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속에서 태어난 수많은 마음 가면
우리는 하루에 몇 번이나 마음의 가면을 쓰고 벗는 것일까.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씩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의 변화에 따라 섬세하고 변화무쌍한 연기력을 발휘하곤 한다. 집안에서는 다정한 엄마나 아빠의 가면을 쓰고 있다가도 직장에 나가면 무표정하고 무관심한 차가운 가면을 쓰기도 하고, 상사 앞에서는 쩔쩔매다가 후배에게는 호통을 치기도 한다. 어떤 친구를 만날 땐 밝은 모습을 보여주다가도 다른 친구를 만나면 침울하고 서먹한 표정을 지어 보이기도 한다. 심지어 같은 사람, 비슷한 상황에서도 전혀 다른 연기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모든 가면이 의식의 철저한 계산이라기보다는 자신도 잘 알아채지 못하는 무의식적 결정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우리는 시간과 장소가 바뀔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표정과 음색, 머리 스타일과 의상, 심지어 어휘와 몸짓, 성격까지 바꾸어가며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처한다.
상황에 따른 그러한 대처방법이 타인에게 호감을 주었을 때 ‘저 사람은 인간관계가 참 좋다’는 말을 듣고, 그렇지 못할 때는 ‘숫기가 없다’라든지 ‘눈치가 없다’라는 평가를 듣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상황 속에서 그때그때 꼭 맞는 마음의 가면을 쓰는 일은 정말 어렵다는 점이다. 싫어하는 사람 앞에서 아무리 의식적으로 밝은 표정을 지어 보이려고 해도 진심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표정은 어쩔 수 없이 어색하기 마련이다. 또 아무리 참으려 해도 터져 나오는 기침처럼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는 감정 또한 숨길 수 없다. 우리가 가면을 쓰는 것은 나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 급박하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다. 그러니 모든 가면을 나쁜 것이라고 몰아가기보다는 어떤 순간에 어떤 가면을, 왜 쓰게 되는지 자신의 인간관계를 돌아볼 마음의 여백이 필요한 것 아닐까.
우리가 가면을 쓰는 이유
우리가 사람과 상황에 따라 마음의 가면을 바꿔 쓰는 가장 큰 이유는 ‘저 사람은 날 이 정도는 이해해줄 거야’ 혹은 ‘저 사람은 나의 이런 면을 결코 이해하지 못할 거야’라는 내적 판단 때문이다. 우리는 타인에게 이해받을 수 있는 정도에 따라 감정의 투명도를 변화시킨다.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이해해줄 것 같은 사람 앞에서는 굳이 딱딱한 가면을 쓸 필요가 없다. 감정의 변화를 마음껏 표현하고, 슬픔도 기쁨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관계야말로 인간을 가장 편안하게 만드는 관계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나의 나다움, 때로는 나답지 않음을 가감 없이 드러낼 수 있는 관계가 흔치는 않다. 가족끼리도 제대로 감정을 표현하지 못해 서운함과 억울함이 쌓여 마침내 분노로 폭발하는 때가 많다. ‘저 사람은 날 이 정도로 이해해 줄 거야’라는 기대나 판단이 꼭 옳은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나의 어설픈 짐작을 뛰어넘어 나를 깊이 이해해주고, 또 누군가는 나의 달콤한 기대를 저버리며 나를 철저히 오해하기도 하니까. 늘 ‘저 사람이 나를 어느 정도로 이해해줄까’라는 판단에 기대지는 말자. 권태에 빠져버린 관계, 그것은 늘 이만큼만 보여주고, 늘 그만큼만 이해해주는 마음에서 태어나기 때문이다. 때로는 예의나 체면이라는 가면을 벗어던지고 진솔하게 자신의 마음을 숨김없이 보여줄 때야말로 눈부신 관계의 기적이 시작될 수 있다.
마음 가면을 바꿔 쓰는 두 번째 이유, 그것은 저 사람이 나에게 도움이 될지를 판단하는 마음속 계산기 때문이다. 인간은 별다른 훈련 없이도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에게는 호의적으로 대하고, 자신에게 해를 끼칠 것 같은 사람에게는 경계와 냉대의 시선을 보낸다. 하지만 마음속 계산기가 시키는 대로만 살아가면 더 나은 인간관계를 맺을 수 없다. 마음속 계산기는 이해관계에 따라서만 움직이지만, 마음은 궁극적으로 이해관계를 넘어 때로는 그에 반하더라도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뜻밖의 대상을 향해 자신도 모르게 성큼성큼 움직이기 때문이다. 단지 처세술에 능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상처 주지 않고 타인과 더욱 따스한 관계를 맺기 위해 우리는 이해득실의 차원을 뛰어넘어 관계 맺기를 다시 고민할 필요가 있다.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에서 은접시를 훔친 장발장에게 ‘은촛대도 가져가라’는 조건 없는 사랑을 베풀었던 신부님처럼, 인간을 변화시키는 것은 ‘저 사람이 나에게 해가 되는가 득이 되는가’를 계산하는 마음이 아니라 조건 없는 환대다. 환대의 철학, 그것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존재 전체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런 조건 없는 받아들임이야말로 관계의 추위에 떨고 있는 우리 자신을 깊이 위로해주는 일상의 묘약이 되지 않을까.
마음 가면을 바꿔 쓰며 진심을 숨기는 세 번째 이유, 그것은 우리가 더는 상처받지 않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한 방어기제로써 우리는 연기를 한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그에게 관심 없는 척하고, 이미 받은 상처조차 아예 처음부터 없는 척하기 위해 그 사람을 멀리하기도 한다. 자꾸만 ‘그 사람은 나를 좋아하지 않을 거야’ ‘그 사람이 전화를 받지 않던 것은 바쁘기 때문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야’ ‘더 좋은 다른 사람이 생겨서일 거야’라는 식으로 부정적인 과대망상을 쌓아가다 보면 정말로 관계가 악화될 수 있다. 단지 일이 바빠서 전화를 받지 못했던 상대방도 ‘내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 그 사람이 나를 의심한다’는 심적인 부담 때문에 그를 멀리하게 된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자신을 보호하려던 몸짓이 오히려 더 치명적인 상처를 낳을 수도 있다. 방어기제를 높이기보다는 내가 지금 무엇을 원하며, 그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차분하게 성찰하는 냉철한 지성이 더욱 필요한 순간이 있다. 관계를 돈독하게 하는 것은 단지 애정이나 관심뿐만 아니라, 자신과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관찰력과 서로에게 어떻게 더 바람직한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성찰하는 지성이기도 하다.
마음 가면의 가장 무서운 결과 중 하나는 본래는 마음을 감추기 위해 착용했던 부정적인 가면이 나중에는 성격으로 굳어져 버린다는 것이다. 진짜 감정을 감추고 오랫동안 가짜 감정이라는 마음 가면을 쓰고 다니다 보면 나중에는 자신의 진짜 성격이 아니라 가짜 가면이 오히려 나다운 것이 되어버릴 위험이 있는 것이다. 마음 가면이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결정적 이유는 가면이 굳어져 버려 결국 나 자신을 속이게 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난 그 꿈을 이미 포기했어’ ‘난 그 사람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라는 식으로 스스로를 속이면 결국 그 꿈을 진짜로 포기해버리거나 그 사람을 사랑했던 기억조차도 희미해져 버리게 된다.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을 억압하기 위해 마음 가면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아름다운 관계 맺기, 그것은 먼저 자신과의 관계 맺음에서부터 시작된다. 오랫동안 꿈꾸던 그 희망, 오랫동안 그리워하던 그 사람, 오랫동안 하염없이 바라만 보던 그 모든 것들을 향해 ‘나는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내게는 당신이 필요 없다’라고 여기는 마음 가면을 벗어던지는 연습을 하자. 사랑받지 못해도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고, 꿈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꿈꾸기를 멈추지 않는 연습, 만나지 못해도 계속 그리워하고 기다리는 연습. 이렇게 나 자신을 향한 오래된 마음의 가면을 벗어던질 때, 더 아름다운 관계 맺기가 가능해질 것이다. 그가 나를 필요로 하지 않아도 내가 그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는 연습, 그가 나를 그리워하지 않아도 내가 그를 그리워함에 부끄러움이 없는 마음. 그런 솔직함과 당당함이야말로 아름다운 관계 맺기의 첫걸음이다. 한 걸음 한 걸음 나 자신에게 더욱 솔직해지는 걸음마를 시작해보자.
[관계]천의 얼굴을 가진 인간의 관계 맺기
관계 속에서 달라지는 자아 이미지
정여울
2018-02-28
관계 속에서 태어난 수많은 마음 가면
우리는 하루에 몇 번이나 마음의 가면을 쓰고 벗는 것일까.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씩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의 변화에 따라 섬세하고 변화무쌍한 연기력을 발휘하곤 한다. 집안에서는 다정한 엄마나 아빠의 가면을 쓰고 있다가도 직장에 나가면 무표정하고 무관심한 차가운 가면을 쓰기도 하고, 상사 앞에서는 쩔쩔매다가 후배에게는 호통을 치기도 한다. 어떤 친구를 만날 땐 밝은 모습을 보여주다가도 다른 친구를 만나면 침울하고 서먹한 표정을 지어 보이기도 한다. 심지어 같은 사람, 비슷한 상황에서도 전혀 다른 연기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모든 가면이 의식의 철저한 계산이라기보다는 자신도 잘 알아채지 못하는 무의식적 결정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우리는 시간과 장소가 바뀔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표정과 음색, 머리 스타일과 의상, 심지어 어휘와 몸짓, 성격까지 바꾸어가며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처한다.
상황에 따른 그러한 대처방법이 타인에게 호감을 주었을 때 ‘저 사람은 인간관계가 참 좋다’는 말을 듣고, 그렇지 못할 때는 ‘숫기가 없다’라든지 ‘눈치가 없다’라는 평가를 듣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상황 속에서 그때그때 꼭 맞는 마음의 가면을 쓰는 일은 정말 어렵다는 점이다. 싫어하는 사람 앞에서 아무리 의식적으로 밝은 표정을 지어 보이려고 해도 진심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표정은 어쩔 수 없이 어색하기 마련이다. 또 아무리 참으려 해도 터져 나오는 기침처럼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는 감정 또한 숨길 수 없다. 우리가 가면을 쓰는 것은 나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 급박하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다. 그러니 모든 가면을 나쁜 것이라고 몰아가기보다는 어떤 순간에 어떤 가면을, 왜 쓰게 되는지 자신의 인간관계를 돌아볼 마음의 여백이 필요한 것 아닐까.
우리가 가면을 쓰는 이유
우리가 사람과 상황에 따라 마음의 가면을 바꿔 쓰는 가장 큰 이유는 ‘저 사람은 날 이 정도는 이해해줄 거야’ 혹은 ‘저 사람은 나의 이런 면을 결코 이해하지 못할 거야’라는 내적 판단 때문이다. 우리는 타인에게 이해받을 수 있는 정도에 따라 감정의 투명도를 변화시킨다.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이해해줄 것 같은 사람 앞에서는 굳이 딱딱한 가면을 쓸 필요가 없다. 감정의 변화를 마음껏 표현하고, 슬픔도 기쁨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관계야말로 인간을 가장 편안하게 만드는 관계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나의 나다움, 때로는 나답지 않음을 가감 없이 드러낼 수 있는 관계가 흔치는 않다. 가족끼리도 제대로 감정을 표현하지 못해 서운함과 억울함이 쌓여 마침내 분노로 폭발하는 때가 많다. ‘저 사람은 날 이 정도로 이해해 줄 거야’라는 기대나 판단이 꼭 옳은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나의 어설픈 짐작을 뛰어넘어 나를 깊이 이해해주고, 또 누군가는 나의 달콤한 기대를 저버리며 나를 철저히 오해하기도 하니까. 늘 ‘저 사람이 나를 어느 정도로 이해해줄까’라는 판단에 기대지는 말자. 권태에 빠져버린 관계, 그것은 늘 이만큼만 보여주고, 늘 그만큼만 이해해주는 마음에서 태어나기 때문이다. 때로는 예의나 체면이라는 가면을 벗어던지고 진솔하게 자신의 마음을 숨김없이 보여줄 때야말로 눈부신 관계의 기적이 시작될 수 있다.
마음 가면을 바꿔 쓰는 두 번째 이유, 그것은 저 사람이 나에게 도움이 될지를 판단하는 마음속 계산기 때문이다. 인간은 별다른 훈련 없이도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에게는 호의적으로 대하고, 자신에게 해를 끼칠 것 같은 사람에게는 경계와 냉대의 시선을 보낸다. 하지만 마음속 계산기가 시키는 대로만 살아가면 더 나은 인간관계를 맺을 수 없다. 마음속 계산기는 이해관계에 따라서만 움직이지만, 마음은 궁극적으로 이해관계를 넘어 때로는 그에 반하더라도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뜻밖의 대상을 향해 자신도 모르게 성큼성큼 움직이기 때문이다. 단지 처세술에 능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상처 주지 않고 타인과 더욱 따스한 관계를 맺기 위해 우리는 이해득실의 차원을 뛰어넘어 관계 맺기를 다시 고민할 필요가 있다.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에서 은접시를 훔친 장발장에게 ‘은촛대도 가져가라’는 조건 없는 사랑을 베풀었던 신부님처럼, 인간을 변화시키는 것은 ‘저 사람이 나에게 해가 되는가 득이 되는가’를 계산하는 마음이 아니라 조건 없는 환대다. 환대의 철학, 그것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존재 전체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런 조건 없는 받아들임이야말로 관계의 추위에 떨고 있는 우리 자신을 깊이 위로해주는 일상의 묘약이 되지 않을까.
마음 가면을 바꿔 쓰며 진심을 숨기는 세 번째 이유, 그것은 우리가 더는 상처받지 않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한 방어기제로써 우리는 연기를 한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그에게 관심 없는 척하고, 이미 받은 상처조차 아예 처음부터 없는 척하기 위해 그 사람을 멀리하기도 한다. 자꾸만 ‘그 사람은 나를 좋아하지 않을 거야’ ‘그 사람이 전화를 받지 않던 것은 바쁘기 때문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야’ ‘더 좋은 다른 사람이 생겨서일 거야’라는 식으로 부정적인 과대망상을 쌓아가다 보면 정말로 관계가 악화될 수 있다. 단지 일이 바빠서 전화를 받지 못했던 상대방도 ‘내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 그 사람이 나를 의심한다’는 심적인 부담 때문에 그를 멀리하게 된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자신을 보호하려던 몸짓이 오히려 더 치명적인 상처를 낳을 수도 있다. 방어기제를 높이기보다는 내가 지금 무엇을 원하며, 그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차분하게 성찰하는 냉철한 지성이 더욱 필요한 순간이 있다. 관계를 돈독하게 하는 것은 단지 애정이나 관심뿐만 아니라, 자신과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관찰력과 서로에게 어떻게 더 바람직한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성찰하는 지성이기도 하다.
마음 가면의 가장 무서운 결과 중 하나는 본래는 마음을 감추기 위해 착용했던 부정적인 가면이 나중에는 성격으로 굳어져 버린다는 것이다. 진짜 감정을 감추고 오랫동안 가짜 감정이라는 마음 가면을 쓰고 다니다 보면 나중에는 자신의 진짜 성격이 아니라 가짜 가면이 오히려 나다운 것이 되어버릴 위험이 있는 것이다. 마음 가면이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결정적 이유는 가면이 굳어져 버려 결국 나 자신을 속이게 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난 그 꿈을 이미 포기했어’ ‘난 그 사람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라는 식으로 스스로를 속이면 결국 그 꿈을 진짜로 포기해버리거나 그 사람을 사랑했던 기억조차도 희미해져 버리게 된다.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을 억압하기 위해 마음 가면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아름다운 관계 맺기, 그것은 먼저 자신과의 관계 맺음에서부터 시작된다. 오랫동안 꿈꾸던 그 희망, 오랫동안 그리워하던 그 사람, 오랫동안 하염없이 바라만 보던 그 모든 것들을 향해 ‘나는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내게는 당신이 필요 없다’라고 여기는 마음 가면을 벗어던지는 연습을 하자. 사랑받지 못해도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고, 꿈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꿈꾸기를 멈추지 않는 연습, 만나지 못해도 계속 그리워하고 기다리는 연습. 이렇게 나 자신을 향한 오래된 마음의 가면을 벗어던질 때, 더 아름다운 관계 맺기가 가능해질 것이다. 그가 나를 필요로 하지 않아도 내가 그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는 연습, 그가 나를 그리워하지 않아도 내가 그를 그리워함에 부끄러움이 없는 마음. 그런 솔직함과 당당함이야말로 아름다운 관계 맺기의 첫걸음이다. 한 걸음 한 걸음 나 자신에게 더욱 솔직해지는 걸음마를 시작해보자.
작가. 네이버 오디오클립 <월간 정여울> 진행자. 저서로 『내가 사랑한 유럽top10』,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월간 정여울』,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등이 있다.
댓글(2)
쭈*
2018-03-23쭈*
2018-03-23와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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