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필름 카메라 사용자들 사이에 이름난 곳이 있다. 지금까지 못 고치고 돌아 나온 카메라가 없다. 없는 부품은 만들어서라도 끼워주고 애초에 브랜드가 달라 구경(口徑)이 맞지 않는 렌즈라도 어떻게든 맞춰준다. 신통방통 한 이곳은 충무로의 중앙카메라 수리센터. 이 세상 필름 카메라들의 주치의, 김학원 선생이 거기에 있다.
필카에서 디카로 디카에서 폰카로 50년 동안 카메라 흥망성쇠를 다 맛본 사람
“남대문에도 있었고, 태평로에도 있었어요. 태평로에 있을 땐 카메라가 인기가 좋았어. 새벽 네 시까지 일을 해도 다음날 일찍 나와야 했지.
그때가 필름카메라의 전성기였다고 봐요. 내 전성기이기도 했고.”
김학원 선생이 남대문과 시청 앞 태평로를 거쳐 지금의 충무로 자리에 터를 잡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이다. 한때 기자들 사이에서는 ‘태평로의 김사장’을 모르면 간첩 소리를 들었다. 새벽에 퇴근을 해도 기다리는 사람을 생각하면 늦잠도 못 잤다. 도로 가게에 나와 카메라 나사를 풀었다.
“계속 잘 됐으면 좋았겠지. 이제 좀 살만 한가 싶었더니 디지털 카메라가 나왔어. 그러면서 이 시장도 곤두박질 치기 시작했고. 그러다 이젠 스마트폰 카메라가 좋으니까 디카들도 조용해졌어. 이쯤 되니까 다시 필름 카메라가 도로 세상에 나왔어. 디지털이 재미 없는 거지. 필름 카메라 속 본 적 있어요? 한 번 보여줄까요? 얼마나 정교한지 몰라. 이거에 비하면 디지털 카메라 속은 속도 아니여.”
김학원 선생이 내미는 카메라의 속내는 말 그대로 정교하고 정밀했다. 크고 작은 부속들이 저마다의 자리에서 단단하게 맞물려 있었다. 지층처럼 층층이 쌓인 이 부품들을 얼마나 들여다보면 보는 것만으로 어디에 어떤 탈이 난 건지 알게 되는 걸까.
“어려서부터 가만히 앉아서 손으로 뭘 만들고 찬찬히 들여다보는 걸 좋아했어요. 이것저것 많이 만들었죠. 내 손재주를 알아보고 삼촌이 나를 아는 사람한테 보냈는데 거기가 시계 카메라 수리점이었어요. 근데 그 사장님이 나한테 일도 안 가르쳐 주고, 맨날 심부름만 시키는 거야. 답답했지. 그러다 사장님 책상에 다 뜯어놓은 카메라가 있길래 그걸 그냥 뚝딱뚝딱 조립해봤어요. 다음날 이거 누가 만졌냐고 그러는 거야. 혼날까봐 ‘저요’하고 모기마냥 말했어. 그랬더니 ‘앞으로 수리는 네가 해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게 처음이었지.”
그렇게 시작한 게 50년이다. 따로 공부하거나 찾아볼 자료도 마땅치 않아 언제나 맨몸으로 부딪혔다. 집안의 보물이나 다름없는 값비싼 카메라를 들고 온 주인들은 그가 그걸 다 고칠 때까지 지키고 서있었다. 사방이 팽팽한 공기로 휩싸인 그 공간에서 김학원 선생은 담을 키웠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온 신경을 집중했다. 덕분에 누구보다 빠르게 카메라의 구조를 이해하고 기술을 익힐 수 있었다.
“못 고친 카메라는 없어요. 뭘 못 고친다는 게 너무 자존심 상해서 어떻게든 끝을 봤지. 4일 밤낮을 매달린 카메라도 있었어요. 그렇게 수십 년을 열심히 했으니 안 만져본 카메라가 없을 거야. 그러다 1982년 처음 내 이름으로 가게를 냈고, 1988년 남대문에 ‘중앙카메라 수리센터’를 인수 받았어요. 그렇게 오늘까지 온 거지.”
김학원 선생이 연신 필름 없는 롤라이플렉스의 셔터를 누르며 말했다. 그의 말 사이사이에 여름 물결 찰박대는 소리 같기도 하고 겨울 장작 타는 소리 같기도 한 셔터 소리가 차곡 차곡 채워 들었다.
“좋죠? 이 소리가 참 좋아.”
좋은 마음이 들면 오감을 다해 좋아하게 되는 것이 사람이다. 하물며 찰칵 소리 하나를 내기 위해 카메라 속 부품들이 각자 어떻게 움직이고, 그 작은 움직임들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훤히 알고 있는 김학원 선생에게는 그 소리 하나가 얼마나 각별할까.
“나는 지식이 없어요. 공부를 할 기회가 없었어. 그래서 뭐든 뜯어서 내 눈으로 확인하면서 독학했어요. 기계의 작동 원리는 단순해요. 회전하는 것과 좌우로 움직이는 것, 서로 고정하는 것이 전부야. 제 할일 못하고 있는 것만 찾아서 원래대로 일하게 해주면 그만이야. 손으로 만져보고 소리로 들어보면 짐작이 가요. 다 고치고 나서 이렇게 셔터를 누르면 소리가 달라. 명쾌하지.”
그 소리가 50년 동안 그를 이 자리에서 버티게 한 보약이었다.
탈난 카메라를 신중하게 살펴주는 눈빛은 마음 서늘한 손님에게 심심한 위로가 되고
인터뷰를 하는 동안 무려 다섯 명의 손님이 들렀다. 맡긴 물건을 찾으러 오기도 하고, 어렵게 구한 렌즈의 상태를 진단 받기도 하고, 김사장님이 보고 싶어 오기도 하고.
“이 렌즈하고 어제 그 렌즈하고 비교해 봤어요? 갖고 와보지. 나도 궁금하네.”
어제도 왔던 손님이 또 고민을 해결하지 못하고 다른 렌즈를 들고 온 모양이었다. 렌즈 주인 못지않은 호기심이 솟구친다.
나도 몇 년 전 멈춰버린 카메라를 챙겼다. 2009년에 중고로 산 Pentax 반자동 필름 카메라다. 못해도 스무 살은 됐을 터다. 일본 여행 중에 이상 증세가 발견되어 근처의 오래된 카메라 점포를 찾아갔더니 ‘못 고친다, 새로 사라’고 했다. 멀리에서 사망 선고를 받고 돌아온 서글픈 나의 첫 카메라.
“못 고치는 게 어딨어요. 맡기고 가요.”
필름 카메라를 쓰신다니 새삼 반갑네, 하며 김학원 선생이 흔쾌히 나의 카메라를 품어 갔다.
영영 못 고친다는 말로 이미 한차례 절망한 나의 애절함은 김학원 선생의 ‘한번 보지, 뭐.’라는 말 한마디에 위로 받았다. 증상을 설명하는 한마디 한마디를 귀 기울여 들어주는 것만으로 물렁해진 마음이 충분히 단단해졌다. 마침내 카메라가 수명을 다 하고 더는 필름을 삼키지 못한다 해도 중앙카메라 수리센터에 다녀왔다는 기록은 내가 나의 카메라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음을 증명하게 될 거다.
“다시 카메라를 처음 잡았던 순간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나를 말릴 거예요. 그 오랜 세월을 이렇게 한 자리에 종일 앉아서 카메라만 들여다보고 있는 내가 안쓰럽거든.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자리에 누워있어도 마음은 항상 여기 있는 거야. 고쳐야 할 카메라들, 기다리는 손님들.”
아날로그가 그런가 보다. 늘 누군가를 기다리게 하고, 좀처럼 벗어날 수 없게 한다. 아날로그는 콧대가 높다.
“그래도 매 순간 열심히 했으니 후회는 없어요. 내 이름 하나 믿고 멀리서도 찾아와 주는 사람도 있으니 이 정도면 잘 살았죠.”
더는 생산되지 않는 카메라들과 부품이 없어 더 이상 어쩔 도리가 없는 카메라들을 침착하게 살펴주는 김학원 선생이 있다는 건 필름 카메라 매니아들에게는 더 바랄 게 없는 행운이다. 그리고 그 덕에 누군가의 취향은 다시 생명을 연장한다.
[서울] 필름 카메라 생명 연장의 꿈
중앙카메라 수리센터 김학원
최민영
2019-03-08
여기 필름 카메라 사용자들 사이에 이름난 곳이 있다. 지금까지 못 고치고 돌아 나온 카메라가 없다. 없는 부품은 만들어서라도 끼워주고 애초에 브랜드가 달라 구경(口徑)이 맞지 않는 렌즈라도 어떻게든 맞춰준다. 신통방통 한 이곳은 충무로의 중앙카메라 수리센터. 이 세상 필름 카메라들의 주치의, 김학원 선생이 거기에 있다.
필카에서 디카로 디카에서 폰카로
50년 동안 카메라 흥망성쇠를 다 맛본 사람
“남대문에도 있었고, 태평로에도 있었어요. 태평로에 있을 땐 카메라가 인기가 좋았어. 새벽 네 시까지 일을 해도 다음날 일찍 나와야 했지.
그때가 필름카메라의 전성기였다고 봐요. 내 전성기이기도 했고.”
김학원 선생이 남대문과 시청 앞 태평로를 거쳐 지금의 충무로 자리에 터를 잡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이다. 한때 기자들 사이에서는 ‘태평로의 김사장’을 모르면 간첩 소리를 들었다. 새벽에 퇴근을 해도 기다리는 사람을 생각하면 늦잠도 못 잤다. 도로 가게에 나와 카메라 나사를 풀었다.
“계속 잘 됐으면 좋았겠지. 이제 좀 살만 한가 싶었더니 디지털 카메라가 나왔어. 그러면서 이 시장도 곤두박질 치기 시작했고. 그러다 이젠 스마트폰 카메라가 좋으니까 디카들도 조용해졌어. 이쯤 되니까 다시 필름 카메라가 도로 세상에 나왔어. 디지털이 재미 없는 거지. 필름 카메라 속 본 적 있어요? 한 번 보여줄까요? 얼마나 정교한지 몰라. 이거에 비하면 디지털 카메라 속은 속도 아니여.”
김학원 선생이 내미는 카메라의 속내는 말 그대로 정교하고 정밀했다. 크고 작은 부속들이 저마다의 자리에서 단단하게 맞물려 있었다. 지층처럼 층층이 쌓인 이 부품들을 얼마나 들여다보면 보는 것만으로 어디에 어떤 탈이 난 건지 알게 되는 걸까.
“어려서부터 가만히 앉아서 손으로 뭘 만들고 찬찬히 들여다보는 걸 좋아했어요. 이것저것 많이 만들었죠. 내 손재주를 알아보고 삼촌이 나를 아는 사람한테 보냈는데 거기가 시계 카메라 수리점이었어요. 근데 그 사장님이 나한테 일도 안 가르쳐 주고, 맨날 심부름만 시키는 거야. 답답했지. 그러다 사장님 책상에 다 뜯어놓은 카메라가 있길래 그걸 그냥 뚝딱뚝딱 조립해봤어요. 다음날 이거 누가 만졌냐고 그러는 거야. 혼날까봐 ‘저요’하고 모기마냥 말했어. 그랬더니 ‘앞으로 수리는 네가 해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게 처음이었지.”
그렇게 시작한 게 50년이다. 따로 공부하거나 찾아볼 자료도 마땅치 않아 언제나 맨몸으로 부딪혔다. 집안의 보물이나 다름없는 값비싼 카메라를 들고 온 주인들은 그가 그걸 다 고칠 때까지 지키고 서있었다. 사방이 팽팽한 공기로 휩싸인 그 공간에서 김학원 선생은 담을 키웠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온 신경을 집중했다. 덕분에 누구보다 빠르게 카메라의 구조를 이해하고 기술을 익힐 수 있었다.
“못 고친 카메라는 없어요. 뭘 못 고친다는 게 너무 자존심 상해서 어떻게든 끝을 봤지. 4일 밤낮을 매달린 카메라도 있었어요. 그렇게 수십 년을 열심히 했으니 안 만져본 카메라가 없을 거야. 그러다 1982년 처음 내 이름으로 가게를 냈고, 1988년 남대문에 ‘중앙카메라 수리센터’를 인수 받았어요. 그렇게 오늘까지 온 거지.”
김학원 선생이 연신 필름 없는 롤라이플렉스의 셔터를 누르며 말했다. 그의 말 사이사이에 여름 물결 찰박대는 소리 같기도 하고 겨울 장작 타는 소리 같기도 한 셔터 소리가 차곡 차곡 채워 들었다.
“좋죠? 이 소리가 참 좋아.”
좋은 마음이 들면 오감을 다해 좋아하게 되는 것이 사람이다. 하물며 찰칵 소리 하나를 내기 위해 카메라 속 부품들이 각자 어떻게 움직이고, 그 작은 움직임들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훤히 알고 있는 김학원 선생에게는 그 소리 하나가 얼마나 각별할까.
“나는 지식이 없어요. 공부를 할 기회가 없었어. 그래서 뭐든 뜯어서 내 눈으로 확인하면서 독학했어요. 기계의 작동 원리는 단순해요. 회전하는 것과 좌우로 움직이는 것, 서로 고정하는 것이 전부야. 제 할일 못하고 있는 것만 찾아서 원래대로 일하게 해주면 그만이야. 손으로 만져보고 소리로 들어보면 짐작이 가요. 다 고치고 나서 이렇게 셔터를 누르면 소리가 달라. 명쾌하지.”
그 소리가 50년 동안 그를 이 자리에서 버티게 한 보약이었다.
탈난 카메라를 신중하게 살펴주는 눈빛은
마음 서늘한 손님에게 심심한 위로가 되고
인터뷰를 하는 동안 무려 다섯 명의 손님이 들렀다. 맡긴 물건을 찾으러 오기도 하고, 어렵게 구한 렌즈의 상태를 진단 받기도 하고, 김사장님이 보고 싶어 오기도 하고.
“이 렌즈하고 어제 그 렌즈하고 비교해 봤어요? 갖고 와보지. 나도 궁금하네.”
어제도 왔던 손님이 또 고민을 해결하지 못하고 다른 렌즈를 들고 온 모양이었다. 렌즈 주인 못지않은 호기심이 솟구친다.
나도 몇 년 전 멈춰버린 카메라를 챙겼다. 2009년에 중고로 산 Pentax 반자동 필름 카메라다. 못해도 스무 살은 됐을 터다. 일본 여행 중에 이상 증세가 발견되어 근처의 오래된 카메라 점포를 찾아갔더니 ‘못 고친다, 새로 사라’고 했다. 멀리에서 사망 선고를 받고 돌아온 서글픈 나의 첫 카메라.
“못 고치는 게 어딨어요. 맡기고 가요.”
필름 카메라를 쓰신다니 새삼 반갑네, 하며 김학원 선생이 흔쾌히 나의 카메라를 품어 갔다.
영영 못 고친다는 말로 이미 한차례 절망한 나의 애절함은 김학원 선생의 ‘한번 보지, 뭐.’라는 말 한마디에 위로 받았다. 증상을 설명하는 한마디 한마디를 귀 기울여 들어주는 것만으로 물렁해진 마음이 충분히 단단해졌다. 마침내 카메라가 수명을 다 하고 더는 필름을 삼키지 못한다 해도 중앙카메라 수리센터에 다녀왔다는 기록은 내가 나의 카메라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음을 증명하게 될 거다.
“다시 카메라를 처음 잡았던 순간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나를 말릴 거예요. 그 오랜 세월을 이렇게 한 자리에 종일 앉아서 카메라만 들여다보고 있는 내가 안쓰럽거든.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자리에 누워있어도 마음은 항상 여기 있는 거야. 고쳐야 할 카메라들, 기다리는 손님들.”
아날로그가 그런가 보다. 늘 누군가를 기다리게 하고, 좀처럼 벗어날 수 없게 한다. 아날로그는 콧대가 높다.
“그래도 매 순간 열심히 했으니 후회는 없어요. 내 이름 하나 믿고 멀리서도 찾아와 주는 사람도 있으니 이 정도면 잘 살았죠.”
더는 생산되지 않는 카메라들과 부품이 없어 더 이상 어쩔 도리가 없는 카메라들을 침착하게 살펴주는 김학원 선생이 있다는 건 필름 카메라 매니아들에게는 더 바랄 게 없는 행운이다. 그리고 그 덕에 누군가의 취향은 다시 생명을 연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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