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란 무엇일까? 영어로 표현하면 러브 어페어(love affair), 한자를 풀어보자면 서로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일. 우리는 흔히 연애를 다른 명사와 덧붙여 합성하곤 한다. 가령, 연애결혼, 연애고수, 연애경험 등.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연애는 적어도 한 번쯤은 해보기 마련인 사람의 일이고, 그것은 매우 특별한 어떤 감정의 교류임에 분명하다.
사회와 취향과 본능, 그 사이에서
하지만 엄밀히 말해, 연애는 사회가 허용하는 제도의 일부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 연애와 결혼이 마치 연속선상에 있는 인과관계인 것처럼 여기지만 사실 연애가 결혼의 전 단계가 된 것은 오래지 않은 일이다. 계약에 가까웠던 결혼이라는 제도 앞에서 연애는 오히려 결혼과 무관한 열정적 사랑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았다. 결혼이 집안의 사는 정도나 계층을 따져 서로 맺어지는 계약이라면 연애는 그런 조건과 무관하게 오로지 열정에만 따르는 마음의 움직임이었다.
A.I. 로봇의 튜링 테스트 과정을 그린 영화 <엑스 마키나>에는 마치 구글의 사장 앨런 머스크와 닮은 인물이 신흥 IT 사업가가 등장한다. 그는 A.I 로봇을 여성형으로 만들고, 원천적으로는 남성 그러니까 이성을 사랑하게끔 프로그래밍을 해둔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질문한다. 사실, 우리가 취향이라고 믿고 있는 것들 가령, 이성애자이다, 흑인을 좋아한다 혹은 싫어한다 같은 여러 가지 취향들이 다 프로그래밍의 결과 아니냐고 말이다. 부모로부터 배우고, 학교로부터 학습 받는 과정에서 내가 취향이라고 믿는 것들이 싹트고, 자리 잡는 것이지 그게 정말 내 안에서만 자라난 나의 취향일까? 그런 게 있기는 할까, 라고 말이다.
▲ 영화 <엑스 마키나> ⓒ유니버셜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곰곰 생각해보면, 그의 말이 크게 틀리지는 않는 듯싶다. 우리가 취향으로 간직하고 있는 많은 것들은 문화라고 불리는 환경과 교육에 의한 것이 많다. 그렇다면 과연 성적 취향은 어떨까? 그건 정말 문화와는 완전히 관계가 없는 순전히 동물적인 본능에 의해 결정되는 것일까?
매우 특별한 연애와 그냥 보통의 연애
연애에 빠지면 당사자들은 그 순간 매우 특별한 사람이 된다. 아무리 평범한 사람일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서로에게 최고의 연인이 되고, 최고의 사람이 되고, 가장 가치 있는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이 많은 연애 중에 자신조차 모르고 있던 어떤 사랑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동성 간의 사랑도 이렇게 뒤늦게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앞서 언급했듯 우리는 누구나 이성애자임을 전제로 교육을 받고, 자라고, 취향을 갖는다. 하지만 어느 순간 자신도 몰랐던 그 취향이 남들과 조금 다르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되는 이들이 있다. 애니 프루의 단편소설 <브로크백 마운틴>의 두 남자가 그렇다.
잭과 애니스 두 사람은 방목지에서 양을 치기 위해 만난다. 스무 살도 되지 않았지만 애니스는 이미 알마라는 여성과 결혼을 한 상태였다. 방목지에서 지낸다는 것은 말 그대로 야생의 상태로 돌아간다는 것을 뜻한다. 불을 피우거나 흔적을 남기는 것도 금지되어 있다. 샤워도 뜨거운 물에 적신 수건으로 몸 이곳 저곳을 쓱쓱 닦아 내는 정도이며, 화식이 힘들고 양들 사이에서 텐트를 치고 덜덜 떨며 잠을 청해야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너무 추워서 애니스의 큰 이빨이 덜덜덜 소리를 낼 만큼 추운 어느 날 밤, 애니스는 잭의 텐트 안에 들어가 추위를 녹이며 서로의 몸을 안았고, 그리고 둘은 사랑을 나누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두 사람이 바로 연인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될 수가 없었다. 그들이 살고 있는 와이오밍주는 매우 보수적인 카우보이들의 고장이다. 동네에 동성애자라고 소문이 돌면, 타이어 레버로 얼굴이 완전히 망가진 채 죽어 나가는 일이 심상치 않게 벌어졌다. 누구나 다 왜 타이어에 갑자기 구멍이 나고, 도움을 청하던 자들이 맞아 죽는 지 이유를 알고 있지만, 아무도 그 이유를 묻지 않는 곳. 두 사람의 사랑에 좀 더 당당해 지고 싶은 잭과 달리 이미 아내와 아이가 있는 애니스는 자꾸만 도망치려 한다. 일 년에 한 번 잭과 떠나는 낚시 여행만으로도 되었다는 듯이 말이다.
▲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 ⓒCJ엔터테인먼트
영화로도 만들어진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잭이 세상을 떠난 후 너무 늦게 그를 찾아간 애니스가 잭의 셔츠 위에 자신의 셔츠를 덧입혀 주던 장면이다. 마치, 오래 전 너무나 추웠던 어느 날, 잭이 애니스를 뒤에서 안아 주었듯 셔츠 하나로 남은 잭을 그렇게 애니스의 옷이 안아 주는 것이다.
이렇듯, 소설과 영화에서 동성애는 결국 헤어져야 하거나 혹은 엄청난 폭력 앞에 무방비로 노출되어야 하는 위험한 도약으로 그려지곤 한다. 세상 사람들의 시선은 자신의 테두리를 벗어나 있는 사람들을 허용하지 않고, 또 외면한다. 문제는 그 시선이 폭력을 동반한다는 사실이다. <캐롤>과 같은 작품에서 두 여성이 결국 헤어질 수밖에 없는,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이 되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사회에서 권장하는 프로그래밍 어법과 거리가 먼, 그리고 아주 적은 수의 사람만이 공유하는 외계어를 쓰는 소수자로서 그들은 그렇게 주류에서 밀려나고, 사랑의 실패를 목도하곤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2018년에 개봉했던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지금껏 우리가 알고 있었던 아주 힘든 연애로서의 동성애에 대한 오래된 생각을 바꿔주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남부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무척이나 아름답게 그려진다. 프랑스어, 영어, 이탈리아어를 자유롭게 쓰는 그들의 식탁이나 내리 쬐는 햇살을 맨 몸으로 받으며 살이 빨갛게 익을 때까지 그 빛을 즐기는 모습, 그리고 그리스의 오래된 이야기에나 나올 법한 소년과 지혜로운 남자의 지적인 대화, 싱싱한 열정과 눈빛이 오가는 그곳은 어쩌면 브로크백 마운틴의 정반대편에 놓인 유토피아일 지도 모르겠다.
▲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소니픽처스코리아
그렇다. 그곳은 유토피아 일 지도 모르겠다. 유토피아의 어원을 풀어보면 아무 곳에도 없는 곳을 가리킨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처럼 강렬한 햇살 아래 누구의 폭력이나 방해도 받지 않고, 온전히 사랑하는 동성에게 빠져들 수 있는 시공간은, 아직은, 유토피아임에 분명하다. 너무 아름답고, 동등하고, 평화로워 도저히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이 세상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곳,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그런 유토피아를 그려내고 있다.
뜨거운 공감보다 먼저 세련된 무관심
그렇다면 지금, 여기, 우리의 현실은 어떨까? 아마도, 현실에서 동성의 사랑은 ‘연애’라는 사회적 형식에 포함되지 못한, 소수자의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다. 떳떳하게 나 ‘연애해’라고 말하거나, 연애의 마음을 드러내기엔 여전히 우리의 프로그래밍은 견고하고 잔혹하다. 다양한 사랑의 표정이라고 수긍해주는 그 정도의 관용도, 사실 현실에서는 찾기 어렵다. 결국 헤어져야 할 운명에 놓인 멜로 드라마 속의 주인공들, 그냥 이성애자들처럼 만나고, 사랑하다, 싫증 내고 헤어지는 그런 보통의 연애가 아니라 아직은 너무나 힘들게 피하거나 지켜내야만 하는 특별한 사랑으로 그려지는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더 많은 다양한 사랑의 모습을 그려내고 써내야 하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만큼이나 다양한 사랑의 풍경들, 어쩌면 그것을 담아내기 위해선 엄청난 관용보다 어쩌면 세련된 무관심이 먼저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영화평론가, 강남대학교 교수.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살았고 지금도 그렇다. 2005년 조선, 경향,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당선되며 생애 최고의 주목을 받았다. 우연인 줄 알았던 영화평론가의 길이 필연이 된 삶에 감사하며, 취미가 일이 된 것도 다행스럽게 여긴다. 강남대학교에서 최선의 열정을 학생들과 나누며, 매년 한 권 이상 책을 엮겠다는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려 애쓰는 천생 글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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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특별한 연애, 그냥 보통의 연애
<브로크백 마운틴>부터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까지, 동성애를 주제로 한 영화들
강유정
2018-07-16
연애란 무엇일까? 영어로 표현하면 러브 어페어(love affair), 한자를 풀어보자면 서로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일. 우리는 흔히 연애를 다른 명사와 덧붙여 합성하곤 한다. 가령, 연애결혼, 연애고수, 연애경험 등.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연애는 적어도 한 번쯤은 해보기 마련인 사람의 일이고, 그것은 매우 특별한 어떤 감정의 교류임에 분명하다.
사회와 취향과 본능, 그 사이에서
하지만 엄밀히 말해, 연애는 사회가 허용하는 제도의 일부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 연애와 결혼이 마치 연속선상에 있는 인과관계인 것처럼 여기지만 사실 연애가 결혼의 전 단계가 된 것은 오래지 않은 일이다. 계약에 가까웠던 결혼이라는 제도 앞에서 연애는 오히려 결혼과 무관한 열정적 사랑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았다. 결혼이 집안의 사는 정도나 계층을 따져 서로 맺어지는 계약이라면 연애는 그런 조건과 무관하게 오로지 열정에만 따르는 마음의 움직임이었다.
A.I. 로봇의 튜링 테스트 과정을 그린 영화 <엑스 마키나>에는 마치 구글의 사장 앨런 머스크와 닮은 인물이 신흥 IT 사업가가 등장한다. 그는 A.I 로봇을 여성형으로 만들고, 원천적으로는 남성 그러니까 이성을 사랑하게끔 프로그래밍을 해둔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질문한다. 사실, 우리가 취향이라고 믿고 있는 것들 가령, 이성애자이다, 흑인을 좋아한다 혹은 싫어한다 같은 여러 가지 취향들이 다 프로그래밍의 결과 아니냐고 말이다. 부모로부터 배우고, 학교로부터 학습 받는 과정에서 내가 취향이라고 믿는 것들이 싹트고, 자리 잡는 것이지 그게 정말 내 안에서만 자라난 나의 취향일까? 그런 게 있기는 할까, 라고 말이다.
▲ 영화 <엑스 마키나> ⓒ유니버셜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곰곰 생각해보면, 그의 말이 크게 틀리지는 않는 듯싶다. 우리가 취향으로 간직하고 있는 많은 것들은 문화라고 불리는 환경과 교육에 의한 것이 많다. 그렇다면 과연 성적 취향은 어떨까? 그건 정말 문화와는 완전히 관계가 없는 순전히 동물적인 본능에 의해 결정되는 것일까?
매우 특별한 연애와 그냥 보통의 연애
연애에 빠지면 당사자들은 그 순간 매우 특별한 사람이 된다. 아무리 평범한 사람일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서로에게 최고의 연인이 되고, 최고의 사람이 되고, 가장 가치 있는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이 많은 연애 중에 자신조차 모르고 있던 어떤 사랑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동성 간의 사랑도 이렇게 뒤늦게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앞서 언급했듯 우리는 누구나 이성애자임을 전제로 교육을 받고, 자라고, 취향을 갖는다. 하지만 어느 순간 자신도 몰랐던 그 취향이 남들과 조금 다르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되는 이들이 있다. 애니 프루의 단편소설 <브로크백 마운틴>의 두 남자가 그렇다.
잭과 애니스 두 사람은 방목지에서 양을 치기 위해 만난다. 스무 살도 되지 않았지만 애니스는 이미 알마라는 여성과 결혼을 한 상태였다. 방목지에서 지낸다는 것은 말 그대로 야생의 상태로 돌아간다는 것을 뜻한다. 불을 피우거나 흔적을 남기는 것도 금지되어 있다. 샤워도 뜨거운 물에 적신 수건으로 몸 이곳 저곳을 쓱쓱 닦아 내는 정도이며, 화식이 힘들고 양들 사이에서 텐트를 치고 덜덜 떨며 잠을 청해야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너무 추워서 애니스의 큰 이빨이 덜덜덜 소리를 낼 만큼 추운 어느 날 밤, 애니스는 잭의 텐트 안에 들어가 추위를 녹이며 서로의 몸을 안았고, 그리고 둘은 사랑을 나누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두 사람이 바로 연인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될 수가 없었다. 그들이 살고 있는 와이오밍주는 매우 보수적인 카우보이들의 고장이다. 동네에 동성애자라고 소문이 돌면, 타이어 레버로 얼굴이 완전히 망가진 채 죽어 나가는 일이 심상치 않게 벌어졌다. 누구나 다 왜 타이어에 갑자기 구멍이 나고, 도움을 청하던 자들이 맞아 죽는 지 이유를 알고 있지만, 아무도 그 이유를 묻지 않는 곳. 두 사람의 사랑에 좀 더 당당해 지고 싶은 잭과 달리 이미 아내와 아이가 있는 애니스는 자꾸만 도망치려 한다. 일 년에 한 번 잭과 떠나는 낚시 여행만으로도 되었다는 듯이 말이다.
▲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 ⓒCJ엔터테인먼트
영화로도 만들어진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잭이 세상을 떠난 후 너무 늦게 그를 찾아간 애니스가 잭의 셔츠 위에 자신의 셔츠를 덧입혀 주던 장면이다. 마치, 오래 전 너무나 추웠던 어느 날, 잭이 애니스를 뒤에서 안아 주었듯 셔츠 하나로 남은 잭을 그렇게 애니스의 옷이 안아 주는 것이다.
이렇듯, 소설과 영화에서 동성애는 결국 헤어져야 하거나 혹은 엄청난 폭력 앞에 무방비로 노출되어야 하는 위험한 도약으로 그려지곤 한다. 세상 사람들의 시선은 자신의 테두리를 벗어나 있는 사람들을 허용하지 않고, 또 외면한다. 문제는 그 시선이 폭력을 동반한다는 사실이다. <캐롤>과 같은 작품에서 두 여성이 결국 헤어질 수밖에 없는,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이 되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사회에서 권장하는 프로그래밍 어법과 거리가 먼, 그리고 아주 적은 수의 사람만이 공유하는 외계어를 쓰는 소수자로서 그들은 그렇게 주류에서 밀려나고, 사랑의 실패를 목도하곤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2018년에 개봉했던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지금껏 우리가 알고 있었던 아주 힘든 연애로서의 동성애에 대한 오래된 생각을 바꿔주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남부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무척이나 아름답게 그려진다. 프랑스어, 영어, 이탈리아어를 자유롭게 쓰는 그들의 식탁이나 내리 쬐는 햇살을 맨 몸으로 받으며 살이 빨갛게 익을 때까지 그 빛을 즐기는 모습, 그리고 그리스의 오래된 이야기에나 나올 법한 소년과 지혜로운 남자의 지적인 대화, 싱싱한 열정과 눈빛이 오가는 그곳은 어쩌면 브로크백 마운틴의 정반대편에 놓인 유토피아일 지도 모르겠다.
▲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소니픽처스코리아
그렇다. 그곳은 유토피아 일 지도 모르겠다. 유토피아의 어원을 풀어보면 아무 곳에도 없는 곳을 가리킨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처럼 강렬한 햇살 아래 누구의 폭력이나 방해도 받지 않고, 온전히 사랑하는 동성에게 빠져들 수 있는 시공간은, 아직은, 유토피아임에 분명하다. 너무 아름답고, 동등하고, 평화로워 도저히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이 세상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곳,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그런 유토피아를 그려내고 있다.
뜨거운 공감보다 먼저 세련된 무관심
그렇다면 지금, 여기, 우리의 현실은 어떨까? 아마도, 현실에서 동성의 사랑은 ‘연애’라는 사회적 형식에 포함되지 못한, 소수자의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다. 떳떳하게 나 ‘연애해’라고 말하거나, 연애의 마음을 드러내기엔 여전히 우리의 프로그래밍은 견고하고 잔혹하다. 다양한 사랑의 표정이라고 수긍해주는 그 정도의 관용도, 사실 현실에서는 찾기 어렵다. 결국 헤어져야 할 운명에 놓인 멜로 드라마 속의 주인공들, 그냥 이성애자들처럼 만나고, 사랑하다, 싫증 내고 헤어지는 그런 보통의 연애가 아니라 아직은 너무나 힘들게 피하거나 지켜내야만 하는 특별한 사랑으로 그려지는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더 많은 다양한 사랑의 모습을 그려내고 써내야 하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만큼이나 다양한 사랑의 풍경들, 어쩌면 그것을 담아내기 위해선 엄청난 관용보다 어쩌면 세련된 무관심이 먼저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영화평론가, 강남대학교 교수.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살았고 지금도 그렇다. 2005년 조선, 경향,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당선되며 생애 최고의 주목을 받았다. 우연인 줄 알았던 영화평론가의 길이 필연이 된 삶에 감사하며, 취미가 일이 된 것도 다행스럽게 여긴다. 강남대학교에서 최선의 열정을 학생들과 나누며, 매년 한 권 이상 책을 엮겠다는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려 애쓰는 천생 글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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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매우 특별한 연애, 그냥 보통의 연애'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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