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비나 미술관에서 <나나랜드-나답게 산다>를 관람했다. 사비나 미술관은 1996년 3월 서울시 종로구에서 개관했다. 2018년 11월 은평구로 이전하며 은평구 안 최초의 미술관이 되었다. 삼각형 모양인 미술관은 독특한 기하학적 건물 형태를 지니면서도, 주변의 푸른 자연과 멋진 조화를 이룬다.
전시장 ‘나나랜드’에 들어서면, 방문객은 나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나나랜더’가 된다. 나나랜더는 나나랜드에서 ‘자아 정체성(ego identity)’을 찾아가며 진정한 나를 발견하는 여정을 거친다. 자아 정체성이란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삶을 대할 것인지에 대한 신념을 말한다.
성별, 국적, 이름으로 부여되는 정체성
자신에 관해 설명해 보라고 하면, 사람들은 무엇을 먼저 이야기할까? 먼저 생김새나 성격, 능력 등이 떠오른다. 이런 특성은 자기 내면에서 우러나는 순수한 개인 특질이라고 여기기 쉽지만, 실제로는 주위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특히 능력이나 가치관은 다양한 경험과 학습으로 형성된다. 성별, 민족이나 살고 있는 나라 등의 조건에 따라, 생각과 행동이 규정되기 마련이다. ‘나는 여자니까’, 또는 ‘나는 한국인이니까’에 이어지는 으레 ‘~해야 한다’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전시장에는 이러한 고정관념에 의문을 던지는 작품들이 있다. 그 중 몇 점을 만나, 나의 정체성은 과연 무엇인지 한번 돌아보자.
‘여자=핑크’, ‘남자=블루’식의, 특정 색으로 남녀를 구분하는 고정관념은 이미 희미해지는 추세다. 윤정미는 <핑크&블루 프로젝트> 시리즈를 통해, 남녀의 색에 대한 선호가 생각만큼 고정적이지 않음을 보여준다. 작가는 2006, 2009, 2015년까지 세 번에 걸쳐 위 사진 속 주인공인 마이아를 찾았다. 어린 마이아와 성장한 마이아는 당연히 달랐고, 그녀의 물건 또한 달라졌다. 어렸을 적 마이아를 포착한 왼쪽 사진에서는 분홍색 물건이 대부분이지만, 좀 더 성장한 가운데 사진에서는 분홍색과 파란색이 반반씩 있고, 가장 최근인 오른쪽 사진에는 파란색과 초록색이 더 많다. 특정한 고정관념으로 성별을 구분 짓는 시도는 틀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고정화된 남녀 인식에서 벗어나 사람을 중립적으로 대하는 ‘젠더 뉴트럴(gender neutral)’과도 연결된다.
안띠 라이티넨(Antti Laitinen)은 자신만의 섬을 만들어 여행했다. 발트해를 건너고 리버풀에서 런던까지 노를 저어 갔다. 작가는 1인 국가를 세워, 국적으로 경계를 긋는 식의 제도적 강제에 문제제기를 하며 국적이란 꼬리표를 과감히 떼어내 버린다. 내가 어느 나라의 국민이라는 것이 나를 진정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적어도 어느 한 국가의 구성원이다. 그의 작품은 국적이 개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구혜영(통쫘)의 <작명쇼>에서는 이름이 형성하는 정체성에 관해 질문한다. 공간이 독특하다. 마치 TV로 방송되는 로또 추첨 프로그램 같다. 하지만 이 <작명쇼>에서는 로또 추첨 기계에 숫자가 아니라, 낱자가 쓰인 공이 들어있다. 참여 설명서에서는 무작위로 나온 낱자 공 6개로 새 이름을 만들어, 일주일 동안 써 보도록 추천하고 있다. 이름은 나를 표현하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이름이 진정한 내 모습을 얼마나 잘 드러내고 있을까? 태어나 타인에 의해 이름이 붙여지는 현실을 생각하면, 이름은 분명 내가 선택한 정체성은 아닌 것이다. 어쩌면 이름은 한 인간의 정체성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 아닐까? 구혜영은 이름을 통해 인간을 규정하는 사회적 방식, 허구와 모순을 유쾌한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자화상, 정체성 탐색의 가장 좋은 도구
오랫동안 자아를 성찰하고 탐구하는 데 자화상은 좋은 도구였다. 화가 빈센트 반 고흐와 폴 고갱의 자화상을 감상하면서, 그들이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 짐작해 보자.
두 그림은 친교를 목적으로 고흐와 고갱이 서로 주고받은 자화상이다. 고갱에게 헌정한 왼쪽 고흐의 자화상에서, 고흐는 마치 수도승처럼 파리한 모습을 하고 있다. 반면에, 오른쪽 고흐에게 헌정한 고갱의 자화상에서, 고갱은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의 주인공 장발장에 스스로를 투영해 숭고한 이미지를 띠고 있다. 두 사람 당대에는 인정받지 못한 가난한 화가였다. 그러나 자화상을 통해 엿볼 수 있듯이, 역경을 헤쳐 나가고 있는 방식이 다르다. 고흐는 고통을 끌어안고 고행의 길을 묵묵히 가고 있고, 고갱은 세속적인 고뇌를 넘어 투박하더라도 맞서 나가려는 의지를 드러낸다.
관람객 참여 공간으로 천경우의 「Portrait Made by Hand(손으로 쓴 자화상)」도 함께 마련되었다. 관객은 거울을 보며 자신의 얼굴을 글로 묘사해 보고, 그 결과를 벽에 쌓아간다. 우리도 자신의 얼굴을 그려보거나 글로 묘사해 보면 어떨까? 오래전부터 화가들이 자화상을 그려왔듯이, 세상에 유일무이한 내 얼굴의 생김새를 여기저기 조목조목 들여다볼 때, 미처 알지 못했던 새로운 자아를 발견할 수도 있다. 그 찾아낸 특성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나의 일부이자 내면의 표출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가족과 친구, 타인의 영향을 받고, 그로 인해 나의 정체성도 변화하고 다듬어진다. 자아 정체성이 결코 혼자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참된 자기 모습을 찾는 데 중요한 것은,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 규범보다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는가다. 때로는 사람들의 비판을 신경 쓰고, 때로는 맹목적으로 공동체의 잣대를 따라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존중받을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내가 되었을 때, 진정한 행복은 그제야 고개를 내밀지 않을까.
미술관 속 심리학 - 정체성 나들이
사비나 미술관 <나나랜드- 나답게 산다>
인문쟁이 김민정
2019-07-16
사비나 미술관에서 <나나랜드-나답게 산다>를 관람했다. 사비나 미술관은 1996년 3월 서울시 종로구에서 개관했다. 2018년 11월 은평구로 이전하며 은평구 안 최초의 미술관이 되었다. 삼각형 모양인 미술관은 독특한 기하학적 건물 형태를 지니면서도, 주변의 푸른 자연과 멋진 조화를 이룬다.
▲ 사비나 미술관 / <나나랜드- 나답게 산다(Na Na Land: It’s My World)> 전시장 입구 ©김민정
전시장 ‘나나랜드’에 들어서면, 방문객은 나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나나랜더’가 된다. 나나랜더는 나나랜드에서 ‘자아 정체성(ego identity)’을 찾아가며 진정한 나를 발견하는 여정을 거친다. 자아 정체성이란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삶을 대할 것인지에 대한 신념을 말한다.
성별, 국적, 이름으로 부여되는 정체성
자신에 관해 설명해 보라고 하면, 사람들은 무엇을 먼저 이야기할까? 먼저 생김새나 성격, 능력 등이 떠오른다. 이런 특성은 자기 내면에서 우러나는 순수한 개인 특질이라고 여기기 쉽지만, 실제로는 주위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특히 능력이나 가치관은 다양한 경험과 학습으로 형성된다. 성별, 민족이나 살고 있는 나라 등의 조건에 따라, 생각과 행동이 규정되기 마련이다. ‘나는 여자니까’, 또는 ‘나는 한국인이니까’에 이어지는 으레 ‘~해야 한다’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전시장에는 이러한 고정관념에 의문을 던지는 작품들이 있다. 그 중 몇 점을 만나, 나의 정체성은 과연 무엇인지 한번 돌아보자.
▲ 윤정미 <핑크&블루 프로젝트> 시리즈 중 ‘뉴욕에 사는 마이아와 마이아의 물건들’(2006, 2009, 2015) ©김민정
‘여자=핑크’, ‘남자=블루’식의, 특정 색으로 남녀를 구분하는 고정관념은 이미 희미해지는 추세다. 윤정미는 <핑크&블루 프로젝트> 시리즈를 통해, 남녀의 색에 대한 선호가 생각만큼 고정적이지 않음을 보여준다. 작가는 2006, 2009, 2015년까지 세 번에 걸쳐 위 사진 속 주인공인 마이아를 찾았다. 어린 마이아와 성장한 마이아는 당연히 달랐고, 그녀의 물건 또한 달라졌다. 어렸을 적 마이아를 포착한 왼쪽 사진에서는 분홍색 물건이 대부분이지만, 좀 더 성장한 가운데 사진에서는 분홍색과 파란색이 반반씩 있고, 가장 최근인 오른쪽 사진에는 파란색과 초록색이 더 많다. 특정한 고정관념으로 성별을 구분 짓는 시도는 틀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고정화된 남녀 인식에서 벗어나 사람을 중립적으로 대하는 ‘젠더 뉴트럴(gender neutral)’과도 연결된다.
▲ 안띠 라이티넨항해)>(2008)> ©김민정
안띠 라이티넨(Antti Laitinen)은 자신만의 섬을 만들어 여행했다. 발트해를 건너고 리버풀에서 런던까지 노를 저어 갔다. 작가는 1인 국가를 세워, 국적으로 경계를 긋는 식의 제도적 강제에 문제제기를 하며 국적이란 꼬리표를 과감히 떼어내 버린다. 내가 어느 나라의 국민이라는 것이 나를 진정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적어도 어느 한 국가의 구성원이다. 그의 작품은 국적이 개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 구혜영(통쫘) <작명쇼>(2019) ©김민정
구혜영(통쫘)의 <작명쇼>에서는 이름이 형성하는 정체성에 관해 질문한다. 공간이 독특하다. 마치 TV로 방송되는 로또 추첨 프로그램 같다. 하지만 이 <작명쇼>에서는 로또 추첨 기계에 숫자가 아니라, 낱자가 쓰인 공이 들어있다. 참여 설명서에서는 무작위로 나온 낱자 공 6개로 새 이름을 만들어, 일주일 동안 써 보도록 추천하고 있다. 이름은 나를 표현하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이름이 진정한 내 모습을 얼마나 잘 드러내고 있을까? 태어나 타인에 의해 이름이 붙여지는 현실을 생각하면, 이름은 분명 내가 선택한 정체성은 아닌 것이다. 어쩌면 이름은 한 인간의 정체성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 아닐까? 구혜영은 이름을 통해 인간을 규정하는 사회적 방식, 허구와 모순을 유쾌한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자화상, 정체성 탐색의 가장 좋은 도구
오랫동안 자아를 성찰하고 탐구하는 데 자화상은 좋은 도구였다. 화가 빈센트 반 고흐와 폴 고갱의 자화상을 감상하면서, 그들이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 짐작해 보자.
▲ 빈센트 반 고흐(1853~1890) <자화상>(1888) / 폴 고갱(1848~1903) <자화상>(1888) ©WikiArt
두 그림은 친교를 목적으로 고흐와 고갱이 서로 주고받은 자화상이다. 고갱에게 헌정한 왼쪽 고흐의 자화상에서, 고흐는 마치 수도승처럼 파리한 모습을 하고 있다. 반면에, 오른쪽 고흐에게 헌정한 고갱의 자화상에서, 고갱은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의 주인공 장발장에 스스로를 투영해 숭고한 이미지를 띠고 있다. 두 사람 당대에는 인정받지 못한 가난한 화가였다. 그러나 자화상을 통해 엿볼 수 있듯이, 역경을 헤쳐 나가고 있는 방식이 다르다. 고흐는 고통을 끌어안고 고행의 길을 묵묵히 가고 있고, 고갱은 세속적인 고뇌를 넘어 투박하더라도 맞서 나가려는 의지를 드러낸다.
전시장의 자화상 작품
▲ 황영자 <몽상가>(2017), <인터뷰>(2012), <나의 아바타>(2014) ©김민정
황영자는 자화상으로 자신의 서로 다른 모습을 표현한다. <몽상가>에서는 무의식 속 자신의 모습을, <인터뷰>에서는 레이디 가가와 같은 가수로 다시 태어나 인터뷰하는 모습을, 그리고 <나의 아바타>에서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과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사람을 그렸다.
▲ 천경우 「Face of Face」(2016)의 일부 ©김민정
관람객 참여 공간으로 천경우의 「 Portrait Made by Hand(손으로 쓴 자화상)」도 함께 마련되었다. 관객은 거울을 보며 자신의 얼굴을 글로 묘사해 보고, 그 결과를 벽에 쌓아간다. 우리도 자신의 얼굴을 그려보거나 글로 묘사해 보면 어떨까? 오래전부터 화가들이 자화상을 그려왔듯이, 세상에 유일무이한 내 얼굴의 생김새를 여기저기 조목조목 들여다볼 때, 미처 알지 못했던 새로운 자아를 발견할 수도 있다. 그 찾아낸 특성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나의 일부이자 내면의 표출이다.
장소 정보
2019 [인문쟁이 5기]
"심리학을 전공한 미술관 도슨트. 미술에 심리학을 접목한 <미술로 보는 심리학>을 강의하고 블로그 <미술 감상 심리학>을 운영하면서, 미술 심리에 관심 있는 분들과 소통하려고 노력 중이다."댓글(0)
한국에서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
인문쟁이 강태호
오늘, 김남주 시인을 만나러 갑니다
인문쟁이 김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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