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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최북단 섬 여행기

인천 대청도와 백령도에서 보낸 1박 2일

인문쟁이 김세희

2018-06-14

텔레비전에 최불암 씨가 나왔다. 홍어 한 접시를 앞에 둔 그가 '대청도의 맛'을 전하자, 나는 가족들에게 우쭐거리기 시작했다. 인천에서 쾌속선 타고 3시간 반이면 간다는 둥, 대청도는 삭히지 않은 홍어가 유명하다는 둥, 백령도에서 북한의 모습이 보인다는 둥,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던 이야기를 술술 꺼냈다.

 

대청도 사막은 살아있다.

 

하늘이 길을 열어주었다.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자 새벽잠 설친 보람이 사라질까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구글맵으로 현 위치를 보니 망망대해의 점 하나, 진짜 대청도였다. 서둘러 짐부터 풀고 주인 아저씨의 조언에 따라 '농여해변'으로 향했다. 바다 속에 몸을 숨겼다가 하루에 두 번, 수줍게 자태를 드러낸다는 풀등 타이밍! 바다의 속살을 살갗으로 느껴보고 싶어 신발을 벗었다.

 

대청도 '농여해변'의 주인공. '풀등(바다에 있는 모래언덕)'
▲ 대청도 '농여해변'의 주인공, '풀등(바다에 있는 모래언덕)' ⓒ김세희

 

원래 풀등이라는 게 넓기만 한 것이 아니라 언덕처럼 높기도 했다는데, 모래 채취로 인해 높이는 낮아지고 조금씩 자취를 감추고 있다고 한다. 우린 놓치고 싶지 않을 때 카메라 셔터를 누르곤 하지만, 풀등만큼은 놓쳐도 괜찮은, 언제나 만날 수 있는 오브제였으면 하고 바랐다.


바닷물이 빠지면서 모래에 순간 포착되어버린 물결을 만난다면 '연흔'이라고 이름을 부르면 된다. 구불구불한 모습이라 힘이 없을 것 같지만, 손가락으로 톡톡 만져보면 단단하고 탄탄한 반전의 결을 느낄 수 있다. 오랜 시간을 머금은 모래만이 가질 수 있는 내공. 사람의 손이 타지 않은 대청도의 진수다. 지층이 세로로 되어 있어 고목나무를 보는 것 같다고 붙여진 '고목나무'란 명칭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인 것 같다. 켜켜이 세월을 담아낸 녀석은 바위 그 이상이었으니까.

 

연흔   고목바위
▲ 지질학적 가치를 지닌 '연흔'과 '고목바위' ⓒ김세희


'사막'을 만나야 했다. 대청도 해안 사구는 계절에 따라 모래의 이동이 달라지는 활동성 사구, 국내에서는 드문 모래사막이라 한다. 눈으로 꼭 확인해야만 했다. 걷고 걸어 산중턱에 펼쳐진 모래사막을 마주했다. 모래가 학교를 덮쳐 다른 곳으로 옮겼을 정도로 여전히 사막의 힘을 과시하고 있다니. 이를 막기 위해 방사림으로서 소나무를 많이 심어놓았다고 한다. 보드라운 모랫결에 그만 주저앉았다. 손바닥으로 헤엄치듯 모래밭에서 이리저리 뒹굴거리다가 햇살 아래서 잠 한 숨 청해도 좋을 것 같았다.

 

사막 트레킹이 가능한 대청도   사막 트레킹이 가능한 대청도 낙타 모형
▲ 사막 트레킹이 가능한 대청도 ⓒ김세희

 

주민 반 군인 반, 백령도

 

인천항에서 뱃길로 곧장 가면 2시간 걸릴 거리지만, 같은 위도에 북한 땅이 있어 4시간 남짓 가야만 하는 백령도. 인천에서 북서쪽 공해로 빠졌다가 가야 하는 최북단이 지닌 숙명이다. 여행을 하기에 앞서 백령도의 의미를 되새겼다. 한반도에 평화의 기운이 도래한 요즘, 앞으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두 손을 모았다.


서해최북단백령도 비석   천안함 46용사 위령탑
▲ 호국의 숭고함이 깃든 백령도 ⓒ김세희


'길게 늘어선 바위들이 풀같이 솟아있다'라는 뜻을 가진 '두무진'에 도착했다. 백령도에서 횟집이 즐비하게 있는 곳은 두무진 포구 정도라고 한다. 코끼리, 낙타, 잠수함 등으로 명명된 기묘한 기암괴석과 천연기념물인 노랑부리 백로, 점박이 물범을 만나길 원한다면 시기에 맞춰 1시간 남짓의 유람선 투어를 하는 게 좋다.

 

두문진 배(백령1호)
유람선 투어로 즐겨야 하는 두문진1    유람선 투어로 즐겨야 하는 두무진2

▲ 유람선 투어로 즐겨야 하는 '두무진' ⓒ김세희


공양미 삼백 석에 인당수에 뛰어든 심청. 남한의 인천 백령도와 북한의 황해도 장산곶 사이, 인당수는 실제로 있었다. 비록 안개 때문에 인당수를 보기가 어려웠지만, 다시 와야 할 이유 한 가지를 얻은 셈이다.


인당수를 볼 수 있는 심청각1  인당수를 볼 수 있는 심청각2
▲ 인당수를 볼 수 있는 심청각 ⓒ김세희

 

최근 서해 최북단의 섬 소청도, 대청도, 백령도 일대의 지질명소 10곳이, 환경부가 인증하는 국가지질공원 후보지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약 10억 년 전 우리나라 최초의 생명체 흔적인 ‘스트로마톨라이트(Stromatolite)’ 화석이 남아 있는 이 섬들은 국내 지질학의 보고로 여겨진다. 국가지질공원으로 인증 받고 나면 다음 차례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이 될 수 있겠지. 


호국보훈의 달이자 한반도가 평화 기운으로 들썩이는 6월, 서해 최북단으로 떠나온 이번 여행은 그 어느 때보다 특별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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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김세희


인천 섬 여행의 자료가 가득한 곳, 인천시 옹진군 관광문화 사이트
http://www.ongjin.go.kr/open_content/tour/

장소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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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희
인문쟁이 김세희

2019 [인문쟁이 3기, 4기, 5기]


김세희는 경기도 남양주시에 둥지를 틀고 있으며, 여행 콘텐츠 에디터로서 때로는 느슨하게, 때로는 발빠르게 노마드의 삶을 걷고 있다. 낯선 이가 우리의 인문 기억에 놀러오는 일은 생각만 해도 설레고 두근거린다. 더 많은 것을 꿈꾸고 소망하고 함께 응원하는 온기를 뼈 마디마디에 불어넣고 싶다. 어떤 바람도 어떤 파도도 잔잔해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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