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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인문학] 동네 이름의 인문학 ㅣ 고암 이응노 화백의 고향 홍성, 홍천마을에 가다

by 전상진 / 2016-01-07

우리 동네 인문학 동네이름의 인문학

고암 이응노 화백의 고향 홍성, 홍천마을에 가다


이응노마을 전경. 멀리 보이는 산은 이응노마을을 대표하는 용봉산

이응노마을 전경. 멀리 보이는 산은 이응노마을을 대표하는 용봉산


“난 한국 사람이야. 난 충남 홍성사람이야. 조국 땅에 돌아가 묻히고 싶은 사람이야.” 내가 살았던 곳은 서울에서 남쪽으로 삼백 리 떨어져 있는 홍성에서도 몇십 리 더 떨어진 고요하고 평온한 작은 마을이다. 우리 집 남쪽으로는 월산이라고 불리는 산이 있었고, 북쪽에는 용봉산이라고 불리는 바위투성이의 봉우리가 있었다. 아침저녁으로, 그리고 계절에 따라, 이 산들의 모습은 그 이름처럼 보였다. 즉, 월산이 아름답고 수수하고 우아하여 한마디로 여인의 자태를 보여 준다면, 용봉산은 강인하고 위엄 있게 우뚝 솟아 있었다. 선인들은 어찌 이리도 잘 어울리는 이름을 지었을까. 오늘도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다시금 감탄을 하게 된다. 산들은 저마다 꼭 알맞은 높이와 크기를 가지고 있지만 어린 시절 내게 이 산들은 실체보다도 훨씬 커 보였다. 살아가면서 산들은 나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 주었다. 올빼미 바위, 새색시 바위, 늙은이 바위, 거울 바위처럼 우리는 바윗돌 하나하나마다 이름을 불러 주곤 했다. 그것은 단지 생김새 때문만이 아니라 그 안의 모든 것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인상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내 마음은 마치 늙으신 부모님이나 형제 혹은 친구에게 끌리듯이 그 바위들에게 끌렸다. 이응노, 파리 파게티 갤러리(Galerie Paul Facchetti) 개인전 도록 서문 中 충청남도 홍성군 홍북면 ‘홍천마을’의 법정리(法定里) 이름은 중계2리(도로명 주소는 이응노길). 이 마을은 지금 ‘이응노마을’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응노마을’은 문화체육관광부의 2015 문화특화지역 조성사업에 선정되면서 새롭게 생겨나고 붙여진 이름이다. 이응노마을, 왠지 친근하면서도 낯설다. ‘고암 이응노 화백(1904~1989)이 태어난 곳’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졌지만, 마을사람들은 아직 이응노마을이라고 부르는 데 낯설어 한다. 오랫동안 불러온 이름, 홍천마을이 언제나처럼 정겹다. 홍천마을은 예로부터 우뚝 솟은 용봉산을 바라보면서 백월산 줄기가 마을 가운데로 뻗어 나와 부엉바골을 경계로 좌우에 형성된 마을이다. 경지 정리 이전의 ‘홍천(洪川)’은 마을 한 가운데 흐르는 개울가를 따라 논과 들이 형성되어 논배미마다 담수어족이 풍부해 해마다 해오라기, 백로, 기러기, 두루미 등 철새들이 모여드는 마을이라 해서 원래는 ‘홍천(鴻泉)’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홍천마을은 홍성군 11개 읍면 가운데 북쪽에 위치한 홍북면 한 마을로, 면사무소가 있는 대지동으로부터 동남쪽에 위치해 있다. 동쪽으로는 홍성읍 소향리가 있고, 서쪽으로는 예산군 덕산면의 대동리와 낙상리가 위치해 있다. 또 남쪽으로는 홍성읍 월산리와 인접하고, 북쪽으로는 중계1리 동막마을과 상하1리가 인접해 있다.


홍천마을이 새롭게 얻은 ‘이응노’란 이름


이응노생가기념관 전경
이응노생가기념관 전경


홍천마을은 이응노 마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전 ‘쓰레기매립장마을’이라는 오명과 부정적인 이미지 속에 남아 있어야 했다. 마을이 홍천문화마을 1차, 2차로 나누어지게 된 이유도 바로 이 쓰레기매립과 연관이 있다. 1997년 홍천마을에 17만3811㎡의 매립 용량을 갖춘 홍성군 위생쓰레기매립장이 들어서면서 수혜사업으로 마을은 불가피하게 1, 2차로 나누어 조성되었다. 마을은 4개의 반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대개 1반과 2반을 합해 1차 마을이라 하고, 3반과 4반을 합하여 2차 마을이라 한다. 1차 마을은 2000년 마을의 밤산에 조성되었고, 2차 마을은 2004년 야산에 조성되었다. 하지만 마을은 위생쓰레기매립장이 들어서면서 1, 2차로 나뉘어져 마을공동체 문화가 훼손된 채 마을의 정체성마저 위기를 맞았다. 또 1, 2차 마을 사람들 사이에도 서먹하고 불편한 관계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쓰레기마을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만 가득한 홍천마을에 드디어 2011년 11월 ‘이응노의 집·고암 이응노 생가기념관’이 개관하면서 이후 마을은 새로운 공동체와 문화 가치 확산에 대한 잠재력 및 가능성이 높다는 인식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마을은 이제 쓰레기매립장마을에서 콜라주, 문자추상, 군상 등 동양적 사의(寫意)에서 세계적 추상(抽象)을 구현한 세계적인 화가 고암 이응노 화백이 태어난 ‘이응노의 집’이 있어 예술이 살아 숨 쉬는 곳이라는 인식이 마을사람들과 외지방문객 사이에서 퍼져나가고 있다. 지금은 1, 2차 마을의 중간에 ‘이응노의 집’이 위치하고, 마을사람들의 공동체 공간인 원래 마을복지회관이 예술센터로 거듭나면서 1, 2차 문화마을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고 있다. 재생의 코드 속에 낡은 창고는 작은 도서관을 겸한 북카페와 도예공방으로 새롭게 꾸며져, 마을사람들 속으로 포근히 쏙 안겼다.


‘홍천’과 ‘이응노’의 공존, 새로운 생태예술마을로 태어나기 위해…


홍천마을 사람들은 이응노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마을의 이름 ‘이응노마을’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다. 또 예술마을 이응노마을의 삶의 태도에 걸맞게 생활예술을 실현하기 위해서도 부지런히 노력하고 있다. 마을의 이름이 새롭게 만들어진지 불과 1년여의 시간도 지나지 않았지만, 마을사람들은 이응노마을을 친근하게 여기고 있고, 두 이름을 함께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렇게 문화특화지역 문화마을 조성은 한 마을을 새롭게 탈바꿈 시키고, 한 마을의 사람들의 마음도 따뜻하게 바꾸어놓았다. 홍천에서 이응노로의 변화는 ‘BI(브랜드 가치)와 캐릭터’를 탄생시키고, 마을의 상징처럼 ‘종 치는 사람’이 되어 우뚝 섰다. 변화는 이제 시작이다. ‘홍천마을’과 ‘이응노마을’의 공존이 시작되고 그 속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는 마을 사람들의 예술 생활화를 지켜보게 될 것이다.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파리 파게티 갤러리(Galerie Paul Facchetti)에서 열렸던 고암 이응노 화백의 개인전 도록을 다시 인용하며 고향 홍천마을에 대한 그리움을 담는다. 나는 열일곱 살까지 이러한 자연 속에서 자라났다. 나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지만 그런 나를 도와주려고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오히려 나를 방해하려고 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말했지만, 나는 남몰래 가벼운 마음으로 줄곧 그리고 또 그렸다. 땅 위에, 담벼락에, 눈 위에, 검게 그을린 내 살갗에… 손가락으로, 나뭇가지로 혹은 조약돌로… 그러면서 나는 외로움을 잊었다. 아득히 지나가 버린 시절이 이렇게 또렷이 떠오르다니! 오늘도 내 손은 붓을 잡고 내 눈은 당신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 지금도 그때처럼, 그린다는 것으로 나는 여전히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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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전상진
전상진

1990년 충남대학교 문과대학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홍성·대전·서울 등 극단에서 연극배우·연출가로 활동했다. 1996년 지역신문으로는 전국 최초로 창간(1988년 12월)된 홍성신문에 입사, 3년 6개월 동안 편집국 취재부 기자로 일했다. 그후 9년여 간 연극계에서 활동하다 2009년 홍주신문을 거쳐 2010년 홍성신문 편집국 취재부 부장으로 재입사했다. 현재 홍성역사인물축제 추진위원, 홍주문화연구회 회장, 극단 치우미르 공동대표로 활동하는 한편, 이응노마을 사업 거버넌스 위원 겸 이응노마을신문 편집인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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