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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 홉으로 호프(Hope)를 만든 농촌기획자

홍천 용오름 맥주마을 정운희 대표

김지혜

2018-06-29


사람보다 나무가 많고 맑은 계곡물이 지천으로 흐르는 곳. 홍천터미널에서 초록을 따라 한 시간 정도 가다 보면, 용오름 맥주마을과 만난다. 계곡 옆으로 자메이카가 연상되는 컨테이너가 보이는데 그곳이 정운희 대표의 기지이자, 발전소이다. 외지인에서 현지인이 되기까지, 마음을 일군 그만의 인심 농사가 결실을 보고 있다.

 

홍천 용오름 맥주마을 정운희 대표



발품 팔아 찾은 행복의 기준   


홍천군 서석명 검산리 용오름마을. 이곳은 비범한 아이가 용이 되어 하늘로 승천했다는 전설만큼 신비로운 자연을 간직하고 있다. 여름 한 철 관광객이 찾기도 하지만 주민 대부분이 농사로 생계를 꾸린다. 자연이 일터이자 터전인 셈. 이곳에 정운희 대표가 등장했을 때 마을이 소란스러웠던 건 당연한 일이었다.


최대한 멀리, 많이 가볼 것. 20대에 이집트를 시작으로 지구촌 곳곳을 여행한 정운희 대표는 태국에서 소위 잘나가던 사업가였다. 소비뿐인 삶에 염증을 느끼지 않았다면 그는 아직 방콕 어딘가에 살았을지 모른다. 남부러울 것 없던 그가 돌연 홍천에 자리 잡겠다고 했을 때, 주변 반응은 한결같았다. 왜 굳이 귀촌을 선택하냐는 것. 연고도 없는 곳에서 터를 잡는 게 쉬운 일도 아니고 시골 생활에 낭만만 존재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정운희 대표도 처음부터 쉽게 생각한 건 아니다. 다만 그에겐 남다른 경험치가 존재했다.


“유럽부터 동남아, 중앙아시아 등 여행에서 얻은 게 많은데요. 가장 큰 깨달음은 남들 기준이 아니라 내 기준에 맞는 행복을 찾자는 거예요. 태국에서 소위 잘나가는 사업가로 사는 것도 좋았지만 좋은 집, 고급자동차가 제가 바라던 행복은 아니더라고요. 되돌아보니 숲에서 지낼 때 가장 행복했어요. 그래서 귀국한 뒤, 반대하는 부모님을 설득해 용오름 마을로 들어가게 되었죠.”


행복을 찾아 용기 내어 찾아간 마을. 그러나 모두가 그를 반가워하진 않았다. 땅을 밟고 자란 주민들 눈엔 알록달록한 게스트하우스도 캠핑장도 그저 마을 분위기를 헤치는 일로 보였다. 외지인에서 벗어나기. 정운희 대표에겐 큰 숙제가 아닐 수 없었다. 



마을에서 제일 바쁜 사람


삶의 기반을 도시에서 자연으로 옮기는 일.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나무를 옮겨 심으면 병이 나듯 사람도 마찬가지다. 귀촌은 뿌리가 내릴 때까지 크고 작은 몸살을 겪을 수밖에 없다. 개개인이 보장되는 도시라면 모를까, 한 집 건너 숟가락 개수까지 아는 농촌은 삶의 방식이 달랐다.


“게스트하우스를 짓는데 분명 합법적으로 허가를 받았는데도 마을 주민들이 돌아가면서 구청에 민원을 넣는 거예요. 캠핑장 앞에 건축 자재를 쌓아뒀더니 쓰레기 무단 투기라고 신고하고, 하천 범람을 막으려고 물길을 넓혔다가 원상복귀하는 일도 있었죠.”


당시엔 몰랐다. 아무 상의 없이 제 마음대로 땅을 갈아엎고 물길을 바꾸는 게 얼마나 마을 주민의 심기를 건드리는 일인지. 떠나고 싶다는 생각도 잠시나마 했었다. 하지만 말이 안 통하는 나라에서도 사람들과 잘만 어울렸던 경험이 그를 붙잡았다. 훼방꾼이 아니라 마을을 아끼는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기로 한다. 귀촌에서 귀농으로 목적이 변경된 순간이었다.


“접근 방식이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죠. 먼저 다가가고 진심을 전했어야 했는데. 그래서 저도 농부가 되기로 했어요. 주민들에게 동질감을 주어야 했으니까요. 다만 그냥 농사는 아니고 마을을 재미나게 만들어 줄 뭔가를 찾고 싶었어요. 그래서 도서관에 가서 홍천의 역사부터 지리, 지형을 공부하기 시작했죠. 우연히 20년 전 홍천에서 맥주 원료인 홉이 재배되었다는 자료를 보게 되었고요.”


주류회사들은 저가 홉이 수입해 쓰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홉은 재배하지 않는다. 홍천 홉이 사라진 것도 판로 때문. 정운희 대표는 여기에 주목했다.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은 하는 건 그가 가장 잘하는 일이었다. 기발한 생각과 진심을 담아 주민들을 찾아갔지만 반응은 싸늘했다. 주민들은 홉을 길러 어디에 팔 것인지 반문했다. 그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였다. 홉을 직접 기르고 수제맥주 바싸(BASSA)를 만들어 보인 것. 2015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 관광두레사업의 일환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제야 주민들은 색안경을 벗고 정운희 대표를 인정해주었다.


정운희 대표와 홉


귀촌 선배이자 정운희 대표를 도운 류지욱 사무장은 “검산 맥주를 만들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갈수록 좋은 결과가 나오고 있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홉을 호프(HOPE)로 만든 정운희 대표는 이제 마을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다.


정운희 대표와 류지욱 사무장



나 보다 우리라는 이름의 희망


네팔 남동부 테라이 평원의 룸비니는 싯다르타가 태어난 곳이다. 네팔 여행 중 정운희 대표는 그곳에서 일주일간 머무른 적이 있다. 전기도 문명도 닿지 않는 곳에서 명상으로 하루 하루를 보낸 그는 공평하게 나눠 갖는 삶을 고민했다고 한다.


“완전한 평등은 아니더라도, 되도록 차이가 나지 않는 삶은 불가능 한가. 그런 고민을 많이 했어요. 나 혼자 잘 먹고 살아봤자 별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홉 농사는 다른 농사보다 수익이 높아요. 언젠가 홍천 전체에 홉 농사를 짓게 될 수도 있겠죠. 저는 그때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생각이에요. 기회는 공평하게 주되, 특정인만 많이 갖는 환경을 제어하는 거죠.”


한 사람이 아닌, 모두를 위한 이익. 정운희 대표는 목표한 바를 이뤘을 때 얻는 성취감이 삶의 동력이다. 목표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것일 때, 배로 기쁘다. 그리고 즐겁다.


“저는 일하는 게 좋아요. 새로운 일을 기획하는 것도 좋고. 재미있어요. 저에게 성공은 물질적인 게 아니라 재미에요. 누군가가 저를 보며 진짜 재미있게 산다고 말하는 거죠.”


그는 마을의 안녕을 위해 애쓰는 동시에 후배 양성에도 힘쓸 계획이다.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지 모르는 이들에게 방법을 알려주고 포기하지 않도록 기운을 불어넣고 싶다. 그렇게 남들과 조금 달라도 자신의 꿈을 위해 사는 이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100평 남짓한 홉밭. 줄을 타고 하늘을 향해 자라는 초록 잎사귀는 정운희 대표의 희망과 닮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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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귀농
필자 김지혜
김지혜

사람이라는 텍스트를 좋아하는 인터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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