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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 호수

어제까지의 삶과 작별할 용기

-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이 내게 가르쳐준 것들 - 오늘, 키워드 인문학 -

by 정여울 / 2021-12-10

오늘, 키워드 인문학은? 지금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평범한 시민들의 일상, 마음, 행동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다양한 분야의 여러 키워드들……. 우리는 왜 어쩌다 이들의 움직임과 향방에 대해 시시때때로 관심을 기울이고 촉각을 세우게 되는 걸까요? 각계 전문가들의 깊이 있는 시선을 통해 우리 모두의 지금을 좌지우지하는 다양한 키워드들에 대해 흥미롭고도 새로운 인문학적 통찰의 시간을 가져보고자 합니다.


소로에게는 희망을 가질 이유보다 절망할 이유가 더 많았다. 그는 평생 가난했으며, 그의 재능을 진정으로 인정해 주는 사람도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희망을 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을 멈추지 않았고,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고, 힘없고 소외받는 모든 존재들을 향한 사랑을 멈추지 않았다. 바로 그 멈추지 않는 희망과 사랑이야말로 팬데믹 시대 우리가 소로에게서 배워야 할......



상처 딛고 용감한 여정…, 인생 자체가 뜨거운 영감



미국의 작가이자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 (이미지 출처: Wikipedia)

미국의 작가이자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 (이미지 출처: Wikipedia)



소로(Henry David Thoreau, 1817~1862, 미국의 작가이자 사상가)는 단지 도시가 싫어 자연 속으로 힐링 여행을 떠난 것이 아니었다. 『월든』은 그의 위대한 모험 중 극히 일부를 보여줄 뿐이다. 소로가 월든에서 지낸 기간은 단지 2년 2개월 동안이었고, 소로는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공존, 흑인 노예와 인디언을 향한 차별 철폐, 정의롭지 못한 국가를 향한 시민의 저항과 투쟁 등 수많은 운동에 몸담았다. 생태주의라는 말 자체가 없었던 시대에 그는 생태주의적 삶을 실천했고, 노예해방을 위한 투쟁이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위험한 일이었을 때도 기꺼이 그 위험을 감내했으며, 도시 문명의 위험과 한계를 뛰어넘어 어떻게 자연과 함께 공존하는 삶을 살 것인가를 평생 고민했다. 소로의 인생 전체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뜨거운 영감을 준다. 그는 고통 속에서도 위대한 미래를 창조하는 사람이었고, 고난 속에서도 결코 더 나은 미래를 향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소로가 평생 사랑했던 월든 호수

소로가 평생 사랑했던 월든 호수



월든을 향한 그의 여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1841년 스물넷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호숫가에 가서 오두막을 짓고 살겠다는 생각을 주변 사람들에게 말했을 때 커다란 반대에 부딪혔다. 그는 일기에 이렇게 쓴다. 당장이라도 훌쩍 떠나 호숫가에서 혼자 살고 싶다고. 하지만 친구들은 그에게 핀잔을 준다. 거기 가서 도대체 무엇을 하려고 그러느냐고. 하지만 소로는 이렇게 생각한다. 봄·여름·가을·겨울의 흐름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일이 되지 않을까. 1841년 12월, 새해를 앞둔 마지막 날 소로는 맹세한다. 자연의 아름다움이 지닌 특성을 관찰하는 사람에게는 그 어떤 해로움도 실망도 찾아오지 않는다고. 그는 마침내 월든 호수에 오두막을 짓기로 하고 모든 일을 준비하려고 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그의 인생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그가 세상에서 가장 자신과 닮았다고 생각했던 사람, 친형 존의 죽음이었다. 그 쓰라린 상처 때문에 소로는 평생 ‘형’의 이야기만 나오면 갑자기 입을 다물거나 얼굴이 하얗게 질리기도 했다고 한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아물어지지 않는 상처, 그것이 바로 소로의 트라우마였던 것이다. 하지만 4년 후 소로는 마침내 상처를 딛고 월든 호수를 향한 용감한 여정을 떠나게 된다. 이렇게 상처를 딛고 마침내 ‘내가 생각하는 나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용기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에게는 있었다.



세 번의 역경.…,‘형의 죽음’, ‘뉴욕 정착 실패’, ‘산불’



소로가 살았던 원두막을 복제한 모습과 소로의 동상

소로가 살았던 원두막을 복제한 모습과 소로의 동상



소로의 인생에서는 크게 세 가지 역경이 있었다. 첫 번째는 너무도 사랑했던 형의 갑작스런 죽음이었다. 1841년 헨리 소로의 형 존 소로는 마치 영혼의 쌍둥이 같은 존재였다. 숫돌에 면도날을 갈다가 왼손 약지의 살갗을 벤 상처에 파상풍균이 침투하여 존은 고통스러운 발작 끝에 숨지고 말았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충격적인 죽음이었다. 작은 상처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땅에 거름을 주는 일을 매일 하다 보니, 동물의 배설물에 섞인 파상풍균이 베인 상처 속으로 들어간 것이었다. 헨리는 세상에서 가장 자신을 잘 이해해 주던 형, 그 어떤 친구나 스승보다도 그에게 많은 영감을 주던 사람이 세상을 떠난 뒤 지독한 상실감에 시달렸다. 소로의 스승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1803~1832, 미국의 사상가겸 시인)의 아내 리디언은 이렇게 편지를 쓴다. “그의 죽음은 무서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름다웠어. 순수한 영혼이 그 모습 그대로 하늘로 승천하는 것 같았어.” 그토록 사랑하는 형의 죽음 앞에서 무너지지 않고 끝까지 의연한 모습을 보이던 헨리를, 리디언은 이렇게 묘사한다. “헨리가 보여준 그 마음, 끝까지 평정심을 잃지 않으려는 그 노력을 보면,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어. 그는 결코 굴복하지 않았지. 그는 마음 깊은 곳의 아픔과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었어.” 이런 큰 아픔을 겪으면서도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결국 다시 마음을 다잡고 4년 후 월든 호수로 들어간다.


두 번째 역경은 형의 죽음 이후 어떻게든 살 길을 찾기 위해 고심하다가 뉴욕에서 직업을 가져보려 했지만 몇 달 만에 참담한 모습으로 고향 콩코드로 돌아와야 했다는 사실이다. 헨리는 한때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엘리트였고, 지역사회에서도 뛰어난 강연과 저술로 정평이 나 있는 훌륭한 청년이었다. 한때는 모두가 그의 성공을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고향 콩코드를 떠나 뉴욕에서 자리를 잡으려던 그의 시도는 처참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는 뉴욕 시절의 일기에서 그 시절의 괴로움을 고백한다. 뉴욕의 거리 곳곳을 하루 종일 걸어보았지만, 하루 종일 진정으로 살아 있는 사람을 단 한 명도 만날 수가 없었다고. 그 누구와도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없었기에, 그 누구와도 생생한 대화를 나눌 수 없었기에, 그는 뉴욕이라는 거대한 무대에서 그토록 깊은 외로움을 느낀 것이다. 연필 공장을 운영하기도 하고, 측량기사로 일하기도 하고, 가정교사로 일하기도 했지만, 그가 가장 꿈꾸는 작가의 길을 걸어가기 위해 야심차게 결행한 뉴욕행은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의 작품은 뉴욕의 출판사들로부터 매번 거절당했고, 도시의 각박한 살림살이는 그를 지치게 했으며, 심지어 기면 발작 증세까지 그를 괴롭혔다. 그는 마침내 서글픈 패잔병처럼 고향 콩코드로 다시 돌아왔지만, 새로운 모험을 멈추지 않았다. 다시 월든 호숫가로 혼자 들어가 오두막을 짓고 혼자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속의 목소리는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소로의 원두막을 복원한 내부의 모습

소로의 원두막을 복원한 내부의 모습



세 번째 역경은 생태주의의 아버지이자 자연을 사람만큼이나 사랑했던 소로가 ‘산불’을 내버린 크나큰 사건이다. 꽃과 나무와 강과 숲을 사랑하는 생태주의자 헨리로서는 가장 고백하기 힘든 사건이기도 했다. 친구와 함께 숲에서 캠핑과 낚시를 즐기고 취사를 하다가 실수로 산불을 낸 것이다. 숲에서 수없이 모닥불을 피워본 캠핑의 달인 소로였지만, 이날만큼은 바람의 방향을 잘못 예측한 것 같다. 자신의 모든 행동을 글로 옮기는 데 인색하지 않았던 소로는 이후 6년 동안이나 이 사건에 대해서만은 침묵을 지킨다. 너무 고통스럽고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평판은 땅에 떨어졌고, 무엇보다도 헨리 자신이 괴로웠다. 그토록 사랑했던 숲이 눈앞에서 반마일 이상이나 불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얼마나 두렵고 무서웠을까. 그런데 소로는 놀랍게도 그 산불로 더 크고 깊은 자연의 손길을 만난다. 산불이 난 후 오히려 그 부근의 풀잎과 나무는 더욱 놀라운 푸르름과 생태계적 다양성을 회복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이 태워버린 숲에서 더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나는 것을 보고 자연의 위대함을 다시금 실감했다. 사람들은 자신을 용서해 주지 않지만, 자연은 자신을 용서해 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흙까지 새카맣게 타버린 심각한 화재로부터도 기적적으로 소생하는 자연의 위대한 힘을 보았다. 그는 그렇게 위급한 상황 속에서도 자연으로부터 그 모든 부활의 에너지를 공급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희망과 도전과 글쓰기를



소로는 그토록 사랑하던 형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자신의 재능을 확실히 인정해 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부끄러운 산불을 낸 책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길을 갔다. 『월든』이라는 위대한 책을 썼을 뿐 아니라 마하트마 간디로부터 케네디 대통령, 헤르만 헤세 등 수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을 끼쳤다. 그 어떤 성공 가능성이 보이지 않을 때조차도 끝까지 자신만의 월든을 지켜낸 힘. 그것은 그가 고통에도 불구하고, 실수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실패와 좌절의 기억에도 불구하고 삶은 지속되어야 한다는 것에서 나왔다. 힘든 순간에도 삶을 지속되게 만드는 힘. 그것은 ‘상황이 안 좋으니까 꿈을 수정한다’든지 ‘계획을 축소하자’는 현실론이 아닌, 상황이 안 좋을수록 오히려 더욱 선명하게 ‘진정한 나’를 지켜가는 용기다.


진정 소중한 것들은 나쁜 환경에서도 바뀌지 않는다. 진정 중요한 것들은 험악한 환경에서도 그 모습을 바꾸지 않는다. 소로는 아무리 힘든 순간에도 자신보다 더 약한 존재를 향한 사랑을 멈추지 않았다. 끝없이 책을 읽고 열정적으로 글을 씀으로써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멈추지 않았다. 소로에게는 희망을 가질 이유보다 절망할 이유가 더 많았다. 그는 평생 가난했으며, 그의 재능을 진정으로 인정해 주는 사람도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희망을 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을 멈추지 않았고,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고, 힘없고 소외받는 모든 존재들을 향한 사랑을 멈추지 않았다. 바로 그 멈추지 않는 희망과 사랑이야말로 팬데믹 시대 우리가 소로에게서 배워야 할 삶의 자세가 아닐까.



*본문 중 월든 관련 사진은 모두 이승원 사진 작가의 작품임을 알려둡니다.



[오늘, 키워드 인문학] 어제까지의 삶과 작별할 용기

- 지난 글: [오늘, 키워드 인문학] 코로나19 이후... 과잉 여행에서 지속 가능한 여행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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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

작가
KBS 제1라디오 <백은하의 영화관, 정여울의 도서관>, 네이버 오디오클립 <월간 정여울>을 진행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끝까지 쓰는 용기』, 『블루밍』, 『1일 1페이지,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심리 수업 365』, 『상처조차 아름다운 당신에게』,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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