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들의 스타일은 참으로 다양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매우 작은 것에 이르기까지 치밀하게 계산하는 작가들이 있는 반면 즉흥적으로 얻은 발상이나 행동으로 기상천외한 무엇인가를 생성하고 이후 전 세계 미술의 흐름을 송두리째 바꾸어놓는다. 그런데 그 우연이라는 것과 필연이라는 것을 사이에 두고 논쟁하기에 앞서 어떤 우연함이 운명적인 것은 아니었는지를 고민하게 만들기도 한다. 우연을 가장한 치밀함이 되었든 즉흥적인 행운이 되었든, 이 우연함의 예술이 가져오는 필연적인 운명의 결과를 하나씩 짚어보자.
과거 예술에는 철저한 법칙과 깨부술 수 없는 관념이 존재했다. 오늘날에 와서야 예술이 자유의 상징으로 거듭났지만, 예전 예술가들은 지금 우리가 누리는 예술적 자유를 철저히 부정했거나 혹은 성취하기 위해 모든 것을 걸어야 했을 정도다. 이 단단한 껍질에 무자비한 망치질을 가한 사조가 바로 ‘다다이즘’이다. 기존 규칙과 체계를 부정할 경우 예술가에게 남는 방식은 오로지 우연적 사고와 행위뿐이다. 어린아이의 장난감 목마를 뜻하는 프랑스어를 취리히의 모임에서 한 예술가가 우연히 사전에서 발견하면서 생긴 단어 ‘다다이즘’은 그 생성의 동기가 우연적이기도 또 필연적이기도 하다. 우연하게 발견되어 합성된 단어 ‘다다이즘’은 이러한 우연의 산물을 예술로 승화하려는 예술가들의 태도를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시각적 예술에서 우연의 효과는 언제나 행위와 결부된다. 다다이즘의 창립 멤버였던 한스 아르프Hans Arp는 찢어놓은 종이조각을 공중에서 떨어뜨려 캔버스에 안착한 종이들을 그 자리에 그대로 붙였다. 바로 우연의 법칙이다. 이후 일상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쓰레기들이나 사물을 이용하는 기성 제품들을 이어붙이는 입체 콜라주 방식이 등장했다. 다다이즘의 대표작이기도 하며 20세기 미술뿐 아니라 현존하는 작가들에게도 엄청난 사고 반전의 힘을 느끼게 해준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샘>이 바로 그것이다. 대량생산되는 세라믹 변기를 단순하게 뒤 집어놓기만 한 이 작품은 예술작품의 짜인 기술이나 법칙을 무시한 채 전시되었고, 이 작품을 본 평론가들과 사람들은 분노하며 뒤샹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결국 도발을 위해 열린 전시회는 중간에 취소되고 말았다. 무엇 하나 특별할 것 없이 대량생산되는 남성용 변기 제품, 그러나 마르셀 뒤샹의 손에 걸린 그 똑같은 변기 제품의 가격은 환산이 불가능하며, 그 업적 또한 다른 변기들과는 다르다 못해 매우 특별하기까지 하여 현재 퐁피두 센터에 소중히 모셔져 있다. 이 작품은 작품성의 의미보다는 작가의 우연한 발상과 그 전환, 그리고 그것이 현대미술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현대의 수많은 작가가 뒤샹의 이 우연한 발견에 얼마나 감사의 마음을 표하는지를 생각해보게 한다.
여기 우연의 효과를 통해 명성을 얻은 작가이자 현대 작가들에게 어마어마한 영감을 주는 작가를 한 명 더 만나보자. 20세기 모더니즘의 상징이자 액션 페인팅 화가, ‘우연’이라는 단어에 가장 먼저 연상되는 이름, 바로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이다.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던 폴록은 수직으로 세운 이젤 위의 캔버스를 바닥에 내려놓고는 물감을 들이부었다. 물감을 머금은 그의 붓들은 바닥에 눕힌 캔버스 위의 허공을 떠다니며 물감을 뿌려댄다. 서부 인디언이 땅에 모래를 뿌려 그리는 그림에 영향을 받은 그의 작품들은 처음 출현했던 당시 많은 평론가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1950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그의 작품이 처음 소개되었을 당시 『타임』의 기자는 그의 작품을 보고 “혼돈. 조화의 결여. 구조적 조직화의 전적인 결여. 기법의 완벽한 부재. 그리고 또다시 혼돈”이라며 혹평했다. 그러나 폴록은 자신의 작품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며 언뜻 보았을 때 물감을 아무렇게나 흘려대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사실 매 작업의 순간은 영감과 비전이 따르는 직관적 결정으로 탄생한 것들이라고 반박했다. 물감이 사방을 튀는 혼돈의 상태를 포착한 그의 거대한 작품들은 작가가 작업할 당시를 생생하게 말해주는 듯하다. 엄청난 욕구와 열망, 몸부림, 또 수많은 감정들이 한데 어우러진 그의 작품들은 그야말로 작가의 내면 그 자체다.
지상에 현존했던 사진작가 중 우연과 즉흥을 가장 잘 포착한 사진작가가 있다. 그의 뷰파인더 안에 우연히 들어간 피사체들은 거역할 수 없는 필연으로 영생한다. 자크 앙리 라르티그Jacques Henri Lartigue는 취미 사진작가였다. 그러나 우연히 그의 사진들을 본 뉴욕 현대미술관의 큐레이터가 그의 사진을 전시하면서 그는 노년에 일약 스타 사진작가가 되었다. 그는 8살 때 아버지가 사준 나무상자 사진기를 가지고 활기 넘치는 가족의 모습과 주변 사람들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그의 사진 속 사람들과 사물들은 아슬아슬한 찰나에 포착된 모습들을 하고 있다. 물에 빠지기 직전 공중에 떠 있는 강아지, 자전거에서 넘어지는 중인 소녀, 땅 위에 떨어지기 직전인 공, 테니스 공을 치기 위해 공중에 뜬 사람 등 그는 사진 속에 행복한 찰나의 순간들을 담았다. 그의 역동적이고 절묘한 순간 포착은 사진을 예술이자 어마어마한 기록의 힘을 가진 장르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그의 사진들은 의도하지 않은 우연의 상황, 그리고 그러한 절대적인 상황들을 포착한 작가의 필연으로 어우러진 작품들이다.
세계적인 뇌 과학자 디크 스왑Dick Swaab은 우리가 행하고 느끼는 모든 것은 우연이 아닌 뇌의 필연적인 역할들로 탄생한다고 그의 책 『우리는 우리 뇌다』에서 밝혔다. 우리가 우연이라고 느끼는 모든 것이 사실은 지극히 필연으로 찾아 온 것들이며 또 우리가 필연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것이 우연으로 생성된 것들이다. 우연과 필연이 복잡하게 얽힌 세상, 예술가들은 이러한 세상의 다양한 상들을 작품에 담는다. 그리고 그 작품들은 무엇이 우연이고 또 무엇이 필연인지를 가늠하기보다 인간의 사고와 행위 자체에 집중하게 만든다. 삶 자체가 이 두 가지의 상반되지만 하나의 신체를 가진 듯한 개념으로 이루어진 것이고, 그들을 정확하게 파헤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결국 우리는 우연과 필연이라는 수많은 상황을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수밖에.
유럽과 한국을 오가며 단행본 기획과 전시기획,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했다. 현재 책에 관한 잡지 『책, Chaeg』의 발행인이자 편집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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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 뭐라고 : 예술은 우연과 필연의 절묘한 결합
지은경
2016-12-28
예술은 우연과 필연의 절묘한 결합
예술가들의 스타일은 참으로 다양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매우 작은 것에 이르기까지 치밀하게 계산하는 작가들이 있는 반면 즉흥적으로 얻은 발상이나 행동으로 기상천외한 무엇인가를 생성하고 이후 전 세계 미술의 흐름을 송두리째 바꾸어놓는다. 그런데 그 우연이라는 것과 필연이라는 것을 사이에 두고 논쟁하기에 앞서 어떤 우연함이 운명적인 것은 아니었는지를 고민하게 만들기도 한다. 우연을 가장한 치밀함이 되었든 즉흥적인 행운이 되었든, 이 우연함의 예술이 가져오는 필연적인 운명의 결과를 하나씩 짚어보자.
과거 예술에는 철저한 법칙과 깨부술 수 없는 관념이 존재했다. 오늘날에 와서야 예술이 자유의 상징으로 거듭났지만, 예전 예술가들은 지금 우리가 누리는 예술적 자유를 철저히 부정했거나 혹은 성취하기 위해 모든 것을 걸어야 했을 정도다. 이 단단한 껍질에 무자비한 망치질을 가한 사조가 바로 ‘다다이즘’이다. 기존 규칙과 체계를 부정할 경우 예술가에게 남는 방식은 오로지 우연적 사고와 행위뿐이다. 어린아이의 장난감 목마를 뜻하는 프랑스어를 취리히의 모임에서 한 예술가가 우연히 사전에서 발견하면서 생긴 단어 ‘다다이즘’은 그 생성의 동기가 우연적이기도 또 필연적이기도 하다. 우연하게 발견되어 합성된 단어 ‘다다이즘’은 이러한 우연의 산물을 예술로 승화하려는 예술가들의 태도를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시각적 예술에서 우연의 효과는 언제나 행위와 결부된다. 다다이즘의 창립 멤버였던 한스 아르프Hans Arp는 찢어놓은 종이조각을 공중에서 떨어뜨려 캔버스에 안착한 종이들을 그 자리에 그대로 붙였다. 바로 우연의 법칙이다. 이후 일상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쓰레기들이나 사물을 이용하는 기성 제품들을 이어붙이는 입체 콜라주 방식이 등장했다. 다다이즘의 대표작이기도 하며 20세기 미술뿐 아니라 현존하는 작가들에게도 엄청난 사고 반전의 힘을 느끼게 해준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샘>이 바로 그것이다. 대량생산되는 세라믹 변기를 단순하게 뒤 집어놓기만 한 이 작품은 예술작품의 짜인 기술이나 법칙을 무시한 채 전시되었고, 이 작품을 본 평론가들과 사람들은 분노하며 뒤샹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결국 도발을 위해 열린 전시회는 중간에 취소되고 말았다. 무엇 하나 특별할 것 없이 대량생산되는 남성용 변기 제품, 그러나 마르셀 뒤샹의 손에 걸린 그 똑같은 변기 제품의 가격은 환산이 불가능하며, 그 업적 또한 다른 변기들과는 다르다 못해 매우 특별하기까지 하여 현재 퐁피두 센터에 소중히 모셔져 있다. 이 작품은 작품성의 의미보다는 작가의 우연한 발상과 그 전환, 그리고 그것이 현대미술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현대의 수많은 작가가 뒤샹의 이 우연한 발견에 얼마나 감사의 마음을 표하는지를 생각해보게 한다.
여기 우연의 효과를 통해 명성을 얻은 작가이자 현대 작가들에게 어마어마한 영감을 주는 작가를 한 명 더 만나보자. 20세기 모더니즘의 상징이자 액션 페인팅 화가, ‘우연’이라는 단어에 가장 먼저 연상되는 이름, 바로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이다.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던 폴록은 수직으로 세운 이젤 위의 캔버스를 바닥에 내려놓고는 물감을 들이부었다. 물감을 머금은 그의 붓들은 바닥에 눕힌 캔버스 위의 허공을 떠다니며 물감을 뿌려댄다. 서부 인디언이 땅에 모래를 뿌려 그리는 그림에 영향을 받은 그의 작품들은 처음 출현했던 당시 많은 평론가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1950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그의 작품이 처음 소개되었을 당시 『타임』의 기자는 그의 작품을 보고 “혼돈. 조화의 결여. 구조적 조직화의 전적인 결여. 기법의 완벽한 부재. 그리고 또다시 혼돈”이라며 혹평했다. 그러나 폴록은 자신의 작품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며 언뜻 보았을 때 물감을 아무렇게나 흘려대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사실 매 작업의 순간은 영감과 비전이 따르는 직관적 결정으로 탄생한 것들이라고 반박했다. 물감이 사방을 튀는 혼돈의 상태를 포착한 그의 거대한 작품들은 작가가 작업할 당시를 생생하게 말해주는 듯하다. 엄청난 욕구와 열망, 몸부림, 또 수많은 감정들이 한데 어우러진 그의 작품들은 그야말로 작가의 내면 그 자체다.
지상에 현존했던 사진작가 중 우연과 즉흥을 가장 잘 포착한 사진작가가 있다. 그의 뷰파인더 안에 우연히 들어간 피사체들은 거역할 수 없는 필연으로 영생한다. 자크 앙리 라르티그Jacques Henri Lartigue는 취미 사진작가였다. 그러나 우연히 그의 사진들을 본 뉴욕 현대미술관의 큐레이터가 그의 사진을 전시하면서 그는 노년에 일약 스타 사진작가가 되었다. 그는 8살 때 아버지가 사준 나무상자 사진기를 가지고 활기 넘치는 가족의 모습과 주변 사람들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그의 사진 속 사람들과 사물들은 아슬아슬한 찰나에 포착된 모습들을 하고 있다. 물에 빠지기 직전 공중에 떠 있는 강아지, 자전거에서 넘어지는 중인 소녀, 땅 위에 떨어지기 직전인 공, 테니스 공을 치기 위해 공중에 뜬 사람 등 그는 사진 속에 행복한 찰나의 순간들을 담았다. 그의 역동적이고 절묘한 순간 포착은 사진을 예술이자 어마어마한 기록의 힘을 가진 장르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그의 사진들은 의도하지 않은 우연의 상황, 그리고 그러한 절대적인 상황들을 포착한 작가의 필연으로 어우러진 작품들이다.
세계적인 뇌 과학자 디크 스왑Dick Swaab은 우리가 행하고 느끼는 모든 것은 우연이 아닌 뇌의 필연적인 역할들로 탄생한다고 그의 책 『우리는 우리 뇌다』에서 밝혔다. 우리가 우연이라고 느끼는 모든 것이 사실은 지극히 필연으로 찾아 온 것들이며 또 우리가 필연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것이 우연으로 생성된 것들이다. 우연과 필연이 복잡하게 얽힌 세상, 예술가들은 이러한 세상의 다양한 상들을 작품에 담는다. 그리고 그 작품들은 무엇이 우연이고 또 무엇이 필연인지를 가늠하기보다 인간의 사고와 행위 자체에 집중하게 만든다. 삶 자체가 이 두 가지의 상반되지만 하나의 신체를 가진 듯한 개념으로 이루어진 것이고, 그들을 정확하게 파헤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결국 우리는 우연과 필연이라는 수많은 상황을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수밖에.
유럽과 한국을 오가며 단행본 기획과 전시기획,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했다. 현재 책에 관한 잡지 『책, Chaeg』의 발행인이자 편집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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