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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가 포착한 디아스포라의 삶

영화에게 디아스포라가 묻다

정지혜

2019-06-10

간극에 홀로 서 있는 뒷모습



역사적 의미로 디아스포라는 유대인의 집단적 강제 이주와 망명, 학살과 상흔으로 거슬러 간다. ‘흩어진다’는 이산의 상태와 흩어져나가는 방향과 기세의 운동성, 흩어진 이후 정주한 땅의 지리적, 공간적 특성과 그곳에서 새로이 만들어진 공동체, 언젠가는 되돌아가야 할 ‘역사적 조국’을 향한 집단적 열망을 아우르는 개념일 것이다. 


동시에 디아스포라는 어디와 어디 사이에 있는 상태의 말이기도 하다. ‘사이에 있다’는 건 다시 말해 여기도 아니고 저기도 아니며 동시에 여기이기도 하고 저기이기도 하다는 의미다. 그럼으로써 디아스포라는 구분하고 나누는 경계 짓기와 그로부터 파생된 접경 개념을 넘나들 수 있다. 그렇게 디아스포라는 여기의 것과 저기의 것 간의 충돌과 마주침을 만들어내고 경험한다. 디아스포라의 우발적 충돌, 우연한 마주침은 역사적 정치적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겠지만 예측을 뛰어넘는 가능성으로 확장되기도 한다. 


특히 물적 정신적 교류와 이동이 근대 국가의 국경과 경계를 뛰어넘고 있는 현 상황에서 디아스포라를 바라보는 시각의 확장은 불가피하다. 디아스포라는 역사적, 정치적 이유를 가늠하게 하는 동시에 문화적 인덱스로써 우리에게 사상적, 인식적, 윤리적 차원의 사고 전환과 변환을 요구한다.



한국 영화가 포착한 디아스포라



마이너리티의 정체성, 방랑의 유동성, 낯선 것과의 만남과 타자와의 대면이라는 화두야말로 디아스포라가 불러낸 질문들일 것이다. 이것은 영화가 오랫동안 응답을 시도해온 질문거리이기도 하다. 영화 이미지는 타자의 세계를 어떻게 재연해 스크린 위에 재현할 것인가. 방편으로서 영화 매체는 어떻게 현실 정치의 이슈를 담아내고 영화적 리얼리티를 구현할 수 있는가. 


논의를 좀 더 좁혀보자. 앞선 질문의 잠정적 대답을 동시대 한국 영화에서 찾아보는 것이다. 고개를 잠시 돌려 지난 한국 영화를 짧게 회상해보자. 1980년대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미국 사회에 편입하고자 했던 청춘의 멜로드라마 <깊고 푸른 밤>(1984, 배창호)이 있다. 미국이라는 타자는 주인공이 성취하고 목적하는 대상이지만 결국 좌절되는 꿈이다. 주인공은 당대 한국 사회가 전혀 담보해줄 수 없던 자유를 찾아 타자의 세계를 유랑하는 이산자다. 


 

▲ 영화 <깊고 푸른 밤>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에 위장 취업하기 위해 위장 결혼을 시도한 중국 여인과 삼류 건달의 사랑 이야기인 <파이란>(2001, 송해성), 조선족 여성이 신분을 숨기고 한국에 와 꿈과 사랑을 좇는 <댄서의 순정>(2005, 박영훈)처럼 디아스포라 중에서도 여성의 디아스포라는 멜로드라마의 통속적 전개에서 좌절하고 사랑으로 고통을 극복하는 식으로 그려지곤 한다. 


 

▲ 영화 <파이란> ⓒ한국영상자료원

 

한국 사회의 편견을 들여다보는 방편으로 한국과 거울 쌍으로 디아스포라가 등장하는 <반두비>(2009, 신동일), <로니를 찾아서>(2009, 심상국)도 있을 것이다. 비교적 근작으로 오면, 한국 분단사, 탈북자, 조선족 이야기가 영화에 본격적으로 들어오고 있음이 감지된다. 다큐멘터리 <마담 B>(2018)의 감독 윤재호는 조선족 여성 ‘마담 B’가 중국, 라오스, 태국을 거쳐 한국에 들어오기까지의 긴박한 이산의 과정을 동행해 찍기에 이른다. 이어서 감독은 조선족 가족의 비극을 극영화 <뷰티풀 데이즈>(2017)로 풀어낸다. 


 

▲ 영화 <마담 B> ⓒ한국영상자료원

 

단편 영화에도 탈북, 조선족 서사가 비중 있게 들어와 있다. 올해 칸 국제영화제 학생 경쟁 부문인 시네파운데이션에 초청된 <령희>(2019, 연제광)는 한국에 불법 체류한 조선족 여성들의 열악한 노동 현실과 죽음을 그린다. 친구의 신분증을 빌리기 위해 대리 시험을 치르는 무국적자 탈북 2세 소녀가 등장하는 <대리 시험>(2019, 김나경) 등이 대표적이다.



나 디아스포라, 영화를 만들다



이러한 거친 통시적 흐름에서 방향을 달리해보자. 우리가 주목해야 할 한국 영화 속 디아스포라 영화들이 있다. 먼저 동시대 한국 영화에서 연출자 자신이 디아스포라의 당사자로서 등장한 경우다. 대표적으로 중국 지린(吉林)에서 태어난 재중 동포 감독 장률이다(경상북도 의성 출신의 조부가 만주로 가면서 시작된 가족 이산의 당사자다). 


 

▲ 영화 <당시> ⓒ한국영상자료원

 

장률이 한국 영화에 처음 진입한 건 북경에서 촬영하고 한국 이야기가 전혀 나오지 않는, 하지만 한국 영화진흥위원회의 예술영화 제작 지원을 받은 <당시>(2004)부터다. 장률의 등장은 한국 영화에 ‘내셔널 시네마’의 의미와 그 경계를 다시 묻게 하는 하나의 계기가 돼줬다. 특히 <망종>(2005)은 연길에서 북경으로 이주한 조선족 여인 순희를 통해 중국 사회 내 조선족의 현실을 들여다보게 하며 한국 영화가 이들의 존재를 어떻게 재현할 것이냐를 고민하게 한다. 조선어와 중국어라는 이중 언어, 빈곤, 젠더 문제가 얽혀 있는 소수 민족으로서 조선족 디아스포라의 현현이다. 


 

▲ 영화 <망종> ⓒ한국영상자료원

 

장률은 황폐함 속에서 폭발 직전의 기운이 감지되는 <중경>(2007), 몽골인과 탈북자가 등장하는 <경계>(2007), 조선 자치주와 북한 함경도 사이인 두만강 변의 마을과 그곳 사람들이 있는 <두만강>(2009)을 거치며 그간 한국 영화가 미처 주목하지 못했거나 관심 두지 않았던 조선족, 탈북자, 재중 동포의 이산과 정체성, 현실을 가시화한다. <중경> 작업부터 한국에 머물며 영화를 만들고 있는 장률은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2018)를 통해 한국 사회와 이산자들 사이의 우연한 마주침에 보다 더 관심을 기울인다. 인간의 의지를 벗어난 우연성이야말로 우리 삶의 원류이자 새로운 가능성의 통로가 아니겠냐는 것이다. 


 

▲ 영화 <디어 평양> ⓒ한국영상자료원

 

한편, 재일 동포 2세인 양영희 감독은 영화를 통해 아주 선명하고 직접적으로 디아스포라의 당사자로서의 자신을 드러낸다. 양영희는 다큐멘터리 <디어 평양>(2006), <굿바이, 평양>(2009), 극영화 <가족의 나라>(2012) 연작으로 일본에서 북한으로 간 친오빠들, 그런 선택을 하게 한 자신의 부모를 둘러싼 감독 자신의 내적 갈등을 들여다본다. 한국 분단과 이산의 역사가 가족 생애사를 어떻게 변모시켜왔는가를 자기반영적으로 그린 경우다.



진실과 거짓이 뒤섞일 수밖에 없는 이중 언어의 세계

 

 

연출자가 디아스포라의 당사자는 아니지만, 영화 연구자로서 이 문제에 접근했고 그 와중에 우발적 만남으로 디아스포라를 경험한 뒤 결국 디아스포라를 영화 창작의 원료이자 본류로 가져온 경우가 있다. 영화감독이자 영화 연구자 김소영의 사례다. 김소영은 1937년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에 따라 연해주에서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지의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한 고려인 이산의 역사를 주목한다. 고려인은 1860년 러-청 베이징 조약 체결 이후 생존을 위해 연해주로 이주한 조선인들이다. 


김소영은 한국 영화가 미처 발굴하거나 발견하지 못한 고려인 디아스포라를 영화로 매핑하고 드러낸다. 그 시작은 김소영이 수업의 일환으로 한국 안산을 찾아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고려인 김 알렉스 씨를 만나면서부터다. 그 결과 <김 알렉스의 식당: 안산-타슈켄트>(2014, 이하 <김 알렉스의 식당>)가 만들어졌고 이어서 <눈의 마음: 슬픔이 우리를 데려가는 곳>(2014)이 완성된다. 영화는 강제 이주로 중앙아시아에서 숨을 거둔 고려인, 그곳에서 지금까지도 살아가는 고려인, 작고한 감독의 아버지(고려인 연구가 고 김열규 선생)를 향한 겹겹의 제의와 애도가 표현돼 있다. 


특히 <김 알렉스의 식당>과 <눈의 마음: 슬픔이 우리를 데려가는 곳>에는 통역과 번역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오역의 문제에 관해 생각해 보게 하는 대목이 있다. 이를테면 <김 알렉스의 식당>에는 인터뷰 대상이 통역가에게 자신이 한 말을 감독에게 다른 의미로 전달해 줄 것을 요청하는 장면이 있다. 감독은 자막 번역을 진행하면서야 뒤늦게 인터뷰이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한 것을 알았겠으나 그 통역, 오역, 거짓말의 순간을 영화에 그대로 넣어두는 선택을 한다. 절대 매끈하게 번역될 수 없고 진실과 거짓이 뒤섞여 있을 수밖에 없는 이중 언어의 세계, 오역이야말로 디아스포라적이며 디아스포라 상황에 있는 사람들의 내밀한 민낯이라 판단한 것이다. 


 

▲ 영화 <고려 아리랑: 천산의 디바> ⓒ한국영상자료원

 

 

▲ 영화 <굿바이 마이 러브 NK: 붉은 청춘> ⓒ한국영상자료원

 

<고려 아리랑: 천산의 디바>(2016)는 카자흐스탄 알마티에 1932년 세워진 고려극장에서 활동한 두 명의 고려인 디바 이함덕, 방 타마라 선생을 중심으로 고려인 이주사를 훑는다. <굿바이 마이 러브 NK: 붉은 청춘>(2017)은 1952년 한국 전쟁 당시 북한에서 모스크바 국립영화학교로 유학을 떠나 그곳에 망명한 8명(자칭 8진)의 인물들의 우정과 사랑, 그들의 예술 이야기다. 김소영의 일련의 작업이 더욱 빛나는 데는 김소영이 발견하고 발굴해 우리 앞에 소개한 고려인 영화인들과 그들의 작품 때문이기도 하다. 김소영은 고 양원석 감독의 <죽은 자를 깨우다>를 자신의 영화에 푸티지로 넣어 한국 관객에게 소개한다. 고려인 영화감독 고 최국인 선생을 직접 만나 그가 공동 연출한 위구르족 해방 투쟁기의 영화 <용의 해>(1981)를 역시나 자신의 영화에 푸티지로 쓰고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소개해 상영의 기회도 만들었다. 고려인 2세인 송라브렌티 감독의 <고려사람>(1992)도 마찬가지의 발견이었다. 심지어 <고려 아리랑: 천산의 디바>에는 <고려사람>에 중요하게 나오는 인물의 딸이 직접 등장하기도 한다. 고려인 영화인들, 고려인 후속 세대와의 우연한 만남이 김소영 영화에 영화적 순간을 만들어준 셈이다.


 

▲ 영화 <우리 학교> ⓒ한국영상자료원

 

한편 정치적 운동과 활동의 일환으로 디아스포라 문제에 접근하는 영화도 있다. <우리 학교>(2006), <그라운드의 이방인>(2013) 등 재일 조선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재일 동포 사회를 조명해온 김명준이 그 경우다. 재일 조선인 사회의 이산의 역사를 둘러싼 그의 관심은 단지 창작자로서 영화 만들기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는 2012년 비영리 민간단체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을 만드는 데 함께하며 적극적인 연대자로서 활동을 이어왔다. 재일조선인들이 고교 무상화 정책에서 유일하게 조선학교만 배제한 일본 정부를 상대로 법정 투쟁을 이어가는 과정을 담은 <부당, 쓰러지지 않는>(2018, 최아람)도 강력한 자기 목소리를 내는 영화다.


디아스포라는 그 오랜 역사성과 더불어 언어, 문화, 경계의 변환과 전환에 대하여 생각해 보게 한다. 디아스포라는 한국 영화의 고정된 지리적 구획을 넘어서 보게 하기도 하며 그로써 세계 영화 속에서 한국 영화의 지형도를 다시 그려보게 만들기도 한다. 그것은 정체성, 유동성, 타자성에 질문을 던지는 디아스포라 관련 영화를 경유해 어쩌면 영화의 디아스포라라는 영화적 가능성, 영화적 상상을 해보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장소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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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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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혜 영화평론가. 현재 인디다큐페스티발 집행위원, 영화 웹진 의 필진 등으로 활동한다. 2019년 인디다큐페스티발 국내 신작전, 전주국제영화제 한국단편경쟁 예심, 2018년 부산국제영화제 한국단편경쟁 예심 등을 진행했다. 공저로 『너와 극장에서』(2018), 『아가씨 아카입』(공저 및 책임 기획, 2017), 『독립영화 나의 스타』(2016)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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