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칼럼

하나의 테마, 360도 관점

사랑/연애 문학

겨울 꿈을 꾸고 있는 그대

- 서툰 인생을 위한 변명 -

by 이신조 / 2020.11.19

[서툰 인생을 위한 변명] 겨울 꿈을 꾸고 있는 그대

[서툰 인생을 위한 변명] 좋은 습관 따윈 없다

 


서툰 인생을 위한 변명은?



가 순식간에 ‘서툰 존재’가 되어버리고 말았으니, 아름다운 여자 주디에게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든 것이다. 주디는 강렬하고 불온한 매력으로 남자들을 무장해제시킨다. 자신의 미모와 행운과 욕망을 한껏 발산하며 그녀는 타고난 유혹자로서 연애의 모험을 기꺼이 즐긴다. 주디는 “아무것도 아끼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부족함을 만들어내는 자선 같은 키스”를 덱스터에게 선사... ...

 


자기 자신을 어쩌지 못하는 존재

 


사랑을 표현하는 남녀

▲ 사랑을 표현하는 남녀



범죄심리학자 이수정 교수가 출연한 예능 토크쇼를 본 적이 있다. 강력범죄 관련 잔인하고도 흥미로운 비하인드 스토리가 이어지던 가운데, 프로그램이 끝날 무렵 진행자가 새삼스러운 질문을 던졌다. “교수님, 인간은 결국 어떤 존재일까요?” 수십 년간 범죄라는 어둠의 프리즘을 통해 인간을 관찰한 전문가의 진단이 궁금해 귀를 기울였다. “인간은... 본능적인 존재죠.” 너무 밋밋한 대답 아닌가 갸웃거리다 티브이를 껐다. 그러나 ‘본능적 존재’가 단순히 ‘동물적 존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이르자 이내 마음이 무겁고 서늘해졌다.


예의 ‘본능’이 생존을 위한 원초적 욕구나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원시성만을 일컫는다면, 프로파일러가 ‘굳이’ 사이코패스의 어린시절을 분석하며 미제 살인사건을 수사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우리 내면의 심연, 그 깊고 넓고 캄캄한 곳에서 솟구치는 주체 불가의 무엇, ‘동물적’이란 말로는 역시 부족하다. 인간이 본능적인 존재라는 규정은 결국 ‘인간은 무의식의 지배를 받는다’라는 명제로 수렴되는 게 아닐까.


범죄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사랑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그것도 ‘서툰 사랑’의 이야기를...... 사랑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도 본능, 심연, 무의식 같은 단어가 동원되고, 사랑 역시 범죄처럼 모순과 부조리로 가득하다는 사실이 좀 그렇긴 하지만 말이다. 첫눈에 사로잡혀 열병을 앓듯 상대를 갈망하는 사랑 이야기는 시공을 초월해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엄친아 신(神)’에게 더없는 좌절과 굴욕을 선사한 다프네를 향한 아폴론의 구애가 그러했고, 대서사시 <신곡>을 통해 천국과 지옥의 해부도를 문학으로 구현한 단테는 베아트리체에 대한 일생의 정념을 창조의 동력으로 삼았다. ‘크레이지 러브’의 아이콘인 로미오와 줄리엣을 소환하는 것은 확실히 진부한 측면이 있고, 멕시코를 대표하는 부부화가였던 디에고 리베라와 프리다 칼로의 스캔들 양상은 크레이지를 넘어 짐짓 엽기적이기까지 하다. 물론 그처럼 뜨거운 상사(相思)의 멜로드라마가 이혼 경력이 있는 미국 여성 월러스 심슨과 결혼하기 위해 영국 왕위를 내팽개친 에드워드 8세 같은 유명인사만의 전유물인 것은 아니다. 누구나 화상 흉터 같은 경험으로 알고 있지 않은가.


‘첫눈에 사로잡혀 열병을 앓듯 상대를 갈망’할 때 우리가 얼마나 ‘서툰 존재’가 되는지를. 모든 것이 기괴하게 낯설어지며 전전긍긍 안절부절 상태가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은 압도감, 환락과 잘 구별되지 않는 불안과 고통과 욕망의 회오리, 사랑에 빠져 자기 자신을 어쩌지 못하는 존재, 소설은 그처럼 서툰 존재가 되어버린 인물을 각별히 편애해왔다.



영원한 갈망, 영원한 상실감

 


미국 소설가 F.스콧 피츠제럴드

▲ 미국의 유명 소설가 F.스콧 피츠제럴드 사진(이미지 출처 : 위키미디어 커먼즈)

 


피츠제럴드 단편선

▲ 피츠제럴드 단편선(이미지 출처 : 민음사)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 ‘겨울 꿈’의 주인공 덱스터는 서투름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부유한 집안 환경에 영리하고 눈치도 빨라, 소년 시절 용돈벌이 아르바이트로 시작했던 골프클럽 캐디를 그만두려 하자 중년의 고객이 너처럼 유능한 캐디는 없었다며 극구 만류할 정도다. 덱스터는 미국 동부의 명문 대학을 졸업하고, 뛰어난 수완으로 불과 이십대 중반에 ‘잘나가는 사업가’가 되어 고향 도시의 골프클럽 회원으로 돌아온다. 그는 명문대 출신 특유의 능숙하고 세련된 매너를 완벽히 몸에 익혔고, 고가의 명품 양복을 애써 꾸민 티 없이 자연스럽게 소화한다. 노회하고 의뭉스러운 사업가들과의 기싸움에도 밀리지 않는다. 덱스터는 냉철하고 야심만만한 댄디다.


그런 그가 순식간에 ‘서툰 존재’가 되어버리고 말았으니, 아름다운 여자 주디에게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든 것이다. 주디는 강렬하고 불온한 매력으로 남자들을 무장해제시킨다. 자신의 미모와 행운과 욕망을 한껏 발산하며 그녀는 타고난 유혹자로서 연애의 모험을 기꺼이 즐긴다. 주디는 “아무것도 아끼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부족함을 만들어내는 자선 같은 키스”를 덱스터에게 선사한다.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어젯밤에는 어떤 한 사람을 사랑한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밤에는 당신을 사랑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니”라고 말한 주디가 일주일 뒤 다른 남자와 함께 사라져버려도 덱스터는 속수무책 그녀에게 분노하지 못한다. 오히려 자신이 주디의 주위를 맴도는 열몇 명의 남자들 중 하나일 뿐이라는 절망적인 사실을 받아들인다. 더없이 천진한 태도로 “난 누구보다도 예뻐요. 그런데 왜 행복할 수 없나요?”라고 말하는 주디는 이를테면 부도덕하다기보다 ‘무도덕’한 인간이다. 이수정 교수의 분석에 부합하는 ‘본능적인 존재’인 것이다. 


주디는 당연히 ‘덱스터의 것’이 되지 못한다. 상처와 모멸과 고뇌로 너덜너덜해진 덱스터는 다른 여자와 약혼한 후에도 주디와 기만적인 밀회를 갖는다. 그가 또다시 버림받는 것 역시 당연하다. 몇 년이 지나 더욱 잘나가는 사업가가 된 덱스터는 뜻밖의 주디의 근황에 눈물을 흘리며 “이제 꿈은 사라졌다” 한탄한다. 아니, 사라진 것이 아니다. 영원한 갈망이 영원한 상실감으로 증폭되었을 뿐이다.



그 안의 그녀, 그녀 안의 그

 


카를  G. 융 자서전 표지

▲ 카를 G. 융 자서전 표지(이미지 출처 : 김영사)

 


카를  G. 융 얼굴 사진

▲ 카를 G. 융 얼굴 사진(이미지 출처 : 위키미디어 커먼즈)



일단, ‘뮤즈’니 ‘팜므 파탈’이니 하는 용어가 이제 얼마나 뻔하고 낡은 말이 되었는지 환기할 필요가 있다. ‘성녀 아니면 창녀’라는 왜곡된 대상화가 아직도 존재하며, 그렇게나 집요하게 뮤즈를 찾아 헤매고 그렇게나 가혹하게 마녀로 몰아세우는 것은 분명 서글픈 일이지만, 여하튼 사랑에 빠진 남자로 하여금 자신을 어쩌지 못하게 만드는 본능이란 놈이 엄청나게 힘이 센 것만은 분명하다.


예의 본능을 ‘무의식’이란 단어로 대체하면, 문학작품에 정신분석이나 심리학 이론을 대입하면, 결국 모든 것은 그저 ‘병(炳)이나 질환’의 일종이며 ‘진단과 처방’의 과정에서 예술의 아우라는 사라져버리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예술이나 심리학이 존재하는 이유는 아우라의 유무가 아닌, ‘보다 온전한 존재로의 이행’이라는 철학적 과업 때문이다.


카를 G. 융은 남자 아니면 여자라는 인간의 육체적 성별과 달리 우리 마음에는 양성(兩性)이 모두 존재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남성 내면에 존재하는 여성성을 아니마(anima), 여성 내면에 존재하는 남성성을 아니무스(animus)라 이름 붙였다. 무의식 깊은 곳에 그 존재를 인식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낯선 이성(異性)이 존재한다는 것. 아니마 혹은 아니무스가 무심하고 둔감한 우리의 의식 위로 불쑥불쑥 솟구치며 ‘실력 행사’를 할 때, 인간은 자신을 어쩌지 못하는 본능적인 상태가 되고 만다.


덱스터는 똑똑하고 자신만만하다. 그런 한편 어리석고 교만하다. 감정적이고 충동적이며 제멋대로인 자신 안의 여성성을 그는 줄곧 간과하고 외면해왔다. 덱스터는 주디에게서 바로 자신의 아니마를 발견한 것이다. 그녀는 곧 잃어버린 자신이기에 정신없이 빠져들어 집착하고 매달릴 수밖에 없다. 융의 자서전 <기억 꿈 사상>에는 융이 자신의 아니마와 대화를 나누고 그녀에게 도움을 청했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우리는 내면 깊은 곳으로 침잠해 각자의 아니마와 아니무스를 만나야 한다. 무의식 속의 그들은 의식으로의 통합을 강력히 원한다. 걷잡을 수 없이 사로잡히는 것만으로 영원히 사랑에 서툰 존재로 남는다면, 보다 조화롭고 성숙한 사랑을 경험하는 일은 끝내 요원할 것이다. 갈망과 상실감을 극복하고 온전한 존재로 거듭나는 것, ‘겨울 꿈’에서 깨어나 비로소 ‘봄빛’을 맞이하는 일일 것이다.



카를융 스콧피츠제럴드 사랑 인문 본능 인문학 피츠제럴드단편선 덱스터 아니마 아니무스 무의식
이신조
이신조
소설가
1998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소설집 <나의 검정 그물 스타킹>, <새로운 천사>, <감각의 시절>, <다른 소년>, 장편소설 <기대어 앉은 오후>, <가상도시백서>, <29세 라운지>, <우선권은 밤에게>, <크리에이터>, 서평산문집 <책의 연인>을 출간했다.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했고, 한양여대 문예창작과에 재직 중이다.

공공누리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보유한 '겨울 꿈을 꾸고 있는 그대'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댓글 (0)

관련 콘텐츠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