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의 신화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던 티치아노가 붓을 떨어뜨리자 칼 5세는 직접 허리를 굽혀 붓을 주워주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프랑수아 1세의 초청으로 앙부아즈에서 편안한 말년을 보낸 후 그의 품에 안겨 숨을 거뒀다. 이 이야기들은 사실이 아니다. 하지만 이 전설들은 르네상스 이후 달라진 예술가의 위상을 매우 인상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미술은 르네상스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중세 때까지 미술은 한갓 저급한 기술(Vulgar Art)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회화, 조각, 건축 같은 것들이 인문학으로 인정받으면서 오늘날과 같은 미술(Fine Art)이 된다. 그런데 당시에 미술을 가리켰던 용어인 라틴어 ‘아르티 델 디세뇨(Arti del Disegno)에서 키워드인 ‘디세뇨’는 영어 디자인(Design), 불어 데생(Dessin)의 어원이기도 하다. 르네상스 시대의 ‘디세뇨’는 오늘날 디자인이라는 말과 형태가 비슷할 뿐 뜻은 달랐다. 그것은 디자인이 아니라 미술을 의미했다. 그렇지만 서양 최초의 '미술'이라는 용어가 오늘날 디자인의 어원이라는 사실은 서양 문화사에 숨겨진 비밀 아닌 비밀이라 할 수 있겠다.
프랑수아 1세의 품 안에서 숨을 거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앵그르 그림(1818년)
아무튼 르네상스 시대에 발아된 예술가 신화는 낭만주의에 이르러 정점에 달한다. “시인은 세계의 숨은 입법자다”라는 시인 셸리의 말이 그것을 증명한다. 이제 예술가는 신을 대신한 이 세상의 창조자인 것이다. 서양의 근대는 중세에 신이 자리했던 세계의 중심에 인간을 위치시켰는데, 그 인간들 중에서도 최고의 존재는 예술가라 여겼다. 오늘날에도 예술가의 신화는 다소 퇴색된 채로나마 계승되고 있다. 물론 이제 그것은 대중적인 스타, 연예인에게 옮겨간 것인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런데 근대의 예술가 신화를 나누어 가진 존재 중에는 디자이너도 있다. 물론 디자이너라는 역할은 노동의 분업이라는 역사적 과정의 산물이며, 디자인사가(史家)인 에이드리언 포티의 주장처럼 18세기 말 영국의 도자기 산업에서 그 원형을 찾을 수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사라는 물질적 과정과 그것의 관념적 반영인 의식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디자인사는 특정 시기, 일군의 디자이너들의 의식이 낭만주의 예술가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20세기 초의 모던 디자이너들이 그러한데, 그들은 차라리 르네상스와 낭만주의 예술가 의식의 계승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모던 디자이너들의 자존감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았다. 그런 점에서 모던 디자이너와 오늘날의 '세속적인' 디자이너는 정신적인 DNA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모던 디자이너는 오늘날 디자이너의 직계 조상이 아니다.
예술가적 자존감에 충만했던 모던 디자인의 거장들. (왼쪽부터 순서대로) 페터 베렌스, 르 코르뷔지에, 발터 그로피우스, 미스 반 데어 로에.
크리에이터의 계보학
서양에서 창조는 오랫동안 신의 전유물이었다. 왜냐하면 진정한 창조란 ‘무(無)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를 의미하며 그것은 신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有)에서 유(有)를 만들어내는 것, 즉 그림을 그리거나 아이를 낳는 것은 창조가 아니라 생산이었다. 그런 것들은 이미 존재하는 것(재능, DNA 등)을 변형, 재생산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의 독점물이었던 창조의 개념은 점차 변모되어 갔다. 신으로부터 가장 먼저 창조라는 권능을 빼앗은 자들은 앞서 이야기한 예술가들이었다. 칸트의 미학이 보증해주듯이, 근대의 예술가는 신과 같은 창조자, 크리에이터가 되었다. 그로부터도 시간이 한참 흐른 뒤인 오늘날 크리에이터라는 말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분야는 광고와 디자인이다. 이제 창조라는 말은 광고와 디자인의 전유물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디자이너는 크리에이터와 동의어처럼 사용되고, 광고회사를 가보면 부서 이름이 죄다 ‘크리에이티브 1팀’ ‘크리에이티브 2팀’이다.
독일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볼프강 하우크는 『상품미학비판』에서 디자인을 자본주의의 상품 미학이라고 부르며 비판한다. 물론 마르크스주의처럼 자본주의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 이상 오늘날 디자인의 필요성을 외면할 수는 없다. 현대 사회는 디자인 없이 굴러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대량생산과 대중소비라는 산업사회의 메커니즘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자본주의를 멸망시키기 위해서는 굳이 폭력혁명을 일으킬 필요가 없다. 바로 그 생산-소비 메커니즘을 멈추게 한다면 자본주의는 사망에 이르게 된다.
타임지 표지를 장식한 미국의 산업 디자이너 레이먼드 로위/ 레이먼드 로위의 유선형 디자인을 도입한 스튜드베이커 아반티(1962년)
사실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모던 디자이너들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존재였다. 예술가적 자존감에 충만했던 그들은 시장 친화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다수의 모던 디자이너들이 사회주의적인 지향점을 갖고 있었던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모던 디자이너들과는 달리, 현실적이며 시장 친화적인 디자이너의 모델은 1930년대 미국에서 만들어졌다. 1929년 바로 자본주의를 죽음으로 몰아넣을 것 같았던 대공황이 닥쳤고, 이런 가운데 기업들은 판매 촉진을 위한 수단으로 디자인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성공적인 몇몇 디자이너들은 그들이 손이 닿는 물건마다 판매고를 올려주는 미다스와 같은 존재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잘 나갔던 산업 디자이너 레이먼드 로위는 타임지의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이제 디자이너의 자존감을 채워주는 것은 예술가 의식이 아니라 비즈니스맨 또는 대중적인 스타 의식이었다. 현생 디자이너의 직계 조상은 바로 이들이다.
한국 디자이너의 초상과 자괴감/자존감
오늘날 한국 디자이너들은 어떤 자존감을 가지고 있을까. 기업을 위한 봉사자 또는 국가 경제 발전의 역군으로서의 자긍심에 가득 차 있을까. 하지만 오늘날 한국 디자이너 중 다수는 내가 이러려고 디자이너가 되었나 하는 자괴감을 느끼고 있지 않을까 짐작한다. 물론 한국에서도 잘 나가는 디자이너가 없지는 않지만, 이미 그 자체로 거대한 직업군을 이루고 있는 한국 디자이너의 전반적인 현실은 그리 밝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매년 2만 5천 명 정도의 디자인 전공자가 배출되는 한국은 이미 인구 대비 세계 최고 수준의 디자이너 수를 자랑하며, 사회적으로도 엄청난 공급 과잉 상태에 있다. 오늘날 한국 디자이너의 초상은 대략 이렇게 그려볼 수 있을 것 같다.
안성기와 강수연이 디자이너 역할로 출연했던 영화 <그대 안의 블루>. 대중매체를 통해 소비되는 디자이너의 이미지를 엿볼 수 있다.
첫째, 한국의 디자이너는 기본적으로 1960년대 이후 경제 개발 과정에서 산업역군으로서 호명된 존재들이며, 그러므로 그들의 실존은 ‘시각적 기술자’에 가깝다. 둘째, 한국에는 서구와 같은 모던 디자이너가 존재하지 않는데, 그것은 역시 근대 디자인의 발생과정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모던 디자이너라는 존재는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전통적인 예술가에 가까운 만큼 비현실적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디자인에 대한 이념과 거대담론을 만들어내는 적극적인 역할을 맡기도 했다. 그러니까 한국 디자인에 모던 디자이너가 부재하다는 것은 곧 한국 디자인에 적극적인 이념이 없다는 말과도 같다. 그러한 부재의 자리를 대신 채운 것은 권위적인 정치가의 지도 이념과 관료주의적인 구조였다.(한국 디자인의 실질적인 지도자는 박정희였다!) 셋째, 1990년대 이후 대중매체 속에서 디자이너의 이미지가 부풀려지면서 디자이너에 대한 사회적 의식에 크게 왜곡되었다. 이제는 디자이너가 영화나 TV 드라마 속 주인공으로 나오는 것을 심심찮게 보게 된다. 하지만 대중문화 속에 묘사된 디자이너의 모습은 대중이 선망하는 이미지가 투영된 것일 뿐 디자이너의 실제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사실 서구 모던 디자이너들의 의식이 다소 과대망상에 가까운 것이었다면, 오늘날 한국 디자이너들의 그것은 자괴감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 과연 이러한 현실에서 한국 디자이너들의 자존감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나는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이 처한 현실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디자인 평론가. 홍익대 산업디자인과와 대학원 미학과를 졸업하고 <월간 디자인> 편집장을 역임했다. 현재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PaTI) 디자인인문연구소 소장으로 있으며, 『한국 디자인을 보는 눈』 『한국 디자인 어디로 가는가』 등 여러 권의 평론집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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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디자이너의 자존감, 과대망상과 자괴감 사이에서
서양 디자이너와 한국 디자이너의 초상
최범
2017-12-12
자존감
디자이너의 신화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던 티치아노가 붓을 떨어뜨리자 칼 5세는 직접 허리를 굽혀 붓을 주워주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프랑수아 1세의 초청으로 앙부아즈에서 편안한 말년을 보낸 후 그의 품에 안겨 숨을 거뒀다. 이 이야기들은 사실이 아니다. 하지만 이 전설들은 르네상스 이후 달라진 예술가의 위상을 매우 인상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미술은 르네상스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중세 때까지 미술은 한갓 저급한 기술(Vulgar Art)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회화, 조각, 건축 같은 것들이 인문학으로 인정받으면서 오늘날과 같은 미술(Fine Art)이 된다. 그런데 당시에 미술을 가리켰던 용어인 라틴어 ‘아르티 델 디세뇨(Arti del Disegno)에서 키워드인 ‘디세뇨’는 영어 디자인(Design), 불어 데생(Dessin)의 어원이기도 하다. 르네상스 시대의 ‘디세뇨’는 오늘날 디자인이라는 말과 형태가 비슷할 뿐 뜻은 달랐다. 그것은 디자인이 아니라 미술을 의미했다. 그렇지만 서양 최초의 '미술'이라는 용어가 오늘날 디자인의 어원이라는 사실은 서양 문화사에 숨겨진 비밀 아닌 비밀이라 할 수 있겠다.
아무튼 르네상스 시대에 발아된 예술가 신화는 낭만주의에 이르러 정점에 달한다. “시인은 세계의 숨은 입법자다”라는 시인 셸리의 말이 그것을 증명한다. 이제 예술가는 신을 대신한 이 세상의 창조자인 것이다. 서양의 근대는 중세에 신이 자리했던 세계의 중심에 인간을 위치시켰는데, 그 인간들 중에서도 최고의 존재는 예술가라 여겼다. 오늘날에도 예술가의 신화는 다소 퇴색된 채로나마 계승되고 있다. 물론 이제 그것은 대중적인 스타, 연예인에게 옮겨간 것인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런데 근대의 예술가 신화를 나누어 가진 존재 중에는 디자이너도 있다. 물론 디자이너라는 역할은 노동의 분업이라는 역사적 과정의 산물이며, 디자인사가(史家)인 에이드리언 포티의 주장처럼 18세기 말 영국의 도자기 산업에서 그 원형을 찾을 수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사라는 물질적 과정과 그것의 관념적 반영인 의식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디자인사는 특정 시기, 일군의 디자이너들의 의식이 낭만주의 예술가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20세기 초의 모던 디자이너들이 그러한데, 그들은 차라리 르네상스와 낭만주의 예술가 의식의 계승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모던 디자이너들의 자존감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았다. 그런 점에서 모던 디자이너와 오늘날의 '세속적인' 디자이너는 정신적인 DNA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모던 디자이너는 오늘날 디자이너의 직계 조상이 아니다.
크리에이터의 계보학
서양에서 창조는 오랫동안 신의 전유물이었다. 왜냐하면 진정한 창조란 ‘무(無)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를 의미하며 그것은 신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有)에서 유(有)를 만들어내는 것, 즉 그림을 그리거나 아이를 낳는 것은 창조가 아니라 생산이었다. 그런 것들은 이미 존재하는 것(재능, DNA 등)을 변형, 재생산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의 독점물이었던 창조의 개념은 점차 변모되어 갔다. 신으로부터 가장 먼저 창조라는 권능을 빼앗은 자들은 앞서 이야기한 예술가들이었다. 칸트의 미학이 보증해주듯이, 근대의 예술가는 신과 같은 창조자, 크리에이터가 되었다. 그로부터도 시간이 한참 흐른 뒤인 오늘날 크리에이터라는 말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분야는 광고와 디자인이다. 이제 창조라는 말은 광고와 디자인의 전유물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디자이너는 크리에이터와 동의어처럼 사용되고, 광고회사를 가보면 부서 이름이 죄다 ‘크리에이티브 1팀’ ‘크리에이티브 2팀’이다.
독일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볼프강 하우크는 『상품미학비판』에서 디자인을 자본주의의 상품 미학이라고 부르며 비판한다. 물론 마르크스주의처럼 자본주의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 이상 오늘날 디자인의 필요성을 외면할 수는 없다. 현대 사회는 디자인 없이 굴러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대량생산과 대중소비라는 산업사회의 메커니즘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자본주의를 멸망시키기 위해서는 굳이 폭력혁명을 일으킬 필요가 없다. 바로 그 생산-소비 메커니즘을 멈추게 한다면 자본주의는 사망에 이르게 된다.
사실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모던 디자이너들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존재였다. 예술가적 자존감에 충만했던 그들은 시장 친화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다수의 모던 디자이너들이 사회주의적인 지향점을 갖고 있었던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모던 디자이너들과는 달리, 현실적이며 시장 친화적인 디자이너의 모델은 1930년대 미국에서 만들어졌다. 1929년 바로 자본주의를 죽음으로 몰아넣을 것 같았던 대공황이 닥쳤고, 이런 가운데 기업들은 판매 촉진을 위한 수단으로 디자인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성공적인 몇몇 디자이너들은 그들이 손이 닿는 물건마다 판매고를 올려주는 미다스와 같은 존재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잘 나갔던 산업 디자이너 레이먼드 로위는 타임지의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이제 디자이너의 자존감을 채워주는 것은 예술가 의식이 아니라 비즈니스맨 또는 대중적인 스타 의식이었다. 현생 디자이너의 직계 조상은 바로 이들이다.
한국 디자이너의 초상과 자괴감/자존감
오늘날 한국 디자이너들은 어떤 자존감을 가지고 있을까. 기업을 위한 봉사자 또는 국가 경제 발전의 역군으로서의 자긍심에 가득 차 있을까. 하지만 오늘날 한국 디자이너 중 다수는 내가 이러려고 디자이너가 되었나 하는 자괴감을 느끼고 있지 않을까 짐작한다. 물론 한국에서도 잘 나가는 디자이너가 없지는 않지만, 이미 그 자체로 거대한 직업군을 이루고 있는 한국 디자이너의 전반적인 현실은 그리 밝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매년 2만 5천 명 정도의 디자인 전공자가 배출되는 한국은 이미 인구 대비 세계 최고 수준의 디자이너 수를 자랑하며, 사회적으로도 엄청난 공급 과잉 상태에 있다. 오늘날 한국 디자이너의 초상은 대략 이렇게 그려볼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한국의 디자이너는 기본적으로 1960년대 이후 경제 개발 과정에서 산업역군으로서 호명된 존재들이며, 그러므로 그들의 실존은 ‘시각적 기술자’에 가깝다. 둘째, 한국에는 서구와 같은 모던 디자이너가 존재하지 않는데, 그것은 역시 근대 디자인의 발생과정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모던 디자이너라는 존재는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전통적인 예술가에 가까운 만큼 비현실적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디자인에 대한 이념과 거대담론을 만들어내는 적극적인 역할을 맡기도 했다. 그러니까 한국 디자인에 모던 디자이너가 부재하다는 것은 곧 한국 디자인에 적극적인 이념이 없다는 말과도 같다. 그러한 부재의 자리를 대신 채운 것은 권위적인 정치가의 지도 이념과 관료주의적인 구조였다.(한국 디자인의 실질적인 지도자는 박정희였다!) 셋째, 1990년대 이후 대중매체 속에서 디자이너의 이미지가 부풀려지면서 디자이너에 대한 사회적 의식에 크게 왜곡되었다. 이제는 디자이너가 영화나 TV 드라마 속 주인공으로 나오는 것을 심심찮게 보게 된다. 하지만 대중문화 속에 묘사된 디자이너의 모습은 대중이 선망하는 이미지가 투영된 것일 뿐 디자이너의 실제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사실 서구 모던 디자이너들의 의식이 다소 과대망상에 가까운 것이었다면, 오늘날 한국 디자이너들의 그것은 자괴감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 과연 이러한 현실에서 한국 디자이너들의 자존감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나는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이 처한 현실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디자인 평론가. 홍익대 산업디자인과와 대학원 미학과를 졸업하고 <월간 디자인> 편집장을 역임했다. 현재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PaTI) 디자인인문연구소 소장으로 있으며, 『한국 디자인을 보는 눈』 『한국 디자인 어디로 가는가』 등 여러 권의 평론집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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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자존감의 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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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아버지 영조, 세자 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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