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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주제’가 말하지 못하는 것

- 문학이 아닌 모든 것 -

이광호

2021-10-13

문학이 아닌 모든 것은 문학은 매일 매일의 삶 속에 있지만, 또한 아무 곳에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문학에 대한 여러 가지 풍문과 지식들은 문학을 잘 향유하게 만들기보다는  어떤 틀 안에 가두고 문학을 납작하게 만든다.  문학의 적이 문학을 호명하는 제도와 교육이라는 것은 문학이 처한 불행이다.  이 연재는 문학제도 안에서 문학을 규정하고 나누는 방식으로 벗어나고자 한다. 이를테면 문학의 정의, 장르와 문학성을 둘러싼 익숙한 개념들로부터 떨어져 나와,  문학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장소에서 문학에 다가가는 방식을 취하려 한다.  그 속에서 문학을 만나는 일이 나날의 삶을 발명하는 일에 가깝다고 느낄 수 있다면.


‘살인은 도덕적으로 나쁘다’라는 교훈을 얻기 위해 이 두꺼운 소설을 읽어야 할 이유는 없다. 이 소설의 독서 경험은 놀라울 정도로 섬세하게 묘사된, 범죄를 저지른 인간의 불안과 혼란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죄와 속죄에 대한 엇갈리는 생각들이 서로 갈등하고 교차하는 것을 경험할 수 있고, 당대 러시아 사회의 모순과 생활상,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만나볼 수 있다. 스스로 초인이 되겠다고 생각했던 문제적인 인간의 오인과 착각, 나약함과 자기모순, 혼란과 환멸을......



읽기의 즐거움을 빼앗는 ‘주제 찾기’의 강박



주제 찾기

주제 찾기



문학 작품에서 ‘주제’를 찾아야 한다는 믿음은 문학을 둘러싼 오래된 풍문 중의 하나이다. 주제를 사전적인 의미에서 ‘지은이가 나타내고자 하는 사상’이라고 한다면, 이 사상을 요약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주장을 분명하고 효율적으로 전달하려는 논설문이나 실용문이 아니기에 문학적 글쓰기는 대부분 하나의 분명한 주제를 향하여 글쓰기가 진행되지 않는다. ‘주제 찾기’의 독서는 문학적 독서의 경험을 앙상하게 만든다. 좋은 문학 작품은 작가가 말하려는 것이 분명하지 않거나 작가조차 알 수 없는 방식으로 글쓰기가 움직여서, 독자가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해석의 공간을 열어 놓는다. 한국의 문학 교육이 독서의 즐거움을 빼앗아가는 이유 중의 하나는 이 ‘주제 맞추기’의 강박 때문이다. 많이 인용되는 시 한 편을 가지고 이 주제 찾기의 문제를 다시 뒤집어 보자.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이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 김소월, 「진달래 꽃」 전문


이 시에 대한 교과서적인 해석은 이미 정답이 나와 있다. ‘이별의 정한’, ‘슬픔의 인내와 극복’, ‘헌신적인 사랑’, ‘여성적인 태도’ 등이다. 이런 해석을 통해 이 시의 ‘주제’는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제도 교육은 평가를 전제하기 때문에 시험 문제에 대한 정답으로 이 시의 주제에 대한 이러한 확정된 해석을 제시하는 것이 좋은 평가를 받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에서 다른 해석의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을까? 이 시에 대한 제도권 교육의 해석을 모두 괄호치고 이 시를 처음 본 것처럼 다시 읽을 때, 여러 질문이 새롭게 시작될 수 있다. 먼저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에서 ‘역겨워’라는 말은 이별의 이유라고 하기에는 다소 과격하고 극단적인 언어이다. 이별의 이유를 ‘역겨움’이라고 말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이 시의 화자가 떠나보내는 자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역겨움’이라는 표현의 폭력성과 과장에는 화자의 ‘마조히즘’이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엉뚱한 해석, 다양한 목소리 못 받아들이는 문학 교육 제도



시험문제

시험문제



마조히즘은 피학적 고통에 집착하는 변태성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에 대한 관계의 양상이고, 여기에는 미학적이고 윤리적인 요소가 포함될 수 있다. 자신을 역겨워하며 떠나는 연인에게 꽃을 던지며 밟고 가라고 하는 퍼포먼스 혹은 ‘의례’는 이 마조히즘의 미학적인 측면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에는 상대에 대한 단순한 관용과 인내와 체념뿐만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표현되는 원망과 비탄, 그리고 자기혐오와 자기 처벌의 감각이 포함될 수 있다. 화자의 태도와 행위의 자학적인 측면들은 하나의 도덕적인 관념으로 환원될 수 없는 복합적인 것이다.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와 같은 표현의 과장 역시 일종의 ‘반어’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의 담화는 표면적으로 말한 것 뒤에 또 다른 은밀한 문맥을 품고 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의 언어는 말한 것과 말할 수 없는 것, 혹은 말하지 않는 방식으로 말하는 것 사이의 비밀스러운 긴장 관계 속에 있다. 이 시의 주제를 하나의 도덕적 관념으로 요약하는 것은 전혀 문학적이지 않다. 이런 엉뚱한 해석은 물론 정답이 아니며, 읽기의 잠재성을 조금 더 열어 놓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제도로서의 문학 교육은 이런 엉뚱한 읽기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도스토옙스키의 〈세계문학전집 284: 죄와 벌1〉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 김연경 옮김 |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85: 죄와 벌2〉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 김연경 옮김 | 민음사 책 표지 (이미지 출처: Wikipedia, 교보문고)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1, 2〉 책 표지(왼쪽부터) (이미지 출처: Wikipedia, 교보문고)



세계 문학 전집 목록에 들어 있는 러시아 문호들의 소설들은 방대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도덕적 주제를 함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를테면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의 경우를 보자. 주인공 청년 라스콜니코프는 심각한 가난에 쪼들린 나머지 세상의 부조리를 응징하는 초인이 되겠다는 명분에 사로잡혀, 고리대금업을 하는 노파를 죽이는 살인을 저지르고 예기치 않게 노파의 이복 여동생까지 죽이게 된다. 소설은 자신이 저지른 죄의 문제에 대해 내면적 혼란에 빠지는 과정이 그려진다. 그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합리화를 거듭하며, 자신의 명분과 이론에 오류가 있다는 것에 대해 괴로워한다. 혼란에 빠진 이 ‘고매한 살인자’ 는 ‘순결한 매춘부’ 소냐를 만나면서 고해성사를 하게 되며 자수하고 유형지로 떠난다. 유형지에서도 자신의 죄에 대해 분명히 깨닫지 못하다가 ‘소냐’와 함께 하던 어느 날 죄와 구원의 가능성을 마주한다.


이 소설의 주제가 제목처럼 살인이라는 도덕적인 파탄에 대한 회개와 구원에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를테면 ‘살인은 도덕적으로 나쁘다’라는 교훈을 얻기 위해 이 두꺼운 소설을 읽어야 할 이유는 없다. 앞서 소개한 소설의 요약 역시 서사의 풍부함을 경험하기에는 턱없이 앙상하고 주관적이다. 이 소설의 독서 경험은 놀라울 정도로 섬세하게 묘사된, 범죄를 저지른 인간의 불안과 혼란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이 소설을 통해 죄와 속죄에 대한 엇갈리는 생각들이 서로 갈등하고 교차하는 것을 경험할 수 있고, 당대 러시아 사회의 모순과 생활상,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만나볼 수 있다. 그 안에서 스스로 초인이 되겠다고 생각했던 문제적인 인간의 오인과 착각, 나약함과 자기모순, 혼란과 환멸을 함께 경험할 수 있다. ‘제 눈을 스스로 찌르는’ 이런 문제적인 개인이 보여주는 것은, 인간 내면의 예측할 수 없는 잠재성과 윤리적 개인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다. 소설의 풍부한 언어들과 다양한 인물의 ‘뒤섞임’은 하나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다성악’(多聲樂)적인 것이다. 소설을 읽는 것은 이 목소리들이 교차하고 갈등하는 뒤섞임의 공간을 체험하는 것이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 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전문, 『외롭고 높고 쓸쓸한』, 문학동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 정현종, 「섬」, 전문, 『나는 별 아저씨』, 문학과지성사


두 편의 시는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짧은 시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함축적인 언어를 통해 시적인 임팩트를 선사한다는 측면에서 충분히 독자들의 사랑을 받을 만하다. 앞의 시가 비교적 명확한 메시지를 포함하고 있다면, 뒤의 시의 메시지는 모호하고 비유적이다. 앞의 시가 타인에 대한 특정한 태도를 분명하게 주장하고 있다면, 뒤의 시에서 타인과의 관계를 둘러싼 설명할 수 없는 욕망을 암시한다. 앞의 시가 2인칭 ‘당신’에게 보내는 청유형의 문장인 반면에, 뒤의 시가 1인칭의 내밀한 고백인 것 역시 대조적인 측면들을 보여준다. 이런 이유 때문에 앞의 시를 ‘다르게’ 읽을 가능성은 크지 않고, 뒤의 시의 경우 독자들이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는 잠재성은 상대적으로 크다고 할 수 있다. 주제가 비교적 분명해 보인다는 것은 독자들이 작품에 뛰어들어 놀 수 있는 공간이 오히려 좁아진다는 역설을 안고 있다.



예술의 시작은 주제가 힘을 못 가지는 곳에서...



러시아 영화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NOSTALGHIA | HocTaлbrиR | a film by Andrei Tarkovsky」 포스터 (이미지 출처: Wikipedia, filmaffinity)

러시아 영화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노스텔지아」 포스터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노스텔지아」는 시네필(영화애호가)들이 반드시 보아야 하는 영화사의 고전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러시아 작가는 18세기에 이탈리아로 유학 온 노예 출신 작곡가의 생애를 연구하기 위해 이탈리아 토스카나를 방문한다. 이 작곡가는 다시 노예가 될 것이 두려워 러시아로 돌아가지 않고 방황하다가 고향에 대한 향수를 견디지 못해 돌아갔다가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온천 지대의 한 마을을 방문했을 때 주인공은 세상의 구원을 위해 자신이 희생되어야 하며 세상을 구원하는 방법은 동시에 두 곳에서 불을 밝히는 것이라고 믿고 있는 노인을 만난다. 노인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미친 사람으로 낙인찍혀 촛불 의식을 계속하지 못한다. 주인공에게 자신을 대신하여 그 의식을 치러 달라고 부탁하고 분신자살을 기도한다. 주인공은 노인이 말한 기이한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다시 온천으로 향하게 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동시에 ‘악명(?) 높은’ 장면은 주인공이 노인이 말한 상징적인 의례를 수행하는 부분이다. 촛불을 들고 온천을 건너는 이 장면은 촛불이 꺼지고, 다시 촛불을 켜서 온천을 왕복하는 느린 행위를 긴 시간 카메라를 고정하고 찍는 ‘롱테이크’로 연출한다. 할리우드 상업 영화의 현란하고 빠른 장면 전환에 익숙한 관객들이 이 장면을 지켜보는 것은 곤혹스러운 경험일 수도 있다. 이 경험은 특별한 방식으로 영화적이며 동시에 시적이다. 촛불을 들고 천천히 발을 옮기는 주인공의 숭고하고 깊은 시간 속에 들어가게 됨으로써, 관객들은 전에 본 적 없는 영화적 시공간으로 진입하게 된다.


이 영화의 주제를 제목이기도 한 ‘향수’로 요약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노스텔지아’라는 어휘의 뉘앙스는 영화의 시공간을 경험한 관객에게는 훨씬 더 풍부하고 입체적인 것으로 되어 있을 것이다. 절묘한 카메라 움직임과 모노 톤과 세피아 톤의 이미지가 만드는 새로운 영화 공간은 신비스럽고 우울한 토스카나의 이미지를 깊은 내면 풍경의 자리로 만든다. 카메라는 인물 내면의 논리를 따라가며 물과 불의 정교한 이미지들은 시적으로 교차하고, 기억과 환상과 현실과의 경계는 모호해지며 ‘향수’의 의미는 하나로 환원되지 않는다. 향수는 단지 과거가 아니라, 여기가 아닌 미지와 미래의 어떤 ‘불가능한’ 장소가 된다. 이런 영화적 체험 속에서 ‘향수’라는 단어는 다시 태어난다. ‘주제’가 아무런 힘을 갖지 못하는 곳에서 예술은 시작된다.



[문학이 아닌 모든 것] 5. ‘주제’가 말하지 못하는 것

- 지난 글: [문학이 아닌 모든 것] 4. 실패한 편지의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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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호
이광호

문학평론가
198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문학 평론가가 되었으며, 「세계의 문학」 편집위원과 「문학과 사회」 편집 동인으로 일했다. 20년 동안 서울예술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현재 문학과지성사 대표로 일하고 있다. 『익명의 사랑』, 『시선의 문학사』 등의 문학 비평서와 『너는 우연한 고양이』,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 『사랑의 미래』 등의 에세이를 썼다. 쓰는 사람이면서 책 만드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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