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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구생활

전국 팔도 시민 기자단이 보고 들은 인문 현장

아산 염치, 현충사 둘러보기-생각하기

2018.09.06

현충사는 누구를 모시고, 어디에 있나

 

2014년 한여름에 개봉하여 천칠백만 명 이상의 관객을 모아 대성공한 영화 ‘명량’. 1597년(선조 30년) 이순신 장군이 울돌목에서 조선 수군의 군함 13척과 일본 수군의 군함 133척과의 전투에서 대승한, 명량대첩(鳴梁大捷)을 소재로 한 영화이다. 


이순신 장군은 영화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법으로 그 업적과 일생이 남겨져 있다. 한국의 역사가 기록으로 남기 시작한 이래로 가장 많은 문화 유적과 기념관 등이 남아 있는 인물이 바로 충무공 이순신이다. 임진년 일본 침략 당시, 조선이 망하고 왕조가 없어질 누란의 시기에 전쟁을 승리로 이끈 장군이기 때문이다. ‘국가의 주인은 백성이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그는 적과 두려움에 맞섰고, 결국 임진왜란이란 7년 전쟁에 종지부를 찍는 노량해전(露梁海戰)에서 전사한다. 


현충사를 참배하는 방법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모시는 사당인 현충사를 찾았다. 충남 아산시 염치읍 현충사길 126번지에 있는 현충사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매우 아름답게 조성되어 있다. 이는 이곳이 담고 있는 역사적인 의미와 더불어 이곳을 찾는 이유가 되어준다. 꽃과 나무가 우거져 있는 경관은 한 폭의 사진을 보듯 수려하다. 경치를 구경하며 주차장에서 현충사로 입구로 들어오다 보면, 정문 옆 안내판을 발견할 수 있다.


현충사 밖 입구 안내판

▲ 현충사 밖 입구 안내판 Ⓒ 정지안


정문을 지나면 충무공 이순신기념관이 등장한다. 그러나 관람은 현충사 참배 후로 미루는 게 좋다. 이곳을 찾은 목적에 맞게 고인을 기리는 것이 우선이다.


충무공 이순신기념관

▲ 충무공 이순신기념관 Ⓒ 정지안

 

현충사 내 충무문

▲ 현충사 내 충무문 Ⓒ 정지안


기념관 옆길을 살짝 돌아가면 정갈하게 서 있는 충무문이 보이기 시작한다. 충무문을 통과하면 잘 정돈된 길이 나온다. 이 길을 따라 좌우의 꽃과 나무를 보면서 지나다 보면, 우측으로 정려와 연못이 보인다. 연못에는 화려한 비단잉어들이 무리 지어 헤엄치고 있다.


현충사 내 중앙로

▲ 현충사 내 중앙로 Ⓒ 정지안

 

현충사 내 홍살문로

▲ 현충사 내 홍살문로 Ⓒ 정지안


소나무가 무성한 길을 따라 계속 걷는다. 나무가 그늘로 햇빛을 맞아주니 무더운 날씨에도 기분 좋게 걸을 만하다. 싱그러운 푸릇함을 마주하고 걸으니 점차 발걸음은 가벼워진다.


현충사 내 홍살문

▲ 현충사 내 홍살문 Ⓒ 정지안


이날은 무슨 특별한 일이 있었는지 경찰공무원들이 단체로 참배를 하고 나왔다. 더운 여름인데도 정복을 입고 있었다. 이들도 국가와 민족에 대한 생각을 이곳에서 곱씹었을까? 그들을 바라보며 홍살문과 충의문을 지나니 드디어 현충사가 나타났다.


현충사 내 충의문

▲ 현충사 내 충의문 Ⓒ 정지안

 

현충사 내 현충사 근경

▲ 현충사 내 현충사 근경 Ⓒ 정지안

 

현충사 내 현충사에 봉안된 충무공 이순신 장군 영정

▲ 현충사 내 현충사에 봉안된 충무공 이순신 장군 영정 Ⓒ 정지안


현충사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참배를 마친 후에야 자유 관람을 시작한다. 대개는 정해진 코스가 있는 것처럼 현충사에서 입구까지 역순으로 내려오며 관람한다. 첫 번째 코스는 충무공의 고택과 활터, 그리고 셋째 아들이신 이면의 묘다.


현충사 내 충무공 이순신 장군 고택

▲ 현충사 내 충무공 이순신 장군 고택 Ⓒ 정지안


현충사 내 충무공 이순신 장군 고택 옆의 활터

▲ 현충사 내 충무공 이순신 장군 고택 옆의 활터 Ⓒ 정지안


고택 우측에 있는 활터에서 과녁을 바라보면 시야가 탁 트이는 느낌이 든다. 과녁을 보는 이 상태에서 좌측은 충무공의 셋째 아들 이면공의 묘소가 있다. 이면은 공식적으로 벼슬을 하지 않았기에 무덤이 다소 조촐하다. 그래도 이순신 장군의 장인, 장모의 무덤과 함께 있어 외롭지 않게 돌봄을 받을 것이다.


이곳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생각에 빠져본다. 한적하고 아늑해 삶의 의미를 곱씹고, 어지러웠던 생각을 정리하기에 적합한 장소이다. 


현충사 내 충무공 이순신 장군 셋째아들 이면의 묘 앞

▲ 현충사 내 충무공 이순신 장군 셋째아들 이면의 묘 앞 Ⓒ 정지안


현충사 내 과녁에서 본 활터 와 은행나무

▲ 현충사 내 과녁에서 본 활터 와 은행나무 Ⓒ 정지안


앞서 그냥 지나쳤던 충무공 이순신전시관에 들어가 보았다. 내부에는 국보와 보물 등 많은 유물과 기록물이 있다. 특히 가장 눈에 띄는 건 장검이다.


현충사 내 충무공 이순신기념관 유물 중 장검

▲ 현충사 내 충무공 이순신기념관 유물 중 장검 Ⓒ 정지안


장검에는 三尺誓天 山河動色 一揮掃蕩 血染山河(삼척서천 산하동색 일휘소탕 혈염산하; 석자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하가 떨고,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인다.) 라고 새겨져 있다. 이순신 장군은 항상 2m에 이르는 이 초대형 장검을 곁에 두고 마음을 단속했다고 한다.


현충사 은행나무 가로수 길(현재는 차량 도로로는 폐쇄됨)

▲ 현충사 은행나무 가로수 길(현재는 차량 도로로는 폐쇄됨) Ⓒ 정지안


온양 시내에서 현충사로 가는 길에는 은행나무가 심겨 있다. 2~3년 전만 해도 차들이 다니던 길이였는데, 현재는 폐쇄하고 시민들의 휴식처 겸 산책길로 만들었다고 한다. 지금은 단순히 푸르름만 느낄 수 있으나, 가을에 온통 은행나무의 노란색으로 물들 광경을 상상해본다. 또 이렇게 다음을 기약하게 된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묘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묘는 현충사 경내가 아닌, 약 9km 떨어진 아산시 음봉면 삼거리 지역에 있다. 교육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있으니 들리길 추천한다. 이곳에서 차로 5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아산온천에서 이 김에 휴식 시간을 갖는 것도 좋겠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 묘소

▲ 충무공 이순신 장군 묘소 Ⓒ 정지안


문화재청 현충사 관리사무소 홈페이지에서는 충무공묘소에 관해 이렇게 설명한다. “이순신 장군은 전사 후 마지막 통제영이었던 고금도에 모셔졌다가, 이듬해인 1599년 2월 11일 아산의 금성산에 모셔졌다. 그리고 전사 16년 뒤인 1614년(광해 6년)에 지금의 어라산에 이장되었다. 묘소는 부인 상주방씨와 합장 묘로서 조선시대 고관묘의 전형적 모습을 갖추고 있는데, 1970년대 성역화사업 당시 왕릉과 같이 곡장이 둘러졌다.(중략)“여기서 곡장(曲牆) 은 능(陵), 원(園), 묘(墓) 따위의 무덤 뒤에 기와를 덮어 둘러쌓은 나지막한 담으로 실제로 찾아가면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 묘소 전경

▲ 충무공 이순신 장군 묘소 전경 Ⓒ 정지안


충무공묘소의 기록에 따르면, 봉분 동남쪽 아래에 있는 신도비는 정조가 친히 글을 내려서 만든 것이다. 정조는 역대 어느 임금보다도 이순신 장군을 추모했던 군주로 이 비문에서도 "우리 장하신 선조께서 나라를 다시 일으킨 공로를 세우심에 기초가 된 것은 오직 충무 한 분의 힘 바로 그것에 의함이라 이제 충무공에게 특별히 비명을 짓지 아니하고 누구 비명을 쓴다 하랴"고 그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빗머리에 "상충정무지비(尙忠旌武之碑, 충의를 드높이고 무용을 드러내는 비)" 여섯 글자가 전서체로 쓰여 있는 이 비는 정조가 이순신 장군에게 최고 직인 영의정을 증직한 후인 1794년에 완성되었다.


현대를 살아가는 법


사람들은 일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고민을 한다. 대부분의 생각은 보통 현재나 미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는가’와 같이. 더군다나 요즘 시대에서는 개인의 삶이 무엇보다 우선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개개인이 잘 살기 위해서는 가끔씩 과거로 시선을 돌릴 필요가 있다. 과거 국가가 이루어놓은 것, 국가를 위해 희생했던 누군가로 인해 오늘이, 또 내일이 만들어졌다. 어쩌면 오늘의 고민은 과거의 이야기에서 해결법을 찾을 수 있다. 현충사는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매우 적합한 장소이다. 조용하고 한적하며 아늑한 동시에 과거 국가의 다시 일으킨 지혜를 가진 인물을 기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장소정보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현충사길 126 현충사
현충사 이순신 충무공
정지안
인문쟁이 정지안
2018 [인문쟁이 4기]


정지안은 충남 아산에서 태어나 초중고까지 20여년을 살았고, 10여년 꿈이란 것 때문에 서울 생활을 했다. 그 후로 직장 때문에 충남 당진에서 살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직장에서 잘려 놀고 있는데, 여하튼 20여년 살고 있다. 이것저것 별것 없는 일을 하면서 산 세월을 합치니 50은 넘었고, 60도 내일 모레인가보다. 사람들은 언제나 파란하늘을 보며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었는데, 가끔은 하루 종일 하늘마저 볼 마음의 여유가 없다. 그래도 그런 나를 위하는 사람도 역시 나 여야하기 때문에 나를 위해서 살기를 바란다. 좀 느리게 살아 보기를 바란다. 내가 느리게 사는데 도움이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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