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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변화무쌍 세상, 변화의 출발점을 옮겨보자

장 지오노 『나무를 심은 사람』 외

박태근

2018-03-26

변화에 관심 없는 순수한 변화

 

‘순수한 변화’라는 표현이 가능하다면, 그에 가장 어울리는 이야기는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이겠다. 바깥세상에 전쟁이 벌어져도,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아도, 그저 묵묵히 자신이 정한 바에 따라 수십 년에 걸쳐 나무를 심은 사람. 그리하여 황무지를 울창한 숲으로 바꾸고, 다툼이 가득해 몰락하던 마을에 생명을 불어넣어 새 사람을 불러 모은 이야기. 모든 게 바뀌었으나 자신을 바꾸지 않았고, 자신을 바꾸지 않음으로 모든 걸 바꿔낸 사람의 이야기. 너무나 천천히 바뀌어 사람들은 알아채지 못했지만, 그는 시작부터 모든 변화를 짐작하고, 아니 믿고 있었던 게 아닐까. ‘억지 변화’가 판을 치는 오늘날, 무엇을 바꾸고 무엇을 바꾸지 말아야 할지, 아니 무엇을 위한 변화인지 ‘나무를 심은 사람’에게 물어보고 싶다. 물론 그는 여전히 말없이 나무를 심을 게 분명하지만 말이다.

 “창조란 꼬리를 물고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엘제아르 부피에는 그런 데에는 관심이 없었다. 아주 단순하게 자신이 할 일을 고집스레 해 나갈 뿐이었다.” 

 

『나무를 심은 사람』 장 지오노 지음, 두레아이들 / 『세계 곳곳의 너무 멋진 여자들』 케이트 샤츠 지음, 티티
▲ 『나무를 심은 사람』 장 지오노 지음, 두레아이들 / 『세계 곳곳의 너무 멋진 여자들』 케이트 샤츠 지음, 티티

 

변화를 만드는 ‘멋진 사람’들


그럼에도 변화는 변화다. 변화가 매력적인 이유는 변화에 있다. 기존의 것을 허물고 새로운 것을 세우는 변화, 기존의 것이 저항하고 새로운 것이 망설이는 틈을 비집고 나와, 규칙을 부수고 경계를 허무는 변화 말이다. 변화를 이룬 멋진 사람들의 면면을 떠올려본다. 어떤 이는 남성을, 어떤 이는 여성을 먼저 떠올리겠으나, 남성보다 여성을 많이 떠올릴 수 있는 이는 드물 것이다. “우리가 듣고 배우는 역사는 주로 남자들의 일, 남자가 공헌한 일에 중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곳곳의 너무 멋진 여자들』은 여성이라서 할 수 없는 일로 여겨지고 우겨지던 영역에서 변화를 만들어낸 수십, 수백의 여성에 주목한다. 그가 도전하기 전까지는 ‘공집합’의 예로 적절했던 ‘인도 출신 여자 우주비행사’에 도전한 칼파나 차울라, 투표할 자격이 없다면 세금 낼 자격은 왜 있느냐고 따져 물으며 여성 참정권을 위한 투쟁 ‘서프러제트’에 앞장선 소피아 두리프 싱 공주 등 “멋지게, 흥미진진하게, 혁명적으로 살고, 역사에 남을 일을 해내고, 세상을 바꾼 강인하고 용감한 여자들의 삶과 성취”에서 “여자들이 지금까지 해온 일,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확인하는 동시에, 우리 역시 변화를 만드는 ‘멋진 사람’이 될 용기를 찾을 수 있다.


 “우리가 보는 세상 너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되면 세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것은 분명 자신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테다.” 

 

 『헝거: 몸과 허기에 관한 고백』 록산 게이 지음, 사이행성

▲ 『헝거: 몸과 허기에 관한 고백』 록산 게이 지음, 사이행성

 

저항하거나 감당할 수 없는 변화들

 

그렇다고 변화가 늘 나로부터 시작하는 건 아니다.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변화에 당황하거나 감당할 수 없는 변화에 흔들리며 살아가게 마련이다. 그런데 자신의 잘못 하나도 없이 마주한, 원하지 않았으나 피할 수 없는 변화라면, 어떻게 저항하거나 감당하거나 적응할 수 있을까. 감히 미루어 짐작할 수 없을 변화를 마주한 두 이야기를 살펴보자. 『나쁜 페미니스트』의 저자 록산 게이는 키가 190cm이고, 몸무게는 가장 살이 쪘을 때 261kg이었다(지금은 64kg 정도가 줄었다). 처음부터 체중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건 아니다. 그의 삶은 몸무게가 늘어나기 전과 후로 나뉘고, 그와 더불어 성폭행을 당하기 전과 후로 나뉜다. 그는 공포에서 벗어나려 쉬지 않고 먹어 몸집을 불렸다. 폭력으로부터 안전해질 거라 기대했으나, 변화된 몸에는 새로운 혐오와 경멸이 이어졌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걸까. 왜 아무런 잘못 없는 그가 죄책감에 시달리며 자기 혐오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 걸까. 그는 『헝거: 몸과 허기에 관한 고백』에서 자신의 인생을 복기하며 진솔하게 고백한다. 그때의 나를 바라보는 나를 변화시켜 감당하기 힘든 변화의 과정과 결과를 ‘이해’하려 노력한다. 침묵을 깨고 나온 고백, 말, 이야기는 어떤 변화에 이르렀을까. 그는 스스로 이 책을 이렇게 평한다.


 “이 책은 내 몸, 내 허기에 관한 책이며 궁극적으로는, 사라지고 싶고 다 놓아버리고 싶으면서도 그와 동시에 너무나도 많은 것을 원하는, 간절히 누군가에게 보이고 싶고 이해받고 싶은 사람에 관한 책이다. 비록 그 과정이 한없이 느려터지긴 했으나, 마침내 자신을 보여주고 이해받는 것이 가능함을 배우게 된 한 사람에 관한 책이다.” 

 

『소와 흙』 신나미 교스케 지음, 글항아리

▲ 『소와 흙』 신나미 교스케 지음, 글항아리

 

알 수 없지만 살아가야 할 이유


이렇듯 변화를 이해하고 감당하려는 한 사람의 이야기는 나를 돌아보게 한다. 그렇다면 세계의 변화 속에 놓인 각자는 어떨까.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그야말로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이제 그곳에는 사람이 살 수 없다. 인류의 시간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긴 시간이 흘러도 회복되기 어려운 땅이다. 그런데 그곳에 소가 살고 있고, 그 소를 돌보는 사람들이 있다. 논픽션 작가 신나미 교스케의 취재기록 『소와 흙』에는 정부의 안락사 정책에 동조하지 않은 주민들, 그 덕분에 살아남아 여전히 살아있는 소들에 주목한다. 흙마저 오염되어 몸에 방사능을 쌓으며 살아가는 소들, 그 소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함께 살아가려 피폭을 감내하며 그 땅에 들어서는 사람들. 이들은 거대한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러한 변화 속에서도 또 다른 가능성을 찾아 모험에 나서는 것일까. 그곳의 오염이 어디까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상황이니, 이들이 나아가는 길이 어디로 이어질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지금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살아있는 소와 죽었다고 여겨지는 땅이 서로를 지탱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장면 앞에 선 인간으로서, 어쩌면 이 말밖에 할 수 없는 게 아닐까 싶다. 


 “사람이 살 수 없게 된 피폭의 땅에서 수난을 당한 소들이 고향의 대지를 지키는 일소로서 일을 계속해나가길 바란다. 그리고 흙으로 변하는, 들판에서 죽은 동물들의 부패가 빨라지기를 바란다.” 


변화라는 말에는 이처럼 수많은 양상과 층위와 상황이 담겨 있다. 무엇이든 바꿔낼 수 있다며 변화를 강요하거나, 바뀌는 건 없다며 변화를 좌절시키는 목소리는 혼란을 가중할 따름이다. 무엇이 변하는지 관찰하는 시간, 무엇으로 변하는지 알아차릴 시선, 이에 더불어 관찰하고 알아차리는 나의 변화를 돌아보는 태도가 우선 아닐까. 변화무쌍한 세상, 변화의 출발점을 옮겨보자. 조금 더디더라도 적절한 속도로, 조금 아쉽더라도 맞춤한 방향으로 변화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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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박태근
박태근

<알라딘> 인문 MD. 일명 ‘바갈라딘’으로 불린다.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했으며, 현재는 온라인서점 알라딘에서 인문 MD로 일하고 있다. 편집자를 위한 실험실 연구원으로 출판계에 필요한 목소리를 전하며, 여러 매체에서 책을 소개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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