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의 도자기 마을에서 10년째 소금을 굽는 사람이 있다. 커다란 하마 같은 가마를 돌보며 소금을 넣고 굽고 식힌다. 돈을 많이 벌고자 금수레라는 이름을 지었는데 이제는 소용없어졌다. 돈을 못 벌어서가 아니라 돈보다 중요한 소금의 가치를 알게 돼서다. 이것은 어느 미련하고 정직한 남자의 이야기다.
우연이 운명으로
"원래 막노동도 하고 출판사도 하다가 여기 시골로 와서 소금을 굽기 시작했지. 골드가 뭐야, 금! 카트는 뭐야, 수레잖아! 그러니까 금수레는 수레 위에 금을 싣고 간다는 뜻이지. 옛날에는 소금이 금이었어. 금값이었거든. 당시엔 국가에서 인삼만 관리한 게 아니고 소금도 관리했어. 소금 공급이 없으면 전쟁도 못 했어. 옛날에 스페인 같은 데 보면 임금 대신 소금을 줬단 말이야. 아직까지도 티베트 사람들은 산 넘고 해서 소금 구하러 다니잖아. 왜냐, 짐승에게 안 먹이면 죽거든."
과거, 이학주 대표는 몸이 좋지 않아 공기 좋고 인적 드문 시골을 찾다가 400년 된 도자기 마을에 가게 된다. 그러다 이 마을의 도자기 가마가 일 년에 한두 번 떼고 계속 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가마를 사용하지 않는 기간에 소금이나 굽자 해서 시작한 게 금수레다.
소금은 소금이니까
"당시 소금은 식품이 아니라 광물질이었어. 한마디로 광업이었지. 식품이 된 지 한 6년인가 됐어. 그때만 해도 구운 소금이 많이 없었지."
처음 소금을 구웠을 때, 흰 소금을 넣어도 굽기만 하면 잿빛으로 변해 난관이 있었다. 이학주 대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실험기관에 의뢰했다. 그을림의 정체는 불을 때다 보면 나오는 카본이라는 이물질이었다. 대표는 어느 온도에 카본이 사라지는지 확인하기 위해 여러 실험을 해봤다.
"우리가 800℃에서 소금을 익히는데 300℃일 때 물을 끼얹어서 어떻게 됐나 보고, 또 500℃에서도 똑같이 확인해보고 그랬어. 그러다가 알게 됐지. 600℃가 되면 카본이 날아가는구나, 하고."
소금의 융점은 800℃이다. 800℃가 되면 액체로 변하고 900℃가 되면 다 기화가 돼서 사라진다. 시중에서 볼 수 있는, 1600℃에서 구웠다고 광고하는 제품은 소금을 굽는 게 아니고 끓여 녹인 후 식히고 깨서 만든 거다. 이학주 대표는 소금은 소금의 본질이 있다고 말한다. 짠맛. 소금은 하나의 조미료일 뿐 이를 만병통치약으로 광고하면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우리 앞에 소금이 있기까지
"좋은 계절에 좋은 바람을 만났을 때 탄생한 소금. 소금을 만들 때 태양도 중요하지만 바람도 굉장히 중요해. 그리고 계절이 중요하지. 태양과 바람이 완벽한 시기는 5~6월이야. 그리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청결. 무조건 깨끗하게 만들어야 해. 먹는 것이기 때문에 장난을 치면 안 돼."
이학주 대표는 소금은 그저 염화나트륨일 뿐이라고 말하면서도 구운 소금을 만드는 것에 있어서 누구보다 진지하고 엄격하다. 그런 그가 ‘단양’이라는 지역색을 살린 마늘소금을 만들었다고 소개할 때, 기대가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마늘을 구워보니까 잘 안 깨지는 거야. 프라이팬에 마늘 구우면 금방 딱딱해지듯이 말이야. 그런데 황토방에서 3일을 구우니까 되더라. 내가 만들었지만 맛있더라고. 왜냐하면 우리 마늘소금에는 마늘이 20% 들어가 있거든. 시중에 나온 것들 보면 영 점 몇 퍼센트 들어가 있거나 향을 첨가한 정도야."
소금에 대하여 말하는 이학주 대표의 표정엔 자부심이 넘친다. 그는 팔기 싫을 정도로 자신이 만든 소금이 마음에 든다고 한다. 소금을 구워서 꺼낼 때 보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고. 누군가 이걸 먹는다고 생각하면 진짜 잘 만들 수밖에 없다고 하는 그에게 커다란 책임감이 느껴졌다.
금수레의 주문 전화는 무조건 대표가 받는다.
"아, 이 소금 정말 맛있다", "이 소금 먹다가 다른 소금 못 먹겠다" 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고. 그거에 보람을 느낀다는 그는 매일 더 좋은 소금을 만들기 위해 연구한다.
경기도 안양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고 있다. 변두리의 글이 있다고 생각한다.
시집을 살 때 시보다 시인의 말을 오래 보고, 지름길을 놔두고 에둘러 가는 산책길을 선호한다.
패션을 전공하고선 라이프스타일매거진 《어라운드》, 《컨셉진》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5년이 지난 지금은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 다시 패션 일을 하고 있다.
댓글(0)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단양] 소금 앞에서 정직한 남자'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단양] 소금 앞에서 정직한 남자
단양 금수레 이학주 대표
이혜인
2018-06-22
단양의 도자기 마을에서 10년째 소금을 굽는 사람이 있다. 커다란 하마 같은 가마를 돌보며 소금을 넣고 굽고 식힌다. 돈을 많이 벌고자 금수레라는 이름을 지었는데 이제는 소용없어졌다. 돈을 못 벌어서가 아니라 돈보다 중요한 소금의 가치를 알게 돼서다. 이것은 어느 미련하고 정직한 남자의 이야기다.
우연이 운명으로
"원래 막노동도 하고 출판사도 하다가 여기 시골로 와서 소금을 굽기 시작했지. 골드가 뭐야, 금! 카트는 뭐야, 수레잖아! 그러니까 금수레는 수레 위에 금을 싣고 간다는 뜻이지. 옛날에는 소금이 금이었어. 금값이었거든. 당시엔 국가에서 인삼만 관리한 게 아니고 소금도 관리했어. 소금 공급이 없으면 전쟁도 못 했어. 옛날에 스페인 같은 데 보면 임금 대신 소금을 줬단 말이야. 아직까지도 티베트 사람들은 산 넘고 해서 소금 구하러 다니잖아. 왜냐, 짐승에게 안 먹이면 죽거든."
과거, 이학주 대표는 몸이 좋지 않아 공기 좋고 인적 드문 시골을 찾다가 400년 된 도자기 마을에 가게 된다. 그러다 이 마을의 도자기 가마가 일 년에 한두 번 떼고 계속 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가마를 사용하지 않는 기간에 소금이나 굽자 해서 시작한 게 금수레다.
소금은 소금이니까
"당시 소금은 식품이 아니라 광물질이었어. 한마디로 광업이었지. 식품이 된 지 한 6년인가 됐어. 그때만 해도 구운 소금이 많이 없었지."
처음 소금을 구웠을 때, 흰 소금을 넣어도 굽기만 하면 잿빛으로 변해 난관이 있었다. 이학주 대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실험기관에 의뢰했다. 그을림의 정체는 불을 때다 보면 나오는 카본이라는 이물질이었다. 대표는 어느 온도에 카본이 사라지는지 확인하기 위해 여러 실험을 해봤다.
"우리가 800℃에서 소금을 익히는데 300℃일 때 물을 끼얹어서 어떻게 됐나 보고, 또 500℃에서도 똑같이 확인해보고 그랬어. 그러다가 알게 됐지. 600℃가 되면 카본이 날아가는구나, 하고."
소금의 융점은 800℃이다. 800℃가 되면 액체로 변하고 900℃가 되면 다 기화가 돼서 사라진다. 시중에서 볼 수 있는, 1600℃에서 구웠다고 광고하는 제품은 소금을 굽는 게 아니고 끓여 녹인 후 식히고 깨서 만든 거다. 이학주 대표는 소금은 소금의 본질이 있다고 말한다. 짠맛. 소금은 하나의 조미료일 뿐 이를 만병통치약으로 광고하면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우리 앞에 소금이 있기까지
"좋은 계절에 좋은 바람을 만났을 때 탄생한 소금. 소금을 만들 때 태양도 중요하지만 바람도 굉장히 중요해. 그리고 계절이 중요하지. 태양과 바람이 완벽한 시기는 5~6월이야. 그리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청결. 무조건 깨끗하게 만들어야 해. 먹는 것이기 때문에 장난을 치면 안 돼."
이학주 대표는 소금은 그저 염화나트륨일 뿐이라고 말하면서도 구운 소금을 만드는 것에 있어서 누구보다 진지하고 엄격하다. 그런 그가 ‘단양’이라는 지역색을 살린 마늘소금을 만들었다고 소개할 때, 기대가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마늘을 구워보니까 잘 안 깨지는 거야. 프라이팬에 마늘 구우면 금방 딱딱해지듯이 말이야. 그런데 황토방에서 3일을 구우니까 되더라. 내가 만들었지만 맛있더라고. 왜냐하면 우리 마늘소금에는 마늘이 20% 들어가 있거든. 시중에 나온 것들 보면 영 점 몇 퍼센트 들어가 있거나 향을 첨가한 정도야."
소금에 대하여 말하는 이학주 대표의 표정엔 자부심이 넘친다. 그는 팔기 싫을 정도로 자신이 만든 소금이 마음에 든다고 한다. 소금을 구워서 꺼낼 때 보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고. 누군가 이걸 먹는다고 생각하면 진짜 잘 만들 수밖에 없다고 하는 그에게 커다란 책임감이 느껴졌다.
금수레의 주문 전화는 무조건 대표가 받는다.
"아, 이 소금 정말 맛있다", "이 소금 먹다가 다른 소금 못 먹겠다" 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고. 그거에 보람을 느낀다는 그는 매일 더 좋은 소금을 만들기 위해 연구한다.
장소 정보
경기도 안양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고 있다. 변두리의 글이 있다고 생각한다. 시집을 살 때 시보다 시인의 말을 오래 보고, 지름길을 놔두고 에둘러 가는 산책길을 선호한다. 패션을 전공하고선 라이프스타일매거진 《어라운드》, 《컨셉진》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5년이 지난 지금은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 다시 패션 일을 하고 있다.
댓글(0)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단양] 소금 앞에서 정직한 남자'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제주의 역사와 문화가 흐르는 곳
인문쟁이 양혜영
하늘과 바람과 숲, 그리고 ‘책’
인문쟁이 한초아
관련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