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도 꿈만 같아요. 선생님 감사합니다. 저는 책을 안고 자다가 새벽 두 시에 일어나서 썼습니다.
이름 석 자 박힌 책을 보고 설레어 잠 못 이룬 채 뒤척뒤척. 품에 꼭 안고 있느라 따스해진 책을 펼쳐보고 또 펼쳐보고 마치 할배라도 되는 양 쓰다듬다가 결국 마루 불을 밝히고 앉아 연필 깎아 들고 있는 인금순 할머니(77)의 모습이 그려진다.
“자슥들 다 여우고 취미생활을 해야겄다 하던 차에 한 각시가 심심헌게 풍물이나 배우자고. 그래서 갔는디 젊은 사람들잉게 책을 놓고 배우는데 나는 글을 몰른게 귀로만 듣고 했어요. 그러다 거그 면장님헌티 한글 좀 갈켜주면 안 되냐고 했더만 나더러 배울 사람들 한번 짜 보랴. 여그 동네서 다섯 명이 헌다 하고 면장님이 여기저기 써 붙이고 해갖고 한 달쯤 된게 연락이 와서 갔재. 처음에 사십 명이었다가 금세 백 명이 넘게 되었다가 또 줄었어요.”
그렇게 10년 전에야 처음으로 글을 배운 인금순 할머니지만 몇 년 전 완주군 백일장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아 군수와 기자들 앞에서 산문을 낭독하기도 했다.
“그전에는 풀만 뽑고 살았는데 내 심정을 이렇게 여러 사람에게 보여주니 얼매나 좋아요. 당당하게 읽어요.”
당당하게 읽었다는 그 글은 연애편지와 다름없으니 시상식이 황혼 공개 프러포즈 장소였을 터. 그럼에도 젊은이들의 고백처럼 오글거리지만은 않음은 함께한 세월의 깊이 때문일 것이다.
영감님께
그동안 나하고 의견 충격받아가며 사느라고 고생 많으셨지요? 영감님 당신 덕분에 외롭지 않고 즐겁게 살고 있어요.
제 곁에 함께 있어 줘서 고마워요. 앞으로 죽을 때까지 둘이서 행복하게 삽시다. 영감님, 사랑할게요.
사랑‘할’이라는 미래 시제 어미를 툭 내뱉지만, “했던” 시간이 녹록지만은 않았다.
“친정 아부지가 늘 말했어요. 여자가 참아야 집안이 조용하다고. 일어나서 문지방을 넘을 때, 주방에 들어갈 때, 자러 갈 때
하루 세 번 그걸 생각하라고 매일 들었어요.”
“좋은 세상에서 한글 배우며 공부하니 즐겁습니다”
꿈을 이룬 임금순(76세) / 고산 진달래 학교 / 살림도 열심히 하고 / 못 걷는 시어머니하고 / 삼십년을 살게 되면서 /
딸 아들 사남매 잘 키워서 / 결혼시키고 나도 이제 / 공부하니 즐겁습니다.
너히들 보고 재미있었서. 손녀 다연이와 며느리가 많이 애썼다. 아들 엄마가 이 나이에 한글 배워서 편지를 써 보았다.
그렇게 즐거우니 때때로 어머니 생각이 나나 보다. 아들도, 며느리도, 손녀 주연이, 다연이도 편지를 받았다.
지금은 이렇게 마음을 잘 표현하는 인금순 할머니도 5년 전 시 쓰자는 말에는 “시가 뭐여?”하고 물어봤다. 통 못 들어본 소리라 “시 쓸 줄 안가(아는가)” 싶었다. 선생님이 일상에서 느끼는 것을 아무거나 써 오라고 했고 다른 할머니들이 쓰는 걸 보고 용기를 냈다. 적어간 것을 보고 다들 “사연 잘 낸다.”고 하니 절로 흥이 났다.
파리 이야이
오늘은 밭을 매는데 파리한마리가
와서 나를 귀찮게 하네 그래서 쫒으
면서 어디서와서 귀찮게하니?그랬더
니 파리가 이렇게 말했어요 나는 서울
에서 사람버스타고 왔어요 시골에
왔더니 아주머니 땀냄새가 좋아요
아주머니는 무얼 좋아하세요? 응 나는
세상에서 한글이 제일 좋아요 그리고
노래도 좋아하지요 너는 노래 좋아하니?
아이요 파리는 노래 못해요 그래
모기는 해가 가면 와서 노래를 잘 하는
데 그러면 나는 좋아서 내가 내
뺨을 땅 땅 치며 장담 맞춰
치지요 그러면 모기는 소리 내고
달아 났어요 인금순
제목 달라진 내 인생
완주군청 고산 진달래학교
이름 인금순 76세
글자 꽃이 피어요
나는 글을 배우니 마음이
즐거워요 글을 배워 책을 읽어보니
먼 바다도 보이는 것 같아요 글을
써보니 내 마음은 이시간이 제일
좋은 시간 아이들도 우리 엄마 최고야
합니다 나는 더 배우고 싶어요
주위에 있는 것들의 사연을 내기 시작했다. 파리에게는 “노래 좋아하니?” 묻고 노래 못한다고 하니 “모기는 해가 가면 와서 노래를 잘하는데”라고 일러 주었다. 장독에게는 “숨 쉬느라 입이 크고 배가 불룩하구나” 말 걸고, 딸기나무에게 “궁뎅이 이불 덮어주고 따뜻하게 온도 해줄게.…딸아 예쁘게 자라거라…빨갛게 자라면…우리 딸기차타고 시집가야지”라며 어르기도 한다.
글을 배워 책을 읽어 보니
먼바다가 보이는 것 같아요.
글을 써 보니 내 마음은 이 시간이 제일 좋은 시간
아이들도 우리 엄마 최고야 합니다
나는 더 배우고 싶어요
“남들은 나이 들어 뭣 하러 배우냐고 해. 일 안하고 공부만 하냐고. 나는 새벽부터 일어나서 일당 해놓고 가는 거야.
딸기 해 놓고 공부대로 하고. 밥은 못 먹어도 학교는 가야 해요.”
이전에 어디 가면 뭐 쓰라는 게 무서워서 움츠러들었는데 지금은 아주 당당하다. 군청에도 병원에도 혼자 가도 걱정이 없다. 인금순 할매가 논 10마지기에 벼농사를 짓고 딸기 하우스 두 동을 일구면서, 밥은 걸러도 한글학교는 꼭 가면서 얻어낸 결과다. 병원에 가느라 수업에 조금 늦게 들어왔는데 맨 앞자리에 앉았다.
“요즘은 좀 불량학생이여.”라는 게 이 정도다. 비밀이지만 할매에겐 나름의 공부 비법이 있다.
“남덜은 숙제 내 주면 다 써오는데 나는 모르는 놈만 써놓고 와. 밥 안쳐 놓고 들다 볼고 그렇게 항게 노력 끝에 기억 나슨 것이여.”
“진짜로 달콤한 내 인생의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어리서 못배운 글 8월 7일
이제라도 배우이 재미있습니다.
내 손으로 연필잡고 하얀
종이위에 한자 한자 쓰기가
매우 재미 있습니다 선생님은
잘 가르쳐주시는데 나는
기역속에 받침을 일어버려서
받침이 빠저도 모르고
쓰기만 재미 있었습니다.
더 배워서 편지에 밧침이
안빠질때까지 더 배웠쓰면
좋겠습니다
선생님은 잘 가르쳐 주시는데 나는 기억 속에 받침을 일어버려서 받침이 빠져도 모르고 쓰기만 재미있었습니다.
더 배워서 편지에 밧침이 안 빠질 때까지 더 배웠쓰면 좋겠습니다.
전북 완주 고산면자치회관에 모인 한글학교 할매 학생들이 ‘진달래 학교’ 뜻을 함께 낭독했다.
“진짜로 달콤한 내 인생의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내 인생의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할매의 달곰한 기록 덕에 인생 맛을 조금 보았다. 너무 달기만 하다면야 물리겠지만 결코 질리지 않는다. 그 맛은 그러니까 딱 적당하게 달곰쌉쌀하달까.
[완주] 글을 써 보니 내 맘이 몽실몽실
할매 시인 인금순
김세진
2018-08-24
“풀만 뽑고 살다 내 심정을 보여주니 얼매나 좋아요”
나는 지금도 꿈만 같아요. 선생님 감사합니다. 저는 책을 안고 자다가 새벽 두 시에 일어나서 썼습니다.
이름 석 자 박힌 책을 보고 설레어 잠 못 이룬 채 뒤척뒤척. 품에 꼭 안고 있느라 따스해진 책을 펼쳐보고 또 펼쳐보고 마치 할배라도 되는 양 쓰다듬다가 결국 마루 불을 밝히고 앉아 연필 깎아 들고 있는 인금순 할머니(77)의 모습이 그려진다.
“자슥들 다 여우고 취미생활을 해야겄다 하던 차에 한 각시가 심심헌게 풍물이나 배우자고. 그래서 갔는디 젊은 사람들잉게 책을 놓고 배우는데 나는 글을 몰른게 귀로만 듣고 했어요. 그러다 거그 면장님헌티 한글 좀 갈켜주면 안 되냐고 했더만 나더러 배울 사람들 한번 짜 보랴. 여그 동네서 다섯 명이 헌다 하고 면장님이 여기저기 써 붙이고 해갖고 한 달쯤 된게 연락이 와서 갔재. 처음에 사십 명이었다가 금세 백 명이 넘게 되었다가 또 줄었어요.”
그렇게 10년 전에야 처음으로 글을 배운 인금순 할머니지만 몇 년 전 완주군 백일장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아 군수와 기자들 앞에서 산문을 낭독하기도 했다.
“그전에는 풀만 뽑고 살았는데 내 심정을 이렇게 여러 사람에게 보여주니 얼매나 좋아요. 당당하게 읽어요.”
당당하게 읽었다는 그 글은 연애편지와 다름없으니 시상식이 황혼 공개 프러포즈 장소였을 터. 그럼에도 젊은이들의 고백처럼 오글거리지만은 않음은 함께한 세월의 깊이 때문일 것이다.
영감님께
그동안 나하고 의견 충격받아가며 사느라고 고생 많으셨지요? 영감님 당신 덕분에 외롭지 않고 즐겁게 살고 있어요.
제 곁에 함께 있어 줘서 고마워요. 앞으로 죽을 때까지 둘이서 행복하게 삽시다. 영감님, 사랑할게요.
사랑‘할’이라는 미래 시제 어미를 툭 내뱉지만, “했던” 시간이 녹록지만은 않았다.
“친정 아부지가 늘 말했어요. 여자가 참아야 집안이 조용하다고. 일어나서 문지방을 넘을 때, 주방에 들어갈 때, 자러 갈 때
하루 세 번 그걸 생각하라고 매일 들었어요.”
“좋은 세상에서 한글 배우며 공부하니 즐겁습니다”
꿈을 이룬 임금순(76세) / 고산 진달래 학교 / 살림도 열심히 하고 / 못 걷는 시어머니하고 / 삼십년을 살게 되면서 /
딸 아들 사남매 잘 키워서 / 결혼시키고 나도 이제 / 공부하니 즐겁습니다.
너히들 보고 재미있었서. 손녀 다연이와 며느리가 많이 애썼다. 아들 엄마가 이 나이에 한글 배워서 편지를 써 보았다.
그렇게 즐거우니 때때로 어머니 생각이 나나 보다. 아들도, 며느리도, 손녀 주연이, 다연이도 편지를 받았다.
지금은 이렇게 마음을 잘 표현하는 인금순 할머니도 5년 전 시 쓰자는 말에는 “시가 뭐여?”하고 물어봤다. 통 못 들어본 소리라 “시 쓸 줄 안가(아는가)” 싶었다. 선생님이 일상에서 느끼는 것을 아무거나 써 오라고 했고 다른 할머니들이 쓰는 걸 보고 용기를 냈다. 적어간 것을 보고 다들 “사연 잘 낸다.”고 하니 절로 흥이 났다.
파리 이야이
오늘은 밭을 매는데 파리한마리가
와서 나를 귀찮게 하네 그래서 쫒으
면서 어디서와서 귀찮게하니?그랬더
니 파리가 이렇게 말했어요 나는 서울
에서 사람버스타고 왔어요 시골에
왔더니 아주머니 땀냄새가 좋아요
아주머니는 무얼 좋아하세요? 응 나는
세상에서 한글이 제일 좋아요 그리고
노래도 좋아하지요 너는 노래 좋아하니?
아이요 파리는 노래 못해요 그래
모기는 해가 가면 와서 노래를 잘 하는
데 그러면 나는 좋아서 내가 내
뺨을 땅 땅 치며 장담 맞춰
치지요 그러면 모기는 소리 내고
달아 났어요 인금순
제목 달라진 내 인생
완주군청 고산 진달래학교
이름 인금순 76세
글자 꽃이 피어요
나는 글을 배우니 마음이
즐거워요 글을 배워 책을 읽어보니
먼 바다도 보이는 것 같아요 글을
써보니 내 마음은 이시간이 제일
좋은 시간 아이들도 우리 엄마 최고야
합니다 나는 더 배우고 싶어요
주위에 있는 것들의 사연을 내기 시작했다. 파리에게는 “노래 좋아하니?” 묻고 노래 못한다고 하니 “모기는 해가 가면 와서 노래를 잘하는데”라고 일러 주었다. 장독에게는 “숨 쉬느라 입이 크고 배가 불룩하구나” 말 걸고, 딸기나무에게 “궁뎅이 이불 덮어주고 따뜻하게 온도 해줄게.…딸아 예쁘게 자라거라…빨갛게 자라면…우리 딸기차타고 시집가야지”라며 어르기도 한다.
글을 배워 책을 읽어 보니
먼바다가 보이는 것 같아요.
글을 써 보니 내 마음은 이 시간이 제일 좋은 시간
아이들도 우리 엄마 최고야 합니다
나는 더 배우고 싶어요
“남들은 나이 들어 뭣 하러 배우냐고 해. 일 안하고 공부만 하냐고. 나는 새벽부터 일어나서 일당 해놓고 가는 거야.
딸기 해 놓고 공부대로 하고. 밥은 못 먹어도 학교는 가야 해요.”
이전에 어디 가면 뭐 쓰라는 게 무서워서 움츠러들었는데 지금은 아주 당당하다. 군청에도 병원에도 혼자 가도 걱정이 없다. 인금순 할매가 논 10마지기에 벼농사를 짓고 딸기 하우스 두 동을 일구면서, 밥은 걸러도 한글학교는 꼭 가면서 얻어낸 결과다. 병원에 가느라 수업에 조금 늦게 들어왔는데 맨 앞자리에 앉았다.
“요즘은 좀 불량학생이여.”라는 게 이 정도다. 비밀이지만 할매에겐 나름의 공부 비법이 있다.
“남덜은 숙제 내 주면 다 써오는데 나는 모르는 놈만 써놓고 와. 밥 안쳐 놓고 들다 볼고 그렇게 항게 노력 끝에 기억 나슨 것이여.”
“진짜로 달콤한 내 인생의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어리서 못배운 글 8월 7일
이제라도 배우이 재미있습니다.
내 손으로 연필잡고 하얀
종이위에 한자 한자 쓰기가
매우 재미 있습니다 선생님은
잘 가르쳐주시는데 나는
기역속에 받침을 일어버려서
받침이 빠저도 모르고
쓰기만 재미 있었습니다.
더 배워서 편지에 밧침이
안빠질때까지 더 배웠쓰면
좋겠습니다
선생님은 잘 가르쳐 주시는데 나는 기억 속에 받침을 일어버려서 받침이 빠져도 모르고 쓰기만 재미있었습니다.
더 배워서 편지에 밧침이 안 빠질 때까지 더 배웠쓰면 좋겠습니다.
전북 완주 고산면자치회관에 모인 한글학교 할매 학생들이 ‘진달래 학교’ 뜻을 함께 낭독했다.
“진짜로 달콤한 내 인생의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내 인생의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할매의 달곰한 기록 덕에 인생 맛을 조금 보았다. 너무 달기만 하다면야 물리겠지만 결코 질리지 않는다. 그 맛은 그러니까 딱 적당하게 달곰쌉쌀하달까.
숨어 있는 소소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의 일상을 이야기와 음악으로 풀어내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렇게 만나는 사람들 덕분에 눈이 맑아지는 행운을 누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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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라네. 이 평화가 오래도록 지속되기를…
인문쟁이 양재여
평범한 일상 속에 뿌리를 내리다
인문쟁이 이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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