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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이 빛나는 밤에

- 당신은 어떤 ‘가요’ - 나와 기억과 아이유와 조용필의 노래와 나

박상영

2020-09-15

 

 

당신은 어떤가요는?


 

이유가 작사하고 제휘가 노래한 이 곡 ‘Dear Moon’은 단순한 듯 보이지만, 한 줄 만으로도 도시에서 올려다보는 달의 모습이 절로 그려진다. 고독하고 고단한 일상에 문득 올려다 본 하늘, 그곳에 덩그러니 떠 있는 달에 자신의 처지를 투영하는 화자의 모습. 조용필의 ‘꿈’의 화자와도 다르지 않은. 나로서는 30년 가까이 차이 나는 두 노래가 비슷한 심상의, 또 다른 듯 유사한 감정을 노래한다는 사실이......



내가 대중가요 열혈 팬이 된 까닭은



턴테이블(이미지 출처 : pixabay)

▲ 턴테이블(이미지 출처 : pixabay)



내 주변에서는 내가 공공연한 대중가요의 열혈 팬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30대 중반이면 대중문화의 최전선(?)에서는 조금 멀어질 만도 할 법한 나이인데, 나는 여전히 Pop과 한국음악을 가리지 않고 새로 발매된 음반은 빼먹지 않고 거의 다 들어본다. 작업을 할 때도 최신 발매 뮤직비디오를 틀어놓고 있으며, 지금까지 써온 내 소설에는 어김없이 현대의 대중음악이 등장하고는 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가수들을 꼽자면 이름도 찬란한 유채영, 머라이어 캐리, 카일리 미노그, 제니퍼 로페즈, 티아라 등이 있다…….) 내가 속한 ‘문학’이라는 장르에서 이상하게 대중음악은 다소 가볍다고 치부되는 경향이 있는 걸 생각해보면 흔치는 않은 일인데, 일상에 대중음악이 찰싹 달라붙어 있는 나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선택이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고민해보면, 의외로 간단히 대답이 나온다. 

유전 혹은 가풍.

 

일단 우리 집의 가장이자 한량 기질 다분한 아버지께서는 손바닥만 한 집이 가득 차도록 오디오 시스템을 갖추고, 죽도록 음반을 사 모을 정도로 지독한 음악 애호가셨다. 어릴 적 나는 요요마의 첼로 연주와 이동원, 박인수의 향수, 휘트니 휴스턴의 Run to you와 같은 노래를 들으며 일어나고는 했다. 그런 내가 음악, 그중에서도 대중음악에 빠져든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10살 때 처음으로 내 손으로 구입한 S.E.S. 1집 이후로 내게는 언제나 ‘최애 가수’가 존재했었고, 심지어는 CD플레이어가 없어진 지금도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을 사서 가뜩이나 좁아터진 집에 쟁여놓기까지 하는 걸 보면 (좋게 말해) 애호가(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호더적 기질도 유전이 되는 건 아닌가 싶은 호들갑스러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호더(hoarder) :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모아두는 행위


이렇게 공공연하게 대중음악 팬인 걸 떠들고 다녀서 그런지 올해 초부터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별이 빛나는 밤에>의 고정 패널로 초대받기까지 했다. 내가 맡은 코너는 ‘고전이 빛나는 밤에’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80년대 인기곡들의 가사를 짚어보고, 그와 비슷한 정조의 가사를 가진 최신곡들을 찾아내는 것이 주된 기획인 코너이다. 원체 어릴 적부터 많은 노래를 듣고 자란 나로서는 어렵지 않은 작업이었고, 다른 많은 ‘업무’들과 달리 진심을 다해 즐기는 종류의 일이 되었다.



각별한 작사가 두 사람, 조용필과 아이유



코너를 맡은 지 육 개월이 다 되어가는 지금, 나는 누구보다도 주옥같은 한국 노래 가사를 많이 알고 있다고 자부하게 되었다. 익히 잘 알려진 아름다운 가삿말, 시적인 가사를 쓰는 뮤지션으로는 요조와 이소라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싱어송라이터 요조의 역작 ‘우리는 선처럼 가만히 누워’라는 곡은 연애의 감정이라는 외피를 입고 있지만, 실은 존재론적 허무와 ‘차원의 문제’라는 우주적인 문제까지도 담고 있는 수작이다. 이소라의 경우는 익히 알려진 ‘바람이 분다’와 ‘제발’, ‘믿음’ 등의 이별의 절절함이 담긴 가사들을 비롯해 ‘난 별’, Track9’ 등 뼈아픈 자아 성찰과 생의 고독을 다룬 곡까지 넓게 아우르고 있는, 그야말로 ‘시인’이다. 실제로 위의 두 싱어송라이터의 경우 일전에 한 매체에서 실시한 ‘시인들이 뽑은 아름다운 노랫말’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토록 널리 알려진 음유시인들 말고도, 내게는 조금 각별한 작사가들이 있는데 바로 조용필과 아이유다. 


애초에 나는 대도시에서 태어났고, 또 다른 대도시로 이주해 도시적인 삶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이다. 도시의 생태나 그 속의 삶의 양상 같은 것들은 내게 피부처럼 익숙한 것이었고, 더불어 내 삶에 가장 중요한 테마 중 하나였다. 더구나 작년에 <대도시의 사랑법>이라는 연작소설을 낸 뒤, 이상하게도 내게 ‘도시’라는 단어는 조금 더 특별해져 버렸다. 


도시, 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고전 명곡은 조용필의 ‘꿈’이었다. 



조용필의 13집 앨범. 타이틀곡 ‘꿈’(이미지 출처 : 서울음반)

▲ 조용필의 13집 앨범. 타이틀곡 ‘꿈’(이미지 출처 : 서울음반)



나는 지금 홀로 남아서

빌딩 속을 헤매이다 초라한 골목에서 

뜨거운 눈물을 먹는다 

저기 저 별은 나의 마음을 알까 나의 꿈을 알까 

괴로울땐 슬픈 노래를 부른다 

슬퍼질 땐 차라리 나 홀로 눈을 감고 싶어 

고향의 향기 들으면서

 

- 조용필의 ‘꿈’ 중 일부


조용필의 ‘꿈’에 등장하는 화자는 (아마도 농업 지역이었을) 고향을 떠나 고층 빌딩이 즐비한 아스팔트 속에서 꿈을 갈망하며 매일매일의 허무를 버티고 있다. 눈물을 흘린다도 삼킨다도 아니요, 먹는다는 말이 이상하게 낯설어 되레 마음에 깊게 와닿았다. 더불어 고향의 향기라는 다소 구태의연한 명사 뒤에 ‘듣는다’는 서술어를 써, 공감각적 심상을 펼쳐놓는 솜씨라니. 어떤 소리인지 구체적으로 적지 않아도 충분히 알 것만 같은, 여름밤 그 어느 날에 고향집에서만 들려오는 그런 소리를 자동으로 연상하게 됐다. 조용필 특유의 비음 섞인 절절한 목소리와 아름다운 선율이 더해져 도시의 고독이 뼈 깊이 새겨지는 듯한 환상에 사로잡혔다. 이와 비슷한 노래를 찾던 도중 가장 먼저 내 뇌리를 스친 곡은 천재 아티스트 제휘의 ‘Dear Moon’이라는 곡이었다.



제휘의 ‘Dear Moon’ 앨범 표지(이미지 출처 : 네이버)

▲ 제휘의 ‘Dear Moon’ 앨범 표지(이미지 출처 : 네이버)



Dear moon, my moon 가까워지지 않아. 

잰걸음으로 따라가도 닿지 않는 달처럼. 

Oh moon, like moon 왜 사라지지 않아. 

뒤돌아 등지고 도망쳐 봐도. 

따라오는 저 달처럼.


- 제휘 ‘Dear Moon 중 일부



아이유가 작사하고 제휘가 노래한 이 곡은 단순한 듯 보이지만, 한 줄 만으로도 도시에서 올려다보는 달의 모습이 절로 그려진다. 고독하고 고단한 일상에 문득 올려다 본 하늘, 그곳에 덩그러니 떠 있는 달에 자신의 처지를 투영하는 화자의 모습. 조용필의 ‘꿈’의 화자와도 다르지 않은.



30년 세월을 넘어 서로 통하는



나로서는 30년 가까이 차이 나는 두 노래가 비슷한 심상의, 또 다른 듯 유사한 감정을 노래한다는 사실이 퍽이나 흥미롭게 다가왔다. 조용필 같은 경우 ‘가왕’이라는 칭호만큼이나 싱어송라이터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아이유의 경우 깜찍한 노래를 부르던 십 대의 이미지에 가려져, 그녀의 싱어송라이터적 역량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편이다. 실은 ‘금요일에 만나요’. ‘23’, ‘팔레트’, ‘마음’, ‘밤편지’, ‘Dear Moon’ 등 자신과 다른 가수들의 노래 모두를 열심히 만들고 있는 전방위의 아티스트임에도 말이다. 



아이유의 밤편지(이미지 출처 : 네이버)

▲ 아이유의 밤편지(이미지 출처 : 네이버)



나는 그녀의 작품 중에서 특히 ‘밤편지’와 ‘에잇’이라는 노래의 가사를 좋아한다. ‘밤편지’ 역시 앞서 말한 제휘가 작곡에 참여하고 아이유가 작사한 곡인데, 사실 음악으로만 보자면 느린 템포에 다소 구슬픈 음률을 가진 노래인데, 아이유는 연인 혹은 연정의 대상에게 보내는 애틋한 내용의 가사를 붙여, 슬프면서도 달콤한,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을 펼쳐냈다. 그녀의 최근작 ‘에잇’은 반대로 매우 신나는 템포의 댄스곡이지만 가사에는 그 어떤 가사보다도 슬프고 절절한 상실이 담겨 있다.


지나듯 날 위로하던 누구의 말대로 고작

한 뼘짜리 추억을 잊는 게 참 쉽지 않아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날 붙드는 그곳에 


우리는 오렌지 태양 아래

그림자 없이 함께 춤을 춰

정해진 안녕 따위는 없어 

아름다웠던 그 기억에서 만나 

- 아이유, 에잇 중 일부 



현실 속 우리의 감정은 슬픔과 기쁨, 분노와 사랑 등 한 단어로 단순화될 수 있지 않다. 슬프면서도 웃음이 나오고, 웃으면서도 나도 모르게 뒷골이 허전해지는 게 일상이다. 그런 점에서 아이유는 감정의 역학에 있어서 매우 정확한 가사를 구사하는 유려한 작사가이다. 


얼마 전 고향집에 내려가 아빠의 음반이 진열된 찬장을 열어본 적이 있었다. 역시나 클래식과 대중가요, 팝페라와 샹송을 오가는 음반 목록 속에서 나는 아이유가 낸 네 번째 미니앨범 ‘채셔(CHAT-SHIRE)’를 발견했다. 아이유에게서 30년 전 어떤 순간을 발견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라는 생각에,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당신은 어떤 '가요'] 고전이 빛나는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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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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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성균관대학교에서 프랑스어문학과 신문방송학을,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문예창작학을 공부했다. 2016년 단편 <패리스 힐튼을 찾습니다>로 문학동네신인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제9회 젊은작가상, 제10회 젊은작가상 대상, 제11회 허균문학작가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소설집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와 연작소설 <대도시의 사랑법>, 산문집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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