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만약 제가 다니는 출판사에서 피해자의 책을 낸 다음 곧바로 가해자의 책을 내겠다고 했으면 출판사 입구에서 시위를 했을 것입니다. 동시에 스티븐 킹의 말대로 자기변호를 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고 독자들이 스스로 그 속에 드러난 논리들의 허점을 찾는 것 역시 필요한 과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
책
편집자로 출판계에 진입하여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보니 현장에 있는 분들과 자주 출판계의 이슈에 대해 이야기하곤 합니다. 가끔 이런 토로를 들을 때가 있습니다.
“그 책은 정말 나오지 말았어야 하는 책이야.”
“그 출판사는 부끄럽지도 않나, 그런 책을 내고.”
해마다 토론이 벌어지는 대상은 범죄자들의 책, 혹은 존재 자체가 범죄의 영역에 가닿아있는 책들입니다. 실형을 살고 있거나 살고 나온 범죄자들도 얼마든지 책을 내곤 하니까요. 국내에서 현재 영업 중인 출판사는 3,500여 군데가 있고 등록된 곳의 숫자는 더 많을 것이며 직접 차리는 것도 진입 장벽이 없으니 앞으로도 비슷한 일들은 벌어질 겁니다. 더하여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가 담긴 책이나 건강과 안전에 위협이 될 만큼 비과학적인 내용이 담긴 책, 사이비 종교 책, 2차 가해를 하는 책도 출판계나 독자의 우려를 자아내곤 합니다.
우디앨런 회고록 논란 (이미지 출처: The New York Times)
작년에 미국에서도 우디 앨런의 회고록을 출판하기로 했던 아셰트 출판사의 직원들이 회사의 결정에 반기를 들어 시위를 한다는 뉴스를 보고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아셰트 출판사에서 나오는 것은 무산되었는데, 그 후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의 한 사람인 스티븐 킹이 어떤 책이든 아예 나오지 못하는 것은 미국적인 일도, 민주주의 국가적인 일도 아니며, 나오고 나서 결과를 감당하게 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글을 쓴 것을 읽었습니다. 결국 책은 아셰트 출판사가 아닌 아케이드 출판사라는 곳을 통해 나왔고 출판사의 입장은 표현의 자유를 지지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만약 제가 다니는 출판사에서 피해자의 책을 낸 다음 곧바로 가해자의 책을 내겠다고 했으면 출판사 입구에서 시위를 했을 것입니다. 동시에 스티븐 킹의 말대로 자기변호를 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고 (독자들이 스스로) 그 속에 드러난 논리들의 허점을 찾는 것 역시 필요한 과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우디 앨런의 책은 비난과 혹평을 마주했고, 동시에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해서 고민을 증폭시켰습니다.
얼마 전에는 드라마들이 ‘역사 왜곡’ 등 여러 논란에 휩싸여 한 작품은 2회 만에 종영되고 한 작품은 수정에 들어갔습니다. 관련된 논의들은 아주 정교한 논의도 있었고 감정이 격앙된 나머지 욕설과 비방으로 흐르기도 했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해가 되리라고, 장기적으로 공동체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예상되는 콘텐츠들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요? 매체의 영향력이 점점 더 강해지는 나날 속에, 표현의 자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이달의 질문] “문제적인 출판물과 영상물 공개 여부, 누가 어떻게 결정하는 게 옳을까?” / 질문자 - 정세랑(소설가)
Q. 표정훈 선생님께 묻습니다.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 건강과 안전에 위협이 될 만큼 비과학적인 내용이 담긴 그리고 사이비 종교를 다루고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하는 등 존재 자체가 범죄의 영역에 가닿아 있는 책과 영상물 들은 어떤 경우에 공개되거나, 공개되지 않는 게 맞을까요? 그리고 그 공개 여부는 누가 어떻게 결정하는 게 옳을까요?
12월 [이달의 질문] 문제적인 출판물과 영상물 공개 여부, 누가 어떻게 결정하는 게 옳을까?
소설가
1984년 서울 출생. 2010년 『판타스틱』에 「드림, 드림, 드림」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13년 『이만큼 가까이』로 창비장편소설상을, 2017년 『피프티 피플』로 한국일보문학상을 받았다. 소설집 『옥상에서 만나요』, 『목소리를 드릴게요』, 장편소설 『덧니가 보고 싶어』, 『지구에서 한아뿐』, 『재인, 재욱, 재훈』, 『보건교사 안은영』, 『시선으로부터,』 산문집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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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적인 출판물과 영상물 공개 여부, 누가 어떻게 결정하는 게 옳을까?
- 이달의 질문 -
정세랑
2021-12-01
저도 만약 제가 다니는 출판사에서 피해자의 책을 낸 다음 곧바로 가해자의 책을 내겠다고 했으면 출판사 입구에서 시위를 했을 것입니다. 동시에 스티븐 킹의 말대로 자기변호를 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고 독자들이 스스로 그 속에 드러난 논리들의 허점을 찾는 것 역시 필요한 과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
책
편집자로 출판계에 진입하여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보니 현장에 있는 분들과 자주 출판계의 이슈에 대해 이야기하곤 합니다. 가끔 이런 토로를 들을 때가 있습니다.
“그 책은 정말 나오지 말았어야 하는 책이야.”
“그 출판사는 부끄럽지도 않나, 그런 책을 내고.”
해마다 토론이 벌어지는 대상은 범죄자들의 책, 혹은 존재 자체가 범죄의 영역에 가닿아있는 책들입니다. 실형을 살고 있거나 살고 나온 범죄자들도 얼마든지 책을 내곤 하니까요. 국내에서 현재 영업 중인 출판사는 3,500여 군데가 있고 등록된 곳의 숫자는 더 많을 것이며 직접 차리는 것도 진입 장벽이 없으니 앞으로도 비슷한 일들은 벌어질 겁니다. 더하여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가 담긴 책이나 건강과 안전에 위협이 될 만큼 비과학적인 내용이 담긴 책, 사이비 종교 책, 2차 가해를 하는 책도 출판계나 독자의 우려를 자아내곤 합니다.
우디앨런 회고록 논란 (이미지 출처: The New York Times)
작년에 미국에서도 우디 앨런의 회고록을 출판하기로 했던 아셰트 출판사의 직원들이 회사의 결정에 반기를 들어 시위를 한다는 뉴스를 보고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아셰트 출판사에서 나오는 것은 무산되었는데, 그 후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의 한 사람인 스티븐 킹이 어떤 책이든 아예 나오지 못하는 것은 미국적인 일도, 민주주의 국가적인 일도 아니며, 나오고 나서 결과를 감당하게 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글을 쓴 것을 읽었습니다. 결국 책은 아셰트 출판사가 아닌 아케이드 출판사라는 곳을 통해 나왔고 출판사의 입장은 표현의 자유를 지지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만약 제가 다니는 출판사에서 피해자의 책을 낸 다음 곧바로 가해자의 책을 내겠다고 했으면 출판사 입구에서 시위를 했을 것입니다. 동시에 스티븐 킹의 말대로 자기변호를 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고 (독자들이 스스로) 그 속에 드러난 논리들의 허점을 찾는 것 역시 필요한 과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우디 앨런의 책은 비난과 혹평을 마주했고, 동시에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해서 고민을 증폭시켰습니다.
얼마 전에는 드라마들이 ‘역사 왜곡’ 등 여러 논란에 휩싸여 한 작품은 2회 만에 종영되고 한 작품은 수정에 들어갔습니다. 관련된 논의들은 아주 정교한 논의도 있었고 감정이 격앙된 나머지 욕설과 비방으로 흐르기도 했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해가 되리라고, 장기적으로 공동체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예상되는 콘텐츠들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요? 매체의 영향력이 점점 더 강해지는 나날 속에, 표현의 자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이달의 질문] “문제적인 출판물과 영상물 공개 여부, 누가 어떻게 결정하는 게 옳을까?” / 질문자 - 정세랑(소설가)
Q. 표정훈 선생님께 묻습니다.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 건강과 안전에 위협이 될 만큼 비과학적인 내용이 담긴 그리고 사이비 종교를 다루고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하는 등 존재 자체가 범죄의 영역에 가닿아 있는 책과 영상물 들은 어떤 경우에 공개되거나, 공개되지 않는 게 맞을까요? 그리고 그 공개 여부는 누가 어떻게 결정하는 게 옳을까요?
12월 [이달의 질문] 문제적인 출판물과 영상물 공개 여부, 누가 어떻게 결정하는 게 옳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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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1984년 서울 출생. 2010년 『판타스틱』에 「드림, 드림, 드림」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13년 『이만큼 가까이』로 창비장편소설상을, 2017년 『피프티 피플』로 한국일보문학상을 받았다. 소설집 『옥상에서 만나요』, 『목소리를 드릴게요』, 장편소설 『덧니가 보고 싶어』, 『지구에서 한아뿐』, 『재인, 재욱, 재훈』, 『보건교사 안은영』, 『시선으로부터,』 산문집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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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문제적인 출판물과 영상물 공개 여부, 누가 어떻게 결정하는 게 옳을까?'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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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자유와 안전한 통제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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