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주 시인(1945-1994)은 해남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유신과 독재에 항거하다 남민전 사건으로 9년 3개월간 투옥되었고 출소 후 췌장암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다. 광주와 전남지역에는 김남주 시인을 기념하는 공간이 여럿 있다. 김남주기념홀에서 시작하여 시인을 기억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문화재 속의 김남주기념홀
지난 5월 3일 시인을 기리는 ‘김남주기념홀’이 그의 모교인 전남대학교 인문대학 1호관에 개관했다. 인문대학 1호관은 1955년 전남대학교에 가장 먼저 지어진 건물로 대한민국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건물은 몸체랄 수 있는 3층 본채와 별채처럼 동서 양쪽에 붙은 대강의실로 구성되었다. 건물 외양뿐만 아니라 내부도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그곳에서 시간은 과거로 거슬러간다.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인문대학 1호관. 맨 왼쪽이 김남주 기념홀 ⓒ김지원
인문대 건물 양쪽 날개 중 서쪽 별채가 김남주기념홀이다. 소박하면서도 고풍스러운 붉은 벽돌 건물로 들어서면 시인이 미소로 방문객을 맞는다. 입구 양쪽에 김남주 시인을 소개하고 기념홀을 건립하는 취지, 도움을 준 이들을 알리는 글이 있다. 밖은 후텁지근한 대낮인데 복도는 서늘하고 어둑해 오래된 건물의 묵직함이 느껴진다. 기념홀 출입문 오른쪽에서 시인을 추모하는 미디어아트 ‘다시 태어나는 빛’이라는 영상이 상영되며 복도를 밝히고 있다.
2019년은 김남주 시인이 타계한지 25년이 되는 해이다. 시인이 살았던 시대는 우리들에게 먼 과거지사가 되었지만,
시인의 정신과 삶의 태도, 그리고 문화적 유산은 우리가 길이길이 보존할 귀중한 자산으로 남아있다.
이에 시인의 생전에 가까이 지낸 모든 분들과 그 친구들, 시인을 기리고자 하는 모든 분들의 뜻을 모아
전남대학교 인문대학에 김남주기념홀을 건립하여 시인의 고귀한 뜻을 기리고자 한다.
_ 김남주기념홀 건립취지문 중에서
▲김남주기념홀 입구 복도, 출입문 옆 부식현판 ⓒ김지원
시인의 삶처럼 소박한 기념공간
기념홀은 다목적 기념강의실과 복층의 기념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1층 벽에는 시인의 연보가 있고 강의실 후면 벽 전체에 시 ‘조국은 하나다’가 새겨졌다. 다목적 강의실에서는 시민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문학 강의가 진행된다. 내부의 바닥과 벽과 천장은 처음 지어졌을 때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있다. 이 공간은 오래전부터 학문을 배우고 익혔을 인문학도들의 한숨과 탄성을 묵묵히 들어주고 그들의 꿈과 좌절을 담아내고 풀어냈을 것이다. 시인도 한 때 이곳에서 영문학 강의를 들었을 거라 생각하니 적막한 가운데 문득 치열한 열기가 느껴진다.
▲1층 다목적 기념강의실. 좌측 위쪽이 기념공간 ⓒ김지원
▲세월을 짐작케하는 건물 내부의 바닥과 벽, 천장의 모습 ⓒ김지원
좁다란 나무계단을 올라 1층 안의 2층으로 오르면 마치 비밀공간처럼 기념공간이 눈앞에 나타난다. 작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오밀조밀하게 구성해놓았다. 시인의 육성시를 감상하고 가수 안치환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오디오와 헤드셋이 있다. 책장에는 시집, 시선집, 산문집 등 시인의 저작과 감옥에서 검열 받고 허가 받아 읽은 책들, 추모헌정시집, 평전과 비평서, 유고집이 꽂혀있다. 감옥에서 읽었던 파블로 네루다 시집과 검열 서류가 눈에 띈다.
▲2층 기념공간. 시인의 육성을 들을 수 있는 오디오와 책장. 오른쪽에 보이는 1층 강의실 ⓒ김지원
▲2층 기념공간. 시인이 남긴 시와 산문, 동료의 글이 벽에 새겨졌다. ⓒ김지원
써야만 살아갈 수 있는 시인의 숙명
‘시인’이라는 명사 앞에 어떤 수식어가 오든 시인의 정체성은 무언가를 ‘노래’ 하고 ‘쓰는 사람’이다. 그러나 시인 김남주는 9년 3개월 동안 영어의 몸이었고 감옥에서는 집필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는 마시고 난 우유곽 안쪽의 은박지를 뜯어서 몰래 감추었다가 칫솔을 날카롭게 갈아 시를 쓰고, ‘뺑끼통’의 흐늘흐늘한 화장지에 시를 썼다. 행여 찢어질 새라 조심조심 화장지에 시를 쓰는, 입을 꾹 다문 채 힘주어 은박지에 시를 눌러쓰는 시인의 웅크린 뒷모습이 그려진다. 그의 시가 보는 이의 마음에 한 글자 한 글자 아프게 새겨진다. 김남주 시인이 남긴 470여 편의 시 가운데 감옥에서 쓴 것이 300여 편이다. 이렇게 어렵사리 쓴 시는 면회 온 사람들을 통해 밖으로 나와서 『나의 칼 나의 피』 『조국은 하나다』가 출간되었다. 그래서 그를 ‘옥중시인’이라 부른다.
▲육필원고, 화장지에 쓴 시, 은박지에 쓴 시 ⓒ김지원
▲1층 후면 벽에 새겨진 시 ‘조국은 하나다’ ⓒ김지원
들어가기 전과는 뭔가 달라진 마음으로 기념홀을 나온다. 서늘하고 어둑한 복도를 학생들이 바쁘게 오간다. 기말고사 시험기간이란다. 그중 한 학생에게 김남주 시인과 기념홀에 대해 아느냐고 물었더니 기념홀에 대해서만 안다고 대답한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이라는 노래를 작사한 시인이라고 말해주자 “아~!”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대학교 4학년 때 전남대학교에서 시인의 노제가 치뤄졌다. 당시 나뿐 아닌 많은 학생과 시민들이 참석했었다. 지금과는 사뭇 다른 때였다. 생전의 시인은 그의 시에서 ‘세상은 달라진 게 없’다고 했다. 지금은 반은 맞고 반은 아닌 것 같다. 크게 보면 세상은 한 세대 전과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함께’ 걸어온 이들이 있어 많이 달라졌다. 여전히 다른 많은 ‘김남주’가 더 나은 세상을 꿈꾸고 만들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마친 학생이 환한 빛 속으로 걸어나간다.
▲기념홀을 나오며 ⓒ김지원
중외공원에 있는 김남주 ‘노래’ 시비
전남대학교 인근 중외공원 비엔날레 기념동산에는 김남주 시비가 있다. 비엔날레 전시관에서 시립미술관으로 가다 보면 왼편에, 시민들이 오가는 산책로 오르막에 세워져있다. 단단한 바위에, 시대의 녹두꽃이 되고, 파랑새가 되고, 들불이 되자고 했던 시인의 바람을 담은 ‘노래’가 새겨졌다.
이 두메는 날라와 더불어 꽃이 되자하네
꽃이 피어 눈물로 고여 발등에 갈라진
녹두꽃이 되자하네
_ 김남주 <노래> 중에서
▲광주 용봉동 중외공원 안에 있는 시비 ⓒ김지원
해남 김남주 생가와 11월에 열리는 김남주 문학제
시인의 생가는 해남군 삼산면 봉학리에 있다. 김남주기념사업회에서는 생가를 복원하여 시민들에게 개방하고 있으며 바로 곁에 기념공원을 조성해놓았다. 또 기념사업회는 매년 11월 이곳에서 시인을 기념하는 문학제를 개최한다.
"삶과 문학이 일치한 혁명가적 삶을 살았던 시인의 정신을 기리고 선양하기 위해
매년 해남에서 김남주문학제를 열고 있습니다.
올해로 19회 째를 맞는 김남주문학제는 11월 2일, 3일에 열 예정이며
‘김남주 삶과 문학’에 대한 초청강연, 김남주의 시노래 공연인 ‘김남주포엠콘서트’,
김남주의 육필시와 사진 전시회 등을 가질 예정입니다."
-김경윤(김남주기념사업회 회장)
망월동에 있는 김남주 묘소
시인은 감옥에서 얻은 췌장암으로 타계하여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 묻혔다. 5·18국립묘지를 참배하는 이들은 그가 남긴 뜻을 헤아리고자 먼 걸음을 마다않고 그의 묘소에 들른다. ‘민족시인 김남주’라고 새겨진 묘비 뒷면에는 묘비명이 적혔다. 그곳에 묻힌 이의 삶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어 어떠한 수사 없이도 시인을 이해할 수 있다.
‘온몸을 불태워 나라와 민족을 사랑한 시인의 영혼, 여기에 잠들다’
_ 김남주 시인 묘비명
▲오월문학제 기간에 김남주 묘소를 참배하는 문학인들 ⓒ김지원
자신의 시대를 온몸으로 진실하게 살다간 사람
광주와 전남뿐만 아니라 김남주 시인을 기억하는 장소는 전국 곳곳에 있다. 그의 무엇이 우리들로 하여금 그를 기억하는 공간을 만들고 찾게 하는지 생각해본다. 아마도 그가 온몸으로 시대를 살아갔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흔적들을 짚어보며 나 자신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졌다. 나는 오늘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너무 어렵다. 어려운 질문에 선뜻 답하지 못하고, 내 깜냥으로 다만 진실하게 살아가야겠다고 소심하게 다짐해본다.
오늘, 김남주 시인을 만나러 갑니다
김남주기념홀
인문쟁이 김지원
2019-07-16
찬 서리
나무 끝을 나는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이여
_ 김남주 <옛 마을을 지나며>
김남주 시인(1945-1994)은 해남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유신과 독재에 항거하다 남민전 사건으로 9년 3개월간 투옥되었고 출소 후 췌장암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다. 광주와 전남지역에는 김남주 시인을 기념하는 공간이 여럿 있다. 김남주기념홀에서 시작하여 시인을 기억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문화재 속의 김남주기념홀
지난 5월 3일 시인을 기리는 ‘김남주기념홀’이 그의 모교인 전남대학교 인문대학 1호관에 개관했다. 인문대학 1호관은 1955년 전남대학교에 가장 먼저 지어진 건물로 대한민국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건물은 몸체랄 수 있는 3층 본채와 별채처럼 동서 양쪽에 붙은 대강의실로 구성되었다. 건물 외양뿐만 아니라 내부도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그곳에서 시간은 과거로 거슬러간다.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인문대학 1호관. 맨 왼쪽이 김남주 기념홀 ⓒ김지원
인문대 건물 양쪽 날개 중 서쪽 별채가 김남주기념홀이다. 소박하면서도 고풍스러운 붉은 벽돌 건물로 들어서면 시인이 미소로 방문객을 맞는다. 입구 양쪽에 김남주 시인을 소개하고 기념홀을 건립하는 취지, 도움을 준 이들을 알리는 글이 있다. 밖은 후텁지근한 대낮인데 복도는 서늘하고 어둑해 오래된 건물의 묵직함이 느껴진다. 기념홀 출입문 오른쪽에서 시인을 추모하는 미디어아트 ‘다시 태어나는 빛’이라는 영상이 상영되며 복도를 밝히고 있다.
2019년은 김남주 시인이 타계한지 25년이 되는 해이다. 시인이 살았던 시대는 우리들에게 먼 과거지사가 되었지만,
시인의 정신과 삶의 태도, 그리고 문화적 유산은 우리가 길이길이 보존할 귀중한 자산으로 남아있다.
이에 시인의 생전에 가까이 지낸 모든 분들과 그 친구들, 시인을 기리고자 하는 모든 분들의 뜻을 모아
전남대학교 인문대학에 김남주기념홀을 건립하여 시인의 고귀한 뜻을 기리고자 한다.
_ 김남주기념홀 건립취지문 중에서
▲김남주기념홀 입구 복도, 출입문 옆 부식현판 ⓒ김지원
시인의 삶처럼 소박한 기념공간
기념홀은 다목적 기념강의실과 복층의 기념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1층 벽에는 시인의 연보가 있고 강의실 후면 벽 전체에 시 ‘조국은 하나다’가 새겨졌다. 다목적 강의실에서는 시민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문학 강의가 진행된다. 내부의 바닥과 벽과 천장은 처음 지어졌을 때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있다. 이 공간은 오래전부터 학문을 배우고 익혔을 인문학도들의 한숨과 탄성을 묵묵히 들어주고 그들의 꿈과 좌절을 담아내고 풀어냈을 것이다. 시인도 한 때 이곳에서 영문학 강의를 들었을 거라 생각하니 적막한 가운데 문득 치열한 열기가 느껴진다.
▲1층 다목적 기념강의실. 좌측 위쪽이 기념공간 ⓒ김지원
▲세월을 짐작케하는 건물 내부의 바닥과 벽, 천장의 모습 ⓒ김지원
좁다란 나무계단을 올라 1층 안의 2층으로 오르면 마치 비밀공간처럼 기념공간이 눈앞에 나타난다. 작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오밀조밀하게 구성해놓았다. 시인의 육성시를 감상하고 가수 안치환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오디오와 헤드셋이 있다. 책장에는 시집, 시선집, 산문집 등 시인의 저작과 감옥에서 검열 받고 허가 받아 읽은 책들, 추모헌정시집, 평전과 비평서, 유고집이 꽂혀있다. 감옥에서 읽었던 파블로 네루다 시집과 검열 서류가 눈에 띈다.
▲2층 기념공간. 시인의 육성을 들을 수 있는 오디오와 책장. 오른쪽에 보이는 1층 강의실 ⓒ김지원
▲2층 기념공간. 시인이 남긴 시와 산문, 동료의 글이 벽에 새겨졌다. ⓒ김지원
써야만 살아갈 수 있는 시인의 숙명
‘시인’이라는 명사 앞에 어떤 수식어가 오든 시인의 정체성은 무언가를 ‘노래’ 하고 ‘쓰는 사람’이다. 그러나 시인 김남주는 9년 3개월 동안 영어의 몸이었고 감옥에서는 집필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는 마시고 난 우유곽 안쪽의 은박지를 뜯어서 몰래 감추었다가 칫솔을 날카롭게 갈아 시를 쓰고, ‘뺑끼통’의 흐늘흐늘한 화장지에 시를 썼다. 행여 찢어질 새라 조심조심 화장지에 시를 쓰는, 입을 꾹 다문 채 힘주어 은박지에 시를 눌러쓰는 시인의 웅크린 뒷모습이 그려진다. 그의 시가 보는 이의 마음에 한 글자 한 글자 아프게 새겨진다. 김남주 시인이 남긴 470여 편의 시 가운데 감옥에서 쓴 것이 300여 편이다. 이렇게 어렵사리 쓴 시는 면회 온 사람들을 통해 밖으로 나와서 『나의 칼 나의 피』 『조국은 하나다』가 출간되었다. 그래서 그를 ‘옥중시인’이라 부른다.
▲육필원고, 화장지에 쓴 시, 은박지에 쓴 시 ⓒ김지원
▲1층 후면 벽에 새겨진 시 ‘조국은 하나다’ ⓒ김지원
들어가기 전과는 뭔가 달라진 마음으로 기념홀을 나온다. 서늘하고 어둑한 복도를 학생들이 바쁘게 오간다. 기말고사 시험기간이란다. 그중 한 학생에게 김남주 시인과 기념홀에 대해 아느냐고 물었더니 기념홀에 대해서만 안다고 대답한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이라는 노래를 작사한 시인이라고 말해주자 “아~!”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대학교 4학년 때 전남대학교에서 시인의 노제가 치뤄졌다. 당시 나뿐 아닌 많은 학생과 시민들이 참석했었다. 지금과는 사뭇 다른 때였다. 생전의 시인은 그의 시에서 ‘세상은 달라진 게 없’다고 했다. 지금은 반은 맞고 반은 아닌 것 같다. 크게 보면 세상은 한 세대 전과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함께’ 걸어온 이들이 있어 많이 달라졌다. 여전히 다른 많은 ‘김남주’가 더 나은 세상을 꿈꾸고 만들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마친 학생이 환한 빛 속으로 걸어나간다.
▲기념홀을 나오며 ⓒ김지원
중외공원에 있는 김남주 ‘노래’ 시비
전남대학교 인근 중외공원 비엔날레 기념동산에는 김남주 시비가 있다. 비엔날레 전시관에서 시립미술관으로 가다 보면 왼편에, 시민들이 오가는 산책로 오르막에 세워져있다. 단단한 바위에, 시대의 녹두꽃이 되고, 파랑새가 되고, 들불이 되자고 했던 시인의 바람을 담은 ‘노래’가 새겨졌다.
이 두메는 날라와 더불어 꽃이 되자하네
꽃이 피어 눈물로 고여 발등에 갈라진
녹두꽃이 되자하네
_ 김남주 <노래> 중에서
▲광주 용봉동 중외공원 안에 있는 시비 ⓒ김지원
해남 김남주 생가와 11월에 열리는 김남주 문학제
시인의 생가는 해남군 삼산면 봉학리에 있다. 김남주기념사업회에서는 생가를 복원하여 시민들에게 개방하고 있으며 바로 곁에 기념공원을 조성해놓았다. 또 기념사업회는 매년 11월 이곳에서 시인을 기념하는 문학제를 개최한다.
"삶과 문학이 일치한 혁명가적 삶을 살았던 시인의 정신을 기리고 선양하기 위해
매년 해남에서 김남주문학제를 열고 있습니다.
올해로 19회 째를 맞는 김남주문학제는 11월 2일, 3일에 열 예정이며
‘김남주 삶과 문학’에 대한 초청강연, 김남주의 시노래 공연인 ‘김남주포엠콘서트’,
김남주의 육필시와 사진 전시회 등을 가질 예정입니다."
-김경윤(김남주기념사업회 회장)
망월동에 있는 김남주 묘소
시인은 감옥에서 얻은 췌장암으로 타계하여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 묻혔다. 5·18국립묘지를 참배하는 이들은 그가 남긴 뜻을 헤아리고자 먼 걸음을 마다않고 그의 묘소에 들른다. ‘민족시인 김남주’라고 새겨진 묘비 뒷면에는 묘비명이 적혔다. 그곳에 묻힌 이의 삶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어 어떠한 수사 없이도 시인을 이해할 수 있다.
‘온몸을 불태워 나라와 민족을 사랑한 시인의 영혼, 여기에 잠들다’
_ 김남주 시인 묘비명
▲오월문학제 기간에 김남주 묘소를 참배하는 문학인들 ⓒ김지원
자신의 시대를 온몸으로 진실하게 살다간 사람
광주와 전남뿐만 아니라 김남주 시인을 기억하는 장소는 전국 곳곳에 있다. 그의 무엇이 우리들로 하여금 그를 기억하는 공간을 만들고 찾게 하는지 생각해본다. 아마도 그가 온몸으로 시대를 살아갔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흔적들을 짚어보며 나 자신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졌다. 나는 오늘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너무 어렵다. 어려운 질문에 선뜻 답하지 못하고, 내 깜냥으로 다만 진실하게 살아가야겠다고 소심하게 다짐해본다.
○ 공간 정보
주소 :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로 77 인문대학1호관 113호 김남주기념홀
전화번호 : 062-530-3108/3114
개관시간 : 월~금 10:00~17:00
○ 관련 링크
홈페이지 : https://blog.naver.com/kimnamjuhall
○ 사진 촬영_김지원
장소 정보
2019 [인문쟁이 5기]
쓰는 사람이다. 소설의 언어로 세상에 말을 건네고, 밤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살고 싶은 마음과 길가 돌멩이처럼 살고픈 바람 사이에서 매일을 기꺼이 산다.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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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속 심리학 - 정체성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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