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도, 아버지도, 형도 의사였다. 그도 의대를 갔으나 당시 마취도 없이 진행되는 수술과 환자의 비명, 그 과정에서 흘러 넘치는 피를 보는 일을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2년도 되지 않아 그는 자퇴를 하고 만다. 그러나 대학을 다니는 동안 그는 박물학이라는 학문을 접하면서 깊게 빠져들게 된다. 그의 아버지는 단지 피를 보는 게 싫다며 의대를 중퇴한 아들에게 실망했지만 이미 때려치운 걸 어쩌겠는가. 아버지는 당시 안정적이며, 신망도 높은 직업인 신부가 되라는 새로운 제안을 한다. 찰스는 신부가 되면 교회 일을 대충 해치우고 남는 시간에 박물학을 연구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냉큼 아버지의 제안을 받아들여 신학대학에 들어간다.
다시 대학에 입학한 그는 신학은 뒷전이고 박물학이나 곤충 채집 같은 돈이 되지 않는 일에만 열중한다. 그저 집안이 풍족하니(대대로 의사집안이니 당연히 풍족할 수밖에) 거의 한량처럼 지내다가 그래도 어떻게든 공부는 꽤 한 편이어서 6년 만이지만 좋은 성적으로 졸업을 한다. 그의 아버지 입장에선 대학 졸업도 했으니 이제 좀 사람이 되려나 싶었을 것이다.
소심한 과학자, 모험의 시작
대학 졸업을 마친 찰스는 불쑥 세계 일주를 하겠다고 나선다. 되라는 신부는 제쳐두고 위험천만한 세계 일주라니. 아버지는 극력 반대한다. 아마 ‘네가 세계 일주를 한다면, 호적을 파버리겠다’라거나 ‘내 유산을 받을 생각 따윈 하지도 마라’ 등등의 이야기가 나왔을 수도 있겠다. 그는 워낙 조용하고, 섬세한 성격이기도 해서 아버지에게 대들고 싸우진 못하고, 대신 옛 대학 은사에게 부탁을 한다. 고금을 막론하고 나이든 양반들은, 사회적 지위도 꽤 되고 나이도 지긋한 사람이 ‘자네 아들이 이 분야에서 정말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네. 더구나 열정도 있어. 아들이 하기 싫다는 신부 시키다가 아예 어긋나버리는 것보다는 차라리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하고 싶은 걸 하라고 놔두는 것도 좋지 않겠나’라고 설득하는 것에 잘 먹힌다. 더구나 아들놈이 성격은 조용하지만 고집이 여간한 게 아니어서 남들 부러워하는 의대도 때려 친 녀석 아닌가.
찰스 다윈의 비글(Beagle)호 항해
은사를 동원해 아버지를 설득한 그는 이제 배를 타고 세계 일주에 나선다. 대서양을 거쳐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칠레, 에콰도르로 가선 다시 태평양을 횡단하여 뉴질랜드, 오스트레일리아에 가고, 또 인도양을 넘어 아프리카를 돌아 대서양을 건너 브라질로 갔다가 제자리로 돌아온다. 만 4년 2개월의 시간이었다. 스물세 살에 시작한 여행은 스물여덟 살이 되어 끝났다. 그가 만약 의대를 졸업해서 의사가 되었다면 당시로서는 이미 안정적인 지위를 누렸을 나이였고, 성직자가 되었다면 어디 본당의 주임신부가 되었을 나이였다.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 늦어도 한참 늦은 나이였다. 그러나 그에겐 이제부터가 진짜 모험의 시작이었다. 작은 배 한 척에 의지해 4년 여 동안 대서양과 태평양, 인도양을 누빈 건 이제부터 그가 이루어내야 할 모험에 비하면 한낮 젊은 날의 치기일 뿐이었다.
더 넓은 세상으로의 항해
찰스는 제대로 된 모험을 준비하기 위해 번잡한 런던을 벗어나 시골에 은둔한다. 동료들과는 지속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협력 관계를 공고히 한다. 온갖 자료를 파악하고, 전 세계의 학자들과 서신을 교환한다. 직접 땅을 파고 지렁이를 연구하며, 한편으로 육종업자들이 애완용 비둘기 품종을 개량하는 과정도 지켜본다. 그렇게 20 여년, 마침내 그는 아르고 원정대의 이아손처럼 진정한 모험의 항해에 나선다.
찰스 다윈과 그의 책 『종의 기원』
할아버지 이래즈머스 다윈이 일찍이 『동물론(Zoonomia)』에서 주장했던 바로 그 사상. 라이엘의 『지질학 원론』을 나침반 삼아 떠났던 20대의 첫 여행에서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인 ‘진화’를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이란 이름으로 공표한 것이다. 나서기 싫어하고, 소심하며, 싸우길 즐기지 않았던 그였지만 2,000년 간 서구를 지탱한 기독교에 맞서 분연히 일어섰다. 전 유럽의 99.9%가 믿고 있는 성경의 천지창조론에 맞서 진화론을 주장하는 것은 3만 6천 5백일을 거센 파도와 싸우며 항해하는 것보다 더 힘들 것이라는 걸 그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이 공고한, 그러나 들으려 하지 않는 기독의 군대와 맞서 싸우기 위해선 디테일에 디테일을 더하고, 논리에 증명을 더해서 독신(瀆神)이라는 낙인에 대항해야 한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모험은 연구와 사색, 확인과 검증이었다.
20여 년을 과학의 창과 방패로 쌓아올린 『종의 기원』을 내놓고도 찰스 다윈은 모험을 멈출 줄 몰랐다. 그를 비난하는 주교와 십자군에 맞서 진화론을 옹호하며 싸운 것이 아니다. 창조론과의 전쟁은 헉슬리를 비롯한 동료들이 그를 대신해 수행했다. 그의 모험은 진화론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과학의 전쟁이었다. 그는 다시 시골집에서 병약한 몸을 이끌고 12년간의 외로운 모험을 진행한다. 이번에도 그의 무기는 과학이었고, 자료였고, 사색이었다. 종의 기원에서 명징하게 드러내지 않았던 인간의 기원, 그리고 성(性)의 기원에 대해 쓴 새로운 책을 발표한 것은 『종의 기원』으로부터 12년이 지난 1871년이었다.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The Descent of Man)』이 그가 모험의 결과로 세상에 내놓은 책이다. 전 유럽에서 다윈을 원숭이로 그린 그림이 대유행을 타고 있을 때, 그는 이전에 언급하지 않았던, 인간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대놓고 이야기하는 책을 내놓았다.
그로부터 150년 뒤, 찰스 다윈의 후예들은 여전히 모험 중이다. 물론 이 모험에 나선 과학자의 무기는 여전히 가설과 실험, 관찰과 검증이다. 여전히 진화론에는 더 많은 디테일과 더 많은 확인이 필요하다. 우리는 찰스 다윈 덕분에 나무를 봤고, 잎과 줄기와 뿌리 그리고 꽃과 열매를 봤다. 이 나무가 진화론인 건 분명하다. 그러나 잎맥을 보고, 잎맥을 타고 흐르는 수액을 보며, 뿌리의 뿌리털과 그 털 안쪽의 세포막과 세포벽을 보며 더 디테일한 모험을 하는 중이다. 아주 즐겁다. 가끔 창조과학이란 해충이 나뭇잎의 일부를 갉아먹지만, 더 이상 모험 자체를 방해할 순 없다. 그저 사소한 귀찮음, 그 이상은 아니다.
(과학 커뮤니케이터)과학을 공부하고 쓰고 말한다.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 과학문화위원회 회원이다. 『나의 첫 번째 과학 공부』 『모든 진화는 공진화다』 『멸종 생명진화의 끝과 시작』 『짝짓기 생명진화의 은밀한 기원』 『경계 배제된 생명들의 작은 승리』 등을 썼다. '인문학을 위한 자연과학 강의' '생명진화의 다섯 가지 테마' '과학사 강의'의 강연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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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소심한 과학자의 지루한 모험
『종의 기원』 찰스 다윈의 이야기
박재용
2017-11-07
모험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형도 의사였다. 그도 의대를 갔으나 당시 마취도 없이 진행되는 수술과 환자의 비명, 그 과정에서 흘러 넘치는 피를 보는 일을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2년도 되지 않아 그는 자퇴를 하고 만다. 그러나 대학을 다니는 동안 그는 박물학이라는 학문을 접하면서 깊게 빠져들게 된다. 그의 아버지는 단지 피를 보는 게 싫다며 의대를 중퇴한 아들에게 실망했지만 이미 때려치운 걸 어쩌겠는가. 아버지는 당시 안정적이며, 신망도 높은 직업인 신부가 되라는 새로운 제안을 한다. 찰스는 신부가 되면 교회 일을 대충 해치우고 남는 시간에 박물학을 연구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냉큼 아버지의 제안을 받아들여 신학대학에 들어간다.
다시 대학에 입학한 그는 신학은 뒷전이고 박물학이나 곤충 채집 같은 돈이 되지 않는 일에만 열중한다. 그저 집안이 풍족하니(대대로 의사집안이니 당연히 풍족할 수밖에) 거의 한량처럼 지내다가 그래도 어떻게든 공부는 꽤 한 편이어서 6년 만이지만 좋은 성적으로 졸업을 한다. 그의 아버지 입장에선 대학 졸업도 했으니 이제 좀 사람이 되려나 싶었을 것이다.
소심한 과학자, 모험의 시작
대학 졸업을 마친 찰스는 불쑥 세계 일주를 하겠다고 나선다. 되라는 신부는 제쳐두고 위험천만한 세계 일주라니. 아버지는 극력 반대한다. 아마 ‘네가 세계 일주를 한다면, 호적을 파버리겠다’라거나 ‘내 유산을 받을 생각 따윈 하지도 마라’ 등등의 이야기가 나왔을 수도 있겠다. 그는 워낙 조용하고, 섬세한 성격이기도 해서 아버지에게 대들고 싸우진 못하고, 대신 옛 대학 은사에게 부탁을 한다. 고금을 막론하고 나이든 양반들은, 사회적 지위도 꽤 되고 나이도 지긋한 사람이 ‘자네 아들이 이 분야에서 정말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네. 더구나 열정도 있어. 아들이 하기 싫다는 신부 시키다가 아예 어긋나버리는 것보다는 차라리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하고 싶은 걸 하라고 놔두는 것도 좋지 않겠나’라고 설득하는 것에 잘 먹힌다. 더구나 아들놈이 성격은 조용하지만 고집이 여간한 게 아니어서 남들 부러워하는 의대도 때려 친 녀석 아닌가.
은사를 동원해 아버지를 설득한 그는 이제 배를 타고 세계 일주에 나선다. 대서양을 거쳐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칠레, 에콰도르로 가선 다시 태평양을 횡단하여 뉴질랜드, 오스트레일리아에 가고, 또 인도양을 넘어 아프리카를 돌아 대서양을 건너 브라질로 갔다가 제자리로 돌아온다. 만 4년 2개월의 시간이었다. 스물세 살에 시작한 여행은 스물여덟 살이 되어 끝났다. 그가 만약 의대를 졸업해서 의사가 되었다면 당시로서는 이미 안정적인 지위를 누렸을 나이였고, 성직자가 되었다면 어디 본당의 주임신부가 되었을 나이였다.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 늦어도 한참 늦은 나이였다. 그러나 그에겐 이제부터가 진짜 모험의 시작이었다. 작은 배 한 척에 의지해 4년 여 동안 대서양과 태평양, 인도양을 누빈 건 이제부터 그가 이루어내야 할 모험에 비하면 한낮 젊은 날의 치기일 뿐이었다.
더 넓은 세상으로의 항해
찰스는 제대로 된 모험을 준비하기 위해 번잡한 런던을 벗어나 시골에 은둔한다. 동료들과는 지속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협력 관계를 공고히 한다. 온갖 자료를 파악하고, 전 세계의 학자들과 서신을 교환한다. 직접 땅을 파고 지렁이를 연구하며, 한편으로 육종업자들이 애완용 비둘기 품종을 개량하는 과정도 지켜본다. 그렇게 20 여년, 마침내 그는 아르고 원정대의 이아손처럼 진정한 모험의 항해에 나선다.
할아버지 이래즈머스 다윈이 일찍이 『동물론(Zoonomia)』에서 주장했던 바로 그 사상. 라이엘의 『지질학 원론』을 나침반 삼아 떠났던 20대의 첫 여행에서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인 ‘진화’를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이란 이름으로 공표한 것이다. 나서기 싫어하고, 소심하며, 싸우길 즐기지 않았던 그였지만 2,000년 간 서구를 지탱한 기독교에 맞서 분연히 일어섰다. 전 유럽의 99.9%가 믿고 있는 성경의 천지창조론에 맞서 진화론을 주장하는 것은 3만 6천 5백일을 거센 파도와 싸우며 항해하는 것보다 더 힘들 것이라는 걸 그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이 공고한, 그러나 들으려 하지 않는 기독의 군대와 맞서 싸우기 위해선 디테일에 디테일을 더하고, 논리에 증명을 더해서 독신(瀆神)이라는 낙인에 대항해야 한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모험은 연구와 사색, 확인과 검증이었다.
20여 년을 과학의 창과 방패로 쌓아올린 『종의 기원』을 내놓고도 찰스 다윈은 모험을 멈출 줄 몰랐다. 그를 비난하는 주교와 십자군에 맞서 진화론을 옹호하며 싸운 것이 아니다. 창조론과의 전쟁은 헉슬리를 비롯한 동료들이 그를 대신해 수행했다. 그의 모험은 진화론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과학의 전쟁이었다. 그는 다시 시골집에서 병약한 몸을 이끌고 12년간의 외로운 모험을 진행한다. 이번에도 그의 무기는 과학이었고, 자료였고, 사색이었다. 종의 기원에서 명징하게 드러내지 않았던 인간의 기원, 그리고 성(性)의 기원에 대해 쓴 새로운 책을 발표한 것은 『종의 기원』으로부터 12년이 지난 1871년이었다.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The Descent of Man)』이 그가 모험의 결과로 세상에 내놓은 책이다. 전 유럽에서 다윈을 원숭이로 그린 그림이 대유행을 타고 있을 때, 그는 이전에 언급하지 않았던, 인간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대놓고 이야기하는 책을 내놓았다.
그로부터 150년 뒤, 찰스 다윈의 후예들은 여전히 모험 중이다. 물론 이 모험에 나선 과학자의 무기는 여전히 가설과 실험, 관찰과 검증이다. 여전히 진화론에는 더 많은 디테일과 더 많은 확인이 필요하다. 우리는 찰스 다윈 덕분에 나무를 봤고, 잎과 줄기와 뿌리 그리고 꽃과 열매를 봤다. 이 나무가 진화론인 건 분명하다. 그러나 잎맥을 보고, 잎맥을 타고 흐르는 수액을 보며, 뿌리의 뿌리털과 그 털 안쪽의 세포막과 세포벽을 보며 더 디테일한 모험을 하는 중이다. 아주 즐겁다. 가끔 창조과학이란 해충이 나뭇잎의 일부를 갉아먹지만, 더 이상 모험 자체를 방해할 순 없다. 그저 사소한 귀찮음, 그 이상은 아니다.
(과학 커뮤니케이터)과학을 공부하고 쓰고 말한다.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 과학문화위원회 회원이다. 『나의 첫 번째 과학 공부』 『모든 진화는 공진화다』 『멸종 생명진화의 끝과 시작』 『짝짓기 생명진화의 은밀한 기원』 『경계 배제된 생명들의 작은 승리』 등을 썼다. '인문학을 위한 자연과학 강의' '생명진화의 다섯 가지 테마' '과학사 강의'의 강연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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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진정한 나’로 만드는 것
정여울
[모험]자극추구성향과 자신감, 그리고 굶주린 마음
장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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