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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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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

[드론 인문학] 예측하기 어려운 것은 ‘기술’이 아닌, ‘태도’

by 구본권 / 2016.01.29


텔레비전 드라마 <응답하라 1988>등이 인기를 끌면서, 계속해서 유사한 시리즈로 만들어지고 있다. 지금의 40대 이상들로서는 불과 2~30년 전 기억이 생생한 모습이지만, 지금과 비교해보면 옷차림, 살림살이, 도로와 건물 등 참으로 많은 게 다르다. 시대상을 바꾸는 다양한 요인들 중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기술과 도구다.

 

우리가 사용하는 도구도 패션처럼, 지속적으로 변화한다. 패션이 유행을 따라서 돌고 도는 모습을 보인다면, 도구는 변화하면서도 그 변화의 방향성이 뚜렷한 게 큰 특징이다. 지속적 개선을 통해 더 강력한 기능과 넓은 사용성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전화를 예로 들자. 처음에는 제한된 곳에서 특정 계층만 사용했지만, 공중전화가 되어 이용자가 늘어나더니 집집마다 전화가 놓이게 되었다. 회사와 가정 등 조직 단위에만 설치되어 쓰이던 전화는 급기야 휴대전화가 나타나면서 개인이 이동하며 사용하는 통신 수단이 되었고, 이제는 모든 것을 서로 연결시키는 스마트폰 세상으로 만들었다. 이는 단순히 우리가 사용하는 도구의 교체를 넘어선 거대한 변화로 이어졌다. 이처럼, 도구는 인류의 역사를 구분하는 가장 뚜렷한 기준점 노릇을 한다. 구석기에서 신석기로, 청동기에서, 철기, 산업혁명, 정보화시대에 이르는 인류의 역사란 곧 도구 발달의 역사다.

 

 

공중전화

▲ 공중전화는 90년대까지만 해도 일반적이었다.

 

 

휴대전화 사용

▲ 오늘날, 휴대전화가 없는 사람은 거의 없다.

 

기술과 도구는 부단히 진화해 오늘에 이르렀지만, 오늘날 우리가 도구의 발달로 직면한 변화는 기존과 차원이 다른 어떤 것이다. 지금까지의 모든 기술을 아날로그 도구라 본다면, 오늘날 인류가 처음 만나고 있는 도구는 디지털 도구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기술은 네트워크 기술과 만나, 유례없는 차원의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는데 변화의 폭이 너무 광범하고 속도가 빨라 전모와 방향을 파악하기 힘들 정도다. 디지털 기술은 사람들의 오랜 습관과 본능을 만나 다양한 현상을 만들어내고 있지만, 왜 그런 다양한 현상이 나타나는지를 설명하려면 기술의 속성과 구조를 알아야 한다. 기술의 변화 속도와 (사람들의 이해와) 문화 변화 속도가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이른바 ‘문화 지체(Cultural Lag)’ 현상이 생기는 이유다.


상상은, 멀지 않은 우리의 미래


응답하라 <1988> 시절로 돌아가 2016년도 시점을 생각해본다면, 무엇이 가장 예측하기 어려운 모습일까? 고층건물과 도로가 늘어나고 주거공간이 넓어지며, 텔레비전이 날렵해지는 동시에 선명해진다는 것은 30여 년 전에도 당연한 미래상으로 그려졌을 것이다. 컴퓨터와 통신기술도 발달해 더 많은 일들을 컴퓨터에 의지해 처리하고 통신의 목적과 양 역시 늘어날 것이라는 상상도 어렵지는 않다.

 

1985~1987년까지 국내에도 방영된 미국 텔레비전 드라마<전격 Z작전>에는 음성으로 작동하는 자율주행 자동차 ‘키트’가 등장한다. 그런데, 오늘날 영화 속 상상은 상당 부분 현실이 되고 있다. 아직 대중화 단계에 이르지 못했지만, 구글의 자율주행 자동차가 160만 킬로미터 시범주행을 성공적으로 해낸 것에서 알 수 있듯 ‘상상’은 멀지 않은 미래다. 예컨대, 1987년 국내에 개봉된 영화 『백 투 더 퓨처(Back to the Future)』에서도 3D 텔레비전이나 스마트홈 시스템 등의 기술이 등장한다.

 

통신 기술의 발달로 유선전화가, 화상통화 가능한 개인간 이동통신으로 진화할 것이라는 전망은 어렵지 않은 미래 예측으로 여겨졌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상당한 격차가 있었다. 실제로 이동통신 기술을 개발한 기업이나 세계적 통신사들도 오늘날처럼 모든 사람들이 휴대전화 그리고 스마트폰을 열광적으로 수용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터넷 개발자들도 마찬가지다. 많은 정보와 예측에도 불구하고 미래의 기술과 문화를 상상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언제나 미래는 기대를 품게 만드는 미지의 영역이다.


셀카와 소셜 미디어라는 새로운 ‘문화’의 등장


SELFIE

 

셀프 카메라, 즉 스스로 카메라를 통해 자신을 찍는다는 행위를 줄여 부르는 ‘셀카(Selfie)’는 전세계 보편적인 현상이 되었다.

 

만약 20년이나 30여 년 전으로 돌아가 2016년의 미래를 상상해본다면 무엇이 가장 신기하게 보일까? 나는 기술의 발달이라기보다 새로운 문화의 등장이라고 본다. 셀카와 소셜미디어 열풍은 어떻게 보일까? 30여 년 전의 시점에서 상상하기 힘든 미래상이며 언뜻 이해하기도 어려운 문화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수시로 스마트폰을 꺼내들고 자신의 모습을 찍는다. 우리나라만의 현상도 아니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2013년 ‘셀카(Selfie)’를 ‘올해의 단어’로, 『타임』은 2014년, 셀카봉을 ‘올해의 발명품’으로 선정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카카오톡,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 미디어는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장 지배적인 통신 수단이 되었다.

 

과거 시점에서 누구나 소형 컴퓨터 기능의 통신기기를 휴대하는 미래를 상상하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그걸 이용해 무엇을 할지 예측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사람들이 페이스북에서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수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이나, 음성 통화 대신 카카오톡과 같은 메신저 앱을 이용해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문자로 대화하는 것은 상상은 커녕 오늘날에도 이해가 필요한 영역이다. 사실 컴퓨터와 통신 도구의 발달과 개인별 도구로의 진화와 같은 기술적·경제적 변화는 예상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 도구를 실제 사용자들이 어떤 용도로 어떻게 사용할 지를 짐작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이것이, 바로 문화 지체와 세대 차이가 생겨나는 이유이다.

 

요즘 사람들은 나이를 불문하고 왜 그토록 수시로 셀카를 찍어대는 것일까? 왜 말로 대화하는 대신 카카오톡과 같은 메신저앱으로 소통하고 시시콜콜하고 지극히 개인적인 내용까지만천하에 공개하고 있는 것일까?

 

새로운 도구에 의한 사회 현상을 과거의 관점과 기존 인식틀로 보자면 납득하기 어렵지만, 관습적 사고틀을 벗어난다면 그다지 이상할 것도 없다. 문자가 만들어져 보급되던 초기에도 소크라테스는 문자가 사람들의 기억력을 약화시키고 스스로 사고하는 능력을 떨어뜨릴 것이라 우려했고, 인쇄술이 보급되자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는 “책의 범람으로 사회는 철저한 망각의 위험에 빠지고 야만으로 회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통해 상시 연결된 삶을 사는 현대인은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똑똑한 도구를 지닌 존재이면서 동시에 ‘가장 멍청한 세대’이자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비판을 함께 받고 있다. 상반된 두 모습이 모두 진실이다. 디지털 세상에서 인간이 어떤 인식과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가장 현명한 존재일 수도 가장 어리석은 존재가 될 수도 있을 환경이 바로 지금이기 때문이다.

 

셀카로 돌아가보자, 스마트폰의 셀카 기능과 디지털 카메라가 없던 과거의 관점을 고수하면서 오늘날의 새로운 풍습을 재단할 일이 아니다. 거울이 발명되기 이전의 인류는 1년에 거울 볼 일이 많지 않았을 터이다. 호수와 물웅덩이에 비춰보거나 또는 상대를 통해서 자신의 얼굴을 간접적으로 볼 수 있었을 따름일 것이다. 거울이 처음 등장했을 때도 셀카처럼 시도때도 없이 거울만 들여다보는 사람들의 새로운 태도가 이상하기만 했을 터이다. 여행지에서, 음식 앞에서, 공연장에서 만사를 제치고 셀카를 찍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는 수시로 거울을 보는 것처럼 뿌리깊은 인간 본능에서 유래한 행위이다. 쉴새없이 알림을 보내는 소셜미디어에 몰입해 옆사람도, 행인도 신경쓰지 못하는 것 역시 연결과 관계를 추구하는 사람의 오랜 본능적 행위로 이해된다.


기술의 주체는 누구인가?


SNS 소셜 네트워크

 

소셜 네트워크 시대의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그것의 주인이 될 것인가의 문제 앞에 놓여 있다.

 

문제는 우리가 겨우 변화의 들머리에 들어섰을 따름이고, 그 변화는 앞으로 점점 더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 점이다. 부단히 발전하는 기술은 그걸 고안하고 설계하는 주체는 사람이기 때문에 미래의 기술을 예상하는 것은 어려운 게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 기술을 어떤 목적에서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하지만, 기술 중심적 사고는 미래의 기술을 설계하면서도 그로 인해 사회와 사람들에게 어떠한 변화가 닥칠지 사고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수시로 셀카를 찍고, 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면서 항상 소셜미디어에 접속해 살아가는 현상은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문화로 이해되어야 한다. 다만 우리가 잠재되어 있던 본능적 욕구를 즉시 해결하게 해주는 이러한 디지털 도구로 인해, 어떠한 영향을 받게 될지를 생각해보는 과제가 함께 주어졌다는 게 중요하다. 새로운 기술과 도구는 그 자체로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아니다. 사용하는 우리가 어떠한 태도나 목적을 지니는가에 따라, 그로 인한 결과는 다양하게 나타날 것이다. 누구에겐 현명하고 강력한 도구로, 또 누군가에겐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게 만드는 도구도 될 수 있다. 우리가 가장 오랜 시간을 또 중요하게 의존하는 도구와 기술인 만큼 그로 인해 생겨나는 다양한 현상을 이해하고 자신의 태도와 관점을 만들어가는 일이 무엇보다 지혜로운 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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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구본권
구본권
『한겨레』에서 20년 넘게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동시에 ‘사람과디지털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디지털 기술의 빛과 그늘을 함께 보도해온 IT 전문 저널리스트로, 기술과 사람이 건강한 관계를 구축할 방도를 궁리하며 글쓰고 강의한다. 아날로그 세대가 디지털 사회로 이주하면서 생기는 문제들에 주목하면서 기술로 인해 새로이 중요해지는 인간적 가치에 대한 논의를 제기해왔다. 『로봇 시대, 인간의 일』, 『당신을 공유하시겠습니까?』, 『잊혀질 권리』 등의 책을 펴내며 ‘디지털 리터러시’의 중요성을 말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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