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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대사 경조, 박소년을 사랑하다

우리 역사 속 동성애의 기록

강문종

2018-07-23

우리는 최근 수많은 담론 속에 파묻혀 지내고 있으며 그 중 동성애 역시 예외가 아니다. 특히 동성애자들의 커밍아웃이 일반화되고 대중문화 현장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기도 하며, 퀴어문화축제가 서울과 제주 등에서 개최되면서 동성애 혹은 동성애자들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였다. 이러한 현상들은 동성애가 성소수자들만의 영역에서 나와 점차 대중성을 확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이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가 조금 아쉽다.



전통시대, 동성애에 학문적으로 접근하다


주체적 자아가 선택하는 성적 취향의 문제를 호불호(好不好)의 시각에서 판단하지 않고 시시비비(是是非非)의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극단적인 주장을 목격하게 된다.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것은 곧바로 옳지 않다는 논리와 손을 잡으면서 자신의 생각과 다를 경우 이를 틀렸다고 규정해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여지없이 갈등을 만들어내고 우리 사회를 더욱 우울하게 한다. 한 치의 앞이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종종 역사에 눈을 돌린다. 과거의 사례로부터 오래된 미래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역사 속에서 동성애는 어떻게 다루어졌을까?


전통시대 동성애에 대한 수많은 기록들이 남아 있다. 왕실과 로열패밀리들이 동성애 스캔들에 빠지기도 하고, 동성 간 성관계가 웃음의 소재로 활용되기도 하며 미소년을 사랑했던 남자들의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18세기부터는 놀랍게도 동성애에 대한 학문적 접근이 이루어졌다. 윤기(尹愭, 1741~1826)는 <남녀지욕(男女之慾)>이라는 글에서 남성 동성애 즉, ‘남총(男寵)’의 의미를 고찰하였고, 정약용(1762~1836)은 『흠흠신서』에서 남성들 간의 성범죄를 의미하는 ‘계간(鷄姦)’의 중국 사례 2건을 정리하여 법률 적용이 잘못된 사례의 예로 소개하였다. 이규경(李圭景, 1788~1863)은 <남총변증설(男寵辨證說)>과 <한궁대식변증설(漢宮對食辨證說)>에서 각각 동성애를 의미하는 ‘남총’과 ‘대식(對食)’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였다. 그는 중국뿐만 아니라 조선과 일본의 사례를 함께 다루면서 이에 대한 개념과 실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객관적인 판단을 위한 기준을 제시해 주기도 하였다.



서로 사랑한들 무엇이 해로우랴!


특히 고려 시대 최고의 지식인이자 문인인 이규보는 당대 고승과 미소년 간의 사랑을 시시비비(是是非非)로 판단하지 않았다. 이규보 역시 유가대사(瑜伽大士) 경조(景照)와 박(朴)씨 성을 가진 미소년과의 사랑 이야기를 <차운공공상인 증박소년오십운(次韻空空上人 贈朴少年五十韻)>이라는 장편 시로 남겼다.


동국이상국집

▲ 유가대사 경조와 박소년의 이야기가 실린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 ⓒ규장각한국학연구원 (Kyujanggak Institute For Korean Studies)


유가대사 경조의 자(字)가 공공(空空)이라 이규보는 그를 공공상인(空空上人)이라 불렀다. 공공상인은 불도에 조예가 깊어 이미 당대의 법왕(法王)이라 불릴 만하였고, 시(詩)에도 뛰어난 재능이 있어서 시승(詩僧)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중국 송나라 고승인 조파(祖播)가 그의 명성을 듣고 귀한 선물과 시를 보내기도 하였고, 공공상인이 거처하는 곳을 토각암(兎角庵)이라 이름 짓고 직접 그 편액(扁額)을 써서 보내주기도 하였다.


二儀剖判有陰陽 / 하늘과 땅이 개벽하매 음과 양이 생기고

雄或呼雌女逐郞 / 수컷이 암컷을 부르자 여가 남을 따르네!


위의 예문은 <차운공공상인 증박소년오십운>이 시작되는 부분이다. 앞부분에서 음양이 생성되는 근원을 밝히고 나서 ‘자웅(雌雄)’이라는 핵심 단어로 음양이 결합하는 양상을 제시하였다. 이후 ‘봉황(鳳凰)’•‘연리지(連理枝)’ 등의 예로 음양의 조화로 인한 즐거움과, ‘짝 잃은 외로운 새’•‘형제 없이 잘 나는 기러기’ 등의 예로 음양의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의 현상들을 계속 나열한다.


縱將絶艶充閭閫 / 절세미인이 방안에 가득 차고

亦欲諸姬列廡廊 / 미녀들이 또한 월랑에 줄지어 있어도

唯有高人能豁斷 / 다만 고인은 이를 단호히 끊고

直超流俗樂深藏 / 세속에서 벗어나 자취를 감춰


앞부분에서 음양의 조화와 분리의 상황에 대한 즐거움과 외로움 그리고 쓸쓸함이 교차로 이어지다가 이 부분이 등장한다. 시의 내용처럼 공공상인은 아름다운 미인들 앞에서도 욕망을 차단하고 속세를 떠났음을 알 수 있다. 이후 시의 내용은 잠시 속세를 떠난 공공상인이 도를 즐기는 모습을 그린다.


因嫌大慾避探湯 / 정욕을 싫어하여 끓는 물 피하듯 하니

野狐雖媚那窺側 / 아양 떠는 여우가 어찌 유혹할 수 있겠으며

天女難干謾在傍 / 아름다운 선녀도 접근하기 어려워


공공상인은 결국 여자를 멀리하고 속세를 떠나 도를 즐기며 성적 욕망을 모두 끊게 되자, 요사스러운 여자는 물론이고 아름다운 선녀 역시 그를 유혹하지 못한다. 이쯤 되면 공공상인은 여자•성•성적 욕망 등에서 완전히 초월하였음을 알 수 있다.


縱有妄緣幾惑見 / 어떠한 망상의 유혹이 있었어도

想應介立不離方 / 아마 꿋꿋이 서서 꼼짝도 하지 않았을 것인데

未知朴子形何似 / 박씨 소년이 대체 어떠한 외모이기에

坐使空師意反狂 / 공공상인을 미치게 했나


공공상인은 성과 성적 욕망에 대한 어떠한 망상과 유혹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는 경지에 다다른다. 그러나 박소년의 등장과 함께 이제까지 유지해온 성과 색(色)에 대한 공공상인의 태도가 완전히 뒤집히고, ‘미치게 했나’로 묘사될 만큼 그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요동치게 되었다. 시는 여러 사물과 현상의 특성에 비유하여 기대감•아쉬움•즐거움•기쁨 등의 상황이 마치 공공상인의 심리상태를 보여주듯 이어진다.


矧此少年生早慧 / 더욱이 이 소년은 총명한 천성에다

尤於博學飽曾嘗 / 해박한 학식까지 마냥 간직하여

宛如濯濯春林色 / 마치 봄철의 윤택한 숲 같고

正似團團望月光 / 또한 둥근 보름달과도 같네!

寢底同衾情苟篤 / 침실에 이불을 함께 하니 정의가 진실로 도탑고

宮中對食效奚妨 / 서로 사랑한들 무엇이 해로우랴!


박소년이 공공상인의 마음을 요동치게 만든 이유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박소년은 해박했으며 총명하기까지 했고, 봄날의 윤택한 숲과 둥근 달처럼 아름다운 미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박소년은 시를 짓는데도 뛰어난 능력과 문학적 감수성을 갖고 있어 공공상인과 시를 통하여 문학적 교류를 하게 된 것이다. 결국 박소년의 이러한 영특한 재주와 아름다운 외모가 공공상인의 고매한 정신세계와 만나서 서로 조화를 이루게 되자, 이들에게는 남녀사이의 연정을 뛰어넘는 동성애적 감정이 형성된다. 이러한 감정의 교감과 발전은 두 사람으로 하여금 한 침실에서 한 이불을 덮고 자는 관계를 만들어낸다.


이규보는 이러한 공공상인과 박소년의 사귐이 비록 중국 한나라 황실에서 발생하였던 동성애 관계 즉, ‘대식관계(對食關係)를 유지한다 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음을 밝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물론 이규보는 동성애자가 아니며 동성애에 대한 그의 호불호(好不好)를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이규보는 불교적 진리를 추구했던 당대 고승과 박소년의 관계를 마치 프랑스의 시인 베를렌르와 랭보의 관계만큼이나 아름답게 이해하고 있다.


섹슈얼리티는 더 이상 미리 정해진 자연적 조건으로서 단지 수용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각 자가 ‘갖고 있는’ 혹은 ‘개발해 나가는 것’이 되었다. (엔소니 기든스)


앤소니 기든스

▲ 영국의 사회학자 앤소니 기든스 ⓒInternational Students’ Committee



주체적 자아가 선택하는 성적 취향


성정체성은 태어나면서 정해진 것이라기보다는 삶의 과정에서 주체적 자아가 스스로 선택하고 만들어가는 것은 아닐까? 기든스는 섹슈얼리티를 “자신의 몸과 자기정체성 그리고 사회적 규범이 서로 만나는 지점이며, 성형이 가능한 자아의 한 단면”이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시각으로 본다면 각자의 성적 취향은 태어나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주어진 규범에 안에서 주체적 자아의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므로 각자의 성적 취향은 비록 그것이 사회적 통념에서 벗어났다 하더라도 개인적으로 충분히 존중받아야 하며, 옳고 그름의 시각으로 규정할 수 없을 것이다.


공공상인과 박소년의 사랑을 아름답게 묘사한 이규보가 이들의 성정체성을 이해하고 존중해 주지 않았다면 이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는 우리에게 전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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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강문종
강문종

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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