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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가만히 읽는 당신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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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와 가장 멍청한 나라의 넌센스

by 이태윤 / 2016.05.30


처음 보는 체위인데? 한참을 멍하니 누워 구름을 보다가, 감귤 잎사귀 하나 뒤집어 본다. 그러면 다른 잎사귀들 시선이 모두 그 곳으로 향하지, 뭔가 큰 사건이 일어났다는 듯이 바람도 불지 않았는데 누군가 들통났다는 듯이, 사방이 소란스러워 진다. 잎사귀에 풍문 하나 만들고 낄낄거리다 다시 누워, 체위를 바꾸고 흘러가는 구름을 본다. 저렇게 에로틱 하게 흘러갈 수도 있군.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저 관능적인 느림을 만들려면, 얼마만큼의 용기와 각오가 필요할까.

재작년 나는 ‘로맨틱만다린’ 농장의 농부가 되었다. 농부가 되기 전 몇 년은 서성거렸다. 사연 없이 삽질하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한때는 어떤 제도와 권위에 얽매이지 않는 예술가로 자립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삶이란 바람이 불지 않아도 가끔은 잎사귀처럼 뒤집어 지는 것이니까.

  • 감귤 박스
  • 감귤

손바닥이 노랗게 될 때까지 우리 이 세상에서 함께 달콤해지자! ⓒ이태윤

“그런데 하필이면 왜 농부가 되었어요?
글쎄요. 내 삶에 갑자기, 낭만적 리얼리즘이 도래했다고나 할까요?”

봄에는 만물에 새. 순. 돋. 는. 다.

그건 여섯 살 난 처녀 애 옥희도 알고, 나타샤도 알고, 찰리와 마틸다도 안다. 하지만 봄이 되면 우리들의 손가락 끝에서 또 투명한 손가락이 자라는 건 아무도 모르지. 매일 보는 풍경을 보는데 자신도 모르게 발 뒤꿈치가 올라가는 이유. 옆구리에서 그리움이 한 뼘 더 자라는 이유, 헤아릴 수가 없지

나는 농부가 되었고, 내 귓가에 맴돌던 리듬은 이제 태양의 주위를 맴돈다. 나는 내가 가지지 못한 자궁에 대해서 결국 이해하였다. 병들어 죽기 전 꽃을 만개 한 나무들에게서, 나무들의 성욕을 느꼈고, 매일 무수히 많은 생명들이 태어나고 죽어가는 소리를 들었다. 농부가 아니면 아무도 가질 수 없는 땅의 기억을 훔쳤다. 그리고 빚이 삼천 만 원이나 늘었다.

  • 감귤 나무
  • 나는 농사를 해서 첫 해 만에 새 집을 마련했어 이제 빚만 갚으면… ⓒ이태윤

“농부가 되니 어떠세요?”
“글쎄요. 에밀졸라와 목로주점에서 압생트를 마시다가, 도스토예프스키를 불러 포커 치는 기분이랄까요? 그런데 이상하게 돈은 셋 다 잃어요.”

농부가 된 후로 신기하게 내가 쉬는 날은 항상 비가 온다. 그래도 고맙게 내가 일하는 날에는 항상 맑고, 구름들은 여전히 관능적이고, 닭들의 울음은 우렁차다. 이 글을 읽는 그대의 기후는 어떠신지? 그대도 예술과 생태에 관심이 있고, 가끔은 전 지구적인 슬픔을 느끼시는지? 그대의 감성과, 건강을 책임지는 사람들이 왜 지독한 가난에 허덕이는지 알고 계신지? 혹은 그런 걱정 없이 안녕하신지?

  • 감귤 농장 풍경- 닭
  • 낭만감귤 농장의 비유들 ⓒ이태윤

언젠가 지렁이가 나에게 기어 와서 했던 농담

지구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와
가장 멍청한 나라의 넌센스

어느 날 (돈을 좋아하는) 천사가 지구에서 가장 가난한 아프리카에 찾아와 옥수수와 밀알을 뿌렸어. 어떤 가혹한 환경에도 죽지 않는 싹이 돋아났지. 혹시 그 이름이 뭔지 알아?
- GMO
그런데, 잠 잤다가 일어났더니, 그 GMO 식량들이 어디론가 다 사라져버린 거야. 천사도 기가 막힐 노릇이었지. 혹시 어디로 갔는지 알아?

 

감귤 새순 농부 지렁이
필자 이태윤
이태윤
대한민국 농부. 대학에서 시를 공부했다. 농부가 되기 전, 슬플 때 마다 사탕 먹으면서 쓴 시를 묶어 『캔디랜드의 기린들』 을 출간했다. 현재 제주도에서 ‘낭만감귤’을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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