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을 접해볼 다양한 기회들을 만나기a는 어렵지 않지만, 막상 참여할 용기를 내기는 쉽지 않다. 무언가 어렵고 심각하고 무거울 것만 같은 느낌 때문이다. 반면 인문예술캠프 ‘달빛감성’은 그 이름만큼이나 낭만적인 프로그램들로 채워져 많은 이들의 발걸음을 이끌었다. 이 캠프는 “‘달빛(文)’을 비추어 사람들의 감성을 살려내고, 인문/예술을 통해 소통하며 자신의 내면을 성찰해보도록” 구성했다고 한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주관한 이번 캠프에는 여러 인문예술영역에서 활동 중인 작가들이 초빙되어 직접 워크숍을 진행했다. 지난 7월, 8월에는 충남 아산시와 강원도 인제군에서 부모-자녀를 대상으로 한 ‘가족참여형’ 캠프가, 10월, 11월에는 경기 여주시와 경남 하동군에서 2030 세대를 위한 ‘청년참여형’ 캠프가 각각 4회에 걸쳐 열렸다. 청년참여형 캠프는 2박 3일간 자연 속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인문학적 물음들을 예술체험으로 풀어보는 프로그램으로, 이를 통해 ‘멋진 청년으로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즐겁고 치열하게 고민해보도록 기획되었다.
경계에서 질문하기 – 하동에서의 물음과 나눔
과연 인문학적 질문들을 예술 활동으로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까? 궁금하고 기대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 어렵지는 않을지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설렘과 불안을 동시에 안고, 달빛감성 캠프의 마지막 차수인 경상권 2차 일정에 참가하기 위해 하동으로 향했다.
이번 캠프는 지리산 자락의 켄싱턴 리조트를 중심으로, 소설 ‘토지’의 무대인 ‘최참판댁’과 화개장터 등 하동군 일대에서 진행되었다. 전국 각지에서 청년들이 도착하고, 미소난로 착한화덕의 발명가, 작은세상 김택경 대표의 열림특강으로 일정이 시작되었다. 김 대표는 ‘경계에서 묻고 발견하고 나누다’를 주제로, 타인에 의해 결정되지 말고, 자신에게 솔직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기를 당부하며 청년들에게 격려를 전했다.
열림특강이 진행된 그랜드홀에는 자유롭게 질문을 쓰고 답하며 소통할 수 있는 커다란 ‘질문의 벽’이 설치되어, 일상의 문제에서부터 삶의 방향에 대한 고민에 이르기까지 진지한 문답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한편 ‘맛있는 다방’에는 따뜻한 차와 달곰한 과자가 마련되어 있었고, ‘꼬물꼬물’ 부스에서는 각자 실팔찌를 만들어볼 수 있도록 고운 색실들을 나누어주었다. 처음에는 실팔찌를 왜 만드는 건지 의아했는데, 캠프 기간 내내 꾸준히 실을 엮어나가는 동시에 사람들과의 관계도 조금씩 더 이어나가면서 그 의미와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 '질문의 벽'에 글과 그림을 남기고 있는 참가자들
열림특강 후에는 팀별 첫 워크샵이 이어졌다. 글쓰기, 그림, 음악, 춤, 커피, 사진 등 여섯 가지의 워크샵 가운데 1920~30년대의 춤들을 주제로 하는 ‘미드나잇in하동’ 팀에 참여해보았다. 이 워크샵은 춤이 본업이 아닌 세 작가들 - 목소리 연기자 애쉬, 일러스트레이터 구우, 동화작가 라니 – 이 진행했는데, 그래서 마음의 부담을 덜고 좀 더 편안하게 춤을 배워볼 수 있었다. 사실 찰스턴, 지터벅 등 처음 접하는 춤을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추려니, 시작할 때는 참으로 어색했다. 하지만 여러 파트너와 돌아가며 맞춰보면서 얼굴을 익히고, 각자의 어설픈 스텝과 어긋나는 턴에 연이어 웃음이 터지면서 어느새 서먹한 분위기는 사라지고 따뜻한 기운이 가득해졌다.
춤추면서 내가 어떻게 발을 딛어야 하고, 파트너와 어떻게 교차해서 움직여야 하는지를 계속 생각하다 보니, 자연히 내 삶에서의 나의 걸음과, 다른 이들과의 상호작용에 대해서도 떠올려보게 되었다. 서로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이며 춤을 이어가면서, 어떤 박자로, 어떤 호흡으로 소통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들이 이어졌다.
저녁식사 후에는 소속된 팀에 관계없이 원하는 작가의 특강을 들어볼 수 있는 ‘Living Library’ 프로그램이 진행되어, 커피를 주제로 한 조윤정 바리스타의 모임에 가 보았다. 예쁜 초들을 켜놓고 둘러앉아 여러 종류의 커피들을 나누어 마시면서, 각자 자신에게 커피가 어떤 의미인지 돌아가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커피에 관련된 사회적 현상 등 무거운 주제보다는, 각자의 삶에서 커피가 어떻게 일상의 일부를 이루는지, 또 커피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이어질 수 있는지와 같은 소소한 생각을 주고받았다. 개인의 삶과 생각을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었던, 커피만큼이나 향긋한 시간이었다.
▲ 워크샵별로 소리를, 그림을, 문장을 함께 만들어냈다.
이튿날에는 저녁 전까지 팀별로 워크샵을 진행하고 페어웰 파티를 준비하는 시간을 가졌다. 글쓰기를 하는 ‘배낭을 메다’팀은 글을 쓰기 위해 새벽부터 산으로 길을 나섰고, 다른 팀들도 여러 공간을 돌아보며 다양한 방식으로 각자 워크샵을 진행했다. ‘미드나잇in하동’ 팀은 첫날 배운 춤을 실내에서 좀 더 익힌 뒤, 최참판댁과 동정호를 둘러보며 춤추는 영상을 만들기로 했다. 비가 쏟아지고 안개가 자욱했지만, 우비를 쓰고 춤추며 산자락을 누볐다. 빗속에서도 자유롭게 웃고 움직이면서, 몸은 축축해졌지만 마음은 보송보송해지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다른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현재의 자신에게 충실하며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열림특강에서 들었던 ‘나에게 솔직할 수 있는 용기’가 떠올랐다. 그 용기는 어떻게 해야 찾을 수 있을까?
이런 물음들 속에 날이 저물고, 각 워크샵에서 작업한 결과들을 함께 만나보는 페어웰 파티가 시작되었다. ‘나에게 커피란 _다’ 팀이 내려주는 커피를 마시며 ‘끄적끄적 길드로잉’ 팀이 지리산 자락에서 그려온 그림들을 둘러보고, 앞에서 연주하는 ‘오즈의 음악여행’ 팀을 따라 노래를 부르며 지하에서 2층까지 줄지어 이동하면서 축제 분위기가 점차 무르익었다. 음악 워크샵 참가자들이 함께 가사를 쓰고 편곡하여 만든 노래 공연을 들은 뒤, 사진예술을 중심으로 정체성을 탐구한 ‘거울속에 비친 나’팀의 무대를 보았다. 감춰져 있던 내면의 모습들을 발견하고 이를 분장과 연기를 통해 표현해낸 것으로, 깜깜한 가운데 불빛과 음악을 통해 만들어낸 아름다운 움직임이 보는 이들을 감탄하게 했다.
▲ 비내리는 최참판댁과 안개낀 동정호 정자에서, 자유롭게 춤추며 보낸 시간
페어웰 파티의 마지막 순서는 밴드 ‘오즈’의 공연과 함께하는 ‘미드나잇in하동’팀의 춤 공연이었다. 80여 년 전의 춤이기에 낯설고 처음 배운 춤이기에 어설프지만, 즐겁게 함께 배운 춤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공연으로 보여주기만 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다른 참가자들의 손을 하나둘씩 이끌어 점점 다함께 춤추는 장으로 이어갔다. 모두가 어우러져 자유롭고 신나게 춤을 추면서, 일상 속의 여러 규범들과 스스로가 만들어놓았던 틀을 벗어나, 갇혀있던 자신을 풀어주고 내면의 나와 만나는, 그리고 자유롭게 다른 이들과 어울리는 해방과 소통의 경험을 해볼 수 있었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한참동안 춤이 이어지다가 점차 느린 음악과 움직임으로 바뀌었고, 마지막에는 모두 숨을 고르며 바닥에 누웠다. ‘배낭을 메다’팀이 직접 걸으며 길에서 써온 글을 성우 ‘애쉬’가 읽어주었다. 지금의 청년들이 누구나 할법한 고민과 무거운 마음이 담겨 있었는데, 조금전까지 함께 춤추다가 옆에 누워있을 누군가가 쓴 글이기에 더욱 공감이 갔다. 쉽지 않은 고민들이지만, 함께 답을 찾아나갈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계속해서 물음들이 이어졌다.
이번 캠프의 기획자 ‘고무신’은 기획의도에서 듣고(聞), 달빛(Moon)의 영감을 받고, 질문하고(問), 경계(門)를 넘어서며 함께 무늬를 만들어가는(文) 다섯 가지 ‘문’을 제시했다. 페어웰 파티를 마치면서, 이 과정을 모두 거쳐, 함께 무늬를 만드는 마지막 ‘문’에까지 이르렀음을 느낄 수 있었다.
▲ 음악과 춤으로 함께한 소통의 장
돌아오며 – 함께 비추며 걸어 나갈 길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는 계절의 경계에서, 두 지역의 경계에 자리한 하동에서의 2박3일은 그렇게, 너와 나의,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오가며 즐거이 흘러갔다. 정부의 공공기관에서 주최하는 프로그램은 딱딱하고 형식적일 것 같다는 선입견도 들 수 있는데, 달빛감성 캠프에는 어떤 교훈적 설교도, 규범적 강요도 없었다. 자유롭고 따뜻한 분위기에서 예술을 매개로 충분히 경험하며 자유롭게 표현하고, 깊이 공감하며 소통했다. 그래서인지, 이번에 수능시험을 보고 이제 막 청소년을 벗어난 새내기 청년부터, 숨가쁘게 달려온 20대를 지나 새로운 고민들을 마주하고 있는 늦깎이 청년에 이르기까지, 나이도, 하는 일도 다른 청년들이 각지에서 모였음에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사람과 삶에 대해 마음껏 고민하고 표현해보는, 진지하지만 무겁지 않은, 유쾌하지만 가볍지 않은 시간이었고, 캠프에서 제시된 ‘멋진 청년으로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하여 완성된 답안을 써내지는 못했지만 그 고민을 계속해나갈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언제쯤이면 날아오를 수 있을지, 날아오를 수 있기는 한 건지, 청년들의 불안과 막막함은 점점 더해가는 것 같다. 뿌연 안개로 앞이 보이지 않는 활주로를 숨 돌릴 틈도 없이 달려야 하는 현실, 청년들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그런 지금의 청년들에게 이번 달빛감성 캠프는, 그 안개를 걷어줄 수는 없지만 어둠을 뚫고 나아갈 빛을 쥐어주고, 계속 걸어갈 용기를 채워주었다. 칠흑같은 밤에도 길을 비춰주는 달빛처럼, 자유롭게 움직이고 함께 웃으며 소통했던 캠프에서의 시간들은 단단하고 따뜻한 빛으로 간직될 것 같다. 깜깜한 길이지만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갈, 그리고 자신의 빛으로 다른 이들을 비춰주며 함께 걸어나갈 모든 청년들의 발걸음을 기대하며 응원해본다.
엄소연은 경기 고양시에 살고, 책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좋아한다. 춤과 음악에서 힘과 용기를 얻고 있으며, 이를 무대에서 사람들과 나눌 때 가장 큰 기쁨을 느낀다. 어디에서든, 누구에게서든 그의 잠재력과 가능성에 주목하고자 한다.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인문쟁이에 지원했다. 더 많은 가능성들을 발견하고 함께할 수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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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예술캠프 '달빛감성'
나와 만나고 너와 나누며, 우리로 걸어가기
인문쟁이 엄소연
2016-01-05
사람(人)들과 달빛(Moon)아래 함께하다
‘인문’을 접해볼 다양한 기회들을 만나기a는 어렵지 않지만, 막상 참여할 용기를 내기는 쉽지 않다. 무언가 어렵고 심각하고 무거울 것만 같은 느낌 때문이다. 반면 인문예술캠프 ‘달빛감성’은 그 이름만큼이나 낭만적인 프로그램들로 채워져 많은 이들의 발걸음을 이끌었다. 이 캠프는 “‘달빛(文)’을 비추어 사람들의 감성을 살려내고, 인문/예술을 통해 소통하며 자신의 내면을 성찰해보도록” 구성했다고 한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주관한 이번 캠프에는 여러 인문예술영역에서 활동 중인 작가들이 초빙되어 직접 워크숍을 진행했다. 지난 7월, 8월에는 충남 아산시와 강원도 인제군에서 부모-자녀를 대상으로 한 ‘가족참여형’ 캠프가, 10월, 11월에는 경기 여주시와 경남 하동군에서 2030 세대를 위한 ‘청년참여형’ 캠프가 각각 4회에 걸쳐 열렸다. 청년참여형 캠프는 2박 3일간 자연 속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인문학적 물음들을 예술체험으로 풀어보는 프로그램으로, 이를 통해 ‘멋진 청년으로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즐겁고 치열하게 고민해보도록 기획되었다.
경계에서 질문하기 – 하동에서의 물음과 나눔
과연 인문학적 질문들을 예술 활동으로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까? 궁금하고 기대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 어렵지는 않을지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설렘과 불안을 동시에 안고, 달빛감성 캠프의 마지막 차수인 경상권 2차 일정에 참가하기 위해 하동으로 향했다.
이번 캠프는 지리산 자락의 켄싱턴 리조트를 중심으로, 소설 ‘토지’의 무대인 ‘최참판댁’과 화개장터 등 하동군 일대에서 진행되었다. 전국 각지에서 청년들이 도착하고, 미소난로 착한화덕의 발명가, 작은세상 김택경 대표의 열림특강으로 일정이 시작되었다. 김 대표는 ‘경계에서 묻고 발견하고 나누다’를 주제로, 타인에 의해 결정되지 말고, 자신에게 솔직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기를 당부하며 청년들에게 격려를 전했다.
열림특강이 진행된 그랜드홀에는 자유롭게 질문을 쓰고 답하며 소통할 수 있는 커다란 ‘질문의 벽’이 설치되어, 일상의 문제에서부터 삶의 방향에 대한 고민에 이르기까지 진지한 문답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한편 ‘맛있는 다방’에는 따뜻한 차와 달곰한 과자가 마련되어 있었고, ‘꼬물꼬물’ 부스에서는 각자 실팔찌를 만들어볼 수 있도록 고운 색실들을 나누어주었다. 처음에는 실팔찌를 왜 만드는 건지 의아했는데, 캠프 기간 내내 꾸준히 실을 엮어나가는 동시에 사람들과의 관계도 조금씩 더 이어나가면서 그 의미와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 '질문의 벽'에 글과 그림을 남기고 있는 참가자들
열림특강 후에는 팀별 첫 워크샵이 이어졌다. 글쓰기, 그림, 음악, 춤, 커피, 사진 등 여섯 가지의 워크샵 가운데 1920~30년대의 춤들을 주제로 하는 ‘미드나잇in하동’ 팀에 참여해보았다. 이 워크샵은 춤이 본업이 아닌 세 작가들 - 목소리 연기자 애쉬, 일러스트레이터 구우, 동화작가 라니 – 이 진행했는데, 그래서 마음의 부담을 덜고 좀 더 편안하게 춤을 배워볼 수 있었다. 사실 찰스턴, 지터벅 등 처음 접하는 춤을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추려니, 시작할 때는 참으로 어색했다. 하지만 여러 파트너와 돌아가며 맞춰보면서 얼굴을 익히고, 각자의 어설픈 스텝과 어긋나는 턴에 연이어 웃음이 터지면서 어느새 서먹한 분위기는 사라지고 따뜻한 기운이 가득해졌다.
춤추면서 내가 어떻게 발을 딛어야 하고, 파트너와 어떻게 교차해서 움직여야 하는지를 계속 생각하다 보니, 자연히 내 삶에서의 나의 걸음과, 다른 이들과의 상호작용에 대해서도 떠올려보게 되었다. 서로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이며 춤을 이어가면서, 어떤 박자로, 어떤 호흡으로 소통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들이 이어졌다.
저녁식사 후에는 소속된 팀에 관계없이 원하는 작가의 특강을 들어볼 수 있는 ‘Living Library’ 프로그램이 진행되어, 커피를 주제로 한 조윤정 바리스타의 모임에 가 보았다. 예쁜 초들을 켜놓고 둘러앉아 여러 종류의 커피들을 나누어 마시면서, 각자 자신에게 커피가 어떤 의미인지 돌아가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커피에 관련된 사회적 현상 등 무거운 주제보다는, 각자의 삶에서 커피가 어떻게 일상의 일부를 이루는지, 또 커피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이어질 수 있는지와 같은 소소한 생각을 주고받았다. 개인의 삶과 생각을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었던, 커피만큼이나 향긋한 시간이었다.
▲ 워크샵별로 소리를, 그림을, 문장을 함께 만들어냈다.
이튿날에는 저녁 전까지 팀별로 워크샵을 진행하고 페어웰 파티를 준비하는 시간을 가졌다. 글쓰기를 하는 ‘배낭을 메다’팀은 글을 쓰기 위해 새벽부터 산으로 길을 나섰고, 다른 팀들도 여러 공간을 돌아보며 다양한 방식으로 각자 워크샵을 진행했다. ‘미드나잇in하동’ 팀은 첫날 배운 춤을 실내에서 좀 더 익힌 뒤, 최참판댁과 동정호를 둘러보며 춤추는 영상을 만들기로 했다. 비가 쏟아지고 안개가 자욱했지만, 우비를 쓰고 춤추며 산자락을 누볐다. 빗속에서도 자유롭게 웃고 움직이면서, 몸은 축축해졌지만 마음은 보송보송해지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다른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현재의 자신에게 충실하며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열림특강에서 들었던 ‘나에게 솔직할 수 있는 용기’가 떠올랐다. 그 용기는 어떻게 해야 찾을 수 있을까?
이런 물음들 속에 날이 저물고, 각 워크샵에서 작업한 결과들을 함께 만나보는 페어웰 파티가 시작되었다. ‘나에게 커피란 _다’ 팀이 내려주는 커피를 마시며 ‘끄적끄적 길드로잉’ 팀이 지리산 자락에서 그려온 그림들을 둘러보고, 앞에서 연주하는 ‘오즈의 음악여행’ 팀을 따라 노래를 부르며 지하에서 2층까지 줄지어 이동하면서 축제 분위기가 점차 무르익었다. 음악 워크샵 참가자들이 함께 가사를 쓰고 편곡하여 만든 노래 공연을 들은 뒤, 사진예술을 중심으로 정체성을 탐구한 ‘거울속에 비친 나’팀의 무대를 보았다. 감춰져 있던 내면의 모습들을 발견하고 이를 분장과 연기를 통해 표현해낸 것으로, 깜깜한 가운데 불빛과 음악을 통해 만들어낸 아름다운 움직임이 보는 이들을 감탄하게 했다.
▲ 비내리는 최참판댁과 안개낀 동정호 정자에서, 자유롭게 춤추며 보낸 시간
페어웰 파티의 마지막 순서는 밴드 ‘오즈’의 공연과 함께하는 ‘미드나잇in하동’팀의 춤 공연이었다. 80여 년 전의 춤이기에 낯설고 처음 배운 춤이기에 어설프지만, 즐겁게 함께 배운 춤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공연으로 보여주기만 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다른 참가자들의 손을 하나둘씩 이끌어 점점 다함께 춤추는 장으로 이어갔다. 모두가 어우러져 자유롭고 신나게 춤을 추면서, 일상 속의 여러 규범들과 스스로가 만들어놓았던 틀을 벗어나, 갇혀있던 자신을 풀어주고 내면의 나와 만나는, 그리고 자유롭게 다른 이들과 어울리는 해방과 소통의 경험을 해볼 수 있었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한참동안 춤이 이어지다가 점차 느린 음악과 움직임으로 바뀌었고, 마지막에는 모두 숨을 고르며 바닥에 누웠다. ‘배낭을 메다’팀이 직접 걸으며 길에서 써온 글을 성우 ‘애쉬’가 읽어주었다. 지금의 청년들이 누구나 할법한 고민과 무거운 마음이 담겨 있었는데, 조금전까지 함께 춤추다가 옆에 누워있을 누군가가 쓴 글이기에 더욱 공감이 갔다. 쉽지 않은 고민들이지만, 함께 답을 찾아나갈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계속해서 물음들이 이어졌다.
이번 캠프의 기획자 ‘고무신’은 기획의도에서 듣고(聞), 달빛(Moon)의 영감을 받고, 질문하고(問), 경계(門)를 넘어서며 함께 무늬를 만들어가는(文) 다섯 가지 ‘문’을 제시했다. 페어웰 파티를 마치면서, 이 과정을 모두 거쳐, 함께 무늬를 만드는 마지막 ‘문’에까지 이르렀음을 느낄 수 있었다.
▲ 음악과 춤으로 함께한 소통의 장
돌아오며 – 함께 비추며 걸어 나갈 길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는 계절의 경계에서, 두 지역의 경계에 자리한 하동에서의 2박3일은 그렇게, 너와 나의,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오가며 즐거이 흘러갔다. 정부의 공공기관에서 주최하는 프로그램은 딱딱하고 형식적일 것 같다는 선입견도 들 수 있는데, 달빛감성 캠프에는 어떤 교훈적 설교도, 규범적 강요도 없었다. 자유롭고 따뜻한 분위기에서 예술을 매개로 충분히 경험하며 자유롭게 표현하고, 깊이 공감하며 소통했다. 그래서인지, 이번에 수능시험을 보고 이제 막 청소년을 벗어난 새내기 청년부터, 숨가쁘게 달려온 20대를 지나 새로운 고민들을 마주하고 있는 늦깎이 청년에 이르기까지, 나이도, 하는 일도 다른 청년들이 각지에서 모였음에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사람과 삶에 대해 마음껏 고민하고 표현해보는, 진지하지만 무겁지 않은, 유쾌하지만 가볍지 않은 시간이었고, 캠프에서 제시된 ‘멋진 청년으로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하여 완성된 답안을 써내지는 못했지만 그 고민을 계속해나갈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언제쯤이면 날아오를 수 있을지, 날아오를 수 있기는 한 건지, 청년들의 불안과 막막함은 점점 더해가는 것 같다. 뿌연 안개로 앞이 보이지 않는 활주로를 숨 돌릴 틈도 없이 달려야 하는 현실, 청년들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그런 지금의 청년들에게 이번 달빛감성 캠프는, 그 안개를 걷어줄 수는 없지만 어둠을 뚫고 나아갈 빛을 쥐어주고, 계속 걸어갈 용기를 채워주었다. 칠흑같은 밤에도 길을 비춰주는 달빛처럼, 자유롭게 움직이고 함께 웃으며 소통했던 캠프에서의 시간들은 단단하고 따뜻한 빛으로 간직될 것 같다. 깜깜한 길이지만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갈, 그리고 자신의 빛으로 다른 이들을 비춰주며 함께 걸어나갈 모든 청년들의 발걸음을 기대하며 응원해본다.
사진제공_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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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쟁이 1,2기]
엄소연은 경기 고양시에 살고, 책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좋아한다. 춤과 음악에서 힘과 용기를 얻고 있으며, 이를 무대에서 사람들과 나눌 때 가장 큰 기쁨을 느낀다. 어디에서든, 누구에게서든 그의 잠재력과 가능성에 주목하고자 한다.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인문쟁이에 지원했다. 더 많은 가능성들을 발견하고 함께할 수 있길 기대한다. like_ballet@naver.com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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