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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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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방랑자 : ‘일’을 통해 삶의 보람을 확장하는 길

by 정여울 / 2017.03.09

‘일’을 통해 삶의 보람을 확장하는 길

 

“문득 아침에 일어나기 싫을 때가 있잖아. 그럴 때 갑자기 슬퍼져. 내가 아침에 일어나는 이유가 오직 출근하기 위해서인 것 같아서. 아침에 일어나는 이유가 하나쯤은 더 있었으면 좋겠어. 오직 일만을 위해서 깨어나고 먹고 자는 삶은 너무 쓸쓸하잖아.” 친구가 내게 들려준 이야기다. 그 친구는 그야말로 모든 일을 완벽하게 처리해내는 눈부신 슈퍼우먼처럼 보이곤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일’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일에서 느끼는 만족이야말로 그녀가 느끼는 자존감의 핵심처럼 보였다. 그런 친구가 마음속에 이런 아픔을 지니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어떨 때 보면 ‘일중독’이 아닐까 걱정스럽기도 했던 내 친구의 마음속에는 아니나 다를까 깊은 쓸쓸함이 배어 있었다. 정말 그렇다. 일은 인간의 삶에서 너무도 중요한 원동력이다. 하지만 일이 주는 즐거움만으로는 온전히 만족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기도 하다. 왜 우리는 일에 그토록 집착하면서도 일이 주는 기쁨에 완전히 만족할 수는 없는 것일까.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한 장면

▲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한 장면

 

첫째, 자신의 일을 온전히 사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원하는 삶’과 ‘해야만 하는 일’이 다를 때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는 일은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줄 뿐 아니라 ‘내가 누구인가’를 조금씩 알아나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하는지에 따라 그의 행동반경이나 인간관계가 바뀌고, 무엇보다도 생각의 범위와 패턴이 바뀌기 때문이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통해 ‘내가 누구인가’를 느끼고,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은 노동하는 인간의 소중한 권리이기도 하다. 그런데 일을 통해 진정한 만족과 보람을 느끼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오히려 생계 때문에 자신이 진심으로 좋아하지 않는 일을 억지로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많다.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하는 것은 바구니에 국물을 담는 것과 같다”는 이탈리아 격언처럼,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과 내가 지금 해야만 하는 일 사이의 거리감은 인간을 불행하게 만든다. 내가 하는 일에서 ‘나다움’을 찾지 못하면 삶의 질뿐 아니라 자존감까지 위협받게 된다.

 

둘째, 현대사회의 노동은 주로 기업과 자본을 중심으로 돌아가기에 개인의 행복은 항상 뒷전으로 밀리게 된다. 개인을 평가할 때 스펙과 성과만을 바라보는 문화, 기업의 이익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문화는 결국 일하는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외시킬 위험이 높다. 그 결과 우리는 집단적 ‘번아웃(burn-out)’ 상태에 빠져있다. 자신의 에너지가 모두 타버린 느낌,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릴 힘조차 남아있지 않은 느낌, 이 번아웃은 극소수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의 문제로 확대되어 가고 있다. 매스미디어의 발달과 과학기술의 진보로 개개인의 신분상승에 대한 욕구와 행복에 대한 갈망은 그 어느 때보다도 커졌는데 그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사회안전망은 너무도 빈약한 것이다. ‘자신이 갈망하는 삶’과 ‘실제로 누리고 있는 삶’ 사이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행복한 삶은 점점 요원한 것이 되어버린다.

 

셋째, 우리는 일에서 느끼는 행복과 일 이외의 삶에서 느끼는 행복을 균형 있게 추구하는 방법을 교육받지 못했다. 성공, 경쟁, 성취에 중독된 사회에서 사람들은 휴식, 여가, 취미마저도 ‘재충전의 기회’라는 식으로 받아들인다. 놀이와 휴식 자체를 즐기기보다는 ‘더 나은 일’ 또는 ‘더 많은 성취’를 위한 재충전의 기회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놀이마저도 일처럼 열심히, 경쟁적으로 참여하는 것도 이런 성과 중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이다. 여행도 짧은 시간 안에 더 많은 국가와 도시를 경쟁적으로 더 많이 돌아다녀야 할 것 같고, 취미도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것보다는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 대세나 유행을 따르는 것을 선택하곤 한다. 나아가 ‘더 많이, 더 높이, 더 빨리’라는 식의 심리적 채찍질에 익숙해진 현대인은 삶 그 자체로도 소중하고 눈부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소중하고 아름다운 순간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점점 잊어간다. 주어진 작은 행복의 가능성에 감사하는 마음, 놀라워하는 마음을 잃어버린 것이다.

 

초 일러스트

▲ 현대사회의 노동은 주로 기업과 자본을 중심으로 돌아가기에 개인의 행복은 항상 뒷전으로 밀리게 된다. 

그 결과 우리는 집단적 번아웃(burn-out) 상태에 빠져있다. ©Internet Archive Book Images

 

우리는 일 자체에서 느끼는 보람과 함께 일 외의 삶에서 느끼는 기쁨을 공존시키는 길을 찾아야 한다.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힘든 노동 끝의 휴식의 소중함을 “지극히 확실하고 순수한 기쁨 중 하나는 바로 노동 뒤의 휴식이다”라는 말로 역설한다. 힘겨운 노동 뒤에 찾아오는 휴식의 기쁨. 그 시간에는 부디 일 생각도, 타인의 시선도, 미래에 대한 걱정도 놓아버리자. 더 많이 걱정한다고 해서 더 지혜롭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기에. 노동에 지친 현대인들에게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시간에 절대적 자유에 빠져들며 느끼는 휴식도 필요하다. 휴식을 통해 마음의 안정을 얻은 다음에는, 좀 더 적극적인 감성과 이성의 자극이 필요하다. 나는 일에서 느끼는 보람보다 일 때문에 느끼는 피로가 더 커질 때마다 예술과 철학에서 안식을 찾으려 애쓴다.

 

밤에 불을 끄고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듣는 첼로 소나타의 아름다움. 큰 맘 먹고 좋아하는 화가의 화집을 하나 사서, 힘들고 지칠 때마다 그림을 한 장 한 장 넘겨보며 오래오래 바라보는 느낌의 소중함. 욕심내지 않고 하루에 한 챕터씩 천천히 니체의 책을 읽으며, 문장 하나하나가 화살이 되어 가슴팍에 꽂히는 듯한 아픔을 맛보는 일. 이런 자그마한 탐구의 몸짓이 나를 진정으로 살아있게 한다. 굳이 더 좋은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반드시 재충전을 하기 위해, 더 일을 잘 하기 위해 애쓰는 시간이 아니다. 그저 내 메마른 감성에 물을 주는 일이다. 일을 향해서만 작동되는 두뇌를, 예술과 철학을 이해하고 느끼는 데 씀으로써 두뇌를 평소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머리가 맑아지고 우울한 감정이 씻은 듯이 사라지곤 한다. 예술과 철학을 통해 적극적으로 뇌를 사용하여 느끼는 카타르시스는 두통약이나 수면제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내 마음을 치유한다.

 

또 하나의 길은 일 자체의 즐거움을 확장하는 것이다. 일을 맹목적으로 열심히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똑같은 일을 더욱 창조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을 다양하게 모색해보는 것이다. 내가 여행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작가라는 내 직업을 더욱 다채로운 방식으로 즐기기 위한 것이었다. 책이나 영화, 주변인들이나 일상의 경험에서 소재를 끌어오는 데 한계를 느낀 순간이었다. 나와 전혀 다른 사람들, 나와 상관없는 장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한 강력한 호기심이야말로 권태를 극복할 수 있는 열쇠였다. 평소와 다른 감성, 일상과 다른 감각을 활발하게 사용함으로써 나는 비로소 노동의 매너리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자신의 일에서 진정한 보람을 찾는 것은 인간의 어엿한 권리다.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더 많이, 더 깊이 사랑하자. 사랑할 수 없다면 과감하게 다른 일을 찾을 용기도 필요하다. 이미 사랑하고 있는 일이라면 일 자체를 창조적으로 즐길 수 있는 감수성을 길러보자. 노동과 놀이를 균형 있게 추구하는 것은 하루아침의 강한 의지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감성에도 훈련이 필요하다. 예술을 사랑할수록, 철학을 가까이 할수록, 우리가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은 커진다.

 

도로위에 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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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정여울
정여울
작가. 네이버 오디오클립 <월간 정여울> 진행자. 저서로 『내가 사랑한 유럽top10』,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월간 정여울』,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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