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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스타일이 뉴노멀이다

- 이달의 답변 -

김용규

2021-11-05

인문 쟁점은? 우리 시대가 마주하고 있는 여러 인문학적 과제들을 각 분야 전문가들의 깊은 사색, 허심탄회한 대화 등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더 깊은 고민을 나누고자 만든 코너입니다. 매월 국내 인문 분야 전문가 두 사람이 우리들이 한번쯤 짚어봐야 할 만한 인문적인 질문(고민)을 던지고 여기에 진지한 답변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합니다.


저는 이 문제에 관한 해결책으로 소크라테스를 이 자리에 소환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의 독특한 사유방식과 삶의 방식―저는 이 둘을 함께 묶어 소크라테스 스타일(Socrates Style)이라 이름 지어 부릅니다―을 나름의 해법으로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크라테스 스타일’이라는 용어가 조금 낯설게 들릴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당연히 소크라테스의 패션이나 헤어스타일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소크라테스가 개발한 ‘빼기(subtraction)’라는 비상한 사유방식과 삶의 방식을 의미하지요.



최준석 작가님, “또다시 혼란의 시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가 궁금합니다”라는 시의적절하고 중요한 질문을 제게 보내 주신 것에 감사하며, 나름의 답을 모색해 보고자 합니다.


네, 그렇습니다. 말씀처럼 지금 우리는 ‘혼란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저는 이 말을 세상이 격변하고 가치관과 세계관이 바뀌어 기존의 사유방식과 삶의 방식으로는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는 시대, 따라서 사유방식과 삶의 방식의 시급한 전환이 긴요한 시대라는 뜻으로 이해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혼란의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질문 가운데 언급하신 대로, 이것은 제가 근래에 출간한 『소크라테스 스타일』에서 심중히 다룬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 연장선상에서 작가님의 질문에 1) 우리는 지금 어떤 시대를 살고 있나 2) 우리는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하나 3) 소크라테스 스타일이 시대적 요청이자 정언명령,이라는 순서로 답하고자 합니다.



김용규의 책 『소크라테스 스타일: 소크라테스에게서 배우는 사유와 삶의 혁명 - 개소리와 가짜뉴스의 시대, 팬데믹과 기후재난의 시대, 소크라테스 스타일이 뉴노멀이다!』 표지 (이미지 출처: 교보문고)

김용규의 책 『소크라테스 스타일』 표지 (이미지 출처: 교보문고)



우리는 지금 어떤 시대를 살고 있나



사람은 때로 다가오는 시대에 시선을 던져 숙고하고 자기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성찰해야 합니다. 그래야 시대적 위험과 절망이 삽시에 다가오더라도 희망의 불씨를 지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과학책뿐 아니라 철학책도 함께 읽어야 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물론 세상을 보고 숙고하고 성찰하는 기준은 사람에 따라, 관점에 따라 각기 다르겠지요. 하지만 저는 지금 우리를 유례없는 혼란으로 몰아가고 있으며, 자칫 잘못하면 돌이킬 수 없는 파국에 이르게 할 시대적 위험 징후로 다음 두 가지를 꼽고 싶습니다.


하나는 오늘날 눈부시게 발전한 정보기술에 편승해 우후죽순처럼 자라난 날조된 지식과 가짜 뉴스, 왜곡된 신념과 편견 그리고 황당한 미신과 궤변이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에 홍수처럼 범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발 더 나아가 그것들이 거짓말을 식은 죽 먹듯 하는 포퓰리스트와 각종 경제적・사회적・정치적・종교적 이익집단에 의해 이데올로기화되어 대중을 기만하며 선동하고 있다는 사실이지요.


근래에는 대통령과 수상 같은 국가 지도자와 각 분야의 지식인들마저 거짓말을—은밀하게 아니라 공공연히, 부끄럽게가 아니라 뻔뻔히—해대고 있습니다. “진실이 신발을 신는 사이 거짓말은 세상의 절반을 달릴 수 있다”라는 마크 트웨인(Mark Twain, 1835~1910)의 풍자가 이들의 강령이자 신조이지요. 그래서 때로는 프로파간다가 횡행하던 20세기 전반에 인류가 경험했던 악몽들을 다시 떠오르게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른바 포스트 트루스(post-truth)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포스트 트루스 시대를 살고 있다. (이미지 출처: 한겨레신문)

우리는 포스트 트루스 시대를 살고 있다. (이미지 출처: 한겨레신문)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개소리(Bullshit)의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미국의 도덕 철학자 해리 프랭크퍼트(Harry G. Frankfurt, 1929~)에 의하면, 개소리는 거짓말이 아닙니다. 거짓말은 진실을 의식하고 그런 척이라도 하지만, 개소리는 그런 것들에는 아예 관심조차 없습니다. 개소리꾼들은 그것이 거짓말이든 아니든 ‘주구장창 반복해 짖어대면’ 사람들이 그것을 믿게 된다는 놀라운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아냈지요.


개소리꾼들이 발견한 ‘즐거운 지혜’는 “우기면 된다!”입니다. 민주주의에서는 다수가 믿는 그 무엇이 사실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그들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우기고, 9・11 테러가 미국의 자작극이라 우기고, 기후변화가 온실가스 때문이 아니라고 우기고, 말라리아약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치료제라고 우기고, 백신 접종이 백해무익하다고 우기고, 선거가 조작되었다고 우기고, 우기고, 또 우깁니다. 이제 세상에는 거짓과 개소리가 가득하고, 진리와 정의는 아득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모르 파티’를 노래 부르며 ‘카르페 디엠’을 외치는 포스트모던한 요즈음 사람들은 진리와 정의 따위가 뭐 그리 중요하냐고 되물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칠순을 넘긴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태양계 끝까지 탐사선을 보내 우주의 신비를 밝히고, 유전자 지도를 만들어 생명의 근원까지 알아내는 대단한 일도 하지만, 진리라는 이정표가 없이는 끝내 갈 길을 잃고, 정의라는 지도가 없이는 결국 살길을 잃는 존재이기 때문이지요. 아닌가요?


게다가 더 나쁜 소식도 있습니다. 우리에게 다가온 시대적 징후 가운데 심중(深重)한 다른 하나는 우리가 이른바 ‘팬데믹과 기후재앙의 시대’라는 어둡고 긴 터널의 입구로 들어서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근대 이후 우리가 만들어온 세상, 특히 지난 50년 동안 진행된 세계화와 후기자본주의 그리고 소비물질주의가 주도해온 탐욕적 생활방식과 착취적 경제 체제 때문에 파괴된 자연이 역습을 시작해 이제는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는 뜻이지요.


널리 알려진 몇 가지만 예로 들어도, 1969년 이후 화석연료의 사용으로 매년 1조 톤의 이산화탄소가 대기 중으로 방출되고, 지구 표면 평균 온도가 섭씨 1도가량 상승했으며, 평균 해수면이 10센티미터가량 상승했는데, 그 절반 정도는 산맥과 극지방의 빙하가 녹아내리며 발생한 것이고, 모든 양서류 및 새와 나비 종의 절반 이상에서, 모든 어류와 식물 종의 4분의 1에서 개체 수 감소가 일어나고 있습니다.1) 지구상에 생명체가 나타난 이래 여섯 번째로 찾아온 대멸종, 이른바 제6의 멸종이 이미 시작되었지요. 때문에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팬데믹과 기후변화는 거대한 악몽의 서막에 불과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1) 호프 자런 지음, 김은령 옮김,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김영사, 2020, 253~255쪽 참조.

 



1951~2015 사이의 지구 표면의 평균 기온 변화 (이미지 출처: NASA GISS. 나사 고다드 우주연구소)

1951~2015 사이의 지구 표면의 평균 기온 변화 (이미지 출처: NASA GISS. 나사 고다드 우주연구소)



작가님도 잘 아시다시피, 팬데믹과 기후변화는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데다 그저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닙니다. 둘 모두 우리의 탐욕적 생활방식과 환경파괴적 경제 체제가 불러온 재앙이지요. 현대 철학자들 가운데 당면한 사회적 문제에 활발히 의견을 개진해 온 슬라보예 지젝(Slavoj Žižek, 1949~)이 풍자적으로 전한 다음의 경고가 그래서 나왔습니다.


“자연이 바이러스로 우리를 공격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 우리에게 우리 자신의 메시지를 돌려주는 일이란 사실이다. 그 메시지는 이렇다. 네가 나에게 했던 짓을 내가 지금 너에게 하고 있다.”2)

2) 슬라보예 지젝 지음, 강우성 옮김, 『팬데믹 패닉』, 북하우스, 2020, 104쪽.


미국의 작가 조너선 사프란 포어(Jonathan Safran Foer, 1977~)는 같은 말을 “우리가 홍수이고 방주다”3)라고 했습니다. 재앙을 일으킨 원인도 우리에게 있고, 대책을 마련할 책임도 우리에게 있다는 뜻이지요.

3)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옮김역, 『우리가 날씨다』, 민음사, 2020, 230쪽.


세계 각계의 전문가들은 우리가 지금 당장 기존의 사유방식과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3~4년을 주기로 공격해올 팬데믹은 일상이 될 것이며, 폭염, 폭한, 가뭄, 산불, 홍수, 해일, 자원 부족으로 인한 이주와 전쟁 등, 기후변화가 가져올 각종 재앙으로 인해 인류가 제6의 멸종의 주인공이 될 것으로 예측합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일상 속에 감추어진 시대의 민낯입니다.



우리는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하나



빙산의 일각입니다만 만일 작가님이 지금까지 제가 진단한 시대적 징후에 공감한다면, 우리는 지금 시급히 해결해야 할 두 가지 난제를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하나는 가짜 뉴스와 개소리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팬데믹과 기후변화 문제이지요. 얼핏 보기에 이 둘은 서로 다른 원인을 갖고 있고, 각기 다른 해법이 요구되는 것 같습니다. 또한, 개개의 해법은 전문가들 사이에서조차 의견이 분분할 정도로 다양하고 복잡하기도 하지요. 때문에 설령 제가 앞에서 소개한 제 책에서 이 문제들을 이미 충분히 숙고했다 해도, 한정된 글 안에 그 모두를 제시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래서요 작가님, 저는 이 문제에 관한 해결책으로 소크라테스를 이 자리에 소환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의 독특한 사유방식과 삶의 방식―저는 이 둘을 함께 묶어 소크라테스 스타일(Socrates Style)이라 이름지어 부릅니다―을 나름의 해법으로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크라테스 스타일’이라는 용어가 조금 낯설게 들릴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당연히 소크라테스의 패션이나 헤어스타일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소크라테스가 개발한 ‘빼기(subtraction)’라는 비상한 사유방식과 삶의 방식을 의미하지요.


무슨 소리냐고요? 제가 말하는 소크라테스 스타일이 무엇인지는 위스콘신주의 리폰대학 철학교수였던 코라 메이슨(Cora Mason)이 소설 형식으로 쓴 『소크라테스』에 나오는 다음 글을 주목해 보면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먼저 바로 그 돌 속에서 사자를 보아야만 한다. 마치 돌의 표면 뒤에 사자가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말이야. 그다음에는 사자를 풀어놓아 주어야 한단다. 그 사자를 잘 보면 잘 볼수록 어디를 얼마나 깊이 쪼아야 하는지 그만큼 잘 알게 되는 거지.”4)

4) 코라 메이슨 지음, 최명관 옮김, 『소크라테스』, 창, 2010, 42~43쪽.


이 말은 소크라테스의 아버지 소프로니스코스가 어린 아들에게 사자를 조각하는 일을 가르칠 때 한 말입니다. 어린 아들이 하얀 대리석 덩이를 앞에 두고 설레고 두려운 마음으로, 어디에 정을 대고 얼마나 깊이 박아야 하는지를 물었을 때 들려준 말이지요.


소크라테스는 아버지의 말을 가슴에 새겼을 것입니다. 그리고 세월이 가면서 점차 깨달았을 것입니다. 무형의 돌덩이에서 어떤 형상을 얻어내기 위해서는 그 형상에 해당하지 않는 부분을 하나씩 제거해가는 방법밖에 없다는 것을! 그리고 살아가면서 그는 세상만사가 모두 그렇다는 것—다시 말해 어떤 것의 본질에 도달하고자 하면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부수적인 것들은 모두 제거해내야 한다는 원칙-을 터득했을 것입니다.



소크라테스 스타일 : 무형의 돌덩이에서 사자를 불러내기 위해서는 사자의 형상에 해당하지 않는 부분을 하나씩 제거해야 한다. (이미지 출처: 필자제공)

소크라테스 스타일 : 무형의 돌덩이에서 사자를 불러내기 위해서는
사자의 형상에 해당하지 않는 부분을 하나씩 제거해야 한다. (이미지 출처: 필자제공)



소크라테스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원칙이 처음에는 단지 석공 일을 하는 작업방식(work style)이었지만, 얼마 후부터는 그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life style)이 되었고, 나중에는 그가 철학을 하는 사유방식(thinking style)이 되었습니다. 그는 평생을 오직 이 원칙 하나만을 지키며 살았지요. 바로 그것이 제가 ‘소크라테스 스타일’이라고 부르는 ‘부정의 원칙’, ‘제거의 원칙’, ‘빼기의 원칙’입니다.


소크라테스는 누구든 진리에 도달하고자 한다면 진리가 아닌 억견, 궤변, 편견 등을 하나씩 제거해가야 한다는 것, 정의를 구현하고자 한다면 정의가 아닌 부정과 불의들을 모두 빼내야 한다는 원칙을 깨달았지요. 이 단호하고 가차없는 ‘빼기’가 사람들이 말하는 논박(elenchus)이고, 제가 말하는 사유방식으로서의 소크라테스 스타일입니다.


그는 또한 누구든 삶의 본질에 도달하고자 하면, 우리의 일상에 엉겨 붙어 있는 부수적이고 부차적인 것들―예컨대 과시, 사치, 허영, 탐욕 등―을 낱낱이 제거해야 한다는 원칙을 깨달았습니다. 이 어김없는 ‘빼기’가 소크라테스를 계승한 스토아 철학자들이 말하는 무욕(無慾), 자족, 절제와 같은 삶의 기술(ars vivendi)이고, 제가 말하는 삶의 방식으로서의 소크라테스 스타일입니다.


제가 보기에 소크라테스는 청소부였습니다. 아테네 시민들의 정신 속에 있는 억견과 궤변이라는 양쪽 벽을 깨부수고, 알페이오스 강물을 끌어다 페네이오스강으로 흐르게 하여 악취와 오물이 넘치는 그들의 삶과 도시국가를 구석구석 청소하려던 헤라클레스 같은 청소부였지요. 그리고 그의 스타일이 전승되어 지난 2,400년 동안 사람들의 정신에 억견과 궤변, 편견이 횡행할 때마다, 그들의 삶과 사회에 오물이 쌓여 악취와 역병이 돌 때마다 어김없이 다시 나타나 그것들을 청소했지요. 바로 이것이 제가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위기를 타개하는 방법으로 소크라테스 스타일을 제시하는 이유입니다.



소크라테스 스타일이 시대적 요청이자 정언명령



“이미 재난은 닥쳐왔고, 미래는 결정되었다.”
“최상의 시나리오마저 참혹하고 고통스럽다.”
“실상은 훨씬 더 무시무시하다.”


이것이 무슨 소리인가요? 마치 할리우드 재난 블록버스터 영화의 광고 문구 같지 않은가요? 그런데 아닙니다! 이것은 미국의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David Wallace-Wells)가 그의 책 『2050 거주불능 지구』에서 우리에게 이미 다가온 기후변화에 의한 재난을 알리려고 울리는 비상경보입니다.


파리기후변화협약의 이행을 추진하기 위해 2017년 설립된 ‘글로벌 옵티미즘의 공동 대표인 피게레스(Christiana Figueres)와 리빗카낵(Tom Rivett-Carnac)도 함께 펴낸 『한배를 탄 지구인을 위한 가이드』에서 “지금부터 2030년까지 온실가스의 배출량을 얼마나 줄이느냐가 앞으로 수천 년까지는 아니더라도 수백 년간 지구에서 우리의 삶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단언했습니다. 묵시록적 파국을 막을 시간이 이제 딱 10년 남았다는 뜻이지요. 그렇다면 그 방법은 무엇일까요?


다양한 의견들이 분분하지만, 전문가들이 한결같이 입을 모으는 것은 우선 팬데믹과 기후변화를 둘러싸고 도는 온갖 가짜 뉴스와 개소리들―예컨대 백신 접종이 백해무익하다느니, 기후변화가 온실가스 때문이 아니라느니 하는 등―을 제거하고 당면한 사태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입니다. 요컨대 우리가 진리와 정의를 위한 빼기를 감행했던 소크라테스의 사유방식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거지요.


그리고 내적으로는 안락과 사치 및 과시를 추구하는 우리의 원초적 욕망에 불복종하며, 외적으로는 소비를 통해 생존하려는 후기자본주의의 실천 이데올로기인 소비물질주의의 유혹에 저항함으로써, 자원과 에너지의 소비를 줄여 더 이상의 생태계 파괴를 막는 것이지요. 한마디로 진정한 삶을 위한 빼기를 실행했던 소크라테스의 삶의 방식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 생각에는 이제 소크라테스 스타일이 시대적 요청이자 정언명령입니다. 물론 이 요청, 이 명령에 부응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때때로 불편하고 때로 고통스러울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오직 이것만이 우리와 우리의 아이들이 푸르고 아름다운 지구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지요. 소크라테스 스타일이 뉴노멀입니다. 작가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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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철학자
김용규

철학자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튀빙겐 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선택하고 그것을 향해 스스로 변화하게 돕는 것이 자신의 본분이라 여기며, 대중과 소통하는 길을 모색해 왔다. 지은 책으로는 『생각의 시대』(김영사), 『신, 인문학으로 읽는 하나님과 서양문명 이야기』, 『그리스도인은 왜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가』, 『설득의 논리학』, 『철학카페에서 문학 읽기』, 『철학카페에서 시 읽기』, 『철학카페에서 작가를 만나다 1, 2』, 『철학통조림 1-4』, 『데칼로그』, 『백만장자의 마지막 질문』, 『알도와 떠도는 사원』, 『영화관 옆 철학카페』, 『다니』, 『타르코프스키는 이렇게 말했다』 등이 있다.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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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사진 이미지

강**

2021-12-02

소크라테스 스타일 멋지네요^^

공공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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