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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문文紋 : 노인과 바다 그리고 우리의 바다

서효인

2016-12-01

노인과 바다 그리고 우리의 바다


헤밍웨이의 대표작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은 사실 그리 늙은 나이가 아닐지도 모른다. 주인공 산티아고는 홀로 배를 몰면서 수십 킬로미터에 육박하는 청새치와 사투를 벌일 뿐만 아니라 그의 고기를 노리는 상어 다섯 마리를 죽인다. (액션 영화가 아니다!) 작품 발표할 당시 미국의 평단에서는 주인공의 나이와 완력의 비대칭에 대해 헤밍웨이 특유의 사실주의에 흠집이 났다는 비판이 있었다. 물론 작품이 보여주는 생의 의지, 새로운 관점에서의 생태주의, 차원이 높은 은유 앞에서 이 같은 비판은 다소 사소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고전 작품 특유의 아우라는 작품의 ‘노인’을 일반적인 노년과 달라 보이게 한다. 산티아고처럼 늙어도 좋겠다는 생각 혹은 결심. 그것은 당연히 그의 완력이나 체력에 대한 부러움은 아닐 것이다.
『노인과 바다』는 헤밍웨이가 50대에 접어들 무렵에 출간된 작품으로, 안타깝게도 그의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다. (그는 1961년 자살로 생을 마무리한다.) 나이와 상관없이 생의 주기를 대입한다면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는 헤밍웨이의 인생 주기에서 가장 노년의 작품일 것이다. 그는 청년 시절의 작품(초기작)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무기여 잘 있거라』, 『유산자와 무산자』에서는 전체주의에 저항하고 괴로워하는 개인주의적 서사를, 중년 시절의 작품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는 전쟁과 폭력을 극복하는 공동체적 연대를 그린다. 그리고 노년에 이르러서야 『노인과 바다』라는 작품으로 인간과 자연과의 연대, 인간과 삶에 대한 진중한 상징에까지 나아간다. 그것은 노인 화자에 의해 가능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누구나 늙는다. 늙음에는 차별이 없다. 줄기세포 치료를 받고 태반주사를 맞는다 해도 노년은 반드시 찾아온다.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는 헤밍웨이처럼 생물학적인 노년이 되기 전에 죽음을 택하거나, 나는 노년이 아니라고 우겨대는 수밖에 없다. 둘 다 자연스럽지 못한 일이며 동시에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우리는 노년으로 살아야 할 날을 아주 많이 받아놓은 모범수와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직장에서의 은퇴 시기는 앞당겨졌는데, 평균 수명은 급격히 늘어났다. 자본주의의 발달은 빠른 은퇴를 부르고 의학의 발달은 늦은 죽음을 기대하게 한다. 남은 것은 무엇인가, 무력하게 늙어가는 것뿐이다. 운이 아주 좋으면 건물을 갖고 있을 것이고, 운이 조금 있으면 연금 생활을 할 것이며, 운이 없는 대부분은 별다른 대책이 없을 것이다. 그들 모두에게 노년은 잔인한 공명정대함으로 찾아온다.

 

노년은 보통 정치나 생활에서 일정한 보수성을 띠게 마련이다. 그들은 자신이 살아온 역사와 환경에 대한 일정한 믿음이 있다. 그 믿음을 자꾸만 배반하는 한국 사회에 관해서라면 더 긴 지면이 필요할 테지만, 다행히도 『노인과 바다』의 산티아고의 믿음은 크게 배반당하지 않는다. 그에게 환경은 거대한 바다고, 그에게 사회는 작은 어촌 마을이다. 그는 84일간 물고기를 낚지 못하지만, 바다에 대한 믿음은 늘 굳건하다. 마을의 젊은 어부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부표를 사용하지도 않고, 모터보트는 더더욱 그의 스타일이 아니다. 그는 보수적이다. 전통적인 낚시를 하며(잡히든 말든), 신문으로 야구 경기 결과를 확인하며(이기든 지든), 절대 남에게 돈을 빌리지 않는다(굶든 말든).

 

그는 자기 원칙이 있고, 그것은 바다와 그가 낚은 ‘고기’를 대할 때 가장 잘 드러난다. 그에게 바다는 생명의 원천이다. 예를 들어 “노인은 늘 바다를 여성으로 생각했으며, 큰 은혜를 베풀어 주기도 하고 빼앗기도 하는 무엇이라고 말했다. 설령 바다가 무섭게 굴거나 재앙을 끼치는 일이 있어도 그것은 바다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려니 생각했다”라는 노인에 대한 설명은 여성을 생각하는 그의 보수성을 드러내지만, 그보다는 자연에 순응하며 거기에 결을 맞춰 살아가려는 노년을 떠올리기에 적합하다. 그는 그와 사투를 벌인 청새치에게도 경의를 나타내며, 청새치의 몸통을 모두 빼앗아간 상어들에게까지도 일정한 동의를 표한다. 그리고 어쩔 수 없다는 듯 중얼거린다. 차라리 이게 다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우리 사회에서 노년의 보수성은 많은 경우 폭력과 가난으로 상징된다. 대중교통에서, 광장에서, 골목에서 혹은 가정에서 노인은 더 이상 존경받는 존재가 아니다. 전철 자리를 두고 심통을 부리는 노인, 이해될 수 없는 정치적 신념으로 무장한 노인, 박스를 수거하고 공공근로를 다니는 노인…. 은근히 드러나는 노인 혐오의 정서 또한 여기에 바탕 했을 것이다. 우리 곁의 노인은 어째서 바다에 나가지 않는가. 존경받기 전에, 왜 존경하지를 못하는가. 그들의 노년과 산티아고의 그것은 다르다. 우리는 믿을 만한 바다가 없고, 지켜야 할 마을이 없다. 한국 사회는 짧은 기간 급격한 변화를 수차례 맞이했고, 그 한복판에서 지금의 노인은 시대의 배반을 수차례 맛보았을 것이다. 그것은 84일간 고기를 잡지 못한 산티아고와는 다른 좌절일 것이다. 우리가 그들의 좌절을 이해할 수 있을까, 혹은 우리는 좌절이 없는 노년을 보낼 수 있을까? 멕시코만의 난류는 산티아고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시절부터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그대로인 것이 없고, 계속 바뀌고 있는데, 그 방향성에 대한 의심이 자욱하다. 모두가 믿을 수 있는 원칙, 모두에게 공정한 사회. 그것이 노인의 바다였을 것이다. 그 바다로부터 생겨난 것은 모두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 우리에게 없는 것은 존경받는 노년이기 전에, 존중할 바다인 것이 아닐까. 산티아고는 사자 꿈을 꾼다. 우리의 노년도 꿈을 꿀 것이다. 그것이 함께 꿀 수 있는 바다와 같은 꿈이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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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서효인
서효인

시인, 에세이스트, 출판편집자. 2006년 <시인세계>로 등단했으며 2011년에는 제30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시집 『소년 파르티잔 행동 지침』 『백 년 동안의 세계대전』 『여수』, 산문집 『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 『잘 왔어 우리 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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