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이시는 다른 건 아무것도 모르지만 이 상황이 말이 안 된다는 것만큼은 안다. 왜냐하면 최신 유행 음악은 흑인들의 그루비 디스코 뮤직이고, 흑인 친구들이 그 음악에 맞춰 근사한 춤을 추므로, 함께 춤을 추는 것이 가장 재미있기 때문이다. 이에 목소리 높여 함께 춤출 권리를 말하는 트레이시에게 누군가 묻는다. “얘야, 역사 시간에 졸았니?” 트레이시는 말한다. “네, 항상 졸아요!”
전화로 이 원고를 써 보라는 제안을 처음 받았을 때, 아마 전화를 걸어주신 분(소설가 김미월 선생님)께서도 눈치를 채셨겠지만, 나는 막 자다 깬 참이었다. 해가 떨어지지 않은 오후였으나 정오로부터도 시간은 충분히 지나 있었다. 모든 작가들이 나처럼 엉망으로 자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작가들은 그렇다는 것을 잘 아셔서인지 통화 상대께서는 충분히, 천천히, 시간을 들여 내가 써야 하는 글에 대해 설명을 해 주셨다.
“…… 해서, ‘서툰 인생을 위한 변명’이라는 원고의 청탁을 드리려고 하고요. 원고 취지는……”
문학 속의, 좀 더 넓게는 이야기 속의 등장인물이 경험한 낭패와 실패담을 말하면서, 이야기 바깥에서 살아가는 우리들 삶에 위로가 될 만한 부분을 찾아볼 것.
그런데 나는 잠이 덜 깬 상태였음에도, 그 친절한 설명이 이제 막 시작되었을 따름에도 어떤 이야기를 쓰면 좋을지를 이미 어렴풋이나마 떠올리고 있었다.
때마침 봤던 영화 〈위대한 쇼맨〉 속 그 배우
영화 〈위대한 쇼맨〉 포스터와 영화의 실존 인물 피니어스 테일러 버넘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그러고 보면 사는 게 참 마침맞다는 생각이 든다.
마침 그 며칠 전에 오랜만에 뮤지컬 영화를, 특히 전에 본 적 없는 것을 보고 싶다는 생각(언제부터인가 새로운 영상물을 보는 데에 상당한 피로감을 느끼게 되어서 뭔가를 볼 때 ‘큰맘’을 먹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고 그래서 이미 본 영화를 몇 번이고 다시 보는 습관도 생겼다)을 했고 그래서 〈위대한 쇼맨〉을 봤다. 현대적인 서커스를 발명한 쇼 비즈니스 맨이자 근대 미국을 대표하는 휴머니스트이자 돈을 벌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든(그가 가장 좋아한 상품은 ‘인간성’이었다) 상품화해버리곤 했던 실존 인물 버넘(‘버넘 이펙트’라는 말에 붙은 그 이름이 맞다)의 전기 영화. 이 영화의 주인공 버넘에 대해서나, 이 논란 많은 인물에 대한 전기 영화를 ‘굳이’ 만들어버린 배우 휴 잭맨에 대해서, 또한 버넘이 서커스를 만들기 위해 모았던 사람들에 대해서 써도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 영화를 보다 그만 엉뚱한 곳에 집중하게 되어버렸다. 분명 내가 모르는 배우 같은데 묘하게 낯이 익고, 낯은 익지만 이름이 도통 생각 안 나는 어떤 배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버넘의 조수로 나온 그의 배역 이름을 검색창에 써넣었다가 그 역할을 맡은 배우가 잭 에프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뭐라고?
배우 잭 에프론의 〈위대한 쇼맨〉(좌)vs〈헤어스프레이〉(우) 모습 비교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내가 기억하는 잭 에프론의 외모는 영화 〈헤어스프레이〉의 미소년 ‘링크’ 시절에 머물러 있었기에 두 눈으로 보면서도 그의 변화를 믿을 수 없었다. 얼굴이 닮기는 닮은 지라 잭 에프론 삼촌 정도라 하면 믿겠는데…… 벌크업을 굉장히 열심히 했구나…… 운동을 얼마나 열심히 했길래 턱도 두 쪽으로 갈라졌니…… (참고로 서구권에서는 남성의 갈라진 턱이 성적 매력을 보장하는 특징 중 하나라고 한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헤어스프레이〉가 다시 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이 영화의 주인공 트레이시 턴블래드를 위한 변명을 쓰고 있다.
별 볼일 없던 여고생, tv쇼에 출연하다
영화 〈헤어스프레이〉 포스터 (이미지 출처: Wikipedia)
때는 1960년대, 곳은 미국 볼티모어. 트레이시 턴블래드(배우 니키 블론스키)는 고등학교에 다니지만 공부와는 진작 척을 졌고 방과 후 TV에서 나오는 로컬 하이틴 프로그램 “코니 콜린스 쇼”를 보면서 최신 유행 댄스를 따라 출 생각밖에는 안 하는 여자애다. 언젠가는 코니쇼 출연진으로 합류해 같은 출연진인 링크(얘가 잭 에프론이다)하고 사랑에 빠지는 망상을 하며 친구 페니와 함께 TV 앞에서 춤을 추지만, 엄마 에드나는 ‘우리 같은 여자들’은 집안일이나 잘하면 된다며 자신의 세탁소를 물려받으라 하고, 허섭스레기 장난감 가게를 운영하는 아빠 윌버는 트레이시에게 큰 힘이 되어주지 못한다.
부모님이 그런다고 포기할 트레이시였다면 주인공도 아니었으리. 코니 쇼 출연진 하나가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게 되자 트레이시는 학교를 땡땡이치고 오디션장으로 가지만, 빼어난 춤 실력을 보여주었음에도 고배를 마시고 만다. 그럼에도 어쨌든 트레이시는 TV에 출연하게 된다. 학교를 땡땡이치는 등의 불량한 태도 때문에 반성실에 갔고, 반성실은 알고 보니 흑인 학생들의 아지트나 다름없었으며, 거기에서 멋진 춤 동작들을 배워 학교 파티에서 선보였더니 코니 쇼 관계자들이 트레이시에게 먼저 다가왔기 때문이다!
뭐랄까, 요약하고 보니 전형적인 신데렐라(연예인) 스토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앞날에 대한 아무 고민도 없고 그저 춤추고 놀기만 좋아하는 여자애가 우연히 잘 풀렸다는 이야기는. 그러면 이 여자애를 소개하는 동안 내가 일부러 여기까지 밝히지 않은 정보 하나를 더해야겠다.
“엄마 시대가 변했어!! 지금은…”
영화 〈헤어스프레이〉 스틸컷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트레이시 턴블래드는 뚱뚱하다.
약간 통통한 정도가 아니라, 코니 쇼에 출연하는 못된 여자애들이 “우리 쇼는 극장이 아니라 텔레비전용이어서 네 몸이 다 나올지 모르겠네?”라고 조롱할 만큼 뚱뚱하다. 트레이시의 엄마 에드나도 뚱뚱하다. 에드나가 말하는 ‘우리 같은 여자들’, TV에 나올 수 없는 여자들이란, 집 밖으로 나가기가 부끄러울 만큼 뚱뚱한 여자들을 말한다.
이 사실에 대한 트레이시 턴블래드의 대답은 이렇다.
“엄마, 지금은 60년대야!”
21세기의 두 번째 10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60년대라고? 공룡이 나오던 시대를 말하나? 같은 느낌이 들지 모르지만, 1960년대에 십대 청소년이었던 트레이시 턴블래드에게 그 말은 “엄마, 시대가 변했어!”라는 의미다. 시대는 변했고, 새로운 시대에는 남들과 다른 사람들이 더욱 환영받는다고 트레이시는 말한다. 또한 그 말을 증명해내듯 누구보다도 매력적인 춤사위를 앞세워 코니 쇼 시청자들을 사로잡고 만다. 트레이시를 마음에 들어 한 시청자들은 트레이시의 시그니처 헤어스타일, 탈색한 뱅 헤어와 높이 띄운 뒷머리를 따라 하고, 트레이시는 볼티모어의 유행을 선도하는 최고의 멋쟁이로 등극한다.
‘사상 불손’의심받던 아이의 진짜 재능은 남의 말 안 듣기
이 상황을 눈 뜨고 볼 수 없었던 질투쟁이들은 트레이시의 사상이 불순하다며 방송에서 하차하도록 종용하는데, 글쎄…… 종일 TV 보고 춤추느라 학교에선 잠만 자는 트레이시에게 사상이 불순해질 틈이 과연 있었을까. 트레이시의 적들이 말하는 불순한 사상이란 다름이 아니라 “흑인과 백인이 함께 어울려 춤을 춰야 한다”는 생각이다.
앞서 밝힌 이 뮤지컬의 때와 곳을 다시 이야기할 필요가 있겠다. 때는 1960년대, 인종차별 철폐를 외치는 흑인들의 목소리가 높았던 시대. 곳은 볼티모어, 악명 높은 흑백분리정책을 시행하던 미국 남부의 대표적인 도시다. 백인 출연진만이 나오는 코니 쇼는 흑백 균형을 맞춘답시고 한 달에 단 한 번 ‘깜둥이의 날(Negro day)’에만 흑인의 출연을 허용한다.
트레이시는 다른 건 아무것도 모르지만 이 상황이 말이 안 된다는 것만큼은 안다. 왜냐하면 최신 유행 음악은 흑인들의 그루비 디스코 뮤직이고, 흑인 친구들이 그 음악에 맞춰 근사한 춤을 추므로, 함께 춤을 추는 것이 가장 재미있기 때문이다. 이에 목소리 높여 함께 춤출 권리를 말하는 트레이시에게 누군가 묻는다.
“얘야, 역사 시간에 졸았니?”
트레이시는 말한다.
“네, 항상 졸아요!”
그러니 트레이시에 대해 다르게 말할 방법도 있다. 우리가 익히 아는 바, 현대 사회에서 젊은 여성에게 요구되는 미덕은 외모자본 또는 지적자본이다. 예쁘든가 공부를 잘 하든가, 그래서 시집을 잘 가든가 유능해져서 혼자 잘 살든가. 트레이시는 드물게도 둘 중 무엇 하나 갖추지 못한 주인공이다. 춤을 잘 추니까 아주 무능한 건 아닌 걸까? 그런데 트레이시가 엄마 말을 듣고 진작 춤을 포기했다면 일이 어떻게 되었을까.
트레이시의 진짜 재능은 남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이다. 트레이시는 엄마 말을 무시했고 자기를 떨어뜨린 오디션 관계자들의 말을 무시했으며 흑인이어서 자포자기하고 있는 친구의 말까지도 무시했다. 자기가 생각하기에 옳은 방향으로 그저 돌진했다.
비만 십 대 여학생이 소수자 연대와 다양성 옹호의 중심에!!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뮤지컬 〈헤어스프레이〉 모습 (이미지 출처: 한국대학신문)
트레이시 턴블래드는 60년대 미국의 십 대였지만 요즘 우리나라의 신세대와 기성세대 간의 긴장 상황에서도 얼마간 상징적인 인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기성세대로부터 학습된 규칙을 무조건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몸과 마음, 행동 모두로 증명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데 이런 여자애는 〈헤어스프레이〉가 아니면 어디에서도 주인공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당장 아마추어 뮤지컬 팀에 의해 (유튜브에 많다) 무대화된 사례들만 보아도 대부분 트레이시라기엔 너무 날씬한 배우들이 그 역할을 맡았다는 점이 역설적으로 이 주장에 힘을 더한다. 무대에 올라가려는 사람들 중에 트레이시처럼 뚱뚱한 사람은 드물기 때문에 트레이시를 연기할 사람도 찾기가 어려운 것이다. 이 사실은 〈헤어스프레이〉가 그리고 있는 다른 여러 마이너리티와 어우러져 더욱 소중해진다.
전통적으로 영화 〈헤어스프레이〉를 무대화할 때는 트레이시를 연기할 배우는 뚱뚱하고 춤 잘 추는 사람을 물색하고, 트레이시의 엄마 에드나는 여장남자 배우를 캐스팅해 트랜스젠더 이슈를 암시하도록 하며, 작품 전체 앙상블(뮤지컬에서 코러스로 참여하는 배우들, 편집자주) 가운데 흑인 배우와 백인 배우의 비율을 동등하게 맞춘다. 작품의 재미 요소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이 작품이 아니면 기회가 더 적을 사람들을 위해서이기도 할 것이다. 2007년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라이센스판 〈헤어스프레이〉에서 트레이시 역할을 맡았던 배우 왕브리타가 그해 국내 최대 뮤지컬 어워드에서 신인상을 탔지만 이후 많은 작품에 출연하지 못했던 사례가 증명하듯.
여담이지만 그래서 나는 우리나라에서 〈헤어스프레이〉가 더 자주 상연되었으면 한다. 물론 우리나라에는 아직 한국어로 연기하는 흑인 배우가 많지 않아서 가끔 문제로 떠오르는 ‘블랙 페이스’ 분장을 할 수밖에 없지만 그건 인종이나 언어의 차원에서 미국에 비해 소수자적인 환경에 있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소수자성이 대본에 명확히 지시된 인물들이 갈등 끝에 연대하고 한데 섞여 다양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 우리에게는 더 많이, 더 자주 필요하다고 믿는다. 그 중심에 아무 생각도 없어 보이는 비만 십 대 여학생이 있다는 것이 내게는 그 무엇보다도 짜릿한 사실이다.
몸무게가 얼마든, 나이가 얼마든
배우 존 트라볼타의 〈그리스〉(좌)vs〈헤어스프레이〉(우) 모습 비교 (이미지 출처: 핀터레스트, 네이버 영화)
할 말은 다 한 것 같아 슬슬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려는 참에 처음부터 글을 다시 읽어보다가 내가 〈헤어스프레이〉를 선택한 이유를 되새기게 되었다. 2000년대 초반 꽃미남 배우, 그중에서도 뮤지컬 영화의 주연으로 이름을 날리던 잭 에프론이 크게 변화한 외모로 나를 놀라게 했던 게 계기였지. 세계적인 팝스타 저스틴 비버가 그랬듯, 잭 에프론 역시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 초반 시절의 어여쁜 외모로 서구권 쇼 비즈니스 세계에서 오래 살아남기는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을 것이다. 마르고 예쁘장하고 어려 보이는 외모의 남성은 게이라고 폄하하는 사회적 분위기, 대중의 판단을 무시할 수 없는 캐스팅 등이 압력으로 작용했을 테니까. 피부색이 어떻든 몸무게가 얼마나 나가든 춤만 멋지게 추면 된다고 말하는 영화에 출연했던 그가, 심지어 본인 입으로 ‘트레이시 널 사랑해 네가 얼마나 무겁든!’이라고 노래했던 그가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조금은 아쉽고 서글프게 느껴진다.
그런데 어깨가 벌어지고 턱이 갈라진 잭 에프론은 〈위대한 쇼맨〉에서도 여전히 노래를 잘하고 춤도 잘 췄다. 〈그리스〉에서 샤프하고 골반이 자유로운 미소년으로 출연해 한 시대를 풍미했던 존 트라볼타가 〈헤어스프레이〉에 푸짐한 여장 남자 에드나로 나와서도 여전히 관능적인 골반 놀림을 과시했던 것처럼. 하여 2007년 영화 〈헤어스프레이〉의 메시지는 이렇게도 변용할 수 있을 것 같다. 몸무게가 얼마든, 나이가 얼마든 멋진 춤을 출 수 있다.
쓰다 보니 내가 참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드는데, 이 당연한 걸 모르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은 것도 같다.
“사랑해, 트레이시… 네가 얼마나 무겁든”
- 서툰인생을 위한 변명 -
박서련
2021-11-16
트레이시는 다른 건 아무것도 모르지만 이 상황이 말이 안 된다는 것만큼은 안다. 왜냐하면 최신 유행 음악은 흑인들의 그루비 디스코 뮤직이고, 흑인 친구들이 그 음악에 맞춰 근사한 춤을 추므로, 함께 춤을 추는 것이 가장 재미있기 때문이다. 이에 목소리 높여 함께 춤출 권리를 말하는 트레이시에게 누군가 묻는다. “얘야, 역사 시간에 졸았니?” 트레이시는 말한다. “네, 항상 졸아요!”
전화로 이 원고를 써 보라는 제안을 처음 받았을 때, 아마 전화를 걸어주신 분(소설가 김미월 선생님)께서도 눈치를 채셨겠지만, 나는 막 자다 깬 참이었다. 해가 떨어지지 않은 오후였으나 정오로부터도 시간은 충분히 지나 있었다. 모든 작가들이 나처럼 엉망으로 자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작가들은 그렇다는 것을 잘 아셔서인지 통화 상대께서는 충분히, 천천히, 시간을 들여 내가 써야 하는 글에 대해 설명을 해 주셨다.
“…… 해서, ‘서툰 인생을 위한 변명’이라는 원고의 청탁을 드리려고 하고요. 원고 취지는……”
문학 속의, 좀 더 넓게는 이야기 속의 등장인물이 경험한 낭패와 실패담을 말하면서, 이야기 바깥에서 살아가는 우리들 삶에 위로가 될 만한 부분을 찾아볼 것.
그런데 나는 잠이 덜 깬 상태였음에도, 그 친절한 설명이 이제 막 시작되었을 따름에도 어떤 이야기를 쓰면 좋을지를 이미 어렴풋이나마 떠올리고 있었다.
때마침 봤던 영화 〈위대한 쇼맨〉 속 그 배우
영화 〈위대한 쇼맨〉 포스터와 영화의 실존 인물 피니어스 테일러 버넘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그러고 보면 사는 게 참 마침맞다는 생각이 든다.
마침 그 며칠 전에 오랜만에 뮤지컬 영화를, 특히 전에 본 적 없는 것을 보고 싶다는 생각(언제부터인가 새로운 영상물을 보는 데에 상당한 피로감을 느끼게 되어서 뭔가를 볼 때 ‘큰맘’을 먹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고 그래서 이미 본 영화를 몇 번이고 다시 보는 습관도 생겼다)을 했고 그래서 〈위대한 쇼맨〉을 봤다. 현대적인 서커스를 발명한 쇼 비즈니스 맨이자 근대 미국을 대표하는 휴머니스트이자 돈을 벌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든(그가 가장 좋아한 상품은 ‘인간성’이었다) 상품화해버리곤 했던 실존 인물 버넘(‘버넘 이펙트’라는 말에 붙은 그 이름이 맞다)의 전기 영화. 이 영화의 주인공 버넘에 대해서나, 이 논란 많은 인물에 대한 전기 영화를 ‘굳이’ 만들어버린 배우 휴 잭맨에 대해서, 또한 버넘이 서커스를 만들기 위해 모았던 사람들에 대해서 써도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 영화를 보다 그만 엉뚱한 곳에 집중하게 되어버렸다. 분명 내가 모르는 배우 같은데 묘하게 낯이 익고, 낯은 익지만 이름이 도통 생각 안 나는 어떤 배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버넘의 조수로 나온 그의 배역 이름을 검색창에 써넣었다가 그 역할을 맡은 배우가 잭 에프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뭐라고?
배우 잭 에프론의 〈위대한 쇼맨〉(좌)vs〈헤어스프레이〉(우) 모습 비교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내가 기억하는 잭 에프론의 외모는 영화 〈헤어스프레이〉의 미소년 ‘링크’ 시절에 머물러 있었기에 두 눈으로 보면서도 그의 변화를 믿을 수 없었다. 얼굴이 닮기는 닮은 지라 잭 에프론 삼촌 정도라 하면 믿겠는데…… 벌크업을 굉장히 열심히 했구나…… 운동을 얼마나 열심히 했길래 턱도 두 쪽으로 갈라졌니…… (참고로 서구권에서는 남성의 갈라진 턱이 성적 매력을 보장하는 특징 중 하나라고 한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헤어스프레이〉가 다시 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이 영화의 주인공 트레이시 턴블래드를 위한 변명을 쓰고 있다.
별 볼일 없던 여고생, tv쇼에 출연하다
영화 〈헤어스프레이〉 포스터 (이미지 출처: Wikipedia)
때는 1960년대, 곳은 미국 볼티모어. 트레이시 턴블래드(배우 니키 블론스키)는 고등학교에 다니지만 공부와는 진작 척을 졌고 방과 후 TV에서 나오는 로컬 하이틴 프로그램 “코니 콜린스 쇼”를 보면서 최신 유행 댄스를 따라 출 생각밖에는 안 하는 여자애다. 언젠가는 코니쇼 출연진으로 합류해 같은 출연진인 링크(얘가 잭 에프론이다)하고 사랑에 빠지는 망상을 하며 친구 페니와 함께 TV 앞에서 춤을 추지만, 엄마 에드나는 ‘우리 같은 여자들’은 집안일이나 잘하면 된다며 자신의 세탁소를 물려받으라 하고, 허섭스레기 장난감 가게를 운영하는 아빠 윌버는 트레이시에게 큰 힘이 되어주지 못한다.
부모님이 그런다고 포기할 트레이시였다면 주인공도 아니었으리. 코니 쇼 출연진 하나가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게 되자 트레이시는 학교를 땡땡이치고 오디션장으로 가지만, 빼어난 춤 실력을 보여주었음에도 고배를 마시고 만다. 그럼에도 어쨌든 트레이시는 TV에 출연하게 된다. 학교를 땡땡이치는 등의 불량한 태도 때문에 반성실에 갔고, 반성실은 알고 보니 흑인 학생들의 아지트나 다름없었으며, 거기에서 멋진 춤 동작들을 배워 학교 파티에서 선보였더니 코니 쇼 관계자들이 트레이시에게 먼저 다가왔기 때문이다!
뭐랄까, 요약하고 보니 전형적인 신데렐라(연예인) 스토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앞날에 대한 아무 고민도 없고 그저 춤추고 놀기만 좋아하는 여자애가 우연히 잘 풀렸다는 이야기는. 그러면 이 여자애를 소개하는 동안 내가 일부러 여기까지 밝히지 않은 정보 하나를 더해야겠다.
“엄마 시대가 변했어!! 지금은…”
영화 〈헤어스프레이〉 스틸컷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트레이시 턴블래드는 뚱뚱하다.
약간 통통한 정도가 아니라, 코니 쇼에 출연하는 못된 여자애들이 “우리 쇼는 극장이 아니라 텔레비전용이어서 네 몸이 다 나올지 모르겠네?”라고 조롱할 만큼 뚱뚱하다. 트레이시의 엄마 에드나도 뚱뚱하다. 에드나가 말하는 ‘우리 같은 여자들’, TV에 나올 수 없는 여자들이란, 집 밖으로 나가기가 부끄러울 만큼 뚱뚱한 여자들을 말한다.
이 사실에 대한 트레이시 턴블래드의 대답은 이렇다.
“엄마, 지금은 60년대야!”
21세기의 두 번째 10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60년대라고? 공룡이 나오던 시대를 말하나? 같은 느낌이 들지 모르지만, 1960년대에 십대 청소년이었던 트레이시 턴블래드에게 그 말은 “엄마, 시대가 변했어!”라는 의미다. 시대는 변했고, 새로운 시대에는 남들과 다른 사람들이 더욱 환영받는다고 트레이시는 말한다. 또한 그 말을 증명해내듯 누구보다도 매력적인 춤사위를 앞세워 코니 쇼 시청자들을 사로잡고 만다. 트레이시를 마음에 들어 한 시청자들은 트레이시의 시그니처 헤어스타일, 탈색한 뱅 헤어와 높이 띄운 뒷머리를 따라 하고, 트레이시는 볼티모어의 유행을 선도하는 최고의 멋쟁이로 등극한다.
‘사상 불손’의심받던 아이의 진짜 재능은 남의 말 안 듣기
이 상황을 눈 뜨고 볼 수 없었던 질투쟁이들은 트레이시의 사상이 불순하다며 방송에서 하차하도록 종용하는데, 글쎄…… 종일 TV 보고 춤추느라 학교에선 잠만 자는 트레이시에게 사상이 불순해질 틈이 과연 있었을까. 트레이시의 적들이 말하는 불순한 사상이란 다름이 아니라 “흑인과 백인이 함께 어울려 춤을 춰야 한다”는 생각이다.
앞서 밝힌 이 뮤지컬의 때와 곳을 다시 이야기할 필요가 있겠다. 때는 1960년대, 인종차별 철폐를 외치는 흑인들의 목소리가 높았던 시대. 곳은 볼티모어, 악명 높은 흑백분리정책을 시행하던 미국 남부의 대표적인 도시다. 백인 출연진만이 나오는 코니 쇼는 흑백 균형을 맞춘답시고 한 달에 단 한 번 ‘깜둥이의 날(Negro day)’에만 흑인의 출연을 허용한다.
트레이시는 다른 건 아무것도 모르지만 이 상황이 말이 안 된다는 것만큼은 안다. 왜냐하면 최신 유행 음악은 흑인들의 그루비 디스코 뮤직이고, 흑인 친구들이 그 음악에 맞춰 근사한 춤을 추므로, 함께 춤을 추는 것이 가장 재미있기 때문이다. 이에 목소리 높여 함께 춤출 권리를 말하는 트레이시에게 누군가 묻는다.
“얘야, 역사 시간에 졸았니?”
트레이시는 말한다.
“네, 항상 졸아요!”
그러니 트레이시에 대해 다르게 말할 방법도 있다. 우리가 익히 아는 바, 현대 사회에서 젊은 여성에게 요구되는 미덕은 외모자본 또는 지적자본이다. 예쁘든가 공부를 잘 하든가, 그래서 시집을 잘 가든가 유능해져서 혼자 잘 살든가. 트레이시는 드물게도 둘 중 무엇 하나 갖추지 못한 주인공이다. 춤을 잘 추니까 아주 무능한 건 아닌 걸까? 그런데 트레이시가 엄마 말을 듣고 진작 춤을 포기했다면 일이 어떻게 되었을까.
트레이시의 진짜 재능은 남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이다. 트레이시는 엄마 말을 무시했고 자기를 떨어뜨린 오디션 관계자들의 말을 무시했으며 흑인이어서 자포자기하고 있는 친구의 말까지도 무시했다. 자기가 생각하기에 옳은 방향으로 그저 돌진했다.
비만 십 대 여학생이 소수자 연대와 다양성 옹호의 중심에!!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뮤지컬 〈헤어스프레이〉 모습 (이미지 출처: 한국대학신문)
트레이시 턴블래드는 60년대 미국의 십 대였지만 요즘 우리나라의 신세대와 기성세대 간의 긴장 상황에서도 얼마간 상징적인 인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기성세대로부터 학습된 규칙을 무조건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몸과 마음, 행동 모두로 증명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데 이런 여자애는 〈헤어스프레이〉가 아니면 어디에서도 주인공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당장 아마추어 뮤지컬 팀에 의해 (유튜브에 많다) 무대화된 사례들만 보아도 대부분 트레이시라기엔 너무 날씬한 배우들이 그 역할을 맡았다는 점이 역설적으로 이 주장에 힘을 더한다. 무대에 올라가려는 사람들 중에 트레이시처럼 뚱뚱한 사람은 드물기 때문에 트레이시를 연기할 사람도 찾기가 어려운 것이다. 이 사실은 〈헤어스프레이〉가 그리고 있는 다른 여러 마이너리티와 어우러져 더욱 소중해진다.
전통적으로 영화 〈헤어스프레이〉를 무대화할 때는 트레이시를 연기할 배우는 뚱뚱하고 춤 잘 추는 사람을 물색하고, 트레이시의 엄마 에드나는 여장남자 배우를 캐스팅해 트랜스젠더 이슈를 암시하도록 하며, 작품 전체 앙상블(뮤지컬에서 코러스로 참여하는 배우들, 편집자주) 가운데 흑인 배우와 백인 배우의 비율을 동등하게 맞춘다. 작품의 재미 요소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이 작품이 아니면 기회가 더 적을 사람들을 위해서이기도 할 것이다. 2007년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라이센스판 〈헤어스프레이〉에서 트레이시 역할을 맡았던 배우 왕브리타가 그해 국내 최대 뮤지컬 어워드에서 신인상을 탔지만 이후 많은 작품에 출연하지 못했던 사례가 증명하듯.
여담이지만 그래서 나는 우리나라에서 〈헤어스프레이〉가 더 자주 상연되었으면 한다. 물론 우리나라에는 아직 한국어로 연기하는 흑인 배우가 많지 않아서 가끔 문제로 떠오르는 ‘블랙 페이스’ 분장을 할 수밖에 없지만 그건 인종이나 언어의 차원에서 미국에 비해 소수자적인 환경에 있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소수자성이 대본에 명확히 지시된 인물들이 갈등 끝에 연대하고 한데 섞여 다양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 우리에게는 더 많이, 더 자주 필요하다고 믿는다. 그 중심에 아무 생각도 없어 보이는 비만 십 대 여학생이 있다는 것이 내게는 그 무엇보다도 짜릿한 사실이다.
몸무게가 얼마든, 나이가 얼마든
배우 존 트라볼타의 〈그리스〉(좌)vs〈헤어스프레이〉(우) 모습 비교 (이미지 출처: 핀터레스트, 네이버 영화)
할 말은 다 한 것 같아 슬슬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려는 참에 처음부터 글을 다시 읽어보다가 내가 〈헤어스프레이〉를 선택한 이유를 되새기게 되었다. 2000년대 초반 꽃미남 배우, 그중에서도 뮤지컬 영화의 주연으로 이름을 날리던 잭 에프론이 크게 변화한 외모로 나를 놀라게 했던 게 계기였지. 세계적인 팝스타 저스틴 비버가 그랬듯, 잭 에프론 역시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 초반 시절의 어여쁜 외모로 서구권 쇼 비즈니스 세계에서 오래 살아남기는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을 것이다. 마르고 예쁘장하고 어려 보이는 외모의 남성은 게이라고 폄하하는 사회적 분위기, 대중의 판단을 무시할 수 없는 캐스팅 등이 압력으로 작용했을 테니까. 피부색이 어떻든 몸무게가 얼마나 나가든 춤만 멋지게 추면 된다고 말하는 영화에 출연했던 그가, 심지어 본인 입으로 ‘트레이시 널 사랑해 네가 얼마나 무겁든!’이라고 노래했던 그가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조금은 아쉽고 서글프게 느껴진다.
그런데 어깨가 벌어지고 턱이 갈라진 잭 에프론은 〈위대한 쇼맨〉에서도 여전히 노래를 잘하고 춤도 잘 췄다. 〈그리스〉에서 샤프하고 골반이 자유로운 미소년으로 출연해 한 시대를 풍미했던 존 트라볼타가 〈헤어스프레이〉에 푸짐한 여장 남자 에드나로 나와서도 여전히 관능적인 골반 놀림을 과시했던 것처럼. 하여 2007년 영화 〈헤어스프레이〉의 메시지는 이렇게도 변용할 수 있을 것 같다. 몸무게가 얼마든, 나이가 얼마든 멋진 춤을 출 수 있다.
쓰다 보니 내가 참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드는데, 이 당연한 걸 모르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은 것도 같다.
[서툰 인생을 위한 변명] “사랑해, 트레이시… 네가 얼마나 무겁든”
- 지난 글: [서툰 인생을 위한 변명] 하마터면 내 인생을 바꿀 뻔한 책,
소설가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났다. 2015년부터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펴낸 책으로 장편소설 『체공녀 강주룡』, 『마르타의 일』, 『더 셜리 클럽』, 소설집 『호르몬이 그랬어』, 『코믹헤븐에 어서 오세요』,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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