭독회 참가자들 남문서점

▲ 남문서점 앞에 모인 4.3문학현장낭독회 참가자들 ⓒ남문서점


4・3 사건은 제주문학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주제다. 이날 낭독회는 당시의 아픔을 담은 문학 작품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강연을 맡은 김동윤 평론가는 “지금까지는 주로 제주문학을 통해 알려왔지만, 앞으로는 더 다양한 각도에서 4・3 사건을 바라보고 예술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낭독회가 열린 카페 세바는 감귤저장고를 리모델링해 만들어졌다.  양혜영

▲  낭독회가 열린 카페 세바는 감귤저장고를 리모델링해 만들어졌다. ⓒ 양혜영


문학현장낭독회 현장 남문서점

▲ 4.3문학현장낭독회 현장 ⓒ남문서점

 

참가자들은 김동윤 평론가가 소개하는 시를 함께 낭송하며 그날의 아픔을 되새겼다. 낭독회에 참가한 백제영씨는 “제주에 이주해 오기 전까지는 4・3 사건에 대해 알지 못했다”며 앞으로 더욱 적극적으로 슬픈 역사를 배우고 알리겠다는 다짐을 밝혔다.

 


희망과 치유의 상징, 불칸낭


낭독회를 마친 후에는 선흘리 일대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선흘리는 4・3 사건 당시 중산간 지대에 위치했다는 이유만으로 마을 전체가 불태워졌다. 난리 속에서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은 고향을 떠나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사건이 끝나고 주민들이 돌아왔을 때, 고향 마을은 완전히 잿더미로 변해 있었다. 


선흘리 입구에 자리 잡은 불칸낭(불에 탄 나무를 뜻하는 제주어) 양혜영

▲선흘리 입구에 자리 잡은 불칸낭(불에 탄 나무를 뜻하는 제주어)ⓒ양혜영


망연자실한 주민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시커멓게 탄 팽나무에서 뻗어 나온 작은 싹이었다. 불에 탄 팽나무는 옆에 있는 아름드리나무에 기대 함께 자랐다. 그 작은 싹 하나가 사람들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희망이란 그처럼 작고 조그만 것에서 시작된다.



봄의 따스함을 품은 볍씨학교 


아름드리나무와 어우러져 새 삶을 영위한 불칸낭처럼, 선흘리에는 새로운 삶을 배워가는 아이들이 있다. 참가자들과 함께 선흘분교 근처에 위치한 볍씨학교 제주학사를 찾았다. 이곳은 경기도 광명시에 있는 대안학교인 볍씨학교의 분교로, 학생들이 1년 동안 자급자족 생활을 체험하는 곳이다. 


볍씨학교 학생들이 준비한 점심

▲ 볍씨학교 제주학사 입구ⓒ양혜영

 

볍씨학교 학생들이 준비한 점심 양혜영

▲ 볍씨학교 학생들이 준비한 점심ⓒ양혜영


볍씨학교에서 아이들은 의식주를 중심으로 한 기본 생계 활동을 중심으로 스스로 공부하고 관심 분야를 확장해간다. 성별에 상관없이 모든 아이가 밥을 하고 바느질을 배우며 밭농사에 참여한다. 물론, 아이들이 스스로 커리큘럼을 짜고 배움의 주제를 정하는 방식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제주학사를 창립한 이영이 제주학사분교장은 자유를 주었을 때 더 훌륭히 제 몫을 해내는 아이들의 모습에 오히려 교사와 부모가 배우는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볍씨학교 학생들이 만든 돌하르방 양혜영

▲ 볍씨학교 학생들이 만든 돌하르방ⓒ양혜영


1년 사이에 제주에 정이 들어버린 아이들은 현재 이곳에 더 머물기 위해 새로운 집을 짓고 있다. 아이들의 정성이 모여서 만들어지는 집은 절대 쓰러지지 않을 것처럼 단단해 보였다. 아무리 추운 겨울이 찾아와도 이곳에서만큼은 봄의 따뜻함과 생기를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볍씨학교 학생들이 직접 짓고 있는 제주학사  양혜영

▲ 볍씨학교 학생들이 직접 짓고 있는 제주학사 ⓒ양혜영 


제주 사람들은 4・3 사건을 말할 때 살벌하게 추웠던 그해 겨울을 떠올리곤 한다. 70년이 지났음에도, 그 계절은 제주 사람들의 기억 속에 고통스러운 시간으로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러나 선흘리 일대를 돌아보고 온 이후, 그 기억 사이로 작은 희망이 싹트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온몸이 불살라지는 고통 속에서도 쓰러지지 않고 살아남아 마을을 지켜온 불칸낭처럼, 그리고 벽돌을 쌓아 단단한 학교를 만들어가는 볍씨학교의 아이들처럼 아무리 추워도 봄은 반드시 온다. 길고 길었던 그 겨울을 딛고, 제주 사람들은 새로운 봄을 향해 한발 한발 나아가고 있다.


볍씨학교

주소: 제주시 조천읍 신흘동 1길 35-7

홈페이지: http://byeopssi.kr/

 

장소정보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선흘동1길 35-7 볍씨학교
인문360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화체육관광부 제주남문서점 4.3문학현장낭독회 제주4.3사건 카페세바 불칸낭 볍시학교
양혜영
인문쟁이 양혜영
2017,2018 [인문쟁이 3,4기]


양혜영은 제주시 용담동에 살고 거리를 기웃거리며 이야기를 수집한다. 하루라도 책을 보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 희귀병을 앓고 있어 매일 책을 읽고 뭔가를 쓰고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소설에만 집중된 편독에서 벗어나 인문의 세계를 배우려고 인문쟁이에 지원했고, 여러 인문공간을 통해 많은 경험과 추억을 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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