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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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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이산의 달’ 6월과 디아스포라

우리 현대사는 곧 이산의 역사이기도 하다

by 표정훈 / 2019.06.03

 

‘이산(離散)의 달’ 6월과 디아스포라 


「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의 시작은 ‘6.25 33주년 특집 프로그램’이었다. 90분으로 편성되어 1983년 6월 30일 밤 10시 15분에 방송이 시작됐다. 방청석에 이산가족 150명이 초청됐지만 1천 명 넘는 이산가족이 몰려들었다.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전화가 폭주했다. 급기야 KBS는 정규방송을 모두 취소하고 5일 동안 릴레이 생방송을 진행했다. 


 

 한국 현대사의 한 장면, 이산가족 찾기 특별 방송 


방송과 별도로 여의도 KBS 본관 벽과 그 앞 광장에는 가족 찾는 사연을 적은 벽보가 나붙었다. 수많은 이산가족이 각자 사연을 적은 종이를 들고 다녔다. 나중에 벽보는 10만 장을 넘었다. 이후 정규 프로그램으로 편성되어 그 해 11월 14일까지 4개월 반, 138일에 걸쳐 무려 453시간 45분 동안 방송하여 단일 주제 생방송 최장시간 기록을 남겼다. 


여의도 만남의 광장

▲ 여의도 만남의 광장에 마련된 적십자 봉사센터 ⓒ서울사진아카이브


총 신청 10만 952건, 상봉 이산가족 1만 189명, 출연자 5만 3,536명. 이산가족 찾기 방송은 현대사의 비극과 아픔을 풀어내면서 ‘역사적 프로그램’ 반열에 올랐다. 생방송 비디오 녹화원본 테이프 463개, 담당 프로듀서 업무 수첩, 이산가족이 직접 작성한 신청서, 일일 방송 진행표, 큐시트, 기념 음반, 사진 등 2만 522건의 기록물은 2015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6월은 이른바 ‘호국보훈의 달’이다. 6.25전쟁 기념일이 있고 현충일이 있다. 식민지 시대와 독립운동, 6.25전쟁과 분단으로 이어지는 현대사의 아픔을 기억하고 추념하는 달이다. 그 아픔의 한 가운데 이산(離散)이 있다. 간도·연해주·시베리아·하와이 기타 여러 지역으로 흩어져야 했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서 헤어져야 했다. 부산 정거장은 ‘쓰라린 피난살이 지나고 보니 기적도 목이 메어 소리 높이 우는’ 이별의 부산 정거장이었다. 최인훈 소설 「광장」의 이명준은 남쪽도 북쪽도 아닌 곳으로 이산을 감행했다. 




 디아스포라, 현재진행형의 우리 자신 


이산이 학문적 의미로 쓰일 때는 ‘디아스포라’로 일컬어진다. 고대 유대 민족이 전쟁에서 패하고 사실상 강제로 고향을 떠나 각지에 흩어져 살게 되면서, 그 이산의 경험을 가리키기 위해 처음 쓴 말이다. 물론 오늘날의 디아스포라 개념은 유대인의 역사적 이산 경험을 훨씬 더 뛰어넘어 폭넓은 뜻으로 쓰인다. 


디아스포라의 기본적 정의(定義)로는 다음과 같은 사항이 비교적 널리 쓰인다. 어떤 중심지에서 다수의 주변 또는 해외로 이산하고, 그렇게 이산한 집단이 공통의 기억이나 전승, 신념을 유지한다. 이산하여 정착한 지역에서 소외감과 상처감을 느끼고, 이산하기 전 모국이야말로 진정한 고향이며 돌아가야 할 곳이라 여긴다. 


 


주의할 점은 단순한 이주·이민과는 다르다는 것. 단순한 이주·이민과 달리 이산은 집단적 트라우마 경험을 공유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를 기억하고 애도, 추모하는 정서적 공감대를 유지한다. 이러한 경험의 공유와 공감대가 모국과 지속적으로 연계하고 모국에 헌신하려는 노력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각 지역에 흩어진 디아스포라 집단이 서로 연대하기도 한다. 


전 세계 한국어 사용자가 7720만 명이라고도 한다. 남북한 인구를 합하면 7500만 명 정도이니 한국어 사용자 기준으로는 적어도 220만 명 이상, 한국어 사용 기준을 적용하지 않으면 그보다 훨씬 더 많은 한민족이 세계에 흩어져 있다. 그래서 ‘8000만 한민족’이라는 표현을 자주 접할 수 있다. 이산·디아스포라의 역사는 그 한민족 역사의 중요한 한 부분이자 현재진행형이다. 우리 현대사는 이산의 역사이기도 하다. 우리의 6월은 ‘이산의 달’이라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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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훈 필자 사진
표정훈
작가, 출판칼럼니스트. 서강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책·독서·출판에 관한 글을 주로 쓴다. 한양대 창의융합교육원 특임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과,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강사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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