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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칼부림>...“모든 이들의, 지나온 모든 순간이 역사!!”

- 장르문화 속 인문 찾기 -

정명섭

2020-11-23

 


장르문화 속 인문찾기는?

 


정군(反正軍)이 광해군이 머무는 궁궐을 향해 진격할 때 소리를 듣고 창밖으로 내다보는 노인은 코가 없는 흉측한 모습이다. 바로 정유재란때 일본군이 조선 사람들의 코와 귀를 잘라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물론, 죽은 것보다는 나았지만 코가 없는 탓에 숨을 쉬는 것을 힘들어하는 모습이 잘 드러난다. 아울러, 노인이 창을 닫으면서 ‘그놈이 그놈’이라는 식의 퉁명스러운 대사는 하늘이니 도리를 따지는 사대부들의 다툼이... ...

 


만화, 유해하거나 천국이거나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에게 가지 말아야 할 곳이라고 얘기를 들은 곳 중 하나가 바로 만화방이었다. 호기심으로는 전교 1등이었던 나는 가지 말라는 그곳이 너무 궁금해서 시험이 끝나고 아이들과 함께 지하의 으슥한 만화방으로 향했다.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만화책과 노릇하게 구워지는 쥐포 냄새는 그곳이 천국이라는 사실을 알려줬다. 하지만 단속 중인 경찰이 밀어닥치면서 나의 짧은 일탈은 끝나고 말았다.


그 후로 TV나 어른들로부터 만화가 얼마나 나쁜 것인지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그러면서 나에게서 만화는 멀어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만화책은 자취를 감추고, 웹툰이라는 것이 등장했다. 핸드폰이나 PC로 볼 수 있어서 굳이 만화방을 갈 필요가 없었다는 점에서 굉장히 편리했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만화, 아니 웹툰을 수준 낮은 문화로 보고 있다. 이건 순문학을 제외한 장르문학 전체가 짊어지고 있는 굴레이긴 하지만 만화였던 탓에 더 큰 짐을 짊어진 것이다.



웹툰 칼부림 사진

▲ 웹툰 <칼부림> 속 한 장면(이미지 출처 : 고일권 제공)



2013년부터 네이버에서 연재되기 시작한 웹툰 <칼부림>은 역사 덕후들의 지지를 받아서 현재까지 연재 중이다. 현재 4부가 진행 중인데 나도 알림을 설정해서 올라오자마자 바로 읽고 있다. <칼부림>은 인조반정부터 이괄의 난(1624.인조2년 인조반정 공신이자 평양병사겸 부원수였던 이괄이 조정을 상대로 일으킨 반란)을 거쳐 정묘호란(1627.인조5년 청나라가 처음 조선을 침입해온 전쟁)과 병자호란(1636. 인조14년 청나라가 조선을 상대로 두 번째로 일으킨 전쟁. 영화 남한산성의 배경.)까지 다룰 예정이다.


내가 <칼부림>을 좋아하는 이유는 다른 역사 덕후들과 똑같다. 그 자체가 하나의 역사책이기 때문이다. 역사를 주제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볼 수 없는 꼼꼼한 고증이 일품이다. 환도(조선시대에 사용되었던 군사용 칼)를 패용하는 방식이라든지, 갑옷인 두정갑에 대한 섬세한 묘사와 투구의 드림을 목에 감싸는 것까지 잘 보여준다. 전투 장면 역시 단선적인 것이 아니라 마치 실제 보는 것처럼 역동적이다.



웹툰 칼부림 속 전투 장면

▲ 웹툰 <칼부림> 속 전투 장면(이미지 출처 : 고일권 제공) 



마치 누룽지처럼 딱딱하게 역사 속에 눌어붙은 사건과 인물들에게 이야기라는 물을 붓고 끓여서 마치 숭늉처럼 마시기 좋게 만든 것이다. 설명이 적당할지는 모르겠지만 어렵고 복잡한 역사를 이해하기 쉽게 풀어내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거기에 등장인물들에 대한 설명과 묘사 역시 탁월하다. 주인공은 무조선 선하고, 멋지게 그리거나 악당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나쁜 짓을 하는 것으로 나오지 않는다.


주인공 함이는 자기를 버리고 어머니를 죽인 아버지에 대한 원한으로 시작해서 조선과 만주를 거치면서 한 명의 칼잡이이자 무사로 거듭난다. 이괄을 비롯해서 김충선과 임경업 같은 인물들과 만나서 그들의 생각을 흡수하고,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헤쳐 나가면서 자신의 길을 찾아 나선다. 주인공인 함이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역시 함부로 쓰지 않고 잘 담아내고 있다. 역사 속에서 역적으로 낙인찍힌 이괄이나 정명수, 항왜(降倭. 조선군에 항복한 왜군)로서 이괄의 난에 가담했다가 낯선 땅에서 죽어간 서아지의 모습을 조명하면서 역사적 인물이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당위성을 잘 드러낸다. 그러니까 만화라는 점을 제외한다면 웬만한 역사책이나 논문 뺨치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덕분에 웹툰의 인기 순위에서는 항상 밀리지만 역사 덕후들의 강력한 지지 속에서 계속 연재 중이다.

 


생생한 인간... <칼부림>이 보여주는 역사

 


웹툰 칼부림 사진

▲ 웹툰 <칼부림> 속 한 장면(이미지 출처 : 고일권 제공)



무엇보다 <칼부림> 속에서는 ‘인간’을 볼 수 있다. 스쳐 지나가거나 악당의 부하, 혹은 주인공의 앞에서 방패막이를 해주는 인물처럼 그냥 소모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서사가 들어있다는 점이다. <칼부림> 초반 인조반정(1623, 광해군을 물러나게 한 사건)을 묘사할 때 그 점이 잘 드러난다. 능양군이 이끄는 반정군(反正軍)이 광해군이 머무는 궁궐을 향해 진격할 때 소리를 듣고 창밖으로 내다보는 노인은 코가 없는 흉측한 모습이다. 바로 정유재란 때 일본군이 조선 사람들의 코와 귀를 잘라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물론, 죽은 것보다는 나았지만 코가 없는 탓에 숨을 쉬는 것을 힘들어하는 모습이 잘 드러난다. 아울러, 노인이 창을 닫으면서 ‘그놈이 그놈’이라는 식의 퉁명스러운 대사는 하늘이니 도리를 따지는 사대부들의 다툼이 결국은 권력을 놓고 벌이는 다툼이라는 본질을 정확히 꿰뚫고 있다.


이렇게 스쳐 가는 등장인물이 툭 내뱉는 대사를 통해 당시의 상황과 반정의 목적을 드러내는 방식은 수준높은 역사적인 지식이나 인문학적인 소양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아울러, 당시 조선이 겪고 있던 국내외적인 어려움과 그것을 나름의 방식으로 돌파하려는 사람들의 노력과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반정에 공로가 있지만 오히려 숙청의 위기에 처하자 반란을 결심한 이괄과 그런 이괄을 주군처럼 모시는 서아지를 비롯한 항왜들, 오로지 권력을 잡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서 혈안이 된 반정 공신들과 불안에 떠는 인조의 모습, 기필코 만주를 되찾겠다고 하지만 사실은 가도(椵島. 평안북도 철산군에 위치한 섬)에 틀어박힌 채 재물을 불리는 일에만 관심이 있는 모문룡(1621년 청나라에 쫓겨 조선으로 건너온 명나라의 장군.이후 가도를 책임지는 관리로 임명됨)과 그들에게 시달리는 북방의 백성들을 교차해서 보여준다.



웹툰 칼부림 사진

▲ 웹툰 <칼부림> 속 한 장면(이미지 출처 : 고일권 제공) 



우리에게 인조반정과 이괄의 난, 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은 쉽게 납득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일투성이다. 그런 것들을 잘 보여주는 한편, 역사라는 수레바퀴에 짓눌려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백성들의 모습과 대화를 통해 당시의 시대를 마치 돋보기를 통해 들여다보는 것처럼 생생한 현장감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신발을 머리에 쓰고, 모자를 발에 신은 것 같은’ 충격적인 당시 상황을 묘사하는 가장 좋은 방식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인 함이가 복수를 위해 살다가 온갖 고난을 겪고 세상을 좀 더 넓게 바라보게 되는 것은 개인의 성장 뿐만 아니라 역사가 변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역사는 개인이라는 그릇에 담기에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참 어려운 질문...‘역사란 무엇인가?’

 


웹툰 칼부림 사진

▲ 웹툰 <칼부림> 속 한 장면(이미지 출처 : 고일권 제공)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E.H 카의 이 질문은 개인적으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자 가장 싫어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웬만한 내공으로는 대답하기 어렵고, 듣는 사람을 만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본질을 가장 잘 꿰뚫는 질문이라는 점 역시 명백하다. 역사가 무엇인지 알아야만 역사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인문학적인 소양을 기를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역사는 지나간 모든 순간이다. 그중에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거나 혹은 중요한 것은 역사로서 남게 되고, 그렇지 못한 것은 기억으로 존재하다가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둘의 차이는 굉장히 모호하고 애매하다. 예를 들어, 평범한 어떤 인물이 잠시 머물다 간 공간은 누구의 기억, 심지어 당사자의 기억 속에서도 사라진다. 하지만 그 평범한 인물이 대통령이 되거나 유엔 사무총장에 뽑히거나 아카데미상을 받거나 노벨상을 수상하게 되면 그가 머문 공간에는 특별한 장소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그가 쓴 책상이나 의자가 전시되고 공간 역시 그의 이름을 따는 경우가 발생한다.


시대에 따라 인물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기도 하고, 역사적인 무게가 나눠지기도 한다. 우리는 홍길동과 허균, 그리고 허준을 기억하지만 그 시대의 영의정이 누구였는지는 알지 못한다. 정확하게는 앞의 세 사람보다 기억해야 할 역사적인 가치가 적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당대에는 영의정이 앞의 세 인물들보다 더 존경을 받았고, 기억되었다. 사실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역사의 무게가 달라진다. 이렇게 역사는 계속 변하게 마련이다.


이런 점들을 감안하면 이름 없는 인물에 포커스를 맞추는 것은 역사가 가지는 무게감을 잘 이해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칼부림> 초반에 나온 코가 없는 노인의 중얼거림이 대표적이다. 가상의 인물이며 짧게 나오고 끝이 나지만 오히려 당대의 역사를 가장 함축적이고 직관적으로 알려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기존에 체계적으로 잘 정리된 역사를 이해해야 하지만 그 뒤에 숨겨진 여러 역사적 기억을 외면하거나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 언제 역사의 무게중심이 달라지고, 누가 관심의 대상이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인문은 삶의 근원적인 문제를 다룬다. 가려지고 숨겨진 역사를 찾는 것은 우리 삶의 근원을 똑바로 바라보는 길이다. 그래서 역사와 인문 모두 어려울 수밖에 없다. 길은 어떻게 걷느냐에 따라 목적지가 달라지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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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섭

작가
1973년 서울 출생. 2013년 제1회 직지소설문학상 최우수상 수상. 2016년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NEW 크리에이터 상을 받았다. 한국 미스터리작가모임과 무경계 작가단에서 활동 중. 소설 『적패』 『개봉동 명탐정』, 『무너진 아파트의 아이들』, 『미스 손탁』, 『멸화군』, 『불 꺼진 아파트의 아이들』, 『어쩌다 고양이 탐정』 등과 『38년 왜란과 호란 사이』, 『오래된 서울을 그리다』,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조선 사건 실록』 등의 역사서를 발표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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