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의 남인사길에 거의 도착할 즈음 오른쪽으로 낙원상가가 보인다. 그 앞 돌담길을 따라 걸어보자. 3.1운동으로 유명한 탑골공원 정문에 도달한다. 이곳에서 우리는 국보2호인 원각사지십층석탑을 만나게 된다. 탑골 공원 돌담길을 따라 나오면 파고다 극장에 도착한다. 정확히 말해 지금은 뉴파고다 빌딩으로 바뀌어 있다.
기형도 시인의 첫 시집이자 유고시집인 '입속의 검은 잎'에 실린 '노을'이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이다. 89년 봄, 스물아홉 번째 생일을 며칠 앞두고 시인은 자신이 남긴 시처럼 새벽의 한 심야극장에서 세상과 이별을 고한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시집은 젊은이들에게 여전히 인기가 있다. 아마 젊음의 혼돈과 불안이 기형도란 시인 특유의 불안과 허무에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후의 석양빛이 건물 전면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 고시원 간판 위로 페인트칠이 벗겨진 파고다 극장의 윤곽이 보인다. 이젠 극장의 간판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지만 극장 특유의 느낌은 여전히 뿜어내고 있다.
노을처럼 저물어가는 낡은 고시원 건물. 한 젊은 시인은 갔지만 그가 마지막으로 있었던 장소는 남았다. 스크린을 통해 지친 자들에게 몇 시간의 자유를 주던 시네마 천국은 아니다. 그러나 또 다른 자들에게 몇 평의 평화로운 안식처로 남아 있다. 안에 들어가 지친 몸을 뉘일 고시생들은 또 다른 미래의 영화를 꿈꿀 것이다.
80년대 록음악에 심취했던 젊은이들이라면 파고다 극장에 대해 아련한 추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록의 전당이라고 해도 좋았을 이곳은 애초에는 극장이 아니었다. 84년에 록, 헤비메탈 공연장이 생겼고 전인권을 비롯한 김태원, 김종서, 신해철, 이승철... 등 지금 들으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뮤지션들이 이곳을 거쳐 갔다. 음악의 메카가 동시상영관으로 바뀌게 된다. 이곳에서 태권브이와 007 시리즈를 보았던 추억을 가진 이들이 참 많다. 사람은 가고 추억도 가고 남은 것은 그들이 숨 쉬던 장소다.
시인 기형도가 마지막 숨을 거둔 파고다 극장에 대해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인터넷이나 다른 매체를 찾아봐도 쉽게 정보를 찾을 수가 없었다. 사진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건물 주변을 살펴봐도 시인에 대한 안내판조차 없다. 관심을 가지고 지켜주지 않으면 기억 속에서 사라질 것이다.
문단에서는 시인 기형도는 세월이 지날수록, 우리 문학에 더 큰 자리를 잡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굳이 이상, 고흐, 랭보.. 같은 예술가들을 말하지 않더라도 한국 락의 중요한 역사를 품고 있는 이 건물은 하루빨리 최소한의 안내판이나 보호조치가 있어야 한다. 문학의 왕이라는 시와 한국 락의 역사가 함께 깃든 파고다 극장을 산책로의 끝자락으로 정한 것은 많은 젊은이들이 찾아오게 되면 그만큼 알려져 보호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기형도 시인을 찾아서 그곳에 가보기를 추천한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탑골 공원 정문에서 오른쪽으로 보면 경찰지구대가 보인다. 이 지구대 사이로 난 골목길로 들어서면 탑골공원 돌담길이 쭉 이어진 길이 나타난다. 이 길을 따라 15m쯤 걸어 들어오면 이발소들이 보인다. 이 건물 앞으로 가면 파고다 고시원 간판이 보이고 이곳 2층이 (구) 파고다 극장이었다.
시인 기형도를 찾아서
파고다 극장
인문쟁이 최근모
2019-05-16
인사동의 남인사길에 거의 도착할 즈음 오른쪽으로 낙원상가가 보인다. 그 앞 돌담길을 따라 걸어보자. 3.1운동으로 유명한 탑골공원 정문에 도달한다. 이곳에서 우리는 국보2호인 원각사지십층석탑을 만나게 된다. 탑골 공원 돌담길을 따라 나오면 파고다 극장에 도착한다. 정확히 말해 지금은 뉴파고다 빌딩으로 바뀌어 있다.
▲ 낙원상가 ©최근모
▲ 낙원상가 주변 건물 ©최근모
▲ 탑골공원 돌담길 풍경 ©최근모
밤이면 그림자를 빼앗겨 누구나 아득한 혼자였다.
문득 거리를 빠르게 스쳐가는 日常(일상)의 恐怖(공포)
보여다오. 지금까지 무엇을 했는가 살아 있는 그대여
오후 6시 우리들 이마에도 아, 붉은 노을이 떴다.
그러면 우리는 어디로 가지?
아직도 펄펄 살아 있는 우리는 이제 각자 어디로 가지?'
- 기형도의 시 '노을' 중에서 -
기형도 시인의 첫 시집이자 유고시집인 '입속의 검은 잎'에 실린 '노을'이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이다. 89년 봄, 스물아홉 번째 생일을 며칠 앞두고 시인은 자신이 남긴 시처럼 새벽의 한 심야극장에서 세상과 이별을 고한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시집은 젊은이들에게 여전히 인기가 있다. 아마 젊음의 혼돈과 불안이 기형도란 시인 특유의 불안과 허무에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후의 석양빛이 건물 전면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 고시원 간판 위로 페인트칠이 벗겨진 파고다 극장의 윤곽이 보인다. 이젠 극장의 간판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지만 극장 특유의 느낌은 여전히 뿜어내고 있다.
▲ (구)파고다 극장 앞 ©최근모
노을처럼 저물어가는 낡은 고시원 건물. 한 젊은 시인은 갔지만 그가 마지막으로 있었던 장소는 남았다. 스크린을 통해 지친 자들에게 몇 시간의 자유를 주던 시네마 천국은 아니다. 그러나 또 다른 자들에게 몇 평의 평화로운 안식처로 남아 있다. 안에 들어가 지친 몸을 뉘일 고시생들은 또 다른 미래의 영화를 꿈꿀 것이다.
▲ 뉴파고다빌딩 전경 ©최근모
80년대 록음악에 심취했던 젊은이들이라면 파고다 극장에 대해 아련한 추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록의 전당이라고 해도 좋았을 이곳은 애초에는 극장이 아니었다. 84년에 록, 헤비메탈 공연장이 생겼고 전인권을 비롯한 김태원, 김종서, 신해철, 이승철... 등 지금 들으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뮤지션들이 이곳을 거쳐 갔다. 음악의 메카가 동시상영관으로 바뀌게 된다. 이곳에서 태권브이와 007 시리즈를 보았던 추억을 가진 이들이 참 많다. 사람은 가고 추억도 가고 남은 것은 그들이 숨 쉬던 장소다.
▲ 뉴파고다빌딩 전경 ©최근모
시인 기형도가 마지막 숨을 거둔 파고다 극장에 대해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인터넷이나 다른 매체를 찾아봐도 쉽게 정보를 찾을 수가 없었다. 사진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건물 주변을 살펴봐도 시인에 대한 안내판조차 없다. 관심을 가지고 지켜주지 않으면 기억 속에서 사라질 것이다.
▲ 뉴파고다빌딩 전경 ©최근모
문단에서는 시인 기형도는 세월이 지날수록, 우리 문학에 더 큰 자리를 잡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굳이 이상, 고흐, 랭보.. 같은 예술가들을 말하지 않더라도 한국 락의 중요한 역사를 품고 있는 이 건물은 하루빨리 최소한의 안내판이나 보호조치가 있어야 한다. 문학의 왕이라는 시와 한국 락의 역사가 함께 깃든 파고다 극장을 산책로의 끝자락으로 정한 것은 많은 젊은이들이 찾아오게 되면 그만큼 알려져 보호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기형도 시인을 찾아서 그곳에 가보기를 추천한다.
▲ (구)파고다극장 옆 이발관 ©최근모
○ 공간 정보(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탑골 공원 정문에서 오른쪽으로 보면 경찰지구대가 보인다. 이 지구대 사이로 난 골목길로 들어서면 탑골공원 돌담길이 쭉 이어진 길이 나타난다. 이 길을 따라 15m쯤 걸어 들어오면 이발소들이 보인다. 이 건물 앞으로 가면 파고다 고시원 간판이 보이고 이곳 2층이 (구) 파고다 극장이었다.
뉴파고다빌딩 가는길 : http://bitly.kr/R1yePR
○ 사진 촬영_최근모
2019 [인문쟁이 5기]
반갑습니다. 가치있는 이야기를 나누는 최작가입니다. 영화일을 하고 있습니다. 책과 전시를 좋아합니다.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는 스토리를 채굴하는 성실한 광부가 되겠습니다.댓글(0)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시인 기형도를 찾아서'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그림의 본으로 삶의 본이 되다’
인문쟁이 김지원
지하철 1호선, 캠프 보산(CAMP BOSAN)
인문쟁이 김세희
관련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