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에세이

가만히 읽는 당신의 이야기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나를 외롭게 하는 당신에 대하여

by 황정운 / 2018.09.12


1. 녹색으로 가득한 여름 낮 백석을 생각하며 홀로


J 선배를 떠올린다.


J 선배를 알게 된 건 내가 신입사원이었던 스물여섯 살 무렵이었다. 선배와 같은 부서는 아니었지만 같은 층에 있어 오고 가며 드문드문 서로 인사만 나누는 사이였다. 일로 겹치는 것이 많지 않아 사무적으로 엮일 것도 없고, 사무적으로 엮인 것이 없어 사사로이 따로 시간을 내어 만날 일도 없었다.


어느 날 밤 11시를 지날 무렵, 기지개를 펴고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를 걸어가는데 J 선배의 자리에 글귀가 적힌 J4 종이 한 장이 붙여져 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시 한 편을 인쇄해 놓은 종이다. 백석의 <흰 바람벽이 있어>라고 했다.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고 했다. 나는 한참 J 선배 자리에 서서 백석의 시를 읽었다. 늦은 밤 시 한 편 갑자기 읽었다고 해서 벅찬 감정이 밀려오는 것은 아니었다. 자본과 경쟁의 냄새로 가득한 사무실에 예고 없이 불현듯 찾아온 문학의 언어가 내게 문 두드리는 소리에 놀랐을 뿐이다. 다들 겉으로는 엄숙한 밥벌이에 삶을 내몰아 가고 있지만, 이처럼 한편으로는 자신만의 내밀한 언어를 품고 살아간다는 것을 조금 느꼈다. 나는 J 선배에 대해 조금은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에게 내밀한 언어를 빌려준 백석이 궁금해졌다. 백석(白石). 본명은 백기행.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흰 바람벽이 있어>,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南新義州柳洞朴時逢方)> 등의 시를 남기고 삼수갑산에 갇힌 채 세상을 떠났다. 얼마 되지 않는 백석의 흔적이 서울 성북구에 있다고 했다. 성북구 성북동 어딘가 길상사라고 했다. 길상사의 전신은 숱한 남자들이 기생과 함께 술을 먹던 요정 대원각.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주인공이기도 했던 김영한이 백석과 이루어지지 못하고 성북동 기슭에 요정 대원각을 차렸는데, 훗날 법정 스님의 가르침에 감화하여 요정 대원각을 불가에 사주했다. 그게 오늘의 길상사다.


길상사에 가보자고 했다. 아직은 여름 날씨가 짙어지기 직전의 6월 초 어느 날.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에서 내려 가파르고 좁은 언덕 길을 걸어 올라갔다. 길상사까지 가는 길은 끝없이 위를 향해 솟구치는 수직의 길이었지만, 경내에 들어서자 수평의 너른 마당이 고요하게 펼쳐져 있다. 나는 길상사 경내를 한 바퀴 천천히 돌았다. 그 해 3월에 입적하신 법정 스님의 영정과 유품이 전시된 진영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길 한 편에 시비(詩碑)가 하나 서 있었다. 조그만 다리를 건너 가까이 서니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시가 새겨져 있다. 시인은 눈이 푹푹 나리는 겨울 밤 나타샤를 생각하며 홀로 있었고, 나는 녹색으로 가득한 여름 낮 백석을 생각하며 홀로 있었다. 고요하고 적막했다. 홀로 있는 것이 좋았다. 직장생활을 시작한 뒤로 내가 제어할 수 없는 소란 속에 놓여 있는 것이 괴롭고 불안했다. 혼자가 되고 싶었다.


길상사

▲ 길상사 경내 ⓒ신당 핸디맨(https://blog.naver.com/kraymond/)



2. 고독은 곁에 아무도 없을 때 오는 것이 아니다


혼자가 되고 싶었다고 했다. 혼자의 언어로 혼자의 삶을 구성하고 지속시켜 나가는 것. 그러나 나만의 시간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J 선배 자리에 은밀히 서서 백석의 시를 읽던 그 즈음, 나는 P와 만나고 있었다. P와는 직장생활 시작 즈음에 만났고, 3년이 지나 결혼했다. 결혼이라는 새롭고 낯선 과제가 우리 앞에 주어졌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혼인신고까지 마쳤으니 우리는 법적으로도 같은 테두리 안에 놓이게 되었다. 결혼하고 나서 우리는 같은 공간에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며 우리만의 공동체를 만들어 갔다.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낸다는 것. 우리만의 울타리를 만들어간다는 것. 이는 물리적으로, 그리고 정서적으로 더 많은 합의, 타협, 양보를 수반했다. 합의와 양보 과정은 종종 행복했고 때로 어려웠다.


부부가 만나, 내가 가졌던 하나와 네가 가졌던 하나가 화학적으로 스며들고 결합되어 조금씩 작아진다. 물리학이 아니라 화학의 영역이다. 만난 것들이 작아지다가 끝내 작아지지 않는 순간. 그 순간이 결혼 생활의 합의, 타협, 양보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순간이다. 너와 내가 결혼을 통해 둘이 묶였는데, 둘의 합이 둘보다 작아지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7년의 결혼 생활. 지금은 이렇게 태평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어찌 합의와 양보의 강을 헤쳐 오는 그 시간이 언제나 평탄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물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존재가 정서적으로 아주 조금 멀게 느껴지는 순간 나는 손쉽게 외로워졌다. 조금은 정확하게 단어를 찾아야겠다. 가장 가까운 존재가 아니라 가장 가까워져야 한다고 믿었던 존재였다. 그러니까 기대감이 외로움을 낳았다. 언제나 둘이 같은 방향으로 걸어갈 수 있다는 희망이 고독을 유발했다.


고독은 곁에 아무도 없을 때 찾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내 곁에 누군가 있는데 그 사람이 내게 가까이 곁을 내어주지 않을 때 쉽게 고독을 느꼈다. 이제 알았다. 내가 너에게 가까이 다가서고 싶은 마음에는, 그리고 가까워지지 않아 외로워지는 마음 이면에는 당신에 대한 사랑이 있다는 말이었다. 누군가 나를 고독하게 했다면 나는 전심전력을 다해 그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고독은 사랑을 딛고 생겨났다.


고독은 사랑을 딛고 생겨났다

▲ 고독은 사랑을 딛고 생겨났다.



3. 고독은 당신들을 깨닫게 한다


고독은 사랑을 딛고 생겨났다고 했다. 사랑한다는 것은 시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다시 성북동 길상사로 돌아가보자. 시간이 2년 반 정도 흘렀다. 10월 어느 토요일이었다. 나는 그 해 12월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토요일 아침 밥을 먹으며 나는 2년 전 길상사에 갔던 기억이 좋았다며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계절은 가을이었다. 단풍이 이렇게 아름답게 물들었는데 함께 길상사에 가자고 했다. 어머니와 함께 둘이서 길을 나섰다.


은행과 단풍이 가득 펼쳐진 길상사 경내는 소요가 잦아들어 적막하고 고요했다. 어머니와 함께 길상사를 걸었다. 모처럼 둘이 길을 나서니 쉽사리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삼청터널을 지나 서쪽 부암동에 가보자고 했다. 간송미술관을 지나 삼청터널을 지나 청와대 앞 은행나무 길을 지나갔다. 어머니와 나는 동시에 소리 내어 경탄했다. 넓은 길 양쪽에 끝없이 펼쳐진 노란색의 내밀한 손짓들. 은행나무가 흔들리고 있었다. 너른 길이 끝없이 노란색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 어머니와 나는 부암동 어딘가에 자동차를 세워 두고 <클럽 에스프레소>에 들러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와의 추억. 어머니와 둘만의 여행은 그것이 사실 마지막이었다. 나는 두 달 뒤 결혼을 해서 나만의 공동체를 꾸려가기 시작했고 단둘의 여행은커녕, 주기적으로 찾아가서 얼굴을 보는 것도 생각보다 쉽지만은 않았다. 시간은 흘러 그 뒤로 가을은 여섯 해 더 찾아왔고 나는 서른넷, 어머니는 예순다섯의 나이가 되었다.


아홉 해의 직장 생활, 일곱 해의 결혼 생활을 거치며,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더 가까워지지 못해서 혼자로 남겨진 것 같은 고독을 아주 가끔 느꼈다고 했다. 그러나 그 상대와 함께 나눌 시간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면, 시간의 파도가 흘러 당신이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조차 하지 않게 된다면, 그때의 나는 고독하고 싶어도 결코 고독할 수 없을 거다. 누군가 존재하지 않으면 고독도 생성될 수 없다. 그러므로 나의 고독은 당신의 실존을 먹고 피어난다.


고독은 사랑을 딛고 생겨났다고 했다. 사랑은 사람을 딛고 생겨났다. 사람이 부재하면 사랑은 목적을 상실하고 고독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게 된다. 자의로 고독해지고 싶을 때 혹은 타의로 고독해질 수 밖에 없을 때, 내게 그런 감정의 밀도를 불어 넣는 당신이 여전히 곁에 존재한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축복인지. 뒤늦게야 깨닫는다. 말이 길었다. 감정을 추스르고, 내뱉어진 언어들을 정리해보자. 처음의 나는 때로 혼자 있고 싶었다. 길상사의 바람처럼 홀로 고요하게 살고 싶었다. 그러나 오히려 나는, 내게 이따금 고독을 가르쳐 준 당신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니 사랑이든, 외로움이든, 허전함이든, 고독함이든 내게 이처럼 소용돌이치는 감정의 언어를 불어넣는 당신들이여. 오래도록 나의 삶 속에 당신들이 스며들기를 바라는 것은 내 최후의 진실함이라는 고백과 함께,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아가는 것이 生 아닐는지.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어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 백석 시인의 <흰 바람벽이 있어> 부분


고독 사랑 외로움 백석 길상사 황정운 슬픔 허전함 희망
필자 황정운
황정운
9년 차 직장인입니다. 블로그 <생각의 건축> (http://blog.naver.com/marill00)에서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공공누리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댓글 (0)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