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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마주보며 맞이하는 또 다른 세상

<선망국의 시간> 문화인류학자 조한혜정

“이제는 더 잘사는 방법이 아니라 더 건강하게 사는 방법을 찾아야 해요”

2018.10.17


대한민국은 유례없이 빠른 근대화와 민주화를 이뤄냈지만, 최근 사회 곳곳에서 혐오와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문화인류학자 조한혜정은 저서 <선망국의 시간>에서 이미 내리막길에 들어선 근대 문명에서 대한민국은 먼저 망해가는 나라 ‘선망국(先亡國)’이 되었다고 진단한다. 언뜻 비관적인 이야기로 들리지만 사실은 낙관론을 깔고 있다. 이 ‘선망국’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먼저 망한 나라’가 아니라 먼저 위기를 극복한 ‘선망하는 나라’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인류학자 조한혜정


Q. 한국을 '선망국(先亡國)'이라고 정의하셨습니다. 어떤 뜻인가요?

A. 결핍과 상대적 박탈감으로 약자에게 분풀이하는 사회가 되었어요.


끊임없이 경제가 성장하고, 세상이 계속 좋아질 것이라고 믿는 근대 문명은 수명을 다했어요. 현실은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데 우리는 여전히 성장만 추구하고 있어요. 그러니 다들 지쳐서 서로에 대한 신뢰나 환대, 시민적 공공성이라는 게 없어졌어요. 각자 결핍이나 상대적 박탈감만 가지고 있어요. '누구는 강남에 아파트를 사서 횡재했다던데' 하는 식으로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면서 자신의 행동과 결정을 실패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가령 예전에는 어른이 되면 직장도 생기고 돈도 벌고 결혼도 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직장 자체가 사라져가는 상황이잖아요. 그럼 저런 꿈을 꾸고 자란 사람들은 결핍과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어요. 그 감정들을 누군가에게는 풀어야 하니까 혐오와 적대가 일어나는 것 같아요. 약자에게 분풀이하는 사회를 만들어버린 거죠. 이게 '갑질'과 성폭력 같은 사회 문제로 표출되고 있어요. 제가 말하는 먼저 망한 나라 '선망국'의 모습입니다.



Q. 왜 유독 한국이 선망국이 된 걸까요?

A. 다들 개별적 생존에만 급급하니까, 인간 대 인간으로서 서로를 포용하는 문화가 자리잡지 못했어요.


언제부터 시민들이 서로에게 적대적으로 행동하게 됐을까, 그걸 고민했어요. 우리는 굉장히 압축적으로 성장한 나라에요. 오로지 부강한 나라가 되기 위해 단합만을 강조하며 달려오다 보니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서 일을 하는 문화, 서로를 건강한 노동자로 인식하는 문화가 자리잡지 못했죠. 군대 문화와도 연관되어 있고요. 남성들은 군대에서 사회적 존재로서의 감각을 익힌다고 하는데, 그게 상생이 아니라 서로 결탁해서 주류를 만들고 약자를 괴롭히는 방식으로 나타나기도 했어요. 군대를 나와 회사에 가서도 권위에 복종하는 것을 당연시하고, 자기편, 자기 인맥만 챙기는 거예요.


여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적 영역이나 회사에 진출하는 여성이 늘면서 조직문화가 바뀌는 걸 보고 저는 한국도 선진국으로 갈 거라고 예상했어요. 하지만 IMF 사태를 겪으면서 다시 남성 중심적인 인맥 사회가 공고해졌죠. 서지현 검사의 사례에서 보듯이 남성 중심의 인맥 문화는 법조계에서조차 성폭력을 방조하게 만들었어요.


또 입시 교육이 강화되면서 시민들의 내면이 점점 더 피폐해진 것 같아요. 불안한 부모와 사교육 시장이 만나 상승효과를 내면서 모두가 더 잘살고 싶은 욕망에 시달리는 거예요. 돈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돈 중심으로 굴러가는 삶을 멈추지 못하게 된 겁니다. 요즘 시대에 부부는 기획된 가족, 즉 아이를 키우는 동업자라고 할 수 있어요. 친밀성에 대한 기대 없이 굴러가는 거죠.


문화인류학자 조한혜정


Q. 이 '선망국의 시간'을 잘 보내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서로를 포용하면서, 서로 힘이 되는 관계를 맺기 위해 정성을 쏟아야 합니다.


'이런 구조 안에서 자란 아이들은 어떤 인간이 될까?' 우리는 그걸 질문해야 해요. 계속 이렇게 가면 여성 혐오, 동성애 혐오, 난민 혐오 등 주류가 아닌 타자는 절대 수용할 수 없는 형태로 가게 돼요. 무턱대고 내 앞만 보고 내달리던 걸음을 멈추고, 숨을 고르면서 서로를 바라봐야 해요. 서로를 포용할 수 있어야 해요. 진화의 핵심은 다양성이에요. 사회 환경이 바뀌어 기존의 메인스트림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때 선택할 수 있는 다른 무엇이 있어야 하니까요. 계속 서로가 대안이 되고 서로가 힘이 되는 관계를 맺기 위해 에너지와 정성을 쏟아야 합니다.


저는 이걸 연대라기보다는 공감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갑질'을 하는 사람 본인은 그 사실을 모르지만, 옆에서 보기에는 '저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줄 아는 인간인가?'라는 생각이 들잖아요. 이런 공감 능력과 인간성을 회복하지 않으면 그 다음은 무엇도 있을 수 없어요. 그런 의미에서 촛불집회는 굉장히 고무적인 일이에요. 굉장히 좋은 토양이 만들어졌어요. 광화문에 시민들이 나온 것은, 개별적 생존에 급급해 현실에 안주했던 시민들이 사회 구조를 보기 시작한 거고, 서로 공감하면서 '가만히 못 있겠다'라고 판단한 것이거든요. 여기 나왔던 시민들이 다시 잠잠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의 역할도 필요하고요.



Q. 국가의 역할을 언급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일까요?

A. 다양한 시민들이 공생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안전망과 적절한 제도를 마련해줘야 합니다.


서로 결탁하는 고리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들을 공적 영역에서 적극적으로 밀어줘야 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여성들에게도 힘을 실어주고. 특히 지금 꼭 해야 하는 일이 있다면 기본소득에 관한 논의라고 봐요. 20년 계획을 세워서 먼저 청년들에게 실험해 보면 좋겠어요. 스무 살 청년들 모두에게 700만 원씩 주고 그들이 기본소득을 가지고 세계 여행을 하든, 제주도에 가서 어떤 작당을 하든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는 거죠. 물론 이렇게 말하면 '선생님은 이상주의자시군요'라고들 하죠. 하지만 제 이야기는 청년들에게 시대에 맞지 않는 교육을 시켜 희망 없이 사회에 내보낸 것에 대해 이 사회가 미안하다고 말해야 한다는 거예요. 지금까지는 청년배당이라는 것이 부모의 재산을 묻고, 잡다한 서류를 준비해오라고 하고, 돈을 주고 나서 보고서를 써오라는 식으로 관리하는 제도였죠. 청년들이 자부심을 가진 시민으로 대접받은 적이 없어요.


또한 다양한 시민의 출현에 따라 제도가 적절하게 바뀔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해요. 원래 국가라는 체제는 시민의 자유와 평등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개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고 그들 각자가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도록 평등한 권리를 주는 대신, 시민들로부터 세금을 받죠. 그래서 예전에는 여성들이 참정권을 요구했던 거고, 지금은 동성애자들이 '우리도 결혼하게 해달라'라고 하는 거예요. 영국에서는 동성애자들에게 결혼권 대신 파트너십을 줬다가 최근에 결혼권까지 주기로 했어요. 그랬더니 오히려 이성애자들이 '우리에게도 파트너십을 달라'라고 요구했다고 하더라고요. 사회는 그렇게 진화하는 겁니다.


문화인류학자 조한혜정


Q. 세상이 더 좋아질 수 있는 가능성이 아직 있다는 뜻인가요?

A. 더 좋아지지는 않더라도 더 건강하게 살아가는 방법은 찾을 수 있어요.


세상과 개개인의 삶은 점점 좋아지지 않을 게 분명하지만, 오히려 거기서부터 시작해서 더 건강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할 수 있겠죠. 인간은 의미를 찾는 존재예요. 나름대로 좋은 일을 하지 않으면 행복하지 않은 존재라는 거죠. 요즘은 해외 학회에 가서 이야기할 때도 결국 '라이프 폴리틱스(Life Politics)', 즉 생명 정치에 주목하게 돼요. 더는 숫자로 드러나는 GNP(국민총생산)나 경제선진국이라는 수식어에 집중하지 말고, 우리가 하나의 생명체로서 온전하게 살고 있는지 돌아볼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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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황효진
황효진
웹매거진 <ize>에서 기자로 일했고, 지금은 프리랜서 에디터이자 칼럼니스트. 문화와 라이프스타일에 관한 글을 기획하고 쓰거나,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글로 옮긴다. 읽고 듣고 쓰고 말하는 일 전부를 좋아한다. 인터뷰집 <일하는 여자들>과 에세이집 <아무튼, 잡지>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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