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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감히 나를 무시해?

‘내 존재를 무시당한 느낌’에 대하여

이종산

2018-06-20

지하철 자리다툼 신경전

 

얼마 전에 지하철을 탔다가 불쾌한 일을 겪었다. 내 앞에 앉아있던 사람이 일어나면서 자리가 났는데 그게 문제의 시발점이었다. 그 자리는 내 관점에서는 내 앞자리였다. 내 왼쪽에 서 있던 여자의 관점에서는 그 여자의 앞자리였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 자리는 나와 내 왼쪽 여자의 중간에 있었다. 사실상 그 자리가 나와 내 왼쪽 여자 양쪽에 걸쳐져 있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아주 애매한 상황에 내가 먼저 한 발을 그 자리 쪽으로 디뎠다. 그 여자도 지지 않겠다는 듯 몸을 앞쪽으로 내밀었다. 한 발이 앞선 내가 몸을 자연스럽게 돌려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려는 순간, 그 여자가 내 어깨를 ‘밀었다.’ 그것도 손으로 말이다. 그 여자는 손으로 내 어깨를 밀었다.


어깨를 밀다니? 이건 엄연히 반칙이다. 지하철 자리다툼의 룰은 서로의 몸에 손을 대지 않는 것이 아니었던가? 나는 황당해서 그 여자를 쳐다봤다. 내 어깨를 밀어내고 자리에 앉은 그 여자는 뚱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 굳은 얼굴에서 어떤 의지가 느껴졌다. 난 그 의지를 이렇게 해석했다. ‘방금 전에 일어난 일로 네가 어떤 감정을 느끼든 난 무시하겠어.’


노려보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고작 그런 일로 화가 났는지 모르겠다. 모욕을 당한 기분이었다. 내 존재가 무시당한 느낌이었다. 그 사람이 나를 사람으로 보지 않은 것 같았다. 그 여자는 성가신 물건을 치우듯 나를 밀었다. 내 어깨에 손을 대고 나를 ‘지그시’ 밀어냈던 것이다. 차라리 ‘확 밀쳤다면’ 오히려 경쾌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손길은 정말이지 무시무시하게 불쾌했다. 아, 그래. 넌 날 잘 모르지. 그렇다면 내가 누군지 보여주겠어.


내가 어떤 인간이냐 하면 나는 심술궂고 소심한 인간이다. 나는 앙심을 품고 그 여자의 정면으로 가서 섰다(겨우 옆으로 한 발 옮긴 것뿐이다). 그러고는 고작 내가 뭘 했을까? 그 여자를 쳐다봤다. 그게 다였다. 그게 바로 나의 복수였다. 나는 분개한 채로 그 여자를 응시했다. 노려봤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하철 손잡이를 잡은 내 오른쪽 손은 미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그 여자가 내릴 때까지 한순간도 그 여자의 머리통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것이 너무나도 치졸하고 소심하고 뒤틀린 행위라는 것을 의식하고 있었지만, 그 순간에 나는 그 일을 ‘탁’ 털어버리고 다른 곳으로 갈 수가 없었다. 그날 나는 (미세먼지 때문에)마스크를 쓰고 있었는데 그게 나에게 그 여자를 그렇게 노려볼 수 있는 용기를 줬던 건지도 모르겠다.



사람이기 때문에 생기는 감정

 

나는 그렇게 시위를 하면서 내가 개인적으로 겪고 있는 분쟁과 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분쟁들을 생각했다. 그 분쟁들은 복잡했다. 어떤 분쟁이든 여러 사람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었다. 그 ‘이해관계’라는 것은 단순히 재산상의 이득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차라리 그랬다면 모든 문제가 훨씬 단순했을 것이다. 분쟁에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와 감정 문제가 엉켜 있다. 바로 그 때문에 갈등이 점점 더 깊어지고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린다.


나는 그날 왜 그렇게 분노했던 것일까? 왜 고작 그 정도의 일에 그렇게 커다란 모욕감을 느꼈을까. 나는 며칠 동안 그 일에 대해 생각해봤다. 사실은 다른 일들도 있었다. 식당에서 내가 주문한 것과 다른 음식이 나온 것 때문에 화가 나서 식당 주인에게 따졌고(나는 그가 실수했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돌아보니 내 실수였다), 공중화장실에서 나보다 나중에 들어온 사람이 나를 제치고 화장실 칸에 먼저 들어갔을 때도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그런 일들이 있을 때 내가 느낀 공통적인 감정은 무시당했다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타인들과 아주 사소한 갈등들을 겪으며 살아간다. 지하철 빈자리를 놓고 벌이는 신경전뿐만 아니라 이웃 간의 소음 문제, 화장실 칸에 누가 먼저 들어가느냐, 혹은 택시를 누가 잡느냐의 문제, 점원과 고객 간에 벌어지는 시비들. 


마음의 불씨

 


존재하기 위한 존중하는 여유

 

놀라운 것은 그렇게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사소한 것처럼 보이는 갈등이 때때로 말도 안 되게 커진다는 것이다. 최근 몇 주 동안의 뉴스만 봐도 그렇다. 소음 때문에 이웃을 살해한 사람이 있었다. 택시를 잡는 문제로 시비가 붙어서 큰 폭력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싸움을 하다 자신을 무릎 꿇게 한 사람에게 앙심을 품고 살인을 한 사건도 있었다.


이런 사건이 일어났을 때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말이 있다. ‘무시당했다고 느껴서’ ‘모욕당해서’ 사람은 무시당하면 모욕을 느끼고, 모욕을 느끼면 분노한다. 그런데 사람은 왜 작은 일로도 ‘내 존재를 무시당한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일까?


내가 보기에는 우리 사회의 많은 갈등이 ‘내 존재를 무시당한 느낌’ 때문에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사실 건강한 사람이라면 작은 일로 자신이 무시당했다고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자기 존재에 대한 확신은 보통 ‘자존감’이라고 표현된다. 현대 사회에서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란 자존감이 탄탄한 사람이다. 그리고 많은 자기계발서가 ‘자존감 올리는 법’을 설파한다. 아마존에서 53주 연속 베스트셀러에 올랐다고 광고되는 책 <신경끄기의 기술> 역시 작은 일에 분노하는 현대인들에 대해 얘기한다.


그 책이 그렇게 많이 팔린 건 그만큼 사람들이 작은 일에 신경 쓰고 화를 내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다. 현대 사회에서 자존감이 강조되는 것은 그만큼 우리 시대의 사람들이 자기 존재에 대한 확신 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일 테고 말이다.


그런데 어쩌면 이 시대의 사람들이 자기 존재에 대해 확신할 수 없는 것은 실제로 충분히 존중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도시의 사람들은 바쁘다. 신경 쓸 일도 많고, 신경 쓸 사람도 많다. 나와 상관없는 타인들을 일일이 존중할 여유 같은 건 없는 것이다. 붐비는 지하철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밀치며 지나간다. 그럴 때 사람들에게 타인은 그저 성가신 존재다. 서로가 서로를 ‘나’를 가로막는 방해물로 여긴다.


대도시에서 사는 우리는 나를 지나쳐가는 수천 명의 사람을 존중할 수가 없다. 평소에 너무 지쳐 있기 때문에 나와 상관없는 타인들에게 친절하기도 어렵다. 점점 무인판매를 선호하게 되는 것이나 통화보다는 문자를 편하게 여기는 것도 타인에게 소모할 감정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작은 일로 화를 내는 것, 사소한 문제가 커다란 갈등으로 번지는 것은 사람들의 마음에 분노가 타오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나는 충분히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는 작은 불씨다. 그 불씨는 작은 마찰만으로도 큰불이 될 수 있다. 

 


갈등을 극복하는 자세, 사랑

 

현대 사회는 스스로 자기 자신을 존중해야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하지만, 타인들을 존중할 여유가 없는 이곳에서 우리는 과연 자기 존재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있을까? 이곳에서 타인들이란 사물에 불과하다. 타인을 존중하기 어려운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우리가 스스로를 존중하기란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집에서 아무리 나는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되뇌어도, 밖으로 나가는 순간 우리는 우리를 사물로 대하는 수많은 타인과 마주치기 때문이다.


이런 세계에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사랑하거나 모르는 사람들을 존중하며 사는 것이 가능할까? 아니, 적어도 미워하지 않고 살 수나 있을까? 세상에서 갈등이 사라질 날은 요원해 보인다. 다행인 것은 그래도 가끔 친절한 타인들과 마주친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친절한 타인들’은 미스터리한 존재 같다. 이런 세상에 타인을 위해 친절을 베푸는 사람이 아직 남아 있다니. 어쩌면 그들은 세상의 균형(혹은 지구의 평화)을 지키기 위해 우주에서 파견된 외계 봉사단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봉사단이 있다면 나도 외계인들에게 납치되어 임무를 수행하고 싶다. 누군가를 미워할 때보다는 사랑할 때가 마음이 즐겁고, 마음이 즐거운 일을 의무적으로 한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면서도 아이러니하게 즐거운 일일 것 같다. 역시 사랑 만이 세계를 지킬 수 있는 것 같다고 이 글을 끝낸다면 너무 수상쩍어 보일까? (참고로 나는 어떤 신도 믿지 않는다. 작년부터 친구와 식물을 사랑하는 식물교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긴 하지만. 그 활동이란, 혼자 조용히 식물을 기르며 사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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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Amy 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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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이종산
이종산

1988년 서울 출생. 『코끼리는 안녕』,『게으른 삶』,『커스터머』. 연애소설을 좋아한다. 식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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