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도 사회적 관계의 산물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인류는 개인이 아닌 집단 단위로 진화했다. 인간성은 결국 사회성이다. 우리에게 부여된 인간적인 요소들, 즉 다른 동물들과 인류를 구별해주는 모든 속성은 모두 집단 혹은 사회적 관계에 대한 것들이다. 감정부터가 그렇다. D.H. 로렌스가 말했듯 야생동물들은 자기 연민을 모른다. 한겨울 추위에 얼어 나뭇가지에서 떨어져 죽어가는 작은 새조차도 스스로 불쌍히 여기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거나 맛있게 끓인 라면 그릇을 실수로 엎을 때도 자기 연민에 빠진다. 연민, 자부심, 수치심, 죄책감, 심지어 외로움까지, 모든 인간적 감정은 타인의 눈으로 자신을 볼 수 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이런 내 모습을 누군가 본다면 얼마나 불쌍할까, 얼마나 멋있을까, 얼마나 한심해 보일까. 이런 생각을 할 수 없다면 그런 감정 역시 생성될 수 없다. 조지 허버트 미드가 말했듯 인간의 자아개념 역시 타인의 존재 없이는 생겨나지 않는다. 남들이 보는 나에 대한 인식, 즉 ‘자의식’이야 말로 인간성의 시작이다.
심지어 주관적인 우리 삶의 질도 타인의 존재에 달려있다. 발달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에 따르면 우리는 성인이 되면서 건강한 친밀감을 형성하느냐 아니면 고립감에 빠지느냐의 갈림길을 거치며, 그다음 중년기에는 다시 생성감이냐 침체감이냐의 갈림길에 직면한다. 모두 타인과의 관계, 즉 사회성의 문제다. 친밀감은 서로 믿고 존중하는 친구를 사귀는 문제이므로 당연한 얘기다. 그렇다면 생성감은? 이건 내가 살아오면서 뭔가 가치 있는 것을 만들어냈다는 인식인데, 그 가치는 결국 주변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내게 가치 있는 것이 아무리 많더라도 그걸 알아주고 받아줄 만한 사람이 없다면 우리는 침체감에 빠진다. 행복이란 별것 아니다. 어른이 되어 건강한 친밀감을 형성하고 중년기에 생성감을 충만하게 느끼는 삶이 곧 행복이다. 반면 고립감과 침체감은 불행으로 가는 길이다.
자아의 분리-개별화
이렇게 인간은 사회와 떼어놓을 수 없는 존재다. 하지만 사회적 관계가 전부는 아니다. 3살 이전의 어린아이들은 타인의 감정과 내 감정을 구별하지 못한다. 타인의 세계와 내 세계가 따로 나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 옆에서 울면 그냥 따라서 운다. 하지만 대략 3살이 지나고 남이 아는 것을 나는 모를 수 있으며, 내가 아는 것을 남이 모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난 뒤부터 아주 초보적인 ‘자아개념’이 생겨난다. 남들과 구별되는 나만의 세계를 찾으려는 욕구도 그때부터 성장한다. 정신분석학자 마가렛 말러가 ‘분리-개별화’라고 이름붙인 과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분리-개별화는 간단히 말해서 우선 나와 내가 아닌 것을 구별하고 다시 내가 아닌 것과 나의 관계를 새로이 맺는 과정이다. 남들과 나의 감정을 구별하되,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한다면 분리-개별화는 제대로 이루어진 셈이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다. 우리가 가장 처음 겪는 분리-개별화의 난관은 대개 부모와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아주 어릴 때 부모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우리는 어느 시점부터 또래 친구들이나 다른 어른들과 관계를 맺어가면서 점차 부모 중심의 세상에서 벗어난다. 이때 부모가 자녀를 떠나보내지 못하거나, 혹은 자녀가 부모에게서 벗어나는 것에 지나친 두려움이나 죄책감을 느낀다면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우리 대부분 그 엉킨 상태를 조금씩은 경험했을 것이다.
이 난관을 극복한 다음에도 분리-개별화의 어려움은 계속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연애와 결혼조차도 사실은 분리-개별화의 대상이다. 내가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과 나는 서로 다른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망각하거나 무시하고 그 사람과의 관계가 내 자아를 삼킬 때, 지나친 사랑으로 숨 막힐 지경인 ‘익애 溺愛’에 빠진다. 그나마 사랑하는 상대와의 분리-개별화는 행복한 어려움이다. 막연한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하고 개별화하는 일은 더 복잡하고 골치 아프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사람들을 괴롭히는 가장 큰 문제도 여기에 있다.
진정한 어른이 되려면
체면을 중시하는 전통과 남과 나를 구별하지 않고 마구 간섭하는 농경사회 특유의 오지랖 문화 탓인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전부터 타인과의 분리-개별화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국민 정서’는 대표적인 분리-개별화의 실패 사례다. 일반적인 타인의 감정을 자신의 감정과 분리하지 못하는 모습이니까.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상황이 나아지기는커녕 더 심각해지고 있다. 객관적인 평가 기준으로 자신을 측정하고 재단하는 삶에 익숙해진 신세대들은 이전 세대보다도 더 심각한 분리-개별화의 어려움을 겪는다. 자신이 평균 수준인지 아니면 평균 이상 혹은 이하인지를 뜻하는 ‘평타’ ‘상타’ ‘하타’ 같은 용어는 요즘 세대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개념틀이다. 그 때문에 그들은 할 필요가 없는 일을 하고, 자신에게 꼭 필요한 일을 하지 못하며 스스로 불행의 구렁텅이로 빠트린다.
예를 들어, 혼자 밥 먹기를 꺼리는 사람들이 진정 두려워하는 건 혼자 식사하는 상황 자체가 아니라 그런 자신을 남들이 볼까 봐 두렵고, 그들이 나를 뭐라고 평가할지에 대한 걱정이다. 그 때문에 그들은 혼자 식사하며 누리는 호젓함이나 여유로움을 즐기지 못한다. 사람을 사귈 때도, 직업을 정할 때도, 나보다는 남들의 눈으로 평가하다 보니 무엇을 해도 진정한 만족을 얻지 못한다. 자기 인생이 아니라 남의 삶을 사는 셈이다. 심지어 자기 자신만 이렇게 사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주변에 자기 멋대로 살려는 사람들을 모두 붙잡아 이 미분리-미개별화의 지옥으로 끌어들여야 만족한다. SNS로 가까워진 사회적 거리는 이런 민폐를 일종의 시대정신처럼 일반화시키는 중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를 얻었던 인문학서적 중 하나가 『미움받을 용기』였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그건 그 사람의 과제이고 그 사람이 알아서 할 일이라는 사실을 차분하게 알려주는 이 책이 그렇게 많이 팔렸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지금 한국 사회에서 많은 사람이 그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분리-개별화를 이루지 못해 고통받고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다. 그러나 그 사회성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나와 남을 분리하고 나라는 존재를 나머지 세상으로부터 개별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그렇게 분리하고 개별화해도 우리가 이 사회의 일원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오히려 이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으로 기능하기 위해서 그런 분리와 개별화가 더욱 필요하다. 관계는 우리 존재의 기반이다. 하지만 그 관계로부터 한 발짝 벗어날 수 있을 때 우리는 진정한 어른이 된다.
(심리학자)연세대학교 심리학과 졸업,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과 일본 리니지 유저의 라이프스타일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청소년 문화심리학과 매체 심리학, 사이버공간의 심리학 연구를 수행했으며, 영화와 만화, 게임 등을 이용한 심리학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팝콘 심리학』 『심리학 오디세이』 『싸이코 짱가의 영화 속 심리학』 『소심한 심리학자와 무심한 고양이』 등을 저술했고, 『시간의 심리학』 『인간, 그 속기 쉬운 동물』 등을 번역했다. 현재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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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분리와 개별화
나와 타인의 감정을 구별하기
장근영
2018-02-07
행복도 사회적 관계의 산물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인류는 개인이 아닌 집단 단위로 진화했다. 인간성은 결국 사회성이다. 우리에게 부여된 인간적인 요소들, 즉 다른 동물들과 인류를 구별해주는 모든 속성은 모두 집단 혹은 사회적 관계에 대한 것들이다. 감정부터가 그렇다. D.H. 로렌스가 말했듯 야생동물들은 자기 연민을 모른다. 한겨울 추위에 얼어 나뭇가지에서 떨어져 죽어가는 작은 새조차도 스스로 불쌍히 여기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거나 맛있게 끓인 라면 그릇을 실수로 엎을 때도 자기 연민에 빠진다. 연민, 자부심, 수치심, 죄책감, 심지어 외로움까지, 모든 인간적 감정은 타인의 눈으로 자신을 볼 수 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이런 내 모습을 누군가 본다면 얼마나 불쌍할까, 얼마나 멋있을까, 얼마나 한심해 보일까. 이런 생각을 할 수 없다면 그런 감정 역시 생성될 수 없다. 조지 허버트 미드가 말했듯 인간의 자아개념 역시 타인의 존재 없이는 생겨나지 않는다. 남들이 보는 나에 대한 인식, 즉 ‘자의식’이야 말로 인간성의 시작이다.
심지어 주관적인 우리 삶의 질도 타인의 존재에 달려있다. 발달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에 따르면 우리는 성인이 되면서 건강한 친밀감을 형성하느냐 아니면 고립감에 빠지느냐의 갈림길을 거치며, 그다음 중년기에는 다시 생성감이냐 침체감이냐의 갈림길에 직면한다. 모두 타인과의 관계, 즉 사회성의 문제다. 친밀감은 서로 믿고 존중하는 친구를 사귀는 문제이므로 당연한 얘기다. 그렇다면 생성감은? 이건 내가 살아오면서 뭔가 가치 있는 것을 만들어냈다는 인식인데, 그 가치는 결국 주변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내게 가치 있는 것이 아무리 많더라도 그걸 알아주고 받아줄 만한 사람이 없다면 우리는 침체감에 빠진다. 행복이란 별것 아니다. 어른이 되어 건강한 친밀감을 형성하고 중년기에 생성감을 충만하게 느끼는 삶이 곧 행복이다. 반면 고립감과 침체감은 불행으로 가는 길이다.
자아의 분리-개별화
이렇게 인간은 사회와 떼어놓을 수 없는 존재다. 하지만 사회적 관계가 전부는 아니다. 3살 이전의 어린아이들은 타인의 감정과 내 감정을 구별하지 못한다. 타인의 세계와 내 세계가 따로 나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 옆에서 울면 그냥 따라서 운다. 하지만 대략 3살이 지나고 남이 아는 것을 나는 모를 수 있으며, 내가 아는 것을 남이 모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난 뒤부터 아주 초보적인 ‘자아개념’이 생겨난다. 남들과 구별되는 나만의 세계를 찾으려는 욕구도 그때부터 성장한다. 정신분석학자 마가렛 말러가 ‘분리-개별화’라고 이름붙인 과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분리-개별화는 간단히 말해서 우선 나와 내가 아닌 것을 구별하고 다시 내가 아닌 것과 나의 관계를 새로이 맺는 과정이다. 남들과 나의 감정을 구별하되,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한다면 분리-개별화는 제대로 이루어진 셈이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다. 우리가 가장 처음 겪는 분리-개별화의 난관은 대개 부모와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아주 어릴 때 부모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우리는 어느 시점부터 또래 친구들이나 다른 어른들과 관계를 맺어가면서 점차 부모 중심의 세상에서 벗어난다. 이때 부모가 자녀를 떠나보내지 못하거나, 혹은 자녀가 부모에게서 벗어나는 것에 지나친 두려움이나 죄책감을 느낀다면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우리 대부분 그 엉킨 상태를 조금씩은 경험했을 것이다.
이 난관을 극복한 다음에도 분리-개별화의 어려움은 계속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연애와 결혼조차도 사실은 분리-개별화의 대상이다. 내가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과 나는 서로 다른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망각하거나 무시하고 그 사람과의 관계가 내 자아를 삼킬 때, 지나친 사랑으로 숨 막힐 지경인 ‘익애 溺愛’에 빠진다. 그나마 사랑하는 상대와의 분리-개별화는 행복한 어려움이다. 막연한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하고 개별화하는 일은 더 복잡하고 골치 아프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사람들을 괴롭히는 가장 큰 문제도 여기에 있다.
진정한 어른이 되려면
체면을 중시하는 전통과 남과 나를 구별하지 않고 마구 간섭하는 농경사회 특유의 오지랖 문화 탓인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전부터 타인과의 분리-개별화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국민 정서’는 대표적인 분리-개별화의 실패 사례다. 일반적인 타인의 감정을 자신의 감정과 분리하지 못하는 모습이니까.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상황이 나아지기는커녕 더 심각해지고 있다. 객관적인 평가 기준으로 자신을 측정하고 재단하는 삶에 익숙해진 신세대들은 이전 세대보다도 더 심각한 분리-개별화의 어려움을 겪는다. 자신이 평균 수준인지 아니면 평균 이상 혹은 이하인지를 뜻하는 ‘평타’ ‘상타’ ‘하타’ 같은 용어는 요즘 세대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개념틀이다. 그 때문에 그들은 할 필요가 없는 일을 하고, 자신에게 꼭 필요한 일을 하지 못하며 스스로 불행의 구렁텅이로 빠트린다.
예를 들어, 혼자 밥 먹기를 꺼리는 사람들이 진정 두려워하는 건 혼자 식사하는 상황 자체가 아니라 그런 자신을 남들이 볼까 봐 두렵고, 그들이 나를 뭐라고 평가할지에 대한 걱정이다. 그 때문에 그들은 혼자 식사하며 누리는 호젓함이나 여유로움을 즐기지 못한다. 사람을 사귈 때도, 직업을 정할 때도, 나보다는 남들의 눈으로 평가하다 보니 무엇을 해도 진정한 만족을 얻지 못한다. 자기 인생이 아니라 남의 삶을 사는 셈이다. 심지어 자기 자신만 이렇게 사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주변에 자기 멋대로 살려는 사람들을 모두 붙잡아 이 미분리-미개별화의 지옥으로 끌어들여야 만족한다. SNS로 가까워진 사회적 거리는 이런 민폐를 일종의 시대정신처럼 일반화시키는 중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를 얻었던 인문학서적 중 하나가 『미움받을 용기』였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그건 그 사람의 과제이고 그 사람이 알아서 할 일이라는 사실을 차분하게 알려주는 이 책이 그렇게 많이 팔렸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지금 한국 사회에서 많은 사람이 그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분리-개별화를 이루지 못해 고통받고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다. 그러나 그 사회성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나와 남을 분리하고 나라는 존재를 나머지 세상으로부터 개별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그렇게 분리하고 개별화해도 우리가 이 사회의 일원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오히려 이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으로 기능하기 위해서 그런 분리와 개별화가 더욱 필요하다. 관계는 우리 존재의 기반이다. 하지만 그 관계로부터 한 발짝 벗어날 수 있을 때 우리는 진정한 어른이 된다.
(심리학자)연세대학교 심리학과 졸업,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과 일본 리니지 유저의 라이프스타일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청소년 문화심리학과 매체 심리학, 사이버공간의 심리학 연구를 수행했으며, 영화와 만화, 게임 등을 이용한 심리학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팝콘 심리학』 『심리학 오디세이』 『싸이코 짱가의 영화 속 심리학』 『소심한 심리학자와 무심한 고양이』 등을 저술했고, 『시간의 심리학』 『인간, 그 속기 쉬운 동물』 등을 번역했다. 현재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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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계]정반합(正反合), 선순환 생태계를 위한 노력
진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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