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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구생활

전국 팔도 시민 기자단이 보고 들은 인문 현장

고향으로부터 횡단하다

서울시립미술관, <고향>展

2020.01.14



고향으로부터 횡단, 그리고 중동 



고향으로부터 횡단하다. 

다소 어색한 이 문장을 곱씹어보자.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릿속에는 몇 개의 단상들이 떠오른다. 


팔레스타인 깃발을 흔들며 이스라엘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는 팔레스타인 주민

▲ 팔레스타인 깃발을 흔들며 이스라엘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는 팔레스타인 주민 ⓒEPA 연합뉴스


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국경을 건너는 난민 행렬

▲ 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국경을 건너는 난민 행렬 ⓒGetty Images


고향을 빼앗기고 빼앗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영토 분쟁. 고향을 잃고 대륙과 대양을 건너는 중동 지역의 난민. ‘고향의 상실’과 ‘횡단’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고, 우리는 이러한 두 키워드의 중첩을 통해 막연하게나마 중동을 그려보곤 한다. 허나 이러한 단편적 사실들이 그들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는 전부일까? 


서울시립미술관 <고향>展은 이 물음에 대해, ‘그렇지 않다.’ 혹은 ‘그래서는 안 된다.’고 답한다. 이 전시는 중동 지역의 현대미술을 살펴봄으로써,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피상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중동의 세계가 가진 특정성에 주목한다. 전시는 존재하기도 전에 잃어버린 장소감을 복구하는 것을 목표로 둔다. 이는 곧 우리가 지닌, 제대로 인식되기도 전에 상징적으로 소멸된 중동의 이미지를 복구한다는 말과 같다. 



상실, 폭력, 충돌, 억압을 기억하다



하담 알리, <이단자를 위한 'ㅇ', 지하드를 위한 'ㅈ'>

▲ 하담 알리, <이단자를 위한 'ㅇ', 지하드를 위한 'ㅈ'> ⓒ김정은


‘신성한 전쟁은 필수적이다.’ ‘아프가니스탄의 무슬림은 신성한 전사들이다.’ 노골적인 프로파간다 포스터들이 전시장 한 면에 덕지덕지 붙어있다. 동시에 모니터에서는 정치 활동가이자 교사인 아지즈 로야쉬의 인터뷰 비디오가 재생되고 있다. 그는 인터뷰에서 무자헤딘(‘성전에서 싸우는 전사’라는 뜻, 아프가니스탄의 무장 게릴라 조직)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 난민 캠프 학교의 교육 커리큘럼을 폭로한다. 이 작품은 쉽게 잊혔던, 혹은 기억하려는 노력조차 없었던 아프가니스탄의 교육 체계와 그로 인해 전쟁을 그들 삶의 일부로 내면화할 수밖에 없는 난민의 현실을 환기한다. 


박민하, 이중거울 논고

▲ 박민하, <이중거울 논고> ⓒ김정은


전시장 한 편에 마련된 작고 어두운 공간 안, 관객을 둘러싼 형태의 스크린 세 개. 약 11분 분량의 짧은 영상 작품인 <이중거울 논고>를 끝까지 보고 나면, 이 독특한 시각적 구성이 작품의 주제와 완벽히 부합한다는 사실에 감탄하게 된다. 


박민하, 이중거울 논고 - 당시 유행하던 입체 사진의 모습

▲ 박민하, <이중거울 논고> 중, 당시 유행하던 입체 사진의 모습 ⓒ김정은


작품은 먼저 당시 서구 열강에서 유행했던 ‘입체 사진(stereograph, 똑같은 도판이 양 옆으로 펼쳐져있어, 시점의 차이로 인해 입체적으로 보이는 사진)’이 ‘낯선 세상을 보기’에 대한 그들의 욕망을 증폭시켰고, 이는 곧 제국주의적 확장에 대한 판타지로 이어졌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작품은 별안간 ‘도플갱어’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소 뜬금없이 느껴질지 모른다. 하지만 같은 이미지가 나란히 붙어있는 입체 사진의 배열을 생각해보면, 어렵지 않게 두 개념을 연결 지을 수 있다. 


박민하, 이중거울 논고 - 메디나 와슬을 찾은 관광객

▲ 박민하, <이중거울 논고> 중, 메디나 와슬을 찾은 관광객 ⓒ김정은


이어 작품은 미국 캘리포니아 사막에 재현된 이라크 마을이자 군사기지인 ‘메디나 와슬’을 바그다드(이라크의 수도)의 도플갱어라 명명한다. 메디나 와슬은 시가지 전투를 대비하기 위해 미군이 지은 모의 전투장으로, 현재 할리우드 영화의 특수효과를 담당하는 회사들의 실험장이자 관광객을 위한 엔터테인먼트 파크로도 활용되고 있다. 양 가장자리의 스크린은 동시에 각각 바그다드와 메디나 와슬의 전경을 보여준다. 그리고 점차 시간이 흐를수록, 관객은 두 곳을 구별하지 못하게 된다. 


박민하, 이중거울 논고 - ‘도플갱어를 본 사람의 말로는 대개 매우 끔찍하다.’

▲ 박민하, <이중거울 논고> 말미 등장하는 문장

'도플갱어를 본 사람의 말로는 대개 매우 끔찍하다.' ⓒ김정은


작품 말미에 등장하는 ‘도플갱어를 본 사람의 말로는 대개 매우 끔찍하다.’는 문장이 유독 섬뜩하게 느껴진다. 유희를 위해 끊임없이 재현되는 가짜 전쟁은 진짜의 도플갱어가 되어, 결국 진짜를 은폐하고 만다. 타인의 고통이 한때의 유희로 돌변하는 순간이다. 상실, 폭력, 충돌, 억압을 사실과 허구를 철저히 구분하여 있는 그대로 기억해야만 하는 이유다. 



미술은 지워지고, 감추어진 이야기를 새롭게 쓴다



아델 아비딘, 청소

▲ 아델 아비딘, <청소> ⓒ김정은 

 

비디오 속 출연자들이 실제로 입었던 옷

▲ <청소> 비디오 속 출연자들이 실제로 입었던 옷 ⓒ김정은


거뭇한 먼지를 뒤집어쓴 사람들을 일렬로 세워두고, 그들을 향해 물대포를 쏘아 몸을 씻긴다. 오염된 것을 정화하는 ‘청소’라는 행위는 사회에서 상식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깨끗이 씻기는 영상 속 사람들을 보며 우리는 불편한 마음을 숨길 수 없다. 비 맞은 생쥐 꼴로 두려움에 덜덜 떠는 그들의 모습이, 이러한 방식의 청소가 얼마나 폭력적인지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세상엔 얼마나 많은 폭력이 ‘정화’ 또는 ‘청소’라는 허울 좋은 명분하에 일어나고 있을까. 


그때, 벽에 걸려있는 강렬한 원색의 천들이 눈에 들어왔다. 톡톡 튀는 배경색과 그 위에 무심한 듯 섬세하게 새겨진 자수가 인상적이다. 나는 마치 상점에 있는 아름다운 스카프를 발견한 사람처럼 들떠 다가갔다가, 이내 먹먹해진 마음으로 그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작품은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무니라 알 솔, ‘전 농부들에게 이발만 해드렸을 뿐인데, 그들은 자정까지 일을 하며 제게 호의를 베풀었지요’

 

무니라 알 솔, ‘전 농부들에게 이발만 해드렸을 뿐인데, 그들은 자정까지 일을 하며 제게 호의를 베풀었지요’

▲ 무니라 알 솔, <전 농부들에게 이발만 해드렸을 뿐인데, 그들은 자정까지 일을 하며 제게 호의를 베풀었지요> ⓒ김정은


“제 남편은 리비아로 갔다가 거기서 바다를 건너 유럽으로 갔어요. 남편이 독일로 간 지 이제 두 달 됐고, 저도 곧 거기로 가서 만날 거예요. 우리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옮겨 다니며 사는 것에 익숙하지만, 지금도 미련 없이 삶을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준비가 돼 있어요.”


“우리는 베이루트(레바논의 수도)부터 터키 해안까지 바다에 타일을 깔고 싶다. 사랑하는 히샴, 너의 눈물. 내 엄마의 눈물.”



‘우리’는 어떻게 ‘우리’가 되는가



최원준, 얼굴의 역사

 

최원준, 얼굴의 역사

▲ 최원준, <얼굴의 역사> ⓒ김정은 

 

한국의 호프집 상가 건물 안에 마련된 자그마한 이슬람 신전. 노트 한 쪽 가득 한글로 빼곡하게 적힌 질문들. ‘왜 무슬림이 되었나?’ ‘무슬림이 되고나서 한국 사회에서 겪은 어려움은?’ 수많은 파격적 작품 중에서도, <얼굴의 역사>를 유독 이질적으로 느껴졌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겠다. <얼굴의 역사>는 전국 15개 이상의 지역에서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60여 곳의 이슬람 사원 가운데, 10여 곳의 내부 모습을 사진으로 기록한 작품이다. 현재 한국에는 약 20만 명 정도의 무슬림이 있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 평생을 살아가며 스스로를 무슬림으로 규정한 그들은, 어쩌면 ‘우리’와 아주 가까운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들은 ‘우리’인가, ‘우리’가 아닌가. 과연 ‘우리’는 어떻게 ‘우리’가 되는 것인가. 이러한 질문은 ‘유대감’이라는 근원적 욕망을 바탕으로 은폐 ‘당한’ 존재를 수면 위로 드러낸다. 


김진주, 샤비야와 이쓰마아

▲ 김진주, <샤비야와 이쓰마아> ⓒ김정은


아랍어는 그 아름답고 독특한 모양새 덕에 캘리그라피 작업이 활발한 언어라고 한다. 부드러운 필체로, 마치 그림과도 같은 아랍어를 보며 우리는 잠시 생각에 잠긴다. 그리고 의심하게 된다. 이해할 수 없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저 문장이 혹시 테러와 관련된 공격적인 메시지는 아닐까? 그런 우리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천 위에 적힌 문장의 뜻은 ‘민중을 위해 들어봐’다. <얼굴의 역사>가 ‘우리’라는 개념에 대해 근원적인 의문을 던진다면, <샤비야와 이쓰마아>는 어떻게 우리가 더 큰 ‘우리’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한 해답을 주는 듯하다. 그 해답은 편견에 젖어 있는 자신에 대한 성찰이다. 



횡단은 곧 연결, 연결은 오해와 편견의 불식



라이드 이브라힘, 집으로

▲ 라이드 이브라힘, <집으로> ⓒ김정은


고향으로부터 횡단하다. 

위에서는 ‘떠밀려 쫓겨나다’와 동일시되었던 ‘횡단’의 의미가 이제는 조금 달리 들린다. 횡단은 연결이다. 물리적으로, 또 심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우리 사이를 연결한다. 연결은 오해와 편견의 불식으로 이어진다. 비로소, 우리 안에서 과장 혹은 소멸되어 있던 중동의 얼굴이 바로, 또 또렷하게 그려지는 듯하다. 




○ 공간 정보

주소 : 서울 중구 덕수궁길 61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화-금 10AM – 8PM 토, 일, 공휴일 10AM – 6PM 

매주 월요일 정기휴관

문의 02-2124-8800


○ 전시 정보

전시명: 고향

기간: 2019.11.27-2020.03.08


 

장소정보
서울특별시 중구 덕수궁길 61 서울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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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김정은
인문쟁이 김정은
2019 [인문쟁이 5기]


아는 것이 꽤 있고 모르는 것은 정말 많은, 가끔 어른스럽고 대개 철이 없는 스물넷. 말이 좀 많고 생각은 더 많다. 이유없이 들뜨고 가슴이 설렐 때, 조급함과 불안감에 가슴이 답답할 때 모두 글을 쓴다. 때때로 물안개같이 느껴지는 삶 속에서 확신할 수 있는 사실 하나는, 글을 쓸 때의 내가 가장 사람답다는 것. 오늘보다 내일 더 사람다워지고싶어 인문쟁이에 지원했다. 삶에 대한 애착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길 소망한다.

공공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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