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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구생활

전국 팔도 시민 기자단이 보고 들은 인문 현장

[제주] 두루봉이 하르방

수묵 기록가 임경재

2018.08.31


스스로를 ‘두루봉이(멍청이)’라 부르는 임경재 어르신(1933년생)은 일제 강점기 제주 서부의 중산간 마을에서 태어났다. 소년 시절 4.3을 겪었으며 성인이 되어갈 무렵 한국전쟁을 경험했다. ‘스스로 싸울 힘을 기르자.’, ‘정의로운 이가 되자.’, ‘열심히 내 땅에 농사를 짓자.’는 단순한 신념으로 살아온 농부다. 그를 만난 것은 5년 전이다. 지금은 치매가 악화되어 종일 병상에 누워계시지만, 당시 그는 수 년 간 잃어가는 기억을 화선지에 글과 그림으로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할아버지습작


“슬프니까 그리려 들어. 즐겁기만 했으면 안 그렸을 거야. 작업실에 많은 글이 쌓여있는데, 그걸 보면 너무 슬퍼져.

근데 거기에 진실이 있어. 정이 있어.”

 

 

 

잃어가는 기억을 담는 화선지


작품 - 공출하라는 무서운 명령1


“가만히 눈을 감으면 다 보여. 세네 살 때 기억부터 모조리. 아주 어릴 때부터 나는 무섭고 화가 났어. 죄 어신(없는) 사람들이 매를 맞고,

가진 걸 빼앗기는 걸 봐부난(봐버리니까). 네 살 때부터는 더 무서웠어. 참 이상하게 왜놈들 이름까지 다 기억이 나.”


“나가(내가) 여덟 살 때야. 왜놈들이 너무너무 우리를 고통스럽게 할 때. 마을에 무백이라는 노인이 있었어. 한문을 아주 잘 아는 노인인데, 상투를 틀고 매날(맨날) 누더기를 입고 그렁뱅이(거지)처럼 보이는 사람이라. 한 날, 일본 경찰이 그 노인을 막 곡괭이로 때리는 것을 봤어. 하도 맞아노난(맞으니까) 노인이 다 죽어가. 일로 때령 구르민 이디서 죽어가고(여기를 때려서 구르면 여기서 죽어가고), 저디 때리민 저디 강 구르고(저기를 때리면 저기서 구르고). 결국, 숨이 다 죽지는 않고 축 늘어졍이네(늘어져서)...너무 무서완(무서워서) 나는 아버지 손가락을 꼭 잡고, 보당 못행(보다 못해서) 물어봔. ‘아방, 무사 또렴수과(아버지, 왜 때리는거에요?)’, 겨난(그러니) 아방이 고라라(아버지가 말했어). ‘우린 조선사람이여게.’ 그 말에 가슴이 부서질꺼 닮안. 말도 나오질 안 허연(않았어). 지금도 이디가(여기가=가슴이) 아파. 그 생각하민(하면). 휴우…”


일본 강점기의 기억은 듣고만 있어도 하루가 간다. 아니, 한 달을 듣는다 해도 쉽게 끝나지 않을 것들이다. 게다가 연거푸 한숨을 내뿜으며 말씀해 주신 해방 이후의 기억은 또 어떤가? 


작품 - 1945년. 해방의 감격은 삼일도 없다


“필자 유년기부터 우리들의 삶에 아픔과 슬픔이 범벅된 세상을 걸어오다 보니, 기껏 느낀 것이 일당백 목표의 총잡이, 천한 길에서 세월이 갔다./ 우리들에게 한없이 즐거운 게 1945년 8월15일이었다. 필자는 일본군 보급창고를 부수고 도둑질하는 우리의 가난한 백성들이 피투성이가 되는 장면을 잘 지켜봤노라./ 여기에서 뭐라고 논하고 싶지 않다. 단, 유식과 무식의 차일 뿐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해방의 기쁨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무식 말고 무엇이 더 있었는가?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언제 어느 시간에 죽게 될 것인가./ 어린 나이였지만 냉철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총뿐이다. 화승총을 만들어 보자. 총의 구조는 이미 머릿속에 있다.”


해방된 마을의 모습을 보며 그 후에 벌어질 상황들을 상상이라도 한 것인지, 갓 열세 살이 된 하르방은 독학으로 총을 배웠고 사냥술을 배웠다. 말도 잘 타고 노루도 잘 잡는 그를 마을 사람들은 든든해했다. 하지만 해방의 기쁨이 가시기도 전에, 4.3이 터지기도 전에, 이미 마을 사람들은 분열되어 있었다고 그는 말한다. 가난하고 배운 것이 없어서라고 하르방은 말했다.


“조국이 뭣산지(뭔지를) 모르는 이가 어찌 조국을 지킬 수 이시크냐(있겠느냐)?”


“할아버지, 조국이 뭡니까?”내가 물었다.


“조국 말이가(말이냐)? 조국은, ‘이것이 우리 땅이다’ 하는 마음이 어시민(없으면) 있으나 마나 한 거. 나는 어린 때부터 조국을 알아서(알았어). 여덟 살에 두 살 난 몽생이(새끼말)에 올라탄 그때부터 ‘우린 조선사람이다’ 라는 말이 늘 가슴에 있었어. 그 시절, 밤이면 동네 어른들이 앉아서 이야기를 해. 그걸 들으면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지금 만주에서 싸우고 있다는 말도 들리고. 겐디(그런데) 막상 젊은이들 다 잡혀 가고 하면, 어떤 어른들은 도망가고 했단 말이여. 도망만 다닌 사람들은 조국이 뭔지, 해방이 뭔지 잘 몰라. 만약 조국이 뭔지를 알고, ‘우리는 왜놈들에게 고통을 받았다’는 것을 잊지 않았다면 4.3도 그추룩 되진 안혔주(그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지). 해방이다 자유다, 구호만 있었어. 해방이 뭐고 자유가 뭐여? 뭐시 해방이고 뭐가 자유라? 난 오히려 그때 깨달았다고. 우리가 우리 자신을 공격하려고 한다는 것을 어린 때 깨달았다고. 왜놈들도 다 이겨낸 시국에, 무사(왜) 또 그런 사건이 난거라? 결국, 우리 제주도 놈들이 나빠. 우리가 무식해서 스스로가 우리 것을 도둑질한 꼴인데, 아맹(아무리) 나가 말해도 주변 사람들은 잘 몰라. 그러니까 젊은 시절 나에게는 적이 아주 많았어.”


제주 4.3과 한국전쟁, 잠시 머물던 일본의 기억, 대구에서 군 복무를 하던 군사정권 당시의 기억, 학생운동의 기억, 농민운동의 기억. 그야말로 대한민국과 제주 현대사의 지난 팔십 년이 피가 되어 그의 몸을 흐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농사꾼의 땅에 패인 깊은 상처


일제강점기와 해방, 4.3 사건과 한국전쟁을 겪으며 그가 보아온 폭력과 쟁탈의 기억 속에는 눈앞에서 죽어갔던 사람들의 얼굴 하나하나가 상처가 되어 남았다. 게다가 언젠가는 빨갱이 누명을 쓰고 잡혀가 모진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혀를 깨물어 자살을 시도하려 했으나 순간 들려온 “죽지 말고 살아남아 증인이 되어라.”라는 환청을 하느님의 목소리라 믿으며 팔십 평생을 살아낸 하르방.


‘나는 한낱 농사꾼이여’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는 그이지만, 그가 농사꾼이라 함에는 단순하지만 깊은 뜻이 담겨 있다. 그에겐 자기의 땅을 자기 힘으로 일구어 당당히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사람은 모두 농사꾼, 농사를 지으며 사는 이 땅의 이름이 다름 아닌 조국이다. 


작품 - 공출하라는 무서운 명령2


“필자는 어설픈 글을 쓰면서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옛날엔 알지 못하니 그렇다하고, 지금은 어떠한가? 안심할 수 있겠는가?

스스로가 우리를 지킬 수 있겠는가? 그동안 이 나라를 지키고 이끌어온 부류들을 믿을 수 있겠는가?

노망으로 헛걱정을 하고 있는지, 헛걱정이라면 한없이 미안허구나.”

 

 

“내가 죽을 때까지 이렇게 가끔 내 이야기를 들으러 와줘.”


잊고 싶은 기억이 많거나, 기억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을 때 망각은 인간이 삶을 지속해 나가는 무의식 속의 한 가지 방편이 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있어 망각은 그 자체가 상처고 병이다. 특히, 늙거나 병든 뇌의 상처가 기억을 집어삼키는 병. 우리는 그것을 치매라 부른다.


하르방이 애지중지하는 한라봉나무에서 한라봉을 따고 있는 할아버지

 

“서울 의사가 말했어. 내 머리에는 상처가 많다고. 그것도 아주 오래 전에 받은 뇌의 깊은 상처. 그것을 그냥 두어서 치매가 심해진 거래.”


“내가 죽을 때까지 이렇게 가끔 내 이야기를 들으러 와줘.” 부탁하던 그가 더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던 순간, 나는 기억을 잃어버린 노인들의 치매는 그들만의 질병이 아니라 치료시기를 놓친 우리 모두의 병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살아있는 증인이 기억을 잃어버릴 때까지 아무 손도 쓰지 못한 허탈감을 우리는 받아들여야 한다. 그들의 치매는 곧 이 사회가 앓고 있는 불감증의 합병증으로서의 기억상실증이다. 오래된 그의 상처는 농사꾼의 땅에 난 깊은 흙의 상처다. 조국의 상처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는 오늘도 한평생 그가 일구어 놓은 평화로운 제주의 땅위에서 별 탈 없이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순간, 정체 모를 두려움이 몰려와 닭살이 돋는다.  



*임경재 어르신은 2014년 제주학연구센터에 수묵화 43점을 기증하셨습니다. 웹사이트에서 조회가 가능합니다. www.jst.re.kr

*임경재 어르신은 현재 편안히 요양중이시기에 주소지를 밝히지 않습니다.

 

제주 두루봉이 시화 하르방 정신지 수묵기록 기억
필자 정신지
정신지
제주할망 전문 인터뷰 작가. ‘할망은 희망’(가르스연구소 2018) 저자. 제주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일본으로 건너가 12년간 지역연구학을 배웠다. 2012년 귀향하여 제주 노인들을 만나고 만남의 기록을 나누며 시간여행 중이다. 노인은 문제가 아니라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이 시대에 ‘할망의 희망’을 전파하고자 하는 자칭 ‘제주할망 광신론자’. facebook.com/mayasinjijung (정신지의 제주 아카이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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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잘 읽고 갑니다. 마음아픈 역사 위에 살아남은 분들의 상처가 참으로 깊습니다

    김주영 2018.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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