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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빗 만드는 고광록 씨
이돈삼
2019-02-22
수십 년 전, 방바닥에 떨어뜨렸던 서캐(이의 알)가 생각났다. 어머니는 참빗으로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서캐를 떨어뜨렸다. 위생 관념이 철저하지 않았던 시절의 얘기다.
그 시절, 참빗은 집마다 생활의 필수품이었다. 한두 개는 기본이고, 몇 개씩 두고 살았다. 빗살이 촘촘한 것부터 듬성듬성 박힌 것까지 고루 갖췄다. 시집가는 누이의 혼수품에도 여러 개가 들어갔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참빗이 자취를 감췄다. 아마도 플라스틱 빗이 나오면서부터였을 것이다. 생활이 조금 넉넉해지면서 위생상태도 좋아졌을 때다. 파마가 보편화된 것도 한몫했을 테다.
참빗을 만드는 집을 찾아가는 길. 추억 저편에 자리하고 있던 그때 그 시절을 떠올렸다.
참빗을 만드는 사람
담양에서 참빗과 얼레빗을 만드는 고광록 씨. 고 씨는 대를 이어 참빗을 만들고 있다. 전라남도무형문화재 15호 참빗장으로 지정된 고행주 선생이 그의 아버지다. 25년 동안 전수 장학생을 거쳐 지금은 조교로 있다. 6대째 대를 잇고 있다.
"아버지 어깨너머로 배웠어요. 어려서부터 대나무로 뭔가 만드는 걸 좋아했거든요. 썰매도, 굴렁쇠도, 활도 제가 직접 만들어서 갖고 놀았으니까요.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을 만큼, 제대로 만들었어요. 다른 친구들이 부러워할 정도로요."
그가 참빗을 만들게 된 것은 숙명이었을지도 모른다. 참빗 장인인 아버지 어깨너머로 배운 것도 있지만, 손재주가 워낙 좋았던 고 씨는 어린 시절 본인의 장난감은 물론, 성년이 된 두 아들이 어렸을 때 갖고 놀았던 장난감도 모두 만들어줬단다.
"딱히, 참빗을 전수하겠다는 생각은 안 했습니다. 그냥 무엇인가 만드는 게 재밌었어요. 힘든 줄도 모르고요. 그래서 직업이 되고, 지금까지 하고 있죠. 아마도 제가 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저의 숙명인가 보죠."
고 씨가 지금도 참빗을 만들고 죽세공예를 하는 이유다.
겉보기에 조그마한 참빗이지만, 만드는 데 공력이 많이 들어간다. 성질이 부드러운 3년생 왕대를 30∼40㎝ 크기로 자르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것을 1㎝ 남짓 넓이로 잘게 쪼갠 다음 다시 겉과 속으로 나눈다. 참빗은 단단한 대나무의 껍질 부분으로 만든다.
참빗 하나에는 0.4㎜ 정도의 빗살 100여 개가 들어간다. 빗살 하나하나를 훑어 매끈하게 만든다. 이것을 차곡차곡 엮고, 염색하고, 아교로 붙이고, 말린다. 이후 실을 풀고, 빗살의 끝을 반듯하게 다듬고, 닦아내고, 문양도 넣어야 한다. 지난한 일이다.
"고되죠. 작업하는 내내 쪼그리고 앉아서, 허리를 숙이고 하는 일이니까요. 대나무를 자르고 깎으면서 묻어나는 먼지도 다 들이마셔야 하고요. 돈을 생각하면 못하죠. 해서도 안 되고요. 재밌으니까 하죠."
고 씨는 참빗을 오전에만 만든다. 온종일 일하기엔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오후에는 대나무 부산물을 활용해 다른 죽세공예품을 만든다. 얼레빗, 발 지압기, 대나무 컵, 구둣주걱, 열쇠고리 등등. 큰 부담은 없다. 텃밭을 가꾸거나 집안일을 돌보는 일에도 시간을 쓴다.
참빗을 찾는 사람들
"참빗만 하루에 10∼20개 팔아요. 개량한 형태의 얼레빗 빼고요. 서울에 사는 대도시 사람들이 많이 사가요. 기념품으로 사기도 하지만, 아이들 머리에 서캐가 생겼다는 사람이 의외로 있습니다. 가끔은 외국에서도 주문해 와요. 교민들이 소개하는 것 같은데."
고 씨를 만나기 전, 요즘 세상에 참빗을 누가 사고, 쓸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참빗의 모양도 한둘이 아니었다. 여러 가지 색깔을 입힌 색동참빗까지 다양했다. 옛 여인들이라면 탐낼만한 걸작이다.
가격은 보통의 것이 1만3000∼1만5000원, 고급스러운 것은 2만 원까지 했다. 빗살이 촘촘해 서캐를 제거하는데 제격인 참빗은 1만5000원 한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판매량이 조금씩 늘고 있단다. 관광기념품으로도 쏠쏠히 나간다고.
"참빗은 결코 못살고 지저분한 시대의 유물이 아니에요. 성능도 플라스틱 빗에 비할 바가 아니고요. 두피를 시원하게 해주고, 개운하잖아요. 정전기도 생기지 않고요. 머릿결을 윤기 있게 만들어주는데 참빗만 한 게 어디 있을까요?"
고 씨는 참빗에 푹 빠져 있다. 전통적인 것, 사라져가는 것을 지킨다는 마음 뿐만 아니라 더 새로운 참빗을 만들어 온 국민들이 하나씩 사용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는 오늘도 대나무를 잡는다. 그의 노력으로 참빗이 다시 ‘국민빗’으로 거듭나길 바라본다.
일상이 해찰이고, 해찰이 일상인 삶을 살고 있다. 전남도청 대변일실에서 일하며,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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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쟁이 김세희
인문쟁이 양재여
[담양] 고운 머릿결을 만드는 고운 마음
참빗 만드는 고광록 씨
이돈삼
2019-02-22
수십 년 전, 방바닥에 떨어뜨렸던 서캐(이의 알)가 생각났다. 어머니는 참빗으로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서캐를 떨어뜨렸다. 위생 관념이 철저하지 않았던 시절의 얘기다.
그 시절, 참빗은 집마다 생활의 필수품이었다. 한두 개는 기본이고, 몇 개씩 두고 살았다. 빗살이 촘촘한 것부터 듬성듬성 박힌 것까지 고루 갖췄다. 시집가는 누이의 혼수품에도 여러 개가 들어갔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참빗이 자취를 감췄다. 아마도 플라스틱 빗이 나오면서부터였을 것이다. 생활이 조금 넉넉해지면서 위생상태도 좋아졌을 때다. 파마가 보편화된 것도 한몫했을 테다.
참빗을 만드는 집을 찾아가는 길. 추억 저편에 자리하고 있던 그때 그 시절을 떠올렸다.
참빗을 만드는 사람
담양에서 참빗과 얼레빗을 만드는 고광록 씨. 고 씨는 대를 이어 참빗을 만들고 있다. 전라남도무형문화재 15호 참빗장으로 지정된 고행주 선생이 그의 아버지다. 25년 동안 전수 장학생을 거쳐 지금은 조교로 있다. 6대째 대를 잇고 있다.
"아버지 어깨너머로 배웠어요. 어려서부터 대나무로 뭔가 만드는 걸 좋아했거든요. 썰매도, 굴렁쇠도, 활도 제가 직접 만들어서 갖고 놀았으니까요.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을 만큼, 제대로 만들었어요. 다른 친구들이 부러워할 정도로요."
그가 참빗을 만들게 된 것은 숙명이었을지도 모른다. 참빗 장인인 아버지 어깨너머로 배운 것도 있지만, 손재주가 워낙 좋았던 고 씨는 어린 시절 본인의 장난감은 물론, 성년이 된 두 아들이 어렸을 때 갖고 놀았던 장난감도 모두 만들어줬단다.
"딱히, 참빗을 전수하겠다는 생각은 안 했습니다. 그냥 무엇인가 만드는 게 재밌었어요. 힘든 줄도 모르고요. 그래서 직업이 되고, 지금까지 하고 있죠. 아마도 제가 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저의 숙명인가 보죠."
고 씨가 지금도 참빗을 만들고 죽세공예를 하는 이유다.
겉보기에 조그마한 참빗이지만, 만드는 데 공력이 많이 들어간다. 성질이 부드러운 3년생 왕대를 30∼40㎝ 크기로 자르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것을 1㎝ 남짓 넓이로 잘게 쪼갠 다음 다시 겉과 속으로 나눈다. 참빗은 단단한 대나무의 껍질 부분으로 만든다.
참빗 하나에는 0.4㎜ 정도의 빗살 100여 개가 들어간다. 빗살 하나하나를 훑어 매끈하게 만든다. 이것을 차곡차곡 엮고, 염색하고, 아교로 붙이고, 말린다. 이후 실을 풀고, 빗살의 끝을 반듯하게 다듬고, 닦아내고, 문양도 넣어야 한다. 지난한 일이다.
"고되죠. 작업하는 내내 쪼그리고 앉아서, 허리를 숙이고 하는 일이니까요. 대나무를 자르고 깎으면서 묻어나는 먼지도 다 들이마셔야 하고요. 돈을 생각하면 못하죠. 해서도 안 되고요. 재밌으니까 하죠."
고 씨는 참빗을 오전에만 만든다. 온종일 일하기엔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오후에는 대나무 부산물을 활용해 다른 죽세공예품을 만든다. 얼레빗, 발 지압기, 대나무 컵, 구둣주걱, 열쇠고리 등등. 큰 부담은 없다. 텃밭을 가꾸거나 집안일을 돌보는 일에도 시간을 쓴다.
참빗을 찾는 사람들
"참빗만 하루에 10∼20개 팔아요. 개량한 형태의 얼레빗 빼고요. 서울에 사는 대도시 사람들이 많이 사가요. 기념품으로 사기도 하지만, 아이들 머리에 서캐가 생겼다는 사람이 의외로 있습니다. 가끔은 외국에서도 주문해 와요. 교민들이 소개하는 것 같은데."
고 씨를 만나기 전, 요즘 세상에 참빗을 누가 사고, 쓸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참빗의 모양도 한둘이 아니었다. 여러 가지 색깔을 입힌 색동참빗까지 다양했다. 옛 여인들이라면 탐낼만한 걸작이다.
가격은 보통의 것이 1만3000∼1만5000원, 고급스러운 것은 2만 원까지 했다. 빗살이 촘촘해 서캐를 제거하는데 제격인 참빗은 1만5000원 한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판매량이 조금씩 늘고 있단다. 관광기념품으로도 쏠쏠히 나간다고.
"참빗은 결코 못살고 지저분한 시대의 유물이 아니에요. 성능도 플라스틱 빗에 비할 바가 아니고요. 두피를 시원하게 해주고, 개운하잖아요. 정전기도 생기지 않고요. 머릿결을 윤기 있게 만들어주는데 참빗만 한 게 어디 있을까요?"
고 씨는 참빗에 푹 빠져 있다. 전통적인 것, 사라져가는 것을 지킨다는 마음 뿐만 아니라 더 새로운 참빗을 만들어 온 국민들이 하나씩 사용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는 오늘도 대나무를 잡는다. 그의 노력으로 참빗이 다시 ‘국민빗’으로 거듭나길 바라본다.
일상이 해찰이고, 해찰이 일상인 삶을 살고 있다. 전남도청 대변일실에서 일하며,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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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숨결
인문쟁이 김세희
대전역이 품어 온 기억을 다시 마주하다.
인문쟁이 양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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