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부산에서 태어나 1988년 시 전문 무크지 <현대시사상>1집에 '양동시편-뼉다귀집'외 6편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시집 <버려진 사람들> <개같은 날들의 기록> <몽유 속을 걷다> <환상통> <도장골 시편> <바자울에 기대다> <잉어>, 시선집 <부빈다는 것>, 장편소설 <달은 어디에 있나> <기계 앵무새> <새를 아세요?>가 있다. 천상병문학상, 노작문학상, 고양행주문학상, 2007년도 도서출판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시상, 한유성문학상을 수상했다.
인사동에서 만난 시인, 김신용 ⓒ최근모
시인은 30년간 거리를 떠돌았다. 민달팽이였다. 자신의 등짝에 집을 이고 다녔다. 누울 수 있는 곳이 거처였다. 대학에 입학했다. 추위와 배고픔이 입학 조건이었다. 그곳에서 철학교수를 만나 시인 이상을 알게 되었다. 장 주네의 '도둑일기'를 비롯한 문학책은 최고의 교수진이었다. 그 학교의 이름은 '교도소'였다.
1988년. 서울은 바빴고, 당시 43세 청계천 지게꾼 김신용도 바빴다. 88올림픽 개최를 위해 거리의 민낯을 화려함으로 치장해야 했다. 그의 노동도 바빠질 수밖에 없었다. 대학로에서 보도블럭을 깔았다. 그곳에서 화가 이존수를 만났다. 그를 통해 인사동 대학에 들어갔다. 동기들은 시인, 소설가, 화가였다. 처음으로 예술 하는 사람들의 비누 냄새를 맡았다. 비 오는 날은 공치는 날이었다. 돈은 못 벌어도 행복했다. 온전히 시를 쓸 수 있는 날이었다. 그 학교의 이름은 값싸고 맛있는 안주를 파는 '실비집'이었다. 예술인들은 그곳을 '실비대학'이라 불렀다. 대학교 총장은 당연히 가게 주인인 주모였다.
실비집 한구석에서 습작시를 보던 김신용에게 시인 지망생 김선유가 다가왔다. 그의 시를 보고는 맘에 든다며 빌려달라고 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그는 뜻하지 않은 문단 데뷔를 하게 된다. 어느 날, 김선유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동안 써 놓은 시를 모두 가지고 인사동 '귀천'으로 나와 달라는 요청이었다. 그 자리에 최승호 시인이 있었다. 얼마 후, 고려원에서 새로 창간된 시 전문 무크지 <현대시사상>1집에 '양동시편-뼉다귀집' 외 6편이 실렸다. 그 해 겨울, 그의 첫 시집 <버려진 사람들>이 출간되었다. 신춘문예나 기성문단의 추천도 없이 덜커덕 시인으로 등단하였다.
귀천에서 ⓒ최근모
<양동시편- 뼉다귀집> (전문)
김신용
뼉다귀집을 아시는지요
지금은 헐리고 없어진 양동 골목에 있었지요
구정물이 뚝뚝 듣는 주인 할머니는
새벽이면 남대문 시장바닥에서 주워온
돼지 뼈를 고아서 술국밥으로 파는 술집이었지요
뉘 입에선지 모르지만 그냥 뼉다귀집으로 불리우는
그런 술집이지만요
어쩌다 살점이라도 뜯고 싶은 사람이 들렀다가는
찌그러진 그릇과 곰팡내 나는 술청 안을
파리와 바퀴벌레들이 거미줄의 현을 고르며 유유롭고
훔친 자리를 도리어 더럽힐 것 같은
걸레 한 움큼 할머니의 꼴을 보고는 질겁을 하고
뒤돌아서는 그런 술집이지만요
첫새벽 할머니는 뼉다귀를 뿌연 뼛물이 우러나오도록
고아서 종일토록 뿌연 뼛물이 희게 맑아질 때까지
맑아진 뼛물이 다시 투명해질 때까지
밤새도록 푹 고아서 아침이 오면
어쩌다 붙은 살점까지도 국물이 되어버린
그 뼉다귀를 핥기 위해
뼈만 앙상한 사람들이 하나둘 찾아들지요
날품팔이지게꾼부랑자쪼록꾼뚜쟁이시라이꾼날라리똥치꼬지꾼
오로지 몸을 버려야 오늘을 살아남을 그런 사람들에게
몸 보하는 디는 요 궁물이 제일이랑께 하며
언제나 반겨 맞아주는 할머니를 보면요
양동이 이 땅의 조그만 종기일 때부터
곪아 난치의 환부가 되어버린 오늘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뼉다귀를 고우며 늙어온 할머니의
뼛국물을 할짝이며
우리는 얼마나 그 국물이 되고 싶었던지
뼉다귀 하나로 펄펄 끓는 국물 속에 얼마나
분신하고 싶었던지, 지금은 힐튼 호텔의 휘황한 불빛이
머큐롬처럼 쏟아져 내리고, 포크레인이 환부를 긁어내고
거기 균처럼 꿈틀거리던 사람들 뿔뿔이 흩어졌지만
그러나 사라지지 않은 어둠 속, 이 땅
어디엔가 반드시 살아있을 양동의
그 뼉다귀집을 아시는지요
『비는 사람의 몸속에도 내려』 라는 제목의 신작 시집을 출간한 김신용(74) 시인을 인사동 귀천에서 만났다. 그러고 보니 귀천은 31년 전 습작시를 처음으로 세상에 내보낼 수 있었던 출발점이 된 곳이다. 찻집의 위치와 운영자는 바뀌었지만 김신용은 다시 그 자리에 섰다. 그때처럼 새로운 시들을 들고서.
신작 시집 『비는 사람의 몸속에도 내려』 표지 ⓒ최근모
Q. 현재 어디에 사시는지요?
경기도 양평 끝자락에 있는 용두리라는 마을에 삽니다. 지난겨울 방안에 텐트를 쳤는데도 추워서 다른 곳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집이 낡아 외벽이 얇습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이젠 추위를 견디기가 힘드네요. 햇볕 따뜻한 남해나 고성 쪽으로 이사를 했으면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Q. 완도군의 섬 신지도, 충주의 도장골, 서해의 소래염전지대가 있는 섬말로 계속 거처를 옮기셨는데 이유가 있는지요?
등단하고 결혼을 하면서 전업으로 시에 더 치열해지고자 했습니다. 적은 생활비로 좋은 시를 쓰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런 기준으로 거처를 선택하다보니 아무래도 값싼 변두리를 찾게 됩니다. 90년대 초반에는 <고백>이란 자전적 소설이 좀 팔렸습니다. 그 돈으로 우이동에 전셋방을 얻었습니다. 전업으로 작업에만 몰두할 수 있었습니다. 97년 IMF 이후 책도 안 팔리고 출판사들도 문을 닫기 시작했습니다. 전세금 빼서 섬으로 들어갔습니다. 돈이 떨어질 때가지 시를 썼습니다. 제 모든 생활의 기준은 좋은 글을 쓰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텃밭 농사를 지으며 세끼 밥 먹는데 지장이 없으면 그만입니다. 현실적 문제는 되도록 관심을 두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저 시를 위해 생활의 포커스를 맞춥니다.
<맑은 날> (일부)
김신용
(중략)
곤혹스러움으로 눈을 멀뚱인다 적은 생활비로
좋은 글 한 편 써보자며 찾아든, 산골 외딴집
이런 이물질(?)까지 아무렇게나 껴입어도 평안한 옷처럼
느껴져야 하는데 또 수도꼭지를 틀면 어떤 이물질이 흘러나올지 몰라,
전전긍긍한다 그러나 송사리는 여전히 달팽이가 기어 나와도
아무렇지도 않은, 너와집처럼 웃는다
요새 시 한편의 원고료도 열악합니다. 시집도 잘 팔리지 않습니다. 막노동의 일당보다 더 열악하지요. 평생 지게를 져왔기에 노동일을 해도 기술자로 대우를 받습니다. 하루 막노동을 나가도 원고료의 몇 배를 받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안 합니다. 오직 새벽의 시 작업에만 집중하고 싶어서입니다.
<대추씨에 관한 소고小考 2> (일부)
김신용
(중략)
시를 쓸수록 더 가난해지는 전업의, 환금 가치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시대의 시인의 생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
(중략)
누가 면허를 내준 것이 아니므로
폐업을 선언할 명분도 없는, '시인 폐업'을 중얼거리면서-
97년 IMF 이후 출판사들도 형편이 더 열악해졌습니다. 문예지도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기성시인에게 원고료를 주기 힘들다보니 일반인들의 시도 싣기 시작했습니다. 동인지처럼 수준이 낮아지고 있지만 그저 시대의 변화려니 생각하고 있습니다. 요새는 '죽을 때까지 시나 쓰자'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습니다.
Q. 학벌이나 문단 인맥도 없이 등단하셨습니다. 시인의 등용문은 신춘문예, 문예지 투고 공모, 기성문단의 추천 같은 것인데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지만 시인이 되셨습니다. 작가 지망생이라면 공모전 같은 곳에 투고라도 해 볼 텐데 말입니다. 그냥 술집에서 습작시를 쓰다 시인이 되셨습니다.
지금도 문단 인맥과는 교류가 별로 없습니다. 떠돌며 혼자 살았던 것이 등단과 그 이후의 삶에도 영향을 미쳤나 봅니다. 시는 상업성을 가지기가 쉽지 않습니다. 또 그것은 시를 오염시키는 행위이기도 하지요. 제 시가 현실의 밑바닥 삶의 비극성을 담고 있어서인지 민족 계열 단체들의 가입 제안이 있었습니다. 모두 정중히 사양하고 그저 혼자서 작업하고 있습니다.
Q. 등단 이후 지금까지의 작업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작업은 삶에서 나옵니다. <몽유 속을 걷다>까지는 밑바닥 빈민층의 삶을 다루었습니다. <환상통>부터는 시대와 환경의 변화 속에서 시적 소재를 찾았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경험한 세계가 내면의 리트머스 시험지를 통과해 나타난다고 말하고 싶네요. 투과장치를 거쳐 앙금처럼 남아 있는 게 떠오르는 것이지요. 오늘의 세계와 사회의 변화를 늘 주시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변하지만 제가 가진 내면의 카메라 렌즈를 통해 시가 나오기 때문에 형태는 달라져도 본질적인 부분은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 시의 출발점이 누가 가르쳐준 게 아니라 내 몸 속에서 스스로 육화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인의 시집들 ⓒ최근모
<비의 가시> (일부)
김신용
(중략)
비는 사람의 몸속에도 내려...... 마치 허공에서 빗방울이 떨어지듯
사람의 몸속에도 내려...... 그리고 비는...... 그 사람의 몸속에서
돋아나기도 해...... 마치 가시처럼...... 찔리면 아프게 피를 흘리는...... 날카로운 가시처럼 ......
너는 이 공원의 벤치에서 비를 만났을 때
오늘처럼...... 이렇게 쓸쓸하게 비를 만났을 때
그런 것을 느껴보지 못했어? 마치 가시가 돋아나듯
가슴속에서 비가 돋아나는 것을 느껴보지 못했어?
그러니까 너는...... 가슴속에서 돋아난...... 그 비의 가시에 찔려
아프게 피를 흘려 본 적은 없어? 고통으로 신음해 본 적은 없어?
이렇게 사회의 어두운 부분,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모순적인 현실을 드러내어 보여주는 것이지요. 남이 보지 못한 세계를 시인이나 작가는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진> (일부)
김신용
사진이, 물 한 방울 같을 때가 있다 목 뒷덜미에 똑 떨어져 소스라쳐
뒤를 돌아보게 하는......
뒤돌아보게 하며, 움직일 수 없는 증거를 목격하게 하는...... 피사체에
대한 감정의 개입 없이
철저히 사실을 응시하게 하는...... 그 물 한 방울 같을 때가 있다
처음엔 내 가슴속에 짓눌려 있던 현실의 빈곤, 소외의 문제를 분출하듯 고백하였습니다. 지금은 한 걸음 물러서서 보다 근원적인 문제를 보고 싶습니다. 시란 이 사회에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 시인이란 어떤 존재인가? 이런 고민을 첨가해서 말입니다. 지난날에는 시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어서 내가 존재한다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한 걸음 물러서서 생의 전반과 이 사회에 시인이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물음으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노숙자 시 창작 교실에서 강의 후 쓴 시 『앵두』에 대한 설명 ⓒ최근모
<앵두> (전문)
김신용
노숙자를 위한 시 창작 강의실에 선다
마치 외계에서 온 낯선 신호를 수신하는 듯한 눈빛들이 보인다
교환 가치가 없는 것은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이 되는, 시대에
대체 시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러나 시 속에는 우리들이 매일 잊으며 살고 있는, 향수 같은......
고향을 향한 그리움 같은...... 그런 마음의 양식이 들어 있다고
만질 수는 없지만, 냄새 맡을 수는 없지만
물질로는 바꿀 수 없는, 무형의 가치가 들어 있다고...... 말한 뒤
나는 살 한 점 없는 생선 뼈처럼 부끄러워진다
과연 그럴까? 시가 저들에게 빵 하나 햄버거 한 개보다 더 가치가 있는 것일까?
그래도 나는 용기를 내어 말한다, 시 속에는
인간에 대한 존엄, 타인에 대한 배려와
섬김의 의미가 내재되어 있다고
그것은 나무나 풀에도 마찬가지라고
또 그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시의 기능이라고
설명한 뒤
여전히 해독할 수 없는, 어떤 상형의 의미를 짚어가는 듯한, 눈빛들을 되짚어 본다
그 눈빛들이, 지금 내가 해독할 수 없는
미지의 언어 같다
나는 다시, 살 한 점 없이 부끄러워진다
교환 가치가 없는 것은 아무 쓸모가 없는, 잉여가 되는 시대에
대체 시란, 어떤 것이어야 할까?
자문自問하듯, 돌아서며 바라본 강의실 창밖의 뜨락에는
앵두꽃이 피었다 진자리, 발진처럼
빨갛게 앵두들이 맺혀 있다
마치 외계에서 온, 발신인도 없는
낯선 신호를 수신하는, 눈빛처럼......
이제는 과거보다 물질적 풍요로움이 넘쳐나는 소비시대입니다. 그러나 형태는 달라졌어도 밑바닥 세계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빈곤 문제에 있어선 시간이 화석화 되었다고 말해야 할까요. 빈민촌의 쪽방과 노숙자들, 가난한 서민들의 삶은 여전합니다. 빈곤의 연쇄 고리는 다람쥐 쳇바퀴처럼 돌고 있습니다. 1970년대 넝마주이가 지금은 없어졌을까요? 아닙니다. 여전히 거리에는 폐지를 줍는 노인들이 존재하고, 그분들이 끄는 손수레의 바퀴는 아스팔트 바닥에 흔적조차 남기지 못합니다. 청년들은 높은 집세를 감당하지 못해 민달팽이처럼 떠돌고 있습니다. 열심히 노력해도 대출과 빚의 무게에서 쉽게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혼밥, 혹은 혼魂밥> (전문)
김신용
혼자 밥 먹는 거...... 마치 처마 끝에 매달려 떨어질 때를 기다리는 물방울 같은 거......
일할수록 더 가난해지고 지겹도록 일을 해도 제자리를 못 벗어나
꿈도 희망도 포기한 민달팽이 세대처럼...... 혹은 n세대처럼
모든 걸 포기하고 무연無緣사회로 가는 길목에서, 혼자 밥 먹는 거 같은......
마침내 저녁이 없는 삶이어서, 걸으면서 컵라면이나 김밥으로 한 끼를 때우면서
컵라면이나 김밥 한 줄의 없는 영혼을 상상하는...... 없는 영혼을 상상하므로
자신도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면서...... 스스로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므로
비로소 존재한다고 느끼면서...... 그렇게 물방울처럼 떨어질 때를 기다리는......
그렇게 물방울처럼 떨어질 때를 기다리고 있는...... 이 결심이...... 다짐이....... 추락이....... 낙하가......
혼밥의 혼이라고, 눈을 빛내고 있는 것 같은...... 그래, 아무리 일을 해도 가난을 못 벗어나는 워킹 푸어처럼
그렇게 스스로 포에지 푸어가 되어...... 아무런 의미 없이 떨어지는
물방울 하나의 의미를 위하여...... 낮은 처마 끝에 매달려서도
추락의......, 그 빛나는 순간을 기다리는......
아직도 사회 약자에 대한 보호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소비사회에 입성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제도를 만들고 보완해야 합니다. 사회의 지도층이라고 일컬어지는 인사들은 그런 변화를 이끌어 내야 합니다. 시인은 그걸 똑똑히 보고 있어야 합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무덤은 있으나 요람에서 무덤까지 그 과정을 돌봐주는 제도적 장치가 미약합니다.
<포에지 푸어 1> (일부)
김신용
(중략)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누가 그랬지? 돈이 되지 않는 것은
치욕일 뿐이라고...... 혼자 책을 뒤적이며 사색에 잠겨 보지만 생각은
생각일 뿐...... 그냥 유체처럼 너를 통과해 간다 그렇게
유체이탈하는 것은 생활일 뿐- 남루하게 누더기
누더기 기워 입은 것 같은 사유만 광고 끝난 거리의 전광판처럼
녹슬고 쇠락해 갈 뿐이다 그래도 너의 눈은 빛난다
물방울 거울처럼 빛난다 물방울 거울에 비친 모든 것은
마치 얼음 조각彫刻처럼 맺혔다 스러지지만, 너의 눈은 빛난다
자신을 유체 같다고 생각하므로 어느 무엇에도 일회용으로
소비되고 소모되지 않는다는 듯이......
빈민, 노동 문학이 따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빈민이 노동자입니다. 3D 직종에 일할수록 더 존경받는 사회가 돼야 합니다. 프랑스의 시몬느 베이유는 <노동일기>에서 '밭을 가는 농민이 자기가 농민이 된 것은 교사가 될 만한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회 체제는 깊이 병든 것이다'라고 썼습니다. 의사, 판사가 노동자보다 더 좋은 직업이라는 주입식 교육이 노동을 천대하는 문제를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하층민의 빈곤을 더 심화시킵니다. 그것을 시인은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계에서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그들도 우리와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이렇게 소외된 사람들을 기억하고 떠올리기 위해 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유쾌하지만 어느새 생각에 잠긴 ⓒ최근모
<고래 뱃속> (일부)
김신용
고래 뱃속을 다녀왔다 한번 빠져들면 사람의 형체가 지워지는 곳,
(중략)
어두컴컴한 복도 양편으로 촘촘히 박힌 방들이 마치 관 속 같은......
30년을 살다 30년 전에 떠났는데 30년 후에 다시 와보니
여전히 환부에서 고름을 흘리고 있는, 지금도 붙잡을 난간이 없어
사람이 굴러 떨어지고, 굴러 떨어진 사람이 사람을 벗은
사람으로 새롭게 사람의 형체를 만드는, 그 고래 뱃속을 다녀왔다
(중략)
대체 고래 뱃속은 얼마나 넓고 큰가?
고래 뱃속을 오래전에 기어 나온 줄 알았는데
아직도 고래 뱃속이라니!
Q. 이후의 계획과 꿈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이사를 준비 중입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생활비가 적게 드는 남해의 따뜻한 지방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시 작업에 집중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이번 시집 출간 이후 새로운 시를 쓰기 위한 구상 과정에 있습니다. 산문집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꿈이야 늘 똑 같습니다. 지금보다 더 좋은(새로운) 시를 쓰는 것입니다. 예술가의 본질은 '자기 갱신'입니다. 자신이 늙었다고 생각하면 시도 늙습니다.
이제 갑시다. 이런 저런 얘기보다 시 한편 싣는 게 더 낫습니다. 일어납시다.
다시 시 작업하러 떠나는 시인 ⓒ최근모
<몰아의 새> (일부)
김신용
(중략)
그것이 비록 번민일지라도 고통일지라도, 그 목표물을 향해, 그렇게 일말의 주저도 없이 투신하는, 그 몰아의 순간이......, 새라고 상상한 날 있었다 마치 전율이듯 전신에서 물방울을 튕기며, 살아, 퍼덕이는 물고기를 물고 수면 위로 솟구쳐 오르는
그 빛나는 순간이.....
시인의 손 ⓒ최근모
노동으로 단련된 시인의 두툼한 손이 눈에 들어왔다. 그 손에 펜이 쥐어져 있다. 그것은 지게였다. 그는 계속 시를 쓸 것이다. 지게꾼이 짐을 나르듯 사회의 어둠을 계속 세상에 지어 나를 것이다.
소외된 자의 지게꾼, 시인 김신용
시인 김신용을 만나다
인문쟁이 최근모
2019-08-20
김신용 시인
1945년 부산에서 태어나 1988년 시 전문 무크지 <현대시사상>1집에 '양동시편-뼉다귀집'외 6편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시집 <버려진 사람들> <개같은 날들의 기록> <몽유 속을 걷다> <환상통> <도장골 시편> <바자울에 기대다> <잉어>, 시선집 <부빈다는 것>, 장편소설 <달은 어디에 있나> <기계 앵무새> <새를 아세요?>가 있다. 천상병문학상, 노작문학상, 고양행주문학상, 2007년도 도서출판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시상, 한유성문학상을 수상했다.
인사동에서 만난 시인, 김신용 ⓒ최근모
시인은 30년간 거리를 떠돌았다. 민달팽이였다. 자신의 등짝에 집을 이고 다녔다. 누울 수 있는 곳이 거처였다. 대학에 입학했다. 추위와 배고픔이 입학 조건이었다. 그곳에서 철학교수를 만나 시인 이상을 알게 되었다. 장 주네의 '도둑일기'를 비롯한 문학책은 최고의 교수진이었다. 그 학교의 이름은 '교도소'였다.
1988년. 서울은 바빴고, 당시 43세 청계천 지게꾼 김신용도 바빴다. 88올림픽 개최를 위해 거리의 민낯을 화려함으로 치장해야 했다. 그의 노동도 바빠질 수밖에 없었다. 대학로에서 보도블럭을 깔았다. 그곳에서 화가 이존수를 만났다. 그를 통해 인사동 대학에 들어갔다. 동기들은 시인, 소설가, 화가였다. 처음으로 예술 하는 사람들의 비누 냄새를 맡았다. 비 오는 날은 공치는 날이었다. 돈은 못 벌어도 행복했다. 온전히 시를 쓸 수 있는 날이었다. 그 학교의 이름은 값싸고 맛있는 안주를 파는 '실비집'이었다. 예술인들은 그곳을 '실비대학'이라 불렀다. 대학교 총장은 당연히 가게 주인인 주모였다.
실비집 한구석에서 습작시를 보던 김신용에게 시인 지망생 김선유가 다가왔다. 그의 시를 보고는 맘에 든다며 빌려달라고 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그는 뜻하지 않은 문단 데뷔를 하게 된다. 어느 날, 김선유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동안 써 놓은 시를 모두 가지고 인사동 '귀천'으로 나와 달라는 요청이었다. 그 자리에 최승호 시인이 있었다. 얼마 후, 고려원에서 새로 창간된 시 전문 무크지 <현대시사상>1집에 '양동시편-뼉다귀집' 외 6편이 실렸다. 그 해 겨울, 그의 첫 시집 <버려진 사람들>이 출간되었다. 신춘문예나 기성문단의 추천도 없이 덜커덕 시인으로 등단하였다.
귀천에서 ⓒ최근모
<양동시편- 뼉다귀집> (전문)
김신용
뼉다귀집을 아시는지요
지금은 헐리고 없어진 양동 골목에 있었지요
구정물이 뚝뚝 듣는 주인 할머니는
새벽이면 남대문 시장바닥에서 주워온
돼지 뼈를 고아서 술국밥으로 파는 술집이었지요
뉘 입에선지 모르지만 그냥 뼉다귀집으로 불리우는
그런 술집이지만요
어쩌다 살점이라도 뜯고 싶은 사람이 들렀다가는
찌그러진 그릇과 곰팡내 나는 술청 안을
파리와 바퀴벌레들이 거미줄의 현을 고르며 유유롭고
훔친 자리를 도리어 더럽힐 것 같은
걸레 한 움큼 할머니의 꼴을 보고는 질겁을 하고
뒤돌아서는 그런 술집이지만요
첫새벽 할머니는 뼉다귀를 뿌연 뼛물이 우러나오도록
고아서 종일토록 뿌연 뼛물이 희게 맑아질 때까지
맑아진 뼛물이 다시 투명해질 때까지
밤새도록 푹 고아서 아침이 오면
어쩌다 붙은 살점까지도 국물이 되어버린
그 뼉다귀를 핥기 위해
뼈만 앙상한 사람들이 하나둘 찾아들지요
날품팔이지게꾼부랑자쪼록꾼뚜쟁이시라이꾼날라리똥치꼬지꾼
오로지 몸을 버려야 오늘을 살아남을 그런 사람들에게
몸 보하는 디는 요 궁물이 제일이랑께 하며
언제나 반겨 맞아주는 할머니를 보면요
양동이 이 땅의 조그만 종기일 때부터
곪아 난치의 환부가 되어버린 오늘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뼉다귀를 고우며 늙어온 할머니의
뼛국물을 할짝이며
우리는 얼마나 그 국물이 되고 싶었던지
뼉다귀 하나로 펄펄 끓는 국물 속에 얼마나
분신하고 싶었던지, 지금은 힐튼 호텔의 휘황한 불빛이
머큐롬처럼 쏟아져 내리고, 포크레인이 환부를 긁어내고
거기 균처럼 꿈틀거리던 사람들 뿔뿔이 흩어졌지만
그러나 사라지지 않은 어둠 속, 이 땅
어디엔가 반드시 살아있을 양동의
그 뼉다귀집을 아시는지요
『비는 사람의 몸속에도 내려』 라는 제목의 신작 시집을 출간한 김신용(74) 시인을 인사동 귀천에서 만났다. 그러고 보니 귀천은 31년 전 습작시를 처음으로 세상에 내보낼 수 있었던 출발점이 된 곳이다. 찻집의 위치와 운영자는 바뀌었지만 김신용은 다시 그 자리에 섰다. 그때처럼 새로운 시들을 들고서.
신작 시집 『비는 사람의 몸속에도 내려』 표지 ⓒ최근모
Q. 현재 어디에 사시는지요?
경기도 양평 끝자락에 있는 용두리라는 마을에 삽니다. 지난겨울 방안에 텐트를 쳤는데도 추워서 다른 곳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집이 낡아 외벽이 얇습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이젠 추위를 견디기가 힘드네요. 햇볕 따뜻한 남해나 고성 쪽으로 이사를 했으면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Q. 완도군의 섬 신지도, 충주의 도장골, 서해의 소래염전지대가 있는 섬말로 계속 거처를 옮기셨는데 이유가 있는지요?
등단하고 결혼을 하면서 전업으로 시에 더 치열해지고자 했습니다. 적은 생활비로 좋은 시를 쓰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런 기준으로 거처를 선택하다보니 아무래도 값싼 변두리를 찾게 됩니다. 90년대 초반에는 <고백>이란 자전적 소설이 좀 팔렸습니다. 그 돈으로 우이동에 전셋방을 얻었습니다. 전업으로 작업에만 몰두할 수 있었습니다. 97년 IMF 이후 책도 안 팔리고 출판사들도 문을 닫기 시작했습니다. 전세금 빼서 섬으로 들어갔습니다. 돈이 떨어질 때가지 시를 썼습니다. 제 모든 생활의 기준은 좋은 글을 쓰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텃밭 농사를 지으며 세끼 밥 먹는데 지장이 없으면 그만입니다. 현실적 문제는 되도록 관심을 두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저 시를 위해 생활의 포커스를 맞춥니다.
<맑은 날> (일부)
김신용
(중략)
곤혹스러움으로 눈을 멀뚱인다 적은 생활비로
좋은 글 한 편 써보자며 찾아든, 산골 외딴집
이런 이물질(?)까지 아무렇게나 껴입어도 평안한 옷처럼
느껴져야 하는데 또 수도꼭지를 틀면 어떤 이물질이 흘러나올지 몰라,
전전긍긍한다 그러나 송사리는 여전히 달팽이가 기어 나와도
아무렇지도 않은, 너와집처럼 웃는다
요새 시 한편의 원고료도 열악합니다. 시집도 잘 팔리지 않습니다. 막노동의 일당보다 더 열악하지요. 평생 지게를 져왔기에 노동일을 해도 기술자로 대우를 받습니다. 하루 막노동을 나가도 원고료의 몇 배를 받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안 합니다. 오직 새벽의 시 작업에만 집중하고 싶어서입니다.
<대추씨에 관한 소고小考 2> (일부)
김신용
(중략)
시를 쓸수록 더 가난해지는 전업의, 환금 가치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시대의 시인의 생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
(중략)
누가 면허를 내준 것이 아니므로
폐업을 선언할 명분도 없는, '시인 폐업'을 중얼거리면서-
97년 IMF 이후 출판사들도 형편이 더 열악해졌습니다. 문예지도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기성시인에게 원고료를 주기 힘들다보니 일반인들의 시도 싣기 시작했습니다. 동인지처럼 수준이 낮아지고 있지만 그저 시대의 변화려니 생각하고 있습니다. 요새는 '죽을 때까지 시나 쓰자'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습니다.
Q. 학벌이나 문단 인맥도 없이 등단하셨습니다. 시인의 등용문은 신춘문예, 문예지 투고 공모, 기성문단의 추천 같은 것인데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지만 시인이 되셨습니다. 작가 지망생이라면 공모전 같은 곳에 투고라도 해 볼 텐데 말입니다. 그냥 술집에서 습작시를 쓰다 시인이 되셨습니다.
지금도 문단 인맥과는 교류가 별로 없습니다. 떠돌며 혼자 살았던 것이 등단과 그 이후의 삶에도 영향을 미쳤나 봅니다. 시는 상업성을 가지기가 쉽지 않습니다. 또 그것은 시를 오염시키는 행위이기도 하지요. 제 시가 현실의 밑바닥 삶의 비극성을 담고 있어서인지 민족 계열 단체들의 가입 제안이 있었습니다. 모두 정중히 사양하고 그저 혼자서 작업하고 있습니다.
Q. 등단 이후 지금까지의 작업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작업은 삶에서 나옵니다. <몽유 속을 걷다>까지는 밑바닥 빈민층의 삶을 다루었습니다. <환상통>부터는 시대와 환경의 변화 속에서 시적 소재를 찾았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경험한 세계가 내면의 리트머스 시험지를 통과해 나타난다고 말하고 싶네요. 투과장치를 거쳐 앙금처럼 남아 있는 게 떠오르는 것이지요. 오늘의 세계와 사회의 변화를 늘 주시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변하지만 제가 가진 내면의 카메라 렌즈를 통해 시가 나오기 때문에 형태는 달라져도 본질적인 부분은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 시의 출발점이 누가 가르쳐준 게 아니라 내 몸 속에서 스스로 육화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인의 시집들 ⓒ최근모
<비의 가시> (일부)
김신용
(중략)
비는 사람의 몸속에도 내려...... 마치 허공에서 빗방울이 떨어지듯
사람의 몸속에도 내려...... 그리고 비는...... 그 사람의 몸속에서
돋아나기도 해...... 마치 가시처럼...... 찔리면 아프게 피를 흘리는...... 날카로운 가시처럼 ......
너는 이 공원의 벤치에서 비를 만났을 때
오늘처럼...... 이렇게 쓸쓸하게 비를 만났을 때
그런 것을 느껴보지 못했어? 마치 가시가 돋아나듯
가슴속에서 비가 돋아나는 것을 느껴보지 못했어?
그러니까 너는...... 가슴속에서 돋아난...... 그 비의 가시에 찔려
아프게 피를 흘려 본 적은 없어? 고통으로 신음해 본 적은 없어?
이렇게 사회의 어두운 부분,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모순적인 현실을 드러내어 보여주는 것이지요. 남이 보지 못한 세계를 시인이나 작가는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진> (일부)
김신용
사진이, 물 한 방울 같을 때가 있다 목 뒷덜미에 똑 떨어져 소스라쳐
뒤를 돌아보게 하는......
뒤돌아보게 하며, 움직일 수 없는 증거를 목격하게 하는...... 피사체에
대한 감정의 개입 없이
철저히 사실을 응시하게 하는...... 그 물 한 방울 같을 때가 있다
처음엔 내 가슴속에 짓눌려 있던 현실의 빈곤, 소외의 문제를 분출하듯 고백하였습니다. 지금은 한 걸음 물러서서 보다 근원적인 문제를 보고 싶습니다. 시란 이 사회에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 시인이란 어떤 존재인가? 이런 고민을 첨가해서 말입니다. 지난날에는 시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어서 내가 존재한다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한 걸음 물러서서 생의 전반과 이 사회에 시인이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물음으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노숙자 시 창작 교실에서 강의 후 쓴 시 『앵두』에 대한 설명 ⓒ최근모
<앵두> (전문)
김신용
노숙자를 위한 시 창작 강의실에 선다
마치 외계에서 온 낯선 신호를 수신하는 듯한 눈빛들이 보인다
교환 가치가 없는 것은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이 되는, 시대에
대체 시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러나 시 속에는 우리들이 매일 잊으며 살고 있는, 향수 같은......
고향을 향한 그리움 같은...... 그런 마음의 양식이 들어 있다고
만질 수는 없지만, 냄새 맡을 수는 없지만
물질로는 바꿀 수 없는, 무형의 가치가 들어 있다고...... 말한 뒤
나는 살 한 점 없는 생선 뼈처럼 부끄러워진다
과연 그럴까? 시가 저들에게 빵 하나 햄버거 한 개보다 더 가치가 있는 것일까?
그래도 나는 용기를 내어 말한다, 시 속에는
인간에 대한 존엄, 타인에 대한 배려와
섬김의 의미가 내재되어 있다고
그것은 나무나 풀에도 마찬가지라고
또 그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시의 기능이라고
설명한 뒤
여전히 해독할 수 없는, 어떤 상형의 의미를 짚어가는 듯한, 눈빛들을 되짚어 본다
그 눈빛들이, 지금 내가 해독할 수 없는
미지의 언어 같다
나는 다시, 살 한 점 없이 부끄러워진다
교환 가치가 없는 것은 아무 쓸모가 없는, 잉여가 되는 시대에
대체 시란, 어떤 것이어야 할까?
자문自問하듯, 돌아서며 바라본 강의실 창밖의 뜨락에는
앵두꽃이 피었다 진자리, 발진처럼
빨갛게 앵두들이 맺혀 있다
마치 외계에서 온, 발신인도 없는
낯선 신호를 수신하는, 눈빛처럼......
이제는 과거보다 물질적 풍요로움이 넘쳐나는 소비시대입니다. 그러나 형태는 달라졌어도 밑바닥 세계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빈곤 문제에 있어선 시간이 화석화 되었다고 말해야 할까요. 빈민촌의 쪽방과 노숙자들, 가난한 서민들의 삶은 여전합니다. 빈곤의 연쇄 고리는 다람쥐 쳇바퀴처럼 돌고 있습니다. 1970년대 넝마주이가 지금은 없어졌을까요? 아닙니다. 여전히 거리에는 폐지를 줍는 노인들이 존재하고, 그분들이 끄는 손수레의 바퀴는 아스팔트 바닥에 흔적조차 남기지 못합니다. 청년들은 높은 집세를 감당하지 못해 민달팽이처럼 떠돌고 있습니다. 열심히 노력해도 대출과 빚의 무게에서 쉽게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혼밥, 혹은 혼魂밥> (전문)
김신용
혼자 밥 먹는 거...... 마치 처마 끝에 매달려 떨어질 때를 기다리는 물방울 같은 거......
일할수록 더 가난해지고 지겹도록 일을 해도 제자리를 못 벗어나
꿈도 희망도 포기한 민달팽이 세대처럼...... 혹은 n세대처럼
모든 걸 포기하고 무연無緣사회로 가는 길목에서, 혼자 밥 먹는 거 같은......
마침내 저녁이 없는 삶이어서, 걸으면서 컵라면이나 김밥으로 한 끼를 때우면서
컵라면이나 김밥 한 줄의 없는 영혼을 상상하는...... 없는 영혼을 상상하므로
자신도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면서...... 스스로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므로
비로소 존재한다고 느끼면서...... 그렇게 물방울처럼 떨어질 때를 기다리는......
그렇게 물방울처럼 떨어질 때를 기다리고 있는...... 이 결심이...... 다짐이....... 추락이....... 낙하가......
혼밥의 혼이라고, 눈을 빛내고 있는 것 같은...... 그래, 아무리 일을 해도 가난을 못 벗어나는 워킹 푸어처럼
그렇게 스스로 포에지 푸어가 되어...... 아무런 의미 없이 떨어지는
물방울 하나의 의미를 위하여...... 낮은 처마 끝에 매달려서도
추락의......, 그 빛나는 순간을 기다리는......
아직도 사회 약자에 대한 보호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소비사회에 입성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제도를 만들고 보완해야 합니다. 사회의 지도층이라고 일컬어지는 인사들은 그런 변화를 이끌어 내야 합니다. 시인은 그걸 똑똑히 보고 있어야 합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무덤은 있으나 요람에서 무덤까지 그 과정을 돌봐주는 제도적 장치가 미약합니다.
<포에지 푸어 1> (일부)
김신용
(중략)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누가 그랬지? 돈이 되지 않는 것은
치욕일 뿐이라고...... 혼자 책을 뒤적이며 사색에 잠겨 보지만 생각은
생각일 뿐...... 그냥 유체처럼 너를 통과해 간다 그렇게
유체이탈하는 것은 생활일 뿐- 남루하게 누더기
누더기 기워 입은 것 같은 사유만 광고 끝난 거리의 전광판처럼
녹슬고 쇠락해 갈 뿐이다 그래도 너의 눈은 빛난다
물방울 거울처럼 빛난다 물방울 거울에 비친 모든 것은
마치 얼음 조각彫刻처럼 맺혔다 스러지지만, 너의 눈은 빛난다
자신을 유체 같다고 생각하므로 어느 무엇에도 일회용으로
소비되고 소모되지 않는다는 듯이......
빈민, 노동 문학이 따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빈민이 노동자입니다. 3D 직종에 일할수록 더 존경받는 사회가 돼야 합니다. 프랑스의 시몬느 베이유는 <노동일기>에서 '밭을 가는 농민이 자기가 농민이 된 것은 교사가 될 만한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회 체제는 깊이 병든 것이다'라고 썼습니다. 의사, 판사가 노동자보다 더 좋은 직업이라는 주입식 교육이 노동을 천대하는 문제를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하층민의 빈곤을 더 심화시킵니다. 그것을 시인은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계에서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그들도 우리와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이렇게 소외된 사람들을 기억하고 떠올리기 위해 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유쾌하지만 어느새 생각에 잠긴 ⓒ최근모
<고래 뱃속> (일부)
김신용
고래 뱃속을 다녀왔다 한번 빠져들면 사람의 형체가 지워지는 곳,
(중략)
어두컴컴한 복도 양편으로 촘촘히 박힌 방들이 마치 관 속 같은......
30년을 살다 30년 전에 떠났는데 30년 후에 다시 와보니
여전히 환부에서 고름을 흘리고 있는, 지금도 붙잡을 난간이 없어
사람이 굴러 떨어지고, 굴러 떨어진 사람이 사람을 벗은
사람으로 새롭게 사람의 형체를 만드는, 그 고래 뱃속을 다녀왔다
(중략)
대체 고래 뱃속은 얼마나 넓고 큰가?
고래 뱃속을 오래전에 기어 나온 줄 알았는데
아직도 고래 뱃속이라니!
Q. 이후의 계획과 꿈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이사를 준비 중입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생활비가 적게 드는 남해의 따뜻한 지방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시 작업에 집중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이번 시집 출간 이후 새로운 시를 쓰기 위한 구상 과정에 있습니다. 산문집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꿈이야 늘 똑 같습니다. 지금보다 더 좋은(새로운) 시를 쓰는 것입니다. 예술가의 본질은 '자기 갱신'입니다. 자신이 늙었다고 생각하면 시도 늙습니다.
이제 갑시다. 이런 저런 얘기보다 시 한편 싣는 게 더 낫습니다. 일어납시다.
다시 시 작업하러 떠나는 시인 ⓒ최근모
<몰아의 새> (일부)
김신용
(중략)
그것이 비록 번민일지라도 고통일지라도, 그 목표물을 향해, 그렇게 일말의 주저도 없이 투신하는, 그 몰아의 순간이......, 새라고 상상한 날 있었다 마치 전율이듯 전신에서 물방울을 튕기며, 살아, 퍼덕이는 물고기를 물고 수면 위로 솟구쳐 오르는
그 빛나는 순간이.....
시인의 손 ⓒ최근모
노동으로 단련된 시인의 두툼한 손이 눈에 들어왔다. 그 손에 펜이 쥐어져 있다. 그것은 지게였다. 그는 계속 시를 쓸 것이다. 지게꾼이 짐을 나르듯 사회의 어둠을 계속 세상에 지어 나를 것이다.
<환상통(幻想痛)> (일부)
김신용
(중략)
한때,
지게는 내 등에 접골된
뼈였다
목질(木質)의 단단한 이질감으로, 내 몸의 일부가 된
등뼈.
2019 [인문쟁이 5기]
반갑습니다. 가치있는 이야기를 나누는 최작가입니다. 영화일을 하고 있습니다. 책과 전시를 좋아합니다.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는 스토리를 채굴하는 성실한 광부가 되겠습니다.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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