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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Tech : 당신은 당신의 뇌 전체다

박재용

2017-03-07

[3월의 테마]

과학기술 ScienTech


당신은 당신의 뇌 전체다

 

1

 

당신은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머리를 식힐 겸 인문360° 사이트에 들어와 이 글을 보고 있다. 하필 쉬려고 들어와서 보는 칼럼의 제목이 ‘일’이라며 투덜댈 수도 있겠다. 당신은 마우스를 클릭하거나 폰을 터치해서 이 글로 들어왔다. 그 과정은 온전히 당신이 알고 있는 일이다. 이 글을 다 읽고 나선, 칼럼의 말미에 쓰인 말에 잠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때에도 당신의 뇌 한 가운데 당신도 모르게 일을 하는 곳이 있다. ‘뇌간’이라고 부르는 영역이다. 대뇌의 아래, 연수와 간뇌 그리고 중간뇌로 이루어진 부분이다. 당신이 쉴 때도 당신의 몸은 생명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심장 근육은 이완과 수축을 반복하고, 갈비뼈와 가로막이 움직여 호흡을 해야 한다. 뼈 안에 있는 조혈세포는 혈구를 만들고, 신장은 피를 걸러 오줌을 만든다. 세포 내 미토콘드리아에선 세포호흡을 통해 체온을 유지하고, 간장은 유독성 물질을 걸러내며, 소장과 대장은 꿈틀운동을 통해 소화를 한다. 부신과 이자, 그리고 정소와 난소에선 호르몬을 분비한다. 이 모든 걸 적절히 조절하는 일을 연수와 간뇌가 한다. 그래서 잠을 잘 때도 편히 쉴 때도 이 뇌간은 멈출 줄 모른다. 이제 사망의 정의도 ‘심장 박동의 중지’에서 ‘뇌간의 활동 중지’로 바뀌었다. 대뇌가 멈추면 식물인간이지만 살아있는 것이고, 뇌간이 멈추면 영원히 죽는 것이다. 이를 뇌사라고 한다. 당신은 아마 당신의 대뇌일 것이다. 생각하고, 느끼고, 분노하고, 움직이는 모든 당신의 의지와 감정이 당신의 대뇌에 있다. 그래서 당신이 느끼는 정체성은 대뇌다. 그리고 그 일을 제대로 하라고 대뇌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알리지 않고 24시간 계속 일하는 뇌간이 있는 것이다. 뇌간이 하는 일의 핵심은 ‘유지’다. 당신이 별 탈 없이 일상을 살 수 있게끔, 혹은 당신이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일을 하게끔, 당신이 추운 겨울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을 들 때도 얼지 않게끔 하는 ‘당신 몸의 유지’가 뇌간이 하는 일이다.

 

뇌 모형

▲ © dierk schaefer

 

2

 

원래 세상이 그렇다. 놔두면 어질러진다. 흔히 말하듯 우주를 지배하는 엔트로피의 법칙이 그렇다. 우주는 무질서를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시간을 흘려보낸다. 아무도 손대지 않는 곳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확률적으로 어질러진다. 그러므로 당신이 집에서 나와 일을 하고 다시 집에 들어갔을 때 집이 그대로라면, 그건 누군가가 청소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침에 옷장을 열었을 때 입을 만한 옷이 언제나 정갈하게 걸려있으면 누군가가 세탁을 하고, 말리고, 정리를 했기 때문이다. 냉장고 홈바를 열었을 때 언제나 차가운 음료가 준비되어 있고, 냉장고를 열면 어느 때고 먹을 반찬이 제자리에 놓여있다면 누군가 음료를 홈바에 넣고, 반찬거리를 사서 다듬고, 조리하여 용기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 놓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상황은 누군가의 일로 유지된다. 그 누군가가 없으면, 집에는 먼지가 쌓이고, 옷은 세탁기 안에서 썩고, 냉장고 안의 음식은 줄어든다. 이때 누군가의 일은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유지하는 일이다.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작업이 아니다.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자기만족이 주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엄연히 이건 일이다. 우주의 법칙인 무질서로의 흐름을 역행하려면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다. 뇌간이 하는 일처럼 유지하는 것이 주된 임무인 일이 우리 사이에 있다.

 

3

 

이런 일을 ‘그림자 노동’이라고 한다. 꼭 필요한 일이나 그 대가를 충분히 받지 못하는 일이며, ‘일’로서 인정 받지 못하는 일이다. 가정에서의 그림자 노동은 역사의 대부분에 걸쳐 여자의 몫이었다. 아내가 중심에 있었고, 딸과 어머니가 대를 이어가며 했다. 어려서는 아버지와 오빠, 동생의 밥을 차리고 설거지를 했으며 커서는 남편의 밥을 차리고 집안 청소를 하고, 늙어서는 아들의 밥을 차리고 와이셔츠를 다리는 식이었다. 그 사이 남자는 ‘바깥 일’을 하고, 창조를 하고, 혁신을 한다고들 유세를 떤다. 세상을 움직이고, 사회에 헌신한다고 폼을 잡는다. 마치 남자가 그런 의미 있는 일을 하도록 뇌간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여자의 몫이라고 가르쳤고 지금도 일부 가르치려 한다. 그런데 이제 세상이 바뀌어 여자도 대뇌처럼 일을 해야 한다. 원래 당연히 그랬어야 하는 일이다. 이제 바로 잡힌 거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그림자 노동은 여성의 몫이다. 아이들 학교와 학원을 챙기는 것도, 집안 경조사를 챙기는 것도, 세탁이며 청소며 고된 집안 노동의 대부분은 여성의 몫이고 남성은 거들 뿐이다. 이중 노동은 당연히 힘들다. 더구나 이 사회는 정부와 사회, 그리고 기업의 몫이 되어야 할 일들조차 가정에 미루고 가정은 여자에게 미룬다. 사회와 기업조차 여성의 그림자 노동에 기대어 살아간다.

 

4

 

사람의 뇌는 영역이 나누어져 있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다. 나만 대뇌가 되고 다른 누구는 연수가 되고, 간뇌가 될 순 없다. 우리가 대뇌와 소뇌, 뇌간을 모두 가진 것처럼 우리의 노동도 모두를 같이 해야 한다. 그리고 원래 사회와 기업의 몫이었어야 할 일을 사회와 기업에 요구하라. 남자가 대뇌처럼 일하기만을 고집한다면 마침내 뇌간이 아님을 이미 깨닫고 여지껏 참고 있던 이들의 파업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당신은 당신의 대뇌가 아니라 뇌 전체다. 그래도 이 글을 다 읽으셨으면 눈을 감고 잠시 쉬시라. 스트레스가 풀리면 뇌간도 조금 여유가 생긴다. 그리고 집에 가서 해야 할 일을 생각하시라. 집에서도 할 일은 넘쳐난다.

 

점과 선의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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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박재용
박재용

(과학 커뮤니케이터)과학을 공부하고 쓰고 말한다.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 과학문화위원회 회원이다. 『나의 첫 번째 과학 공부』 『모든 진화는 공진화다』 『멸종 생명진화의 끝과 시작』 『짝짓기 생명진화의 은밀한 기원』 『경계 배제된 생명들의 작은 승리』 등을 썼다. '인문학을 위한 자연과학 강의' '생명진화의 다섯 가지 테마' '과학사 강의'의 강연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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