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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을 때리고 치며 살아가는 이 남자

인문쟁이 이종현

2019-07-23


아침 해가 하루를 재촉하는 하지(夏至) 무렵. 최영기(62세) 씨는 일년 내내 어김 없이 새벽 5시에 눈을 뜬다. 자리를 박차고 논으로 발길을 옮긴다. 모내기가 끝난 이맘때는 기온이 상승하면서 잡초 생육도 빨라진다. 때문에 논물 관리가 중요하다. 최영기 씨의 손길은 더욱 분주해진다. 


서둘러 논의 물꼬를 조절하고 옥수수와 메밀밭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강원도 홍천군 북방면 생태공원길 산자락에 있는 그의 집으로 들어선다. 시계바늘은 언제나 그렇듯 정확하게 오전 8시를 가리키고 있다. 


인터뷰 중 미소를 짓는 최영기 씨

▲ 미소를 짓고 있는 최영기 씨 ⓒ이종현


그의 집 옆에 들어선 생태공원 관리인으로 17년을 근무하다 작년에 정년퇴직을 했다. 하지만 그 기간 동안에도 새벽에 일어나 농사일을 놓지 않았던 그였다. 


30대 이후부터 지금까지 많은 땀을 흘린 끝에 논 30여 마지기와 2,000평의 밭을 마련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경작지를 일구며 농사꾼으로 살아오고 있는 최영기 씨. 간난고초 젊은 시절을 뒤로하고, 이제는 바쁜 일상 속에서도 삶의 여유를 갖는 법을 알게 된 나이. 이렇게 그의 마음속에 여유가 충만히 깃들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여느 사람들과 다른 삶의 터널을 뚫고 나왔기 때문이다. 


농부로 살아온 그가 논과 밭을 오가며 함께 하는 것이 하나 있다. 공(球)을 때리고 치는 일. 들녘이 아닌 경기장에서 어엿한 선수로 공을 다룬다. 장애인 좌식배구 선수로, 또한 파크골프와 게이트볼 선수로 실력을 뽐내고 있는 것이다. 대회 MVP를 수상할 만큼 실력자다. 이때만큼은 농기구가 아닌 공을 다루는 일에 푹 빠진다. 


죄식 배구 경기 중인 최영기 씨

▲ 좌식배구 경기 중인 최영기 씨 ⓒ이종현

 

그는 장애인 좌식배구 선수로서 10년째 전국을 누비고 있다. 그의 포지션은 수비수 중에서도 가장 뒤쪽을 방어하는 리베로다. 간혹 공격에도 적극 가담한다. 배구하는 그의 모습은 굴곡진 인생을 단단히 방어해온 자신의 삶의 궤적과 닮았다. 강한 스파이크를 때릴 때 그에게서 무언가 반짝 아름다운 것이 빛난다. 이순(耳順)의 나이에 공을 때리고 치며 살아가는 이 남자.


최영기 씨가 받은 상패 MVP 2017년 강원도 어울림좌식배구대회 2017년 11월 3일 경기도장애인배구협회 회장 복희삼

▲ 최영기 씨가 받은 MVP 상패 ⓒ이종현

 

농부로 그리고 어엿한 선수로 살아가는 최영기 씨. 사실 그는 어린 시절 평범하지 않은 성장기를 거쳤다. 그때의 흔적을 지금까지 몸에 지니며 살고 있다. 다섯 살 무렵 뚜렷한 이유를 모른 채 심한 열병을 앓았다. 강원도 산골에서 부모님은 남의 집 더부살이를 했다. 그는 10살까지 누워 생활해야 했다. 제대로 된 치료는 물론 학령도 놓쳐 지금까지 글을 모른다. 후에 일어서 걸을 수 있었지만 성장이 멈춰버린 키와 올곧지 않은 허리를 갖게 됐다.


최영기 씨가 그동안 받은 메달들 15개

▲ 그동안 경기에서 받은 메달들 ⓒ이종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장애를 안고 살기 때문일까. 외모에 대한 관심은 오래전부터 적은 편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그 역시 유년시절에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받아들여만 했다. 하지만 성인이 된 뒤로 그는 강한 의지를 바탕으로 삶을 성실히 가꾸기 시작한 것이다. 시골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비록 다른 사람들과 육체적 능력이 다르지만,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다. 


글을 읽을 수 없어 28번을 응시한 끝에 손에 쥔 운전면허. 관광버스와 승합차 운전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가기도 했다. 한때는 도시로 나가 공장노동자 생활을 했다. 온갖 굳은 일도 마다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현실. 그래도 좌절하지 않았다는 최영기 씨. 


최영기 씨 자택 풍경 노란색 벽이 화사하다

▲ 최영기 씨가 살고 있는 집 ⓒ이종현

 

태어난 곳으로 돌아온 그는 누구보다 더 열심히 일을 했다. 땅 한 평 가진 것 없이 시작한 시골에서의 농사일. 메마르고 거친 땅에 물과 거름을 주는 것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성실한 땀방울을 더하며 한 두 평 씩 마련한 논과 밭이었다. 어린 시절 자신에게 주어진 삶 앞에 잠시 흔들렸던 그가 어엿한 농부로 거뜬하게 일어선 것이다. 


농사꾼으로 그리고 선수로 활동하면서 마을의 새마을 지도자로 수년간 일을 하기도 했다. 바지런한 성격과 함께 그는 손재주가 뛰어나다. 농사일에 사용하는 대형 농기구를 제외하고 작은 도구들은 대부분 만들어 쓰고 있다. 벌통 20여 개를 손수 제작해 몇 년째 토종벌을 치고 있다. 


최영기 씨가 만든 벌통

▲ 최영기 씨가 손수 만든 토종벌통 ⓒ이종현

 

이처럼 하루 25시의 삶을 살고 있지만 빠뜨리지 않는 것이 또 하나 있다. 다정다감한 남편으로 아내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일이다. 일이 바쁘지만 아내를 먼저 챙겨주고 작은 선물도 잊지 않은 최영기 씨. 그의 곁을 지키는 아내와 외지에서 직장생활 중인 두 딸은 그가 최고의 남편, 그리고 멋진 아버지라며 엄지를 치켜세운다.  

 

바쁜 일상을 스스로 제어하면서 자신의 길을 오롯하게 걸어가는 최영기 씨. 암울한 드라마의 한 장면 같은 삶을 헤쳐 나온 그는 또 하나의 꿈을 갖고 있다. 가족과 함께 여행을 떠나는 일이다. 그는 그동안 자신과 가족을 지켜내기 위해 억척스럽게 살아왔다. 세상을 향해 멋진 한방을 날리며 살고 있지만 가족에게는 항상 미안하다. 


우승 후 동료들과 찍은 기념 사진 2014년 강원도 어울림 좌식배구대회 장애는 생각입니다. 체육은 생활입니다. 우승 300,000

우승 후 동료선수와 기념 촬영 ⓒ이종현

 

이순(耳順)의 나이에 농사꾼으로, 그리고 운동선수로 공을 때리고 치며 살아가는 이 남자. 그의 환한 웃음이 온 누리에 가득하기를 바란다. 용기를 잃지 않았던 그의 성실한 삶의 태도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준다.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이 그리고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간 이들의 삶은 언제나 울림이 크다. 최영기 씨, 그가 우리 곁에서 아름다운 삶과 도전을 펼치고 있기에.

 

 

 

○ 사진 촬영 - ⓒ이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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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권 이종현
인문쟁이 이종현

2019 [인문쟁이 5기]


문학에 관심있는 직장인으로 글 쓰기에 취미. 장르를 떠나 문화예술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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