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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월, 새로운 시작이 꿈틀대는 달!!

- 열두 달로 알아보는 역사 이야기 -

함규진

2022-01-27

열두 달로 알아보는 역사 이야기는? 역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의 흔적이고, 그 사람들은 숫자와 구간에서 어떤 상징을 떠올렸을 것이기에, 어떤 달이나 날에 대한 특별한 관념과 개념이 연결지어질 수 있다. 가령 ‘1월’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시작’을 떠올리리라. 영어로 ‘March’라고 할 때 ‘전쟁’을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으리라. 그래서 여기서는 그러한 열두 달에서 연상되는 각각의 개념들, 그 개념들의 역사와 오늘에 다가오는 의미를 열두 달에 걸쳐 풀어보고자 한다. 다시 말하지만, ‘열두 달에서 연상되는 개념들’의 역사다. ‘열두 달별로 일어났던 사건들’의 역사는 아니다. 하지만 가끔은 그 달에 일어났던 사건을 서술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 사건이 그 달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큰 의미가 있을 때도 있기 때문이다. 부디 독자들이 이 잡문을 읽고, 흥미와 함께 어떤 의미를 음미할 수 있기를 바란다.


올해는 우리도 새로운 최고 지도자를 뽑게 되는데, ‘뿌리기’와 ‘행진하기’는 새 지도자와 함께하는 시작을 축복하는 행사에도 곧잘 등장한다. 왕의 경우에는 ‘뿌리기’가 대표적이었다. 『성서』에 이스라엘 최초의 왕인 사울의 머리에 예언자 사무엘이 기름을 부어 주었다는 기록이 나오며, 그것은 가죽 방패에 기름을 먹이면 더 튼튼해지므로 나라를 지키는 최강의 방패가 되어 달라는 의미를 담았다…….

 

 

1월. 모든 것이 새로 시작된다. 비록 자연의 입장에서는 끊임없는 흐름일 뿐이고, 어제 진 해가 오늘 다시 뜨는 데 불과하지만, 사람은 거기서 어떤 의미를 부여하려 해왔다. 그리고 시작이 좋기를, 그리하여 끝도 좋기를 염원해왔다. 시작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야말로 새로운 시기의 시작일 수도, 새 인생의 시작일 수도, 새 시대의 시작일 수도 있다.



해맞이, 동북아에 두루 퍼진 영혼의 습속



일출

일출



새로 시작하는 시간. 새해의 첫날. 첫 일출을 보려 새벽부터 옷깃을 여미고 겨울 바다를 바라보는 해맞이 관습은 한국과 일본 그리고 에스키모라 불렸던 이누이트에게 있다.


일본은 고유종교 신토(神道)에서 정월 해맞이를 중요한 의식으로 여기는데, 지금도 하츠히노데(初日の出)라 하여 새해 아침 해를 맞이하며 한 해를 시작하는 관습이 남아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해맞이는 고유의 것인가? 아니면 일제강점기에 이식된 것일까? 논란이 있는데, 적어도 조선시대까지는 너도나도 ‘해맞이 명소’로 달려가 첫 일출을 눈에 담으려는 풍습이 유행했던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해맞이가 한민족과 전혀 상관없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조선의 수령들은 새로 부임한 고을에서 새해가 되면 그곳의 높은 봉우리에 올라 해맞이를 하면서 무탈하게 임기를 마치도록 빌었다고 한다. 또한 일반 가정에서도 새로운 해가 뜸과 함께 조상께 제사를 지내고 특별한 술을 꺼내 마시며 덕담을 주고받았다. ‘해맞이 여행’은 딱히 없었지만, 새해 첫 햇살에 대한 의미 부여는 전통인 것이다.


더구나 중국 고전에도 해맞이 관습은 나온다. 『서경』에 보면 “희중(羲仲)에게 명하여 우이(嵎夷)에 머물게 하시니, 양곡(暘谷)이라 했다. 떠오르는 해를 경건히 맞이하여 봄 농사를 고르고 잘 되도록 하셨다”는 말이 있다(다만 이 때 해맞이는 정월 초하루(음력 1월 1일)가 아니라 춘분(양력 3월 21일.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날)에 했다). 자료가 많이 남아 있지 않은 한반도의 고대에 태양 숭배 사상이 있었고 이것이 일본 신토에 전해졌다는 설도 있으니, 해맞이란 동북아시아인들에게 두루 퍼져 있던 영혼의 습속일지도 모른다. 동북아시아의 피를 받았다 여겨지는 이누이트도 ‘쿠비아숙빅(Quviasukvik)’이라는 해맞이 관습을 지켜오고 있음에서도 짐작된다(다만 그들이 맞이하는 해는 새해의 첫 해가 아니라 크리스마스의 아침 해인데, 기독교 문화와 뒤섞였을 가능성이 있다. 아무튼 그들은 쿠비아숙빅을 지켜야만 새로운 일 년이 시작된다고 여긴다).



양력 4월 13일 설날, 물로 새해 맞는 ‘송크란 축제’



치앙마이의 송크란 축제 현장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치앙마이의 송크란 축제 현장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햇빛이 아니라 물이, 1월 1일이 아니라 4월 13일이 중심이 되는 새해맞이도 있다. 태국의 송크란 축제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물세례를 퍼부으며 너도 나도 흠뻑 젖어버리는 이 축제의 기원은 태국의 신화, 불교, 농업에 있다. 카빌라 프롬이라는 신이 인간과의 내기에서 져서 목이 잘렸는데, 신의 머리가 닿는 곳마다 불이 솟구쳤다. 세상이 다 말라 버릴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 특별한 장소에 안치하고 해마다 제사를 지냈으며, 이를 기념해 물을 끼얹는 행사를 벌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물은 농사에 있어서도 절실하다. 그래서 1년 내내 물이 풍성하여 농사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담겨 있다. 그리고 설날이 양력 4월 13일인 까닭은 1940년 이전의 태국이 독실한 불교 국가로서 불멸 기원에 따른 태음 태양력(태양과 달의 움직임을 모두 고려해 만든 달력)을 썼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초파일(음력 4월 8일, 부처님오신날)에 두루 행하는, 불상을 씻는 행사에서 송크란이 나왔다고도 한다. 아무튼 한 나라, 민족이 함께 지키는 전통 행사에는 오래된 마음, 염원, 경험이 녹아들어 있다. 그런 점에서 새로운 시작은 곧 오랜 과거의 반추가 된다.



가족의 시작 ‘결혼’, 하객들에 ‘이의’ 묻고 쌀 세례하는 이유?



결혼식

결혼식



두 사람이 모여 하나의 가족을 이루기 위한 시작, 결혼이다. 서구의 결혼식에는 몇 가지 전통적 관습이 있다. 주례가 성혼을 선언하기 앞서 “이 결혼에 이의가 있는 사람은 지금 말하고, 앞으로는 아무런 말도 하지 마시기를”이라고 하객들에게 묻는 일, 신랑 신부 행진, 식장을 나설 때 신혼부부에게 쌀 뿌리기 등등. 하객에게 이의 여부를 묻는 관습은 1549년,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행정 절차가 엉성했고, 교통 통신 수단도 지금처럼 발달해 있지 않았던 당시, 결혼해 보니 이미 배우자가 있었다는 경우나 다른 곳에서 중죄를 저지르고 도망친 범죄자였다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그래서 결혼식보다 3주 전에 결혼 공고를 내고, 그 사이에 혹시 무슨 문제가 없는지, 누가 청천벽력 같은 정보를 들고 찾아오지나 않는지 기다렸다. 그리고 아무 일 없이 결혼식을 치르게 되면, ‘그러니까 이 결혼에 문제없다는 거죠?’라고 마지막으로 물어본 다음 ‘그러면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마라. 이 결혼은 법적으로 성립되었다’고 선언했던 것이다.



〈신부 입장곡〉의 작곡가 바그너(좌)와 〈결혼 행진곡〉의 작곡가 멘델스존(우)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신부 입장곡〉의 작곡가 바그너(좌)와 〈결혼 행진곡〉의 작곡가 멘델스존(우)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성혼을 마친 신랑 신부가 나란히 행진하여 식장을 나서는 일은 최초 기원이 확실치 않으나, 결혼식이 거창해지고 격식을 차리게 되면서 행진곡과 함께 진행되는 결혼식의 하이라이트가 되었다. 이때 가장 많이 쓰이는 곡이 바그너의 〈신부 입장곡〉과 멘델스존의 〈결혼 행진곡〉인데, 둘 다 1858년, 영국의 빅토리아 마리 루이즈 공주와 독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의 결혼식에서 처음으로 쓰였다. 그런데 오랫동안 〈결혼 행진곡〉은 독일에서 쓰이지 않았다. 멘델스존이 유대인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신부 입장곡〉은 오늘날까지도 이스라엘에서는 쓰이지 않는다. 바그너가 반유대주의적 독일인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가톨릭교회의 권위가 아직 큰 곳에서도 〈신부 입장곡〉을 꺼린다. 바그너의 원곡 가사가 비종교적이고 쾌락주의적이라는 이유에서다. 우리나라 등 그런 껄끄러움이 없는 문화권에서는 두 곡을 자유롭게 쓰고 있다.


갓 결혼한 부부에게 ‘곡식’을 뿌리는 일은 다산과 부의 축원으로, 고대 로마부터 있었던 관습이다. 시대와 장소에 따라 밀이나 귀리를 뿌리기도 했고, 결혼 생활의 달콤함을 축원하는 뜻으로 사탕을 뿌리거나, 과일이 곡식보다 중요한 지역에서는 과일을 뿌리거나 하는 식으로 변형되기도 했다. 그런데 왜 하필 서구인의 주식이 아닌 쌀이 가장 일반화되었을까? 확실한 근거는 없지만, 라틴어로 ‘쌀들(oryzīs)’이 ‘시작(orīginī)’과 발음이 비슷했기 때문일 수 있다. 새로운 인생의 시작, 새 가족의 출발을 축복하는 뜻에서 쌀 세례를 퍼부었던 것이다. 유대교식 결혼에서 신랑 신부가 건배를 하고 그 잔을 밟아서 깨는 것도 비슷하다. 묵은 것들, 두 사람 각자의 인생에서 남았던 아쉬움들은 이제 털어버리고, 깔끔하게 새 출발을 하라는 뜻이다.



뿌리기와 행진... 새로운 최고지도자를 축복하는 일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 가두 행진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 가두 행진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오를레앙의 처녀’ 잔 다르크(Jeanne d’Arc, 1412~1431)의 사명도 백년전쟁(1337년부터 116년간 프랑스와 잉글랜드 간의 왕위계승권 문제로 벌어진 전쟁)의 와중에 아직 기름 부음을 받지 못하고 있던 샤를 7세에게 정식 대관식을 치러 주어서 왕권을 확립하는 일이었다고 한다.


신하의 한 사람인 성직자 앞에 무릎을 꿇고 기름 부음과 왕관 씌우기를 청하는 왕의 모습은 한편으로 그가 겸허함을 갖고 최고 권력에 임함을 나타냈다. 뒤가 높고 앞이 낮아서 저절로 고개를 숙인 듯 보이게 만드는, 동양 군주들이 즉위할 때 쓰던 면류관도 그렇고, 새로운 추장을 즉위 전날 침 뱉고 때리며 모욕했다는 중앙아프리카 부족민들의 전통도 그렇다. 한편 그만큼 그가 신에게서 나라를 다스릴 권한을 받았다는 정당성도 상징했다. 그러면 그런 권한을 국민에게 받은 지도자는 어떨까?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 가두 행진을 도입한 사람은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1743~1826)이다. 그는 1804년 재선에 성공했을 때, 취임식장인 국회에서 백악관까지 말을 타고 행진하는 절차를 선보였다. 그것은 고대 로마의 장군 개선식과 비슷했다. 대통령 선출은 미국 시민의 승리이며, 따라서 개선장군처럼 행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후 이 행진은 취임식 전통으로 지켜져 왔는데, 1977년에 39대 대통령에 취임한 지미 카터(Jimmy Carter, 1924~)가 기마 행진 대신 걸어서 행진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대통령도 한 사람의 시민에 불과할 뿐이라는 의미였다. 일반 국민의 눈높이에서 그들과 함께 걷고, 대화하는 대통령으로 나아가겠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새로운 시작엔 과거 반추도 과감한 떨쳐버림도 필요



새로운 시작

새로운 시작



한국은 어떨까? 딱히 뿌리기도 행진하기도 없다. 행사 방식도 그때그때 조금씩 다르다. 다만 얼마 전에 불귀의 몸이 된 전두환은 취임식에서 카퍼레이드를 벌였는데, 그의 집권이 국민의 승리라기보다 국민에 대한 정복임을 나타내는 듯한 퍼포먼스였다. 그는 유신정권에서 시작된 ‘체육관 취임식’도 이어갔다. 그 전에는 국회에서, 또는 국회로도 행정부로도 쓰였던 중앙청 앞에서 취임하곤 했다. 그리고 노태우 전 대통령부터는 여의도 국회 앞 광장에서 취임하는 것으로 다시 바뀌었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 앞에서 대통령 선서를 하는 일이 ‘민주화 시대’에는 바람직하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관행이다. 미국처럼 취임식 행진을 도입한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뿐인데, 그것도 여의도에서 상징적으로 잠깐 걷는 것으로 그쳤다.


새로운 시작에는 과거에 대한 반추가 있어야 한다. 한편 과감한 떨쳐버림도 있어야 한다. 자신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희망과 기대를 담은 출발에는 겸허함이 따라야 하며, 또한 굳세게, 힘차게 그리고 함께 나아가겠다는 강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 1월에, 한 해의 시작에, 각자의 여러 가지 시작을, 또 단체의, 나라의 시작을 어떻게 내실 있게 할지?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도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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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규진

서울교대 윤리교육과 교수
서울에서 태어났다. 성균관대에서 학사에서 박사까지 받았다. 전공은 정치학이지만 역사와 철학에 대해서도 글을 쓴다. 동양과 서양, 보수와 진보 등의 대칭이 대립을 넘어 조화가 될 수 있는 방법을 탐구 중이다. 『조약의 세계사』, 『벽이 만든 세계사』, 『왕의 밥상』, 『정약용, 조선의 르네상스를 꿈꾸다』 등을 썼고, 『죽음의 밥상』, 『피에 젖은 땅』, 『공정하다는 착각』 등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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