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76은 <관객 모독>을 통해 70년대 말, 연극계에 새로운 물결을 일으켰다. 관객에게 욕을 하고 물을 붓는 행위는 기존의 틀을 깨는 실험이자 도전이었다. 그 괴짜들이 모인 집단 중심에 기국서라는 젊은 연출가가 있었다. 어려운 경제적 여건에도 그는 2년만에 사무엘 베케트의 <엔드 게임>을 들고 다시 관객을 찾아왔다. 예순 후반의 나이에도 여전히 실험을 멈추지 않는 그를 통해 연극의 실험정신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1976년에 창립했기 때문에 '극단76'이란 이름이 붙었다. 단순했다. 그 단순함이 연극계에 파격적 실험과 도전을 불러왔다. '새로움'이란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까지 세계적인 문화현상이었다. 한국도 예외일 순 없었다. 극단76의 대표인 기국서는 대학로 소극장 '알과 핵'에서 사무엘 베케트의 '엔드 게임'을 공연 중이었다. 연극을 상연한지 일주일이 지난 시점이다.
Q. ‘극단76’이라고도 하고 ‘극단76단’이라고도 합니다. 어떤 게 맞는지요?
예전에 강렬함을 담기 위해 우리끼리 '단'이라는 말을 붙였습니다. '의열단'같은 의미로 연극을 좀 더 치열하게 하자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지금은 '극단76'으로 많이들 부릅니다.
▲ 극단76 대표 기국서 연극 연출가
Q. 40년 넘게 극단을 이끌어 오고 계십니다. 특별한 원동력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극단에 대한 의리 때문입니다. 원년 멤버는 김태원 씨를 비롯한 제 동생(배우 기주봉) 등이었습니다. 저는 1년 뒤 합류했습니다. 동생이 연락을 해서 아무 생각 없이 갔다가 지금까지 극단을 맡게 되었습니다. 하나둘 떠났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원래 연극이 아니라 문학을 좋아했습니다. 이상, 손창섭, 박상륭 같은 작품에서의 실험성과 기묘함이 제 연출에 연결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기국서 연출 작 <엔드 게임> 포스터
당시 76소극장은 신촌에 있었는데 유신의 암울함이 지하 아지트로 사람들을 모이게 했던 것 같습니다. 김민기를 비롯한 다수의 예술가가 그곳에서 함께 어울렸습니다. 80년대까지는 그런 시대의 어둠이 예술인에게 창작의 자극을 주었습니다. 지금 연극을 하는 젊은이들에게 사회에 대한 그런 '분노'가 있을까?, 생각을 합니다. 그때와 지금은 많이 다르니까요.
Q. <엔드 게임>이라는 작품이 상연 중입니다. 사무엘 베케트의 작품은 실험성이 강합니다. 그만큼 대중성에 대한 고민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30대까지는 실험극을 표방했습니다. 80년대에는 정치극, 시사극을 많이 했습니다. 연극은 사회의 거울이니까요. 극단 76이 창립되기 전의 연극들은 고답적인 부분이 많았습니다. 새로운 연극이 필요했습니다. 전에는 '새롭다는 것'을 찾았지만 지금은 기존의 작품을 올리면서 연습 과정에서 새로운 방법을 찾습니다. 사람들은 진부한 것을 원치 않습니다. 새로운 것을 추구합니다.
▲ <엔드 게임>이 공연 중인 소극장 ‘알과 핵’ ⓒ최근모
대중성과 예술성의 접점에서 ‘우물 안 개구리’로 남을 것이냐, 아니면 대중을 설득할 것이냐의 문제입니다. 제가 대중성보다는 실험성이 강한 작품을 시도하는 것은 관객이 언젠가는 실험성의 가치를 알아주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제품이 가치 있다면 지금은 대중이 외면해도 나중에는 그 가치를 알아볼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들이 늘어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습니다. <엔드 게임>이 그런 작품입니다.
▲ 공연 전 최종 무대를 점검하는 기국서 연출가 ⓒ최근모
젊었을 때는 돈이 아니라 예술에 대한 정열로 연극을 합니다. 중년이 되면 자기 이력이 쌓이면서 좀 더 깊게 빠져듭니다. 전문가로서 절정에 이릅니다. 노년이 되면 후배들에게 하나의 모범이 되고자 하는 경향도 생깁니다. <엔드 게임>도 연극인들이 많이 봤으면 좋겠습니다. 연극은 쇼크를 줘야 합니다. 피카소가 화단에 큰 변화를 주었듯이 새로운 '자극'이 되어야 합니다.
▲ 공연 시작 전과 공연이 끝난 후의 무대 ⓒ최근모
Q. 앞으로의 꿈이 무엇인지요?
내가 만든 작품을 객석에서 보며 배우의 매력에 흠뻑 빠지는 겁니다. 연기를 너무 잘해서 매혹당하고 싶습니다. 좋은 배우와 계속 작업하고 싶습니다.
코메디 작품을 잘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좋은 대본을 가지고 객석을 웃음바다로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코메디는 그 사회에서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훌륭한 코메디언을 가진 나라는 그만큼 성숙한 나라입니다. 그만 들어가 봐야겠습니다. 공연 전 체크해봐야 할 게 있어서요.
▲ 인터뷰를 마치며 ⓒ최근모
인터뷰 중 새삼 확인한 점은 그가 나이와 직책에 상관없이 존대한다는 것이다. 이 점은 그 전에 사석에서 그와 만났을 때도 느꼈던 점이다. 어리다고 상대에게 말을 놓거나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며 나이를 느낄 수 없었다. 어쩌면 내가 정신으로 더 나이가 들어 그의 젊은 실험적 사고를 따라 갈 수 없었던 것 같다. 그의 꿈은 자신이 연출한 작품에서 배우의 연기에 매혹당하는 것이다. 작품과 소재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마치 소년 같았다. 그는 연극이라는 실험실에서 늘 푸른 ‘연구원’으로 실험을 이어갈 것이다.
그가 이번 작품을 정부 지원 없이 무대에 올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살이로 실험성 짙은 작품을 올리는 그를 보며 '연극인들이 이번 작품을 많이 봤으면 좋겠다'는 그의 말이 떠올랐다. 변하지 않고 작품 활동을 이어가는 그를 보며 극단76을 40년 넘게 지켜온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늦은 밤, <엔드 게임>이 공연되는 소극장 입구에는 여러 젊은 관객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연극 실험실의 늘 푸른 ‘연구원’
연극 연출가 기국서 인터뷰
인문쟁이 최근모
2019-10-22
▲ 극단76 공연 포스터
극단76은 <관객 모독>을 통해 70년대 말, 연극계에 새로운 물결을 일으켰다. 관객에게 욕을 하고 물을 붓는 행위는 기존의 틀을 깨는 실험이자 도전이었다. 그 괴짜들이 모인 집단 중심에 기국서라는 젊은 연출가가 있었다. 어려운 경제적 여건에도 그는 2년만에 사무엘 베케트의 <엔드 게임>을 들고 다시 관객을 찾아왔다. 예순 후반의 나이에도 여전히 실험을 멈추지 않는 그를 통해 연극의 실험정신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1976년에 창립했기 때문에 '극단76'이란 이름이 붙었다. 단순했다. 그 단순함이 연극계에 파격적 실험과 도전을 불러왔다. '새로움'이란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까지 세계적인 문화현상이었다. 한국도 예외일 순 없었다. 극단76의 대표인 기국서는 대학로 소극장 '알과 핵'에서 사무엘 베케트의 '엔드 게임'을 공연 중이었다. 연극을 상연한지 일주일이 지난 시점이다.
Q. ‘극단76’이라고도 하고 ‘극단76단’이라고도 합니다. 어떤 게 맞는지요?
예전에 강렬함을 담기 위해 우리끼리 '단'이라는 말을 붙였습니다. '의열단'같은 의미로 연극을 좀 더 치열하게 하자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지금은 '극단76'으로 많이들 부릅니다.
▲ 극단76 대표 기국서 연극 연출가
Q. 40년 넘게 극단을 이끌어 오고 계십니다. 특별한 원동력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극단에 대한 의리 때문입니다. 원년 멤버는 김태원 씨를 비롯한 제 동생(배우 기주봉) 등이었습니다. 저는 1년 뒤 합류했습니다. 동생이 연락을 해서 아무 생각 없이 갔다가 지금까지 극단을 맡게 되었습니다. 하나둘 떠났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원래 연극이 아니라 문학을 좋아했습니다. 이상, 손창섭, 박상륭 같은 작품에서의 실험성과 기묘함이 제 연출에 연결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기국서 연출 작 <엔드 게임> 포스터
당시 76소극장은 신촌에 있었는데 유신의 암울함이 지하 아지트로 사람들을 모이게 했던 것 같습니다. 김민기를 비롯한 다수의 예술가가 그곳에서 함께 어울렸습니다. 80년대까지는 그런 시대의 어둠이 예술인에게 창작의 자극을 주었습니다. 지금 연극을 하는 젊은이들에게 사회에 대한 그런 '분노'가 있을까?, 생각을 합니다. 그때와 지금은 많이 다르니까요.
Q. <엔드 게임>이라는 작품이 상연 중입니다. 사무엘 베케트의 작품은 실험성이 강합니다. 그만큼 대중성에 대한 고민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30대까지는 실험극을 표방했습니다. 80년대에는 정치극, 시사극을 많이 했습니다. 연극은 사회의 거울이니까요. 극단 76이 창립되기 전의 연극들은 고답적인 부분이 많았습니다. 새로운 연극이 필요했습니다. 전에는 '새롭다는 것'을 찾았지만 지금은 기존의 작품을 올리면서 연습 과정에서 새로운 방법을 찾습니다. 사람들은 진부한 것을 원치 않습니다. 새로운 것을 추구합니다.
▲ <엔드 게임>이 공연 중인 소극장 ‘알과 핵’ ⓒ최근모
대중성과 예술성의 접점에서 ‘우물 안 개구리’로 남을 것이냐, 아니면 대중을 설득할 것이냐의 문제입니다. 제가 대중성보다는 실험성이 강한 작품을 시도하는 것은 관객이 언젠가는 실험성의 가치를 알아주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제품이 가치 있다면 지금은 대중이 외면해도 나중에는 그 가치를 알아볼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들이 늘어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습니다. <엔드 게임>이 그런 작품입니다.
▲ 공연 전 최종 무대를 점검하는 기국서 연출가 ⓒ최근모
젊었을 때는 돈이 아니라 예술에 대한 정열로 연극을 합니다. 중년이 되면 자기 이력이 쌓이면서 좀 더 깊게 빠져듭니다. 전문가로서 절정에 이릅니다. 노년이 되면 후배들에게 하나의 모범이 되고자 하는 경향도 생깁니다. <엔드 게임>도 연극인들이 많이 봤으면 좋겠습니다. 연극은 쇼크를 줘야 합니다. 피카소가 화단에 큰 변화를 주었듯이 새로운 '자극'이 되어야 합니다.
▲ 공연 시작 전과 공연이 끝난 후의 무대 ⓒ최근모
Q. 앞으로의 꿈이 무엇인지요?
내가 만든 작품을 객석에서 보며 배우의 매력에 흠뻑 빠지는 겁니다. 연기를 너무 잘해서 매혹당하고 싶습니다. 좋은 배우와 계속 작업하고 싶습니다.
코메디 작품을 잘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좋은 대본을 가지고 객석을 웃음바다로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코메디는 그 사회에서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훌륭한 코메디언을 가진 나라는 그만큼 성숙한 나라입니다. 그만 들어가 봐야겠습니다. 공연 전 체크해봐야 할 게 있어서요.
▲ 인터뷰를 마치며 ⓒ최근모
인터뷰 중 새삼 확인한 점은 그가 나이와 직책에 상관없이 존대한다는 것이다. 이 점은 그 전에 사석에서 그와 만났을 때도 느꼈던 점이다. 어리다고 상대에게 말을 놓거나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며 나이를 느낄 수 없었다. 어쩌면 내가 정신으로 더 나이가 들어 그의 젊은 실험적 사고를 따라 갈 수 없었던 것 같다. 그의 꿈은 자신이 연출한 작품에서 배우의 연기에 매혹당하는 것이다. 작품과 소재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마치 소년 같았다. 그는 연극이라는 실험실에서 늘 푸른 ‘연구원’으로 실험을 이어갈 것이다.
그가 이번 작품을 정부 지원 없이 무대에 올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살이로 실험성 짙은 작품을 올리는 그를 보며 '연극인들이 이번 작품을 많이 봤으면 좋겠다'는 그의 말이 떠올랐다. 변하지 않고 작품 활동을 이어가는 그를 보며 극단76을 40년 넘게 지켜온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늦은 밤, <엔드 게임>이 공연되는 소극장 입구에는 여러 젊은 관객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 사진 촬영_ ⓒ최근모
연극 연출가 기국서 약력
1977년 극단 76극장 입단, 연출전공.
이후 현재까지 대표, 예술감독 역임.
소극장 [단막극장] 예술감독.
서울연극협회 이사
서울평양연극제 추진위원
강북연극협회 이사
■ 주요 연출 작품
1970년대
[수업] E. 이오네스코 作 - 불란서문화원
[장남의 권리] T.C 머레이 作 - YMCA 강당
[마지막 테이프] S. 베케트 作 - 76 소극장
[관객모독] 페터. 한트케 作 - 76소극장
[殉葬] 김 영 덕 作 - 76소극장
1980년대
[作家를 찾는 6인의 등장인물] L. 피란델로 作 - 국립극장
[기국서의 햄릿] 셰익스피어 作 - 국립극장
[햄릿 2] 셰익스피어 作 - 문예회관
[햄릿과 오레스테스] 셰익스피어, 싸르트르 作 - 문예회관
[햄릿 4] 기국서 作 - 대학로 극장
[햄릿 5] 기국서 作 - 문예회관
[빵] 오태영 作 - 문예회관
[임금알] 오태영 作 - 문예회관
[바람앞에 등을 들고] 오태영 作 - 인천문예회관
[고도를 기다리며] S. 베케트 作 - 문예회관
[행복한 나날들] S. 베케트 作 - 엘칸토 극장
[일어나라 알버트] 봉기니 作 - 실험극장
[방관 씨리즈] 기국서 作 - 거리연극
1990년대
[지피족] 공동창작문예회관
[미아리텍사스] 기국서 作 - 바탕골극장
[지젤] 기국서 作 - 바탕골극장
[맥베드] - 호암아트홀
[목포의 눈물] 장우재 作 - 호암아트홀
[페밀리바게트] 김낙형 作 - 동숭아트홀
[미친 리어] 셰익스피어 作 - 예술의 전당
[作亂] 기국서 作 - 혜화동1번지
[개] 기국서 作 - 씨어터 제로
[라디오드라마] 기국서 作 - 씨어터 제로
2000년대
[길 떠나는 가족] 김의경 作 - 세종회관 소극장
[나 하늘로 돌아가리] 기국서 作 - 단막극장
[거친 연극] S. 베케트 作 - 단막극장
[로베르토 쥬코] 콜테즈 作 - 동숭아트홀
[관객모독] P. 한트케 作 - 동숭아트홀
[禪] 오태영 作 - 국립 달오름극장
[불어를 하세요] M. 쉬스갈 作 - 연우 소극장
[행복한 나날들] S. 베케트 作 - 낙산 씨어터
[표현의 자유] 최명숙 作 - 삼일로 창고극장
[17시의 이야기] 기국서, 오태영 作 - 거리연극
2010년대
[의자들] 이오네스코 作 - 기국서 각색단막극장
[찬란한 오후] 스튜디오 76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 콜테즈 作 - 혜화동 1번지
[햄릿 6 삼양동 국화 옆에서] 기국서 作 - 남산예술센터
[통닭] 강병헌 作 - 거리연극
[비가 내리네] 김원익 作 - 아트원 극장
[리어의 역] 기국서 作 - 선돌극장
[뮤지컬 철딱서니들] 톰 존스 作 - 알과핵 소극장
■ 창작 희곡
방관 씨리즈 1 ~ 6 (거리 실험극)
지젤 (바탕골 소극장 공연)
미아리 텍사스 (대학로 소극장 공연)
作亂 (혜화동 1번지 공연)
개(충돌소극장)
햄릿 5 (대한민국 연극제 출품 아르코 대극장 공연)
햄릿 6삼양동 국화 옆에서 (남산 예술센터)
리어의 역 (선돌극장)
■ 영화 출연
굳세어라 금순아, 거울속으로, 도둑들, 차이나 타운, 아부의 왕등
■ 수상
한국 극평가 협회 특별상
한국 극평가 협회 연출상
영희 연극상
한국 예술가 협의회연출상 등
_ 출처: 유튜브 ‘종합연기TV'
장소 정보
2019 [인문쟁이 5기]
반갑습니다. 가치있는 이야기를 나누는 최작가입니다. 영화일을 하고 있습니다. 책과 전시를 좋아합니다.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는 스토리를 채굴하는 성실한 광부가 되겠습니다.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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