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우리(忘憂里)’는 서울 중랑구에 있는 동네다. ‘근심을 잊은 마을’이란 지명의 유래는 조선 태조 이성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태조가 망우리 고개에서 자신과 후손의 능지(현재 동구릉*)를 발견했을 때, ‘이제야 근심을 잊을 수 있겠다’는 말을 남긴 데서 비롯된 것이다. 이 세상에 존재가 출현하는 일만큼 중한, 사라지는 일의 무게를 짐작케 하는 일화다. 돌이켜보면 ‘망우리공원’의 운명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근현대를 살아낸 사람들이 잠들어 있고, 그 곁에 펼쳐진 오솔길은 우리의 사유를 어느새 생과 사의 경계에 올려놓기 때문이다. 어차피 잠시 머물다 떠날 이 생의 근심 따위에 더 마음을 둘 까닭이 없도록.
*동구릉(東九陵) : 경기도 구리시 동구동에 있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을 포함 총 9개의 왕릉(사적 193호)을 뜻하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 망우리공원의 시작을 알리는 전시물 ⓒ김세희
망우리공원의 애국지사 5인
‘망우리공원’은 나이 지긋한 어르신에겐 ‘망우리 공동묘지’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 공동묘지를 주민들은 산책하기 좋은 곳이라 말한다. 망우산을 감도는 망우리 공동묘지가 ‘공원’으로 자리잡은 지 20년이 넘었다. 정확히 말하면 일제강점기 도시개발 명목으로 조성된 망우리 공동묘지에 ‘서울 둘레길’, ‘인문학 사잇길’ 등과 같은 산책로가 놓인 이후의 시간을 의미한다. 길 양 옆에 만들어진 수많은 묘지가 망우리공원의 상징이 되었다. 특히 책에서 보았던 애국지사, 문화예술인의 이름도 망우리공원에 안장되어 있어 우리의 발걸음을 바삐 이끈다. 한 걸음 걷다 가을 속으로 떠나버린 ‘목마와 숙녀’를 지그시 그려보는 하루. 또는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굳건하게 믿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순간이 망우리공원에서 펼쳐진다.
▲ 망우리공원 애국지사 5인의 이야기를 전시하는 중랑아트센터 ⓒ김세희
지난 10월 31일까지 중랑아트센터는 망우리공원에 영면한 애국선열 중 5인의 일생을 다뤘다. 가장 인상적인 건, 도산 안창호와 태허 유상규의 막역한 동지애였다. 민족운동가이자 근대 의학의 선구자였던 유상규는 상해 임시정부 시절, 안창호를 최측근으로서 정성껏 보필했다. 안창호의 묘소는 현재 서울 강남구 도산공원으로 아내와 함께 이장되어 있지만, 그전까진 유상규의 곁에 묻어달라는 유언으로 망우리공원에 안장됐다. 물론 당시 안창호의 묘터는 망우리공원에 보존되어 있다.
▲ 도산 안창호(왼쪽 사진 중앙) 함께 한 태허 유상규(왼쪽 사진 뒷줄 오른쪽)의 모습ⓒ김세희
또한 3.1 운동 100주년인 올해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이었던 만해 한용운의 삶도 조명했다. 특히 ‘심우장(尋牛莊)’은 그가 우리나라 해방을 1년 앞두고 서거한 곳. 심우장 사진이 전시된 바로 옆에 그의 묘지 모습이 담겨 안타까움을 더했다. 백범 김구 주석이 광복 후 한용운의 무덤 앞에서 눈물로 참배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 때문이다. 김구가 민족 분열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로 한용운을 꼽았다고 하는 대목은, 만해의 사상 세계가 현대에도 여전한 의미를 지니고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게 한다. 한편 의암 손병희의 사위였던 소파 방정환은 아마도 어린이가 가장 많이 찾는 묘소가 아닐까 싶다. 나라를 잃은 시국에 의무교육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어린이날’을 제정한 그의 애틋함. 각종 소년운동을 전개한 그의 업적을, 묘비명 ‘선여심동(仙如心童 : 어린 아이의 마음은 천사와 같다)’으로 다시금 깨닫게 된다. 그가 죽음을 앞두고 “어린이를 두고 가니 잘 부탁하오.”라는 당부가 망우리공원에 여전히 맴도는 듯하다.
▲ 만해 한용운의 심우장(서울 성북구 성북동의 유택) 사진 및 묘소 모습 ⓒ김세희
한편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지폈던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의 주인공도 돌아볼 수 있었다. 만세운동 후 풍비박산 난 유관순 열사의 집안을 대신해, 이화학당의 친구들은 일제의 감시 속에서 묘석도 없이 그녀의 유해를 이태원 공동묘지에 묻는다. 훗날 일제는 유관순을 비롯한 무연고 28,000여 분묘를 이태원에서 망우리공원에 합장한 후 위령비를 세웠다. 이토록 작은 하나의 묘에 그 많은 수의 유해가 묻혀 있고, 그 안에 유관순 열사가 있을 거라니. 그녀의 열아홉 생을 추모하기 위해 최근 ‘유관순 열사 분묘 합장 표지비’가 위령비 뒤편에 생겼다. 하나 둘 전시를 통해 애국지사의 이야기를 따라가보니, 그간 망우리공원을 깊이 들여다보지 못한 게 부끄러웠다. 망우리공원에는 이밖에도 일제강점기, 해방, 한국전쟁, 분단 등 근대의 격동기를 지나 현대를 보낸 60여 명의 위인 및 일반인이 잠들어 있다.
▲ 이태원 합장비 뒤편에 세워진 유관순 열사 분묘 합장 표지비 ⓒ김세희
▲ 망우리공원에 안장된 위인들 안내도 ⓒ김세희
돌에 그려진 망우리공원 인물들
지난 7월부터 오는 12월까지 서울 중랑구청 로비에는 ‘망우리공원에 잠든 인물展’이 진행 중이다. 한용운, 유관순, 박인환, 방정환, 이중섭, 강소천, 지석영, 오세창 등과 같은 인물의 모습이 그림으로 돌 위에 담겨 망우리공원을 찾기 전 살펴보면 도움이 된다. 일종의 스톤아트 전시라고 하는데, 묘지의 비석과는 다르게 위인의 얼굴을 볼 수 있어 생동감이 느껴진다. 망우리공원 묘소에도 QR코드를 이용해 인물의 정보를 찾아볼 수 있지만, 전체적인 공원 안내 정보와 함께 망우리공원 주요 인물의 표정을 직접 마주할 수 있으니 방문해보는 걸 추천한다.
▲ 중랑구청에서 열리고 있는 <망우리공원에 잠든 인물展> ⓒ김세희
근대 최고의 서화가로 꼽히는 위창 오세창에 대한 스토리는 이곳에서 처음 접했는데, 우리나라 옛 서화를 수집하고 정리한 공이 크다고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문화 수준이 높은 나라가 영원히 합병된 역사는 없다”고 한 그의 지조. 간송 전형필의 스승이기도 한 그의 곧은 정신에, ‘문화의 힘이 곧 국력’이라는 걸 다시금 깨닫는다. 독립운동에서 문화예술까지 우리나라를 지킬 수 있는 분야라면 무엇이든 자발적으로 나섰던 오세창의 삶. 언젠가 망우리공원에서 만나게 된다면 잠시 마음을 전해보는 건 어떨까. 문화콘텐츠를 꽃피우는 ‘요즘 한국’은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므로.
▲ 망우리공원에 영면한 대향 이중섭 화가의 묘소 ⓒ김세희
한국 근대 서양화의 대표 화가인 대향 이중섭의 묘지도 망우리공원에서 만날 수 있다. 눈길을 끌었던 것은 아무런 말없이 작은 그림 하나가 그려진 그의 묘비였다. <소>, <가족> 등 향토적이면서 자전적이며 동화적인 느낌이 드는 이중섭의 그림 세계가 연상된다. 이중섭의 유해는 화장된 후 절반은 망우리공원에, 나머지는 일본의 처가 묘에 합장되었다고 한다.
▲ <세월이 가면>의 한 구절이 새겨진 시인 박인환 묘소 ⓒ김세희
앞서 언급한 전시가 아니더라도, 망우리공원을 직접 걷다보면 더 많은 인물들을 알게 된다. 문학가, ‘최서해’로 알려진 서해 최학송은 미아리공원묘지에서 망우리공원으로 이장되었다. 극심한 가난으로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쓴 간도에서의 체험기, <탈출기>는 마치 살을 에는 듯이 처참했던 우리의 근대상을 생생하게 보여주어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작가 박인환의 묘소에선 한때 명동을 주름잡았던 그의 얼굴을 떠올려본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다’고 쓴 시 <세월이 가면>의 한 구절이 묘비에 남아 안타까움을 더한다. 작고하기 일주일 전에 지은 마지막 작품이라 더욱 애달프다. 이처럼 망우리공원 지도에 표시된 근현대 인물의 묘소는 나조차도 모두 만나진 못했기에, 앞으로 산책할 때마다 어떤 숭고한 이를 알아가게 될지 궁금해진다.
과거와 현재가 인연을 맺는 일
어쩌면 ‘근심을 잊을 수 있겠다’는 망우리가 품은 지명의 뜻은 운명이 아니었을까 싶다. 태조 이성계도 망우리공원이 이런 세월을 감내할지 몰랐겠지만, 적어도 망우리공원에겐 맞춤한 느낌이 든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동구릉’을 바라보며 남긴 그의 한 마디는, 망우리공원에 잠든 수많은 이에게 스며들고 있다. 망우리공원의 그들도, 그곳을 찾는 우리도, 부디 근심을 내려놓길 바라는 숲이 되었으니까.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등이 훤히 내려다보일 만큼 양지바른 망우리공원은 오늘도 다양한 ‘사람의 이야기’가 꽃핀다. 미래를 기대하는 과거와 현재가 오늘도 내일도 망우리공원에서 인연을 맺는다.
김세희는 경기도 남양주시에 둥지를 틀고 있으며,
여행 콘텐츠 에디터로서 때로는 느슨하게, 때로는 발빠르게 노마드의 삶을 걷고 있다.
낯선 이가 우리의 인문 기억에 놀러오는 일은 생각만 해도 설레고 두근거린다.
더 많은 것을 꿈꾸고 소망하고 함께 응원하는 온기를 뼈 마디마디에 불어넣고 싶다.
어떤 바람도 어떤 파도도 잔잔해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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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과 사를 사유하는 양지바른 산책길
서울 중랑구 망우리공원
인문쟁이 김세희
2019-11-05
‘망우리(忘憂里)’는 서울 중랑구에 있는 동네다. ‘근심을 잊은 마을’이란 지명의 유래는 조선 태조 이성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태조가 망우리 고개에서 자신과 후손의 능지(현재 동구릉*)를 발견했을 때, ‘이제야 근심을 잊을 수 있겠다’는 말을 남긴 데서 비롯된 것이다. 이 세상에 존재가 출현하는 일만큼 중한, 사라지는 일의 무게를 짐작케 하는 일화다. 돌이켜보면 ‘망우리공원’의 운명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근현대를 살아낸 사람들이 잠들어 있고, 그 곁에 펼쳐진 오솔길은 우리의 사유를 어느새 생과 사의 경계에 올려놓기 때문이다. 어차피 잠시 머물다 떠날 이 생의 근심 따위에 더 마음을 둘 까닭이 없도록.
*동구릉(東九陵) : 경기도 구리시 동구동에 있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을 포함 총 9개의 왕릉(사적 193호)을 뜻하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 망우리공원의 시작을 알리는 전시물 ⓒ김세희
망우리공원의 애국지사 5인
‘망우리공원’은 나이 지긋한 어르신에겐 ‘망우리 공동묘지’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 공동묘지를 주민들은 산책하기 좋은 곳이라 말한다. 망우산을 감도는 망우리 공동묘지가 ‘공원’으로 자리잡은 지 20년이 넘었다. 정확히 말하면 일제강점기 도시개발 명목으로 조성된 망우리 공동묘지에 ‘서울 둘레길’, ‘인문학 사잇길’ 등과 같은 산책로가 놓인 이후의 시간을 의미한다. 길 양 옆에 만들어진 수많은 묘지가 망우리공원의 상징이 되었다. 특히 책에서 보았던 애국지사, 문화예술인의 이름도 망우리공원에 안장되어 있어 우리의 발걸음을 바삐 이끈다. 한 걸음 걷다 가을 속으로 떠나버린 ‘목마와 숙녀’를 지그시 그려보는 하루. 또는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굳건하게 믿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순간이 망우리공원에서 펼쳐진다.
▲ 망우리공원 애국지사 5인의 이야기를 전시하는 중랑아트센터 ⓒ김세희
지난 10월 31일까지 중랑아트센터는 망우리공원에 영면한 애국선열 중 5인의 일생을 다뤘다. 가장 인상적인 건, 도산 안창호와 태허 유상규의 막역한 동지애였다. 민족운동가이자 근대 의학의 선구자였던 유상규는 상해 임시정부 시절, 안창호를 최측근으로서 정성껏 보필했다. 안창호의 묘소는 현재 서울 강남구 도산공원으로 아내와 함께 이장되어 있지만, 그전까진 유상규의 곁에 묻어달라는 유언으로 망우리공원에 안장됐다. 물론 당시 안창호의 묘터는 망우리공원에 보존되어 있다.
▲ 도산 안창호(왼쪽 사진 중앙) 함께 한 태허 유상규(왼쪽 사진 뒷줄 오른쪽)의 모습ⓒ김세희
또한 3.1 운동 100주년인 올해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이었던 만해 한용운의 삶도 조명했다. 특히 ‘심우장(尋牛莊)’은 그가 우리나라 해방을 1년 앞두고 서거한 곳. 심우장 사진이 전시된 바로 옆에 그의 묘지 모습이 담겨 안타까움을 더했다. 백범 김구 주석이 광복 후 한용운의 무덤 앞에서 눈물로 참배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 때문이다. 김구가 민족 분열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로 한용운을 꼽았다고 하는 대목은, 만해의 사상 세계가 현대에도 여전한 의미를 지니고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게 한다. 한편 의암 손병희의 사위였던 소파 방정환은 아마도 어린이가 가장 많이 찾는 묘소가 아닐까 싶다. 나라를 잃은 시국에 의무교육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어린이날’을 제정한 그의 애틋함. 각종 소년운동을 전개한 그의 업적을, 묘비명 ‘선여심동(仙如心童 : 어린 아이의 마음은 천사와 같다)’으로 다시금 깨닫게 된다. 그가 죽음을 앞두고 “어린이를 두고 가니 잘 부탁하오.”라는 당부가 망우리공원에 여전히 맴도는 듯하다.
▲ 만해 한용운의 심우장(서울 성북구 성북동의 유택) 사진 및 묘소 모습 ⓒ김세희
한편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지폈던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의 주인공도 돌아볼 수 있었다. 만세운동 후 풍비박산 난 유관순 열사의 집안을 대신해, 이화학당의 친구들은 일제의 감시 속에서 묘석도 없이 그녀의 유해를 이태원 공동묘지에 묻는다. 훗날 일제는 유관순을 비롯한 무연고 28,000여 분묘를 이태원에서 망우리공원에 합장한 후 위령비를 세웠다. 이토록 작은 하나의 묘에 그 많은 수의 유해가 묻혀 있고, 그 안에 유관순 열사가 있을 거라니. 그녀의 열아홉 생을 추모하기 위해 최근 ‘유관순 열사 분묘 합장 표지비’가 위령비 뒤편에 생겼다. 하나 둘 전시를 통해 애국지사의 이야기를 따라가보니, 그간 망우리공원을 깊이 들여다보지 못한 게 부끄러웠다. 망우리공원에는 이밖에도 일제강점기, 해방, 한국전쟁, 분단 등 근대의 격동기를 지나 현대를 보낸 60여 명의 위인 및 일반인이 잠들어 있다.
▲ 이태원 합장비 뒤편에 세워진 유관순 열사 분묘 합장 표지비 ⓒ김세희
▲ 망우리공원에 안장된 위인들 안내도 ⓒ김세희
돌에 그려진 망우리공원 인물들
지난 7월부터 오는 12월까지 서울 중랑구청 로비에는 ‘망우리공원에 잠든 인물展’이 진행 중이다. 한용운, 유관순, 박인환, 방정환, 이중섭, 강소천, 지석영, 오세창 등과 같은 인물의 모습이 그림으로 돌 위에 담겨 망우리공원을 찾기 전 살펴보면 도움이 된다. 일종의 스톤아트 전시라고 하는데, 묘지의 비석과는 다르게 위인의 얼굴을 볼 수 있어 생동감이 느껴진다. 망우리공원 묘소에도 QR코드를 이용해 인물의 정보를 찾아볼 수 있지만, 전체적인 공원 안내 정보와 함께 망우리공원 주요 인물의 표정을 직접 마주할 수 있으니 방문해보는 걸 추천한다.
▲ 중랑구청에서 열리고 있는 <망우리공원에 잠든 인물展> ⓒ김세희
근대 최고의 서화가로 꼽히는 위창 오세창에 대한 스토리는 이곳에서 처음 접했는데, 우리나라 옛 서화를 수집하고 정리한 공이 크다고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문화 수준이 높은 나라가 영원히 합병된 역사는 없다”고 한 그의 지조. 간송 전형필의 스승이기도 한 그의 곧은 정신에, ‘문화의 힘이 곧 국력’이라는 걸 다시금 깨닫는다. 독립운동에서 문화예술까지 우리나라를 지킬 수 있는 분야라면 무엇이든 자발적으로 나섰던 오세창의 삶. 언젠가 망우리공원에서 만나게 된다면 잠시 마음을 전해보는 건 어떨까. 문화콘텐츠를 꽃피우는 ‘요즘 한국’은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므로.
▲ 망우리공원에 영면한 대향 이중섭 화가의 묘소 ⓒ김세희
한국 근대 서양화의 대표 화가인 대향 이중섭의 묘지도 망우리공원에서 만날 수 있다. 눈길을 끌었던 것은 아무런 말없이 작은 그림 하나가 그려진 그의 묘비였다. <소>, <가족> 등 향토적이면서 자전적이며 동화적인 느낌이 드는 이중섭의 그림 세계가 연상된다. 이중섭의 유해는 화장된 후 절반은 망우리공원에, 나머지는 일본의 처가 묘에 합장되었다고 한다.
▲ <세월이 가면>의 한 구절이 새겨진 시인 박인환 묘소 ⓒ김세희
앞서 언급한 전시가 아니더라도, 망우리공원을 직접 걷다보면 더 많은 인물들을 알게 된다. 문학가, ‘최서해’로 알려진 서해 최학송은 미아리공원묘지에서 망우리공원으로 이장되었다. 극심한 가난으로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쓴 간도에서의 체험기, <탈출기>는 마치 살을 에는 듯이 처참했던 우리의 근대상을 생생하게 보여주어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작가 박인환의 묘소에선 한때 명동을 주름잡았던 그의 얼굴을 떠올려본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다’고 쓴 시 <세월이 가면>의 한 구절이 묘비에 남아 안타까움을 더한다. 작고하기 일주일 전에 지은 마지막 작품이라 더욱 애달프다. 이처럼 망우리공원 지도에 표시된 근현대 인물의 묘소는 나조차도 모두 만나진 못했기에, 앞으로 산책할 때마다 어떤 숭고한 이를 알아가게 될지 궁금해진다.
과거와 현재가 인연을 맺는 일
어쩌면 ‘근심을 잊을 수 있겠다’는 망우리가 품은 지명의 뜻은 운명이 아니었을까 싶다. 태조 이성계도 망우리공원이 이런 세월을 감내할지 몰랐겠지만, 적어도 망우리공원에겐 맞춤한 느낌이 든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동구릉’을 바라보며 남긴 그의 한 마디는, 망우리공원에 잠든 수많은 이에게 스며들고 있다. 망우리공원의 그들도, 그곳을 찾는 우리도, 부디 근심을 내려놓길 바라는 숲이 되었으니까.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등이 훤히 내려다보일 만큼 양지바른 망우리공원은 오늘도 다양한 ‘사람의 이야기’가 꽃핀다. 미래를 기대하는 과거와 현재가 오늘도 내일도 망우리공원에서 인연을 맺는다.
▲ 망우리공원 중랑 전망대에서 바라본 경치 ⓒ김세희
○ 망우리공원 공간 정보
주소 : 서울 중랑구 망우로 570
전화번호 : 02-2094-0114(중랑구청)
운영시간 : 연중무휴
○ 관련 링크
-망우리공원 홈페이지 : http://manguripark.or.kr/
○ 사진 촬영 : 김세희
장소 정보
2019 [인문쟁이 3기, 4기, 5기]
김세희는 경기도 남양주시에 둥지를 틀고 있으며, 여행 콘텐츠 에디터로서 때로는 느슨하게, 때로는 발빠르게 노마드의 삶을 걷고 있다. 낯선 이가 우리의 인문 기억에 놀러오는 일은 생각만 해도 설레고 두근거린다. 더 많은 것을 꿈꾸고 소망하고 함께 응원하는 온기를 뼈 마디마디에 불어넣고 싶다. 어떤 바람도 어떤 파도도 잔잔해질 수 있도록.댓글(0)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생과 사를 사유하는 양지바른 산책길'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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