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다시 단순해지지 않는 이상, 시민들이 법률해석방법에 통달하지 않는 이상 법은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법령 용어 순화 작업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중략) 시민들을 대상으로 법교육을 강화하는 것도 법률가 자격을 부여해도 될 정도로 강도 높은 교육을 실시하지 않는 이상 한계가 있을 수밖에......
갈수록 복잡해져가는 인간의 행동들
많은 사람들이 ‘법이 어렵다’고 말한다. 흔히 얘기되는 이 말에는 사실 엄청난 의미가 숨어 있다. 법이 왜 어려운지, 그리고 꼭 그렇게 어려워야 하는지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법에 대한 많은 것을 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먼저 법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사정부터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법은 인간의 행동을 규율하기 위한 목적으로 고안되었다. 예컨대, 형법은 감옥에 보내거나 벌금을 물려야 하는 나쁜 행위가 무엇인지를 규정한다. 법사회학자 루만(Niklas Luhmann)은 법이 합법-불법이라는 이항코드로 기능한다고 말하다. 그러니까 세상의 모든 인간의 행위는 형법에 의해 처벌받아야 하는 행위와 그렇지 않은 행위로 양분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행위를 합법과 불법으로 나누어 규율한 것은 고대사회에서부터 있었던 일이지만, 오늘날 인간 행위의 종류는 그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해졌다.
▲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유명한 문구가 새겨진 함무라비 법전 비석(이미지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예를 들어, 재산에 관련된 범죄의 경우 예전에는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절도), 강제로 빼앗거나(강도), 거짓말로 속여서 이득을 취한(사기) 정도가 전부였다. 오늘날에는 조세피난, 외화유출, 국제무역사기, 회계부정, 전자상거래 사기, 보이스피싱, 증권범죄, 불법다단계판매, 전환사채(CB)나 신주인수권수부사채(BW)를 이용한 불법행위 등 셀 수 없이 복잡하고 다양한 경제범죄들이 있으며, 지금도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복잡한 행위들을 법에 모두 규정해야 한다면 당연히 법이 복잡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정의’보다 ‘법적 안정성’을 중시하는 법률가들
규율해야 할 불법적 행위들이 많다고 해서 구체적 행위 유형을 남김없이 법에 담을 수는 없다. 그래서 법은 추상적인 개념어를 자주 활용한다. 최근에는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좀 더 구체적인 조문들이 빈번하게 활용되기도 하지만, 법은 여전히 추상적이다. 그 추상 수위가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에 대한 정답은 없다. 다만 수범자◆인 시민들이 그 법을 보고 자신의 행위가 불법이 될 것인지 아닌지를 예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법적 판단을 예상하여 자신의 행동 방향을 결정할 수 있고 안정되고 자유로운 삶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 수범자 기본권을 보장해줘야 하기도 하고 법을 지켜야 하는 존재. 편집자주
실제로 법률가들에게 이러한 법에 대한 예측가능성은 무척 중요하다. 심지어, 법에 옳은 내용을 담는 것보다, 법이 일관성 있고 예측가능하게 작동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법철학에서 가장 고전적인 논쟁은 ‘정의’와 ‘법적 안정성’의 대립이다. 다양한 입장이 있지만 어떠한 입장에서도 법적 안정성을 경시하지는 않는다. 확실한 것은 일반 시민들이나 정치, 도덕을 다루는 다른 학자들에 비해 법률가와 법학자는 법적 안정성에 좀 더 무게를 둔다는 것이다. 법률가들이 시민들이 생각하는 상식과 괴리된 결론을 내놓아 비난받는 경우가 자주 있는데, 바로 이 법적 안정성에 가치를 두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법률가들은 당해 사안에서 정의가 다소 희생되더라고 일관성 있고 안정된 법적용을 더 선호하곤 한다. 법이 안정적으로 기능하고 예측가능성을 제공하는 것이야말로 법의 가장 중요한 사회적 기능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수천 개 조문 열거 어려워, 법의 불가피한 추상성
▲ 일상속에서 자주 접하는 다양한 금지 표시(이미지 출처 : pixabay)
그렇다면 법이 어느 정도로 추상적일 때 안정적인 법질서가 구축될 수 있을까? 일단 아주 구체적이고 세세하게 불법에 해당하는 행위를 나열하는 방법을 생각해 보자. 예를 들어, 수업 시간에 금지되는 행위를 규정한다고 하면, 1) 햄버거를 먹는 행위, 2) 스피커로 음악을 크게 틀어 놓는 행위, 3) 교실 내를 돌아다니는 행위, 4) 동물을 데리고 들어오는 행위 등 금지되는 행위 유형을 모두 나열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나열하다 보면 한도 끝도 없다. 모든 유형의 행위를 규정하다 보면 법조문의 숫자가 무한정으로 늘어날 것이고 학생들 입장에서는 오히려 ‘무엇이 금지되는 행위’인지 알기가 더 어려워진다. 구체적으로 나열할수록 탄력성이 떨어져 새로운 행위 유형에 대처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햄버거를 먹는 행위, 짜장면을 먹는 행위를 금지하면, 소시지 빵이나 라면을 먹는 경우가 문제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음식물의 이름을 나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교실에서 학생들이 규칙을 지키기 위해 수백, 수천 개의 조문을 모두 숙지해야 한다는 것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법에서는 좀 더 추상적인 조문화를 지향한다. 이때 추상 수위를 잘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컨대, “수업 시간에 해서는 안 되는 행위는 금지한다”라고 정한다면 너무 추상적이고, “다른 학생이 수업을 듣는 것을 방해하는 행위를 금지한다”라는 정도면 적절해 보인다. 대부분의 법률 조문은 이 정도 수준에서 추상화되어 있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 정도의 법이면 시민들이 안정된 법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다.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하는 행위는 점점 다양화해질 것이고 해석의 여지가 생긴다. 스피커로 음악을 크게 틀어 놓는 것이 ‘수업 방해’에 해당한다는 점은 자명하지만, 이어폰 소리가 새어 나가 옆 학생에게도 소리가 살짝 들리는 정도라면 어떨까? 작년 수능시험에서처럼 샤프심을 앞으로 뺄 때 나는 소리도 수업을 방해하는 것에 해당할까? 햄버거나 짜장면이 냄새 때문에 다른 학생에게 영향을 준다면, 십전대보차나 쌍화차의 진한 향기를 풍기는 것은 어떠한가?
법은 결국 해석의 문제, 전문가 도움 받아야
결국 법은 어느 정도 추상적으로 정해놓을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해석’의 여지가 생기는 것은 불가피하다. 여기에 사람들이 법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있다. 추상적인 조문들로 가득한 법을 보며 막연히 어렵다는 생각이 들고, 심지어 자신의 상식적 해석과 다른 해석을 내놓으며 준엄하게 시민들의 법적 무지를 꾸짖는 법률가들에 대해 거부감이 생길 때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법률가들은 법률해석방법이라는 것을 배운다. 법학교육에서 다루는 것, 변호사시험에서 테스트하는 것이 바로 이 법률해석방법이다. 이 방법을 공부하고 나면 해석의 다양성으로 인해 초래되는 문제의 여지는 상당 부분 줄어든다. 예를 들어, 일반 시민들이 “사람을 기망하여 재산상의 이득을 취하는 행위”(사기죄)라는 조문을 놓고 어떤 행위가 사기인지 가늠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지만, 법률해석방법을 배운 법률가들 사이에서는 무엇이 사기인지를 놓고 상당 부분 의견이 일치한다. 실제로 만약 법률가의 도움을 충분히 받는다면 ‘법의 어려움’은 상당 부분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행위가 불법인지 여부를 미리 법률가에게 물어보고 행동의 방향을 정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법률가의 도움을 받는 것은 법의 어려움을 해소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시민과 법률가의 관계가 중요하다
▲ 2019년 법제처 업무계획 발표 현장(이미지 출처 : 법률방송)
결국 세상이 다시 단순해지지 않는 이상, 시민들이 법률해석방법에 통달하지 않는 이상 법은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법령 용어 순화 작업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법령용어순화는 그저 ‘불필요하게’ 어려운 일부 법개념을 수정하여 법의 어려움을 일부 해소해 줄 뿐, ‘불가피하게’ 어려운 법개념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 시민들을 대상으로 법교육을 강화하는 것도 법률가 자격을 부여해도 될 정도로 강도 높은 교육을 실시하지 않는 이상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 중요한 것은 법조계와 시민들의 파트너쉽(이미지 출처 : pixabay)
대안은 법률가의 조력 없이 법의 어려움을 해소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되 시민과 법률가가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지를 제대로 고민하는 것이다. 시민과 법률가와의 거리는 멀 수밖에 없는 데 문제는 그 거리가 멀면 멀수록 이른바 ‘법률가의 지배’(juristocracy)가 자리 잡을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이다. 누구나 손쉽게 법률가의 조력을 받을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고, 법조특권을 없애 시민과 법조가 소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법률가집단이 양성되고 선발되는 과정, 법률가집단이 기능하는 모든 절차에 시민적 감시와 통제를 강화하는 것 또한 중요한 과제가 된다. 법률가의 도움이 있어야 법의 어려움이 해소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오히려 문제 해결의 방향을 잡을 수 있다. 법의 어려움은 해소되어야 할 과제라기보다는 적절하게 관리되어야 할 과제인 것이다.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2008년 영국 런던정경대(LSE)에서 국가인권기구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PhD)를 취득했고, 2009년부터 숙명여자대학교 법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법철학, 법사회학 등 기초법학 방법론을 바탕으로 인권이론와 제도, 법과 사회이론에 대해 연구해 왔다. <말이 칼이 될 때>, <법의 이유> <인권제도와 기구>(공저)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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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법은 난해할 수 밖에, 대안은 낮은 문턱과 시민의 통제' 저작물은 "공공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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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난해할 수 밖에, 대안은 낮은 문턱과 시민의 통제
홍성수
2020-07-28
세상이 다시 단순해지지 않는 이상, 시민들이 법률해석방법에 통달하지 않는 이상 법은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법령 용어 순화 작업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중략) 시민들을 대상으로 법교육을 강화하는 것도 법률가 자격을 부여해도 될 정도로 강도 높은 교육을 실시하지 않는 이상 한계가 있을 수밖에......
갈수록 복잡해져가는 인간의 행동들
많은 사람들이 ‘법이 어렵다’고 말한다. 흔히 얘기되는 이 말에는 사실 엄청난 의미가 숨어 있다. 법이 왜 어려운지, 그리고 꼭 그렇게 어려워야 하는지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법에 대한 많은 것을 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먼저 법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사정부터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법은 인간의 행동을 규율하기 위한 목적으로 고안되었다. 예컨대, 형법은 감옥에 보내거나 벌금을 물려야 하는 나쁜 행위가 무엇인지를 규정한다. 법사회학자 루만(Niklas Luhmann)은 법이 합법-불법이라는 이항코드로 기능한다고 말하다. 그러니까 세상의 모든 인간의 행위는 형법에 의해 처벌받아야 하는 행위와 그렇지 않은 행위로 양분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행위를 합법과 불법으로 나누어 규율한 것은 고대사회에서부터 있었던 일이지만, 오늘날 인간 행위의 종류는 그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해졌다.
▲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유명한 문구가 새겨진 함무라비 법전 비석(이미지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예를 들어, 재산에 관련된 범죄의 경우 예전에는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절도), 강제로 빼앗거나(강도), 거짓말로 속여서 이득을 취한(사기) 정도가 전부였다. 오늘날에는 조세피난, 외화유출, 국제무역사기, 회계부정, 전자상거래 사기, 보이스피싱, 증권범죄, 불법다단계판매, 전환사채(CB)나 신주인수권수부사채(BW)를 이용한 불법행위 등 셀 수 없이 복잡하고 다양한 경제범죄들이 있으며, 지금도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복잡한 행위들을 법에 모두 규정해야 한다면 당연히 법이 복잡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정의’보다 ‘법적 안정성’을 중시하는 법률가들
규율해야 할 불법적 행위들이 많다고 해서 구체적 행위 유형을 남김없이 법에 담을 수는 없다. 그래서 법은 추상적인 개념어를 자주 활용한다. 최근에는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좀 더 구체적인 조문들이 빈번하게 활용되기도 하지만, 법은 여전히 추상적이다. 그 추상 수위가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에 대한 정답은 없다. 다만 수범자◆인 시민들이 그 법을 보고 자신의 행위가 불법이 될 것인지 아닌지를 예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법적 판단을 예상하여 자신의 행동 방향을 결정할 수 있고 안정되고 자유로운 삶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 수범자 기본권을 보장해줘야 하기도 하고 법을 지켜야 하는 존재. 편집자주
실제로 법률가들에게 이러한 법에 대한 예측가능성은 무척 중요하다. 심지어, 법에 옳은 내용을 담는 것보다, 법이 일관성 있고 예측가능하게 작동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법철학에서 가장 고전적인 논쟁은 ‘정의’와 ‘법적 안정성’의 대립이다. 다양한 입장이 있지만 어떠한 입장에서도 법적 안정성을 경시하지는 않는다. 확실한 것은 일반 시민들이나 정치, 도덕을 다루는 다른 학자들에 비해 법률가와 법학자는 법적 안정성에 좀 더 무게를 둔다는 것이다. 법률가들이 시민들이 생각하는 상식과 괴리된 결론을 내놓아 비난받는 경우가 자주 있는데, 바로 이 법적 안정성에 가치를 두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법률가들은 당해 사안에서 정의가 다소 희생되더라고 일관성 있고 안정된 법적용을 더 선호하곤 한다. 법이 안정적으로 기능하고 예측가능성을 제공하는 것이야말로 법의 가장 중요한 사회적 기능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수천 개 조문 열거 어려워, 법의 불가피한 추상성
▲ 일상속에서 자주 접하는 다양한 금지 표시(이미지 출처 : pixabay)
그렇다면 법이 어느 정도로 추상적일 때 안정적인 법질서가 구축될 수 있을까? 일단 아주 구체적이고 세세하게 불법에 해당하는 행위를 나열하는 방법을 생각해 보자. 예를 들어, 수업 시간에 금지되는 행위를 규정한다고 하면, 1) 햄버거를 먹는 행위, 2) 스피커로 음악을 크게 틀어 놓는 행위, 3) 교실 내를 돌아다니는 행위, 4) 동물을 데리고 들어오는 행위 등 금지되는 행위 유형을 모두 나열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나열하다 보면 한도 끝도 없다. 모든 유형의 행위를 규정하다 보면 법조문의 숫자가 무한정으로 늘어날 것이고 학생들 입장에서는 오히려 ‘무엇이 금지되는 행위’인지 알기가 더 어려워진다. 구체적으로 나열할수록 탄력성이 떨어져 새로운 행위 유형에 대처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햄버거를 먹는 행위, 짜장면을 먹는 행위를 금지하면, 소시지 빵이나 라면을 먹는 경우가 문제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음식물의 이름을 나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교실에서 학생들이 규칙을 지키기 위해 수백, 수천 개의 조문을 모두 숙지해야 한다는 것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법에서는 좀 더 추상적인 조문화를 지향한다. 이때 추상 수위를 잘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컨대, “수업 시간에 해서는 안 되는 행위는 금지한다”라고 정한다면 너무 추상적이고, “다른 학생이 수업을 듣는 것을 방해하는 행위를 금지한다”라는 정도면 적절해 보인다. 대부분의 법률 조문은 이 정도 수준에서 추상화되어 있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 정도의 법이면 시민들이 안정된 법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다.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하는 행위는 점점 다양화해질 것이고 해석의 여지가 생긴다. 스피커로 음악을 크게 틀어 놓는 것이 ‘수업 방해’에 해당한다는 점은 자명하지만, 이어폰 소리가 새어 나가 옆 학생에게도 소리가 살짝 들리는 정도라면 어떨까? 작년 수능시험에서처럼 샤프심을 앞으로 뺄 때 나는 소리도 수업을 방해하는 것에 해당할까? 햄버거나 짜장면이 냄새 때문에 다른 학생에게 영향을 준다면, 십전대보차나 쌍화차의 진한 향기를 풍기는 것은 어떠한가?
법은 결국 해석의 문제, 전문가 도움 받아야
결국 법은 어느 정도 추상적으로 정해놓을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해석’의 여지가 생기는 것은 불가피하다. 여기에 사람들이 법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있다. 추상적인 조문들로 가득한 법을 보며 막연히 어렵다는 생각이 들고, 심지어 자신의 상식적 해석과 다른 해석을 내놓으며 준엄하게 시민들의 법적 무지를 꾸짖는 법률가들에 대해 거부감이 생길 때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법률가들은 법률해석방법이라는 것을 배운다. 법학교육에서 다루는 것, 변호사시험에서 테스트하는 것이 바로 이 법률해석방법이다. 이 방법을 공부하고 나면 해석의 다양성으로 인해 초래되는 문제의 여지는 상당 부분 줄어든다. 예를 들어, 일반 시민들이 “사람을 기망하여 재산상의 이득을 취하는 행위”(사기죄)라는 조문을 놓고 어떤 행위가 사기인지 가늠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지만, 법률해석방법을 배운 법률가들 사이에서는 무엇이 사기인지를 놓고 상당 부분 의견이 일치한다. 실제로 만약 법률가의 도움을 충분히 받는다면 ‘법의 어려움’은 상당 부분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행위가 불법인지 여부를 미리 법률가에게 물어보고 행동의 방향을 정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법률가의 도움을 받는 것은 법의 어려움을 해소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시민과 법률가의 관계가 중요하다
▲ 2019년 법제처 업무계획 발표 현장(이미지 출처 : 법률방송)
결국 세상이 다시 단순해지지 않는 이상, 시민들이 법률해석방법에 통달하지 않는 이상 법은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법령 용어 순화 작업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법령용어순화는 그저 ‘불필요하게’ 어려운 일부 법개념을 수정하여 법의 어려움을 일부 해소해 줄 뿐, ‘불가피하게’ 어려운 법개념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 시민들을 대상으로 법교육을 강화하는 것도 법률가 자격을 부여해도 될 정도로 강도 높은 교육을 실시하지 않는 이상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 중요한 것은 법조계와 시민들의 파트너쉽(이미지 출처 : pixabay)
대안은 법률가의 조력 없이 법의 어려움을 해소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되 시민과 법률가가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지를 제대로 고민하는 것이다. 시민과 법률가와의 거리는 멀 수밖에 없는 데 문제는 그 거리가 멀면 멀수록 이른바 ‘법률가의 지배’(juristocracy)가 자리 잡을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이다. 누구나 손쉽게 법률가의 조력을 받을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고, 법조특권을 없애 시민과 법조가 소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법률가집단이 양성되고 선발되는 과정, 법률가집단이 기능하는 모든 절차에 시민적 감시와 통제를 강화하는 것 또한 중요한 과제가 된다. 법률가의 도움이 있어야 법의 어려움이 해소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오히려 문제 해결의 방향을 잡을 수 있다. 법의 어려움은 해소되어야 할 과제라기보다는 적절하게 관리되어야 할 과제인 것이다.
법(법은 난해할 수 밖에, 대안은 낮은 문턱과 시민 통제) 기획 칼럼 ④
법(법과 시) 기획 칼럼 ③
법(법과 도덕의 거리, 어쩌면 냉정과 열정사이) 기획 칼럼 ②
법(세상을 바꾼 법 탄생 물꼬를 튼 건 평범한 시민들) 기획 칼럼 ①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2008년 영국 런던정경대(LSE)에서 국가인권기구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PhD)를 취득했고, 2009년부터 숙명여자대학교 법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법철학, 법사회학 등 기초법학 방법론을 바탕으로 인권이론와 제도, 법과 사회이론에 대해 연구해 왔다. <말이 칼이 될 때>, <법의 이유> <인권제도와 기구>(공저)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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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법은 난해할 수 밖에, 대안은 낮은 문턱과 시민의 통제'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법과 시
이영광
국가 간의 역사적 화해는 가능한가
백승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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