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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애초에 역사가 아닌데…, 사람 닮은 인형이 사람일까

- 영화 〈나는 부정한다〉로 살펴보는 유사역사학 - 그 장면 전후사의 재인식 -

by 이문영 / 2022-02-21

그 장면 전후사의 재인식은? 영화, 드라마 등 일반 시민들에게 익숙한 대중문화 콘텐츠를 통해 소개되고 있는 역사 속 특정 장면들은 그 앞뒤로  어떤 시대적 상황과 맥락, 역사적 진실과 논란 등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걸까. 역사 전문가들의 친절한 소개와 설명을 통해 그동안 피상적으로 접했던  역사적 사실에 대해 보다 구체적이고 가깝게 다가가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한다.


이 재판의 비용은 300만 달러 가량이 들었다. 펭귄북스가 휘청할 만한 비용이었다. 이 때문에 이후 립스타트와 같은 식의 책을 내는 것을 망설이게 만드는 비극적인 현상도 벌어졌다. 2천 부 남짓 팔릴 책의 위험 비용이 너무 컸던 것이다. 사악한 이들이 선량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방법은 이처럼 무궁무진하다.



법정에 서게 된 ‘홀로코스트’ 부정 논란



미국의 역사학자 데보라 립스타트(좌)와 『홀로코스트 부정 : 진실과 기억에 대해 증가하는 공격(Deborah Lipstadt - Denying the Holocaust: The Growing Assault on Truth and Memory)』 책 표지(우)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필자제공)

미국의 역사학자 데보라 립스타트(좌)와 『홀로코스트 부정 : 진실과 기억에 대해 증가하는 공격』 책 표지(우)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필자제공)



1993년 미국의 유대인 역사학자 데보라 립스타트(Deborah Lipstadt, 1947~)는 『홀로코스트 부정 : 진실과 기억에 대해 증가하는 공격』 이라는 책을 냈다. 이 책은 홀로코스트(나치에 의한 유대인 대학살)가 없었다고 주장하는 ‘홀로코스트 부정론’의 전략을 파헤치는 책이었다.


1995년 립스타트의 강연장에 영국에서 활동 중인 작가 데이비드 어빙(David John Cawdell Irving, 1938~)이 등장했다. 그는 홀로코스트가 없다고 주장하는 인물이었다. 립스타트의 책에서 “유대인 대학살을 부정하는 가장 위험한 대변인 중 한 명”이라고 표현되어 있었다.



“전세계를 뒤흔든 세기의 재판실화” 거짓이 승리하는 것을 진실이 침묵하는 것을 〈나는 부정한다〉 04.26

영화 〈나는 부정한다〉 포스터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2016년에 제작된 영화 〈나는 부정한다〉는 이 인상적인 지점에서 시작한다. 홀로코스트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어빙(티모시 스폴 분)은 립스타트(레이첼 와이즈 분)에게 토론을 제의하는데, 립스타트는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립스타트는 바로 자신의 책에서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과 논쟁하지 않는 이유를 적어 놓았다.


“나는 홀로코스트 부정론자와 토론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거듭 설명했다. 홀로코스트의 존재는 논쟁거리가 아니었다. 나는 그들이 누구이며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분석하고 설명할 것이지만 그들과 함께 출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그들에게 합법성과 그들이 받을 자격이 없는 위상을 줄 것이다. 그것은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것과 같은 그들의 반유대주의 이데올로기를 책임 있는 역사 기록의 수준으로 끌어올릴 것이다.)”

 

 

영화 속 강연장에서 데이비드 어빙과 데보라 립스타트가 만나는 장면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속 강연장에서 데이비드 어빙과 데보라 립스타트가 만나는 장면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어빙은 전략을 바꾸었다. 립스타트의 책이 영국 펭귄북스에서 출간되자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것이었다. 어빙은 립스타트가 역사가인 자신을 공격하고 나치 옹호자로 비난하여 명예가 훼손당했다고 주장했다.



홀로코스트 부정론의 역사



나치 시대 유대인 대학살이 진행된 대표적인 공간인 아우슈비츠 수용소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나치 시대 유대인 대학살이 진행된 대표적인 공간인 아우슈비츠 수용소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홀로코스트가 없었다는 주장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다. 첫 주장은 1948년 프랑스에서 나왔다. 문학박사 모리스 바르데쉬(Maurice Bardèche, 1907~1998)가 1948년에 낸 책 『뉘른베르크, 약속의 땅』이 시작이었다. 바르데쉬는 이 책에서 홀로코스트는 이스라엘 건국을 위한 날조라고 주장했다. 그는 나치에 협력한 문인의 매부이기도 했다. 결국 그는 1952년에 금고 1년 형과 5만 프랑의 벌금형에 처해졌다.


하지만 1950년에 프랑스 출신의 역사학자이자 정치활동가였던 폴 라시니에(Paul Rassinier, 1906~1967)가 『율리시스의 거짓말』이라는 책에서 유대인 학살은 아우슈비츠에 같이 수감되었던 공산주의자들이 한 일이라는 주장을 내놓았다. 좌파의 유명인이라는 이유로 그의 주장은 바르데쉬의 주장에 힘을 실어 주게 되었다.


1974년 영국 극우 인사 리처드 하우드(Richard E. Harwood, 1948~)가 『정말 600만이 죽었나?』라는 책을 내놓았다. 홀로코스트 부정론 확산에 결정타를 날린 책이었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도 번역되었는데 다행히 지금은 품절 상태다.


그 뒤를 이어 1978년에 리옹 2대학의 로베르 포리송(Robert Faurisson, 1929~2018) 교수가 『가스실에 대한 문제, 아우슈비츠의 소문』을 내놓았다. 그는 가스실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 일로 포리송은 금고 3개월과 2만 프랑의 벌금형을 받았고 나중에는 교수직에서 파면됐다. 포리송은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었다고 주장했고, 미국의 대표적인 진보 지성인으로 널리 알려진 언어학자 노암 촘스키(Noam Chomsky, 1928~)조차 표현의 자유는 보장받아야 한다며 포리송의 편을 드는 자세를 취했다. 촘스키는 후일 포리송의 주장 자체는 잘 몰랐다고 말했는데, 그렇다고 해도 표현의 자유 쪽에 섰을 것이라며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프랑스의 역사학자 앙리 루소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프랑스의 역사학자 앙리 루소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홀로코스트가 없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역사의 해석을 달리하는 것뿐이라고, 즉 역사 해석의 주류와는 다른 ‘수정주의자’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프랑스 역사학자 앙리 루소(Henry Rousso, 1954~, 파리 10대학 사학과 교수)는 이들은 역사 해석을 달리하는 것이 아니라 엄연히 존재한 사실을 부정하는 ‘부정주의자’라고 규정했다.


앙리 루소는 역사의 해석을 달리하는 수정주의는 역사가들의 다양한 해석을 위해 보장되어야 하지만 홀로코스트 부정론자의 주장은 역사학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이들은 역사학처럼 보이지만 역사학이 아닌 유사역사학의 범주에 있는 사람들일 뿐이다.



‘승소’가 아닌 ‘선전’이 목표였던 재판



영화 〈나는 부정한다〉 속 데이비드 어빙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나는 부정한다〉 속 데이비드 어빙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홀로코스트 부정주의자들에게 번듯한 역사책을 출간한 데이비드 어빙은 소중한 자산에 속했다. 데이비드 어빙 역시 자신의 명성을 지켜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한 것이었다.


영국은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하면 피고소인이 무죄를 입증해야 하고, 전통적으로 법원은 원고의 편에 서서 판결을 내리곤 했다. 따라서 어빙은 자신의 승리를 자신하고 있었다. 어빙은 립스타트와 펭귄북스를 모두 고소했고, 그들에게 책을 절판하고, 공개 사과한 후, 500파운드를 자선단체에 기부하면 고소를 철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립스타트와 펭귄북스는 굴복하지 않기로 했다. 만일 물러선다면 홀로코스트 부정론은 법원에 의해서 인정받는 ‘학설’이 될 판이었다. 이들은 옥스포드 대학의 명망 있는 역사가 리처드 에반스(Richard John Evans 1947~)의 도움을 받아서 2년간 재판을 준비하게 되었다.



영화 〈나는 부정한다〉 속 재판 장면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나는 부정한다〉 속 재판 장면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그리하여 2000년 1월 11일부터 4월 11일까지의 3개월 간의 대전쟁이 벌어지게 되었다.


립스타트는 영국의 유명 변호사 앤서니 줄리어스(Anthony Julius, 1956~)를 고용했고, 펭귄북스는 명예훼손 전문 변호사들을 고용했다.


립스타트는 자신의 책에서 이와 같은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한 바 있었다. 미국의 대학신문에 홀로코스트 부정론 광고를 실으려 한 일이 있었다. 대학신문이 광고를 실어주면 자신들의 주장을 널리 선전할 수 있고, 광고를 거절하면 헌법상의 권리가 유대인들의 이익과 결탁한 세력에 의해 탄압받고 있다고 선전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어빙의 명예훼손 소송 역시 자신의 주장을 영국의 모든 언론에 선전할 기회가 되었다. 심지어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한국 신문에조차 “아우슈비츠엔 독가스실 없었다”는 제목으로 그의 주장이 실릴 정도였다.


재판이 실제 진행되는 모습은 영화를 통해서 잘 볼 수 있다. 이 영화는 티빙, 네이버 시리즈온, 웨이브 등을 통해서 단돈 천 원으로 볼 수 있다. 왓챠에서도 서비스하고 있다.



유사역사학 혹은 역사부정론은 그냥 선전물일 뿐!!



유사역사가들은 역사적 사실 가운데 아주 세부적인 사항에 대한 모순을 들고나와 전체의 큰 흐름을 뒤집으려고 한다. 의도적으로 사료를 잘못 읽기도 한다. 어빙은 독일어에 능통하지만 몇 단어를 일부러 잘못 읽어서 자기주장에 적합하게 조작하기도 했다.


이들은 역사란 역사가들이 재해석하는 것이라는 포스트모더니즘 역사학을 자신들의 무기로 삼아서 자신들의 주장도 단지 ‘다른 해석’이라고 말한다. 포스트모더니즘 역사학에서는 어떤 진실이든 바뀔 수 있고 어떤 사실이든 재구성될 수 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부정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은 애초에 ‘역사학’이 아니라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유사역사가들은 지속적으로 역사학자와 어울림으로써 자신들의 주장이 역사학의 한 분야인 것처럼 보이게 하고자 노력한다. 이 속임수에 빠져들어서는 안 된다. 이들의 주장은 정치적인 선전물일 뿐이다. 유사역사학이란 역사학이 아니고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선전하는 선전물에 불과하다. 인형이 사람을 닮았다고 해도 사람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3개월간의 재판 끝에 어빙은 패소했다. 재판관은 어빙을 가리켜 “홀로코스트를 적극적으로 부정하는 사람, 반유대주의적이고 인종차별주의자이며 우익 극단주의자들과 결부되어 있다”고 말했다.


무려 349페이지에 달하는 재판의 판결문은 공개되어 있고 아래 주소를 통해 인터넷으로 열람할 수 있다.



England and Wales High Court (Queen's Bench Division) Decisions / Irving v. Penguin Books Limited, Deborah E. Lipstat [2000] EWHC QB 115 (11th April, 2000)

해당 재판의 판결문 일부 (이미지 출처: bailii)

(판결문: http://www.bailii.org/ew/cases/EWHC/QB/2000/115.html)



그러나 이 재판의 비용은 300만 달러 가량이 들었다. 펭귄북스가 휘청할 만한 비용이었다. 이 때문에 이후 립스타트처럼 반대편의 거센 공격을 받을 만한 내용을 다루는 책을 내는 것을 망설이게 만드는 비극적인 현상도 벌어졌다. 2천 부 남짓 팔릴 책의 위험 비용이 너무 컸던 것이다. 사악한 이들이 선량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방법은 이처럼 무궁무진하다.



법이 아닌 지성과 양식으로… “나는 부정한다”



영국의 작가 데이비드 어빙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영국의 작가 데이비드 어빙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어빙은 2005년 오스트리아를 방문했다가 체포되었다. 1989년에 홀로코스트 부정 연설을 한 것 때문에 오스트리아에서 체포 영장이 발부되어 있었던 것이다. 어빙은 자기는 이제 홀로코스트를 부정하지 않는다고 발뺌을 했지만, 3년 형을 선고받았다.


어빙의 체포에 대해서 립스타트와 에반스는 홀로코스트 부정론을 법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찬성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유럽의 여러 나라에 홀로코스트 부정론에 대한 처벌법이 있는데, 영국과 미국에는 그런 것이 없다.


엄연히 실재한 역사를 부정하는 일은 우리 주변에서도 볼 수 있는 일 중 하나다. 『환단고기』 같은 가짜 역사책을 믿는다든가, 일본군 ‘위안부’를 부정한다든가, 고구려 역사를 자국 역사라 우기는 중국의 동북공정과 같은 일들도 이런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이런 주장을 일일이 법으로 규제할 수는 없다. 법이 아니라 지성과 양식이 있는 사람들이 거부해야 한다. 우리들 역시 유사역사학의 주장에 대해서 단호하게 “나는 부정한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참고도서 및 논문〉

- Deborah E. Lipstadt, 『Denying the Holocaust: The Growing Assault on Truth and Memory』, Plume, 1994

- 로버트 이글스톤, 김원기 역, 『포스트모더니즘과 유대인 대학살의 부인』, 이제이북스, 2004

- 마이클 셔머, 류운 역,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 바다출판사, 2007

- 미치코 가쿠타니, 김영선 역,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 거짓과 혐오는 어떻게 일상이 되었나』, 돌베개, 2019

- 방지원, 〈기억의 정치와 역사부정, 역사교육은 어떻게 대처할까?〉, 《역사와 세계》58, 효원사학회, 2020

- 신동규, 〈프랑스 부정주의의 논리 : 홀로코스트에 대한 인식과 해석〉, 《역사와 문화》28, 문화사학회, 2014

- 이재승, 〈기억과 법: 홀로코스트 부정〉, 《법철학연구》11, 한국법철학회, 2008



[그 장면 전후사의 재인식] 애초에 역사가 아닌데…, 사람 닮은 인형이 사람일까

- 지난 글: [그 장면 전후사의 재인식]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 상상이 아닌 현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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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영 작가 사진
이문영

소설가, 역사작가, 게임기획자, 편집자
그림책 『색깔을 훔치는 마녀』, 동화책 『역사 속으로 숑숑』, 추리소설 『신라 탐정 용담』, 로맨스소설 『자명고』, 판타지 소설 『아이, 뱀파이어』, SF 『오리지널 맨』 등 다양한 장르의 글쓰기를 해오고 있다. 역사책으로는 『유사역사학 비판』, 『하룻밤에 읽는 한국 고대사』 등의 책이 있다. <스톤엑스>, <일지매전 만파식적편>, <무혼> 등의 게임 기획도 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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